만남후기

등록일 | 2015.06.08 조회수 | 2,406

소설가 한창훈이 말하는 “나는 왜 쓰는가”



52년 전, 여수에서 115km나 떨어져있는 작은 섬 거문도에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단지 약간의 땅과 파란 물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그 아이는, 시간이 흘러 소년이 되고, 남자가 되고, 어느덧 변방의 섬 고향을 책임지는 중년의 소설가가 되었다. 

지난 5월의 어느 금요일 오후, 사람들로 북적대는 홍대에서 남쪽 바다 먼 섬에서 온 작가 한창훈을 만날 수 있었다. 붉은 얼굴에 짐 보따리 가방 하나를 메고 터벅터벅 앞으로 걸어 나온 그는, 독자들에게 멋쩍은 인사를 건네며 강연을 시작했다. 명색이 강연회였지만, 강연이라기보다는 즐겁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낼 당시 거문도에는 수출형 경제로 인해 섬을 떠나 도시로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주로 방직공장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섬을 떠나갔다. 어린 시절의 한창훈은 육지의 삶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단지 약간의 땅과 파란 물,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이를 먹자, 섬에 사는 남자라면 모두가 배를 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통은 작은 배로 시작해 원양어선으로, 원양어선에서 경력을 쌓으면 더 큰 무역선으로 옮겨가는 식이었다. 그때는 모두가 ‘sailor man’으로서 선원수첩을 발급받는 무역선으로 가길 원했다. 

섬을 떠나 무역선을 탄 사람들은 종종 고향으로 오렌지를 보내기도 했다. 배에서는 비타민C 보충이 중요해서 오렌지를 많이 먹는데, 그들이 오렌지를 먹지 않고 하나씩 저장해두었다가 한꺼번에 택배로 부쳐오곤 했던 것이다. 캘리포니아산 오렌지와 그들이 보낸 사진을 보면서 한창훈은 처음으로 섬 바깥세상이 궁금해졌다. 커다란 배와 멋진 풍경,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의 모습은 그를 거문도도, 여수도 아닌 더 큰 세상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는 2009년 출간된 <한창훈의 향연>의 개정판이다. 처음 출판사에서 <나는 왜 쓰는가>라는 제목을 한창훈에게 제시했을 때, 그는 왠지 이 책에서 글을 쓰는 대의나 큰 의미를 밝혀야만 할 것 같아서 매우 멋쩍고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섬에 살면 아무래도 생선이나 해물손질을 할 일이 많다보니 “나는 왜 쓰는가”보다 “나는 왜 써는가”가 더 어울리지 않겠느냐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이렇듯 그는 아직도 ‘문학’이나 ‘문인’이라는 표현이 어색하기만 하다고 말한다. 

사실 이번 책이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작가의 대단한 이유가 담긴 것은 아니다.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작가의 답은 책의 맨 앞장 ‘작가의 말’을 참고하길 바란다. 대신 그는 자신이 작가의 길을 택한 구체적인 계기에 대해 말을 덧붙였다.

그가 18살 때, 그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광주에서는 5·18광주 민주화운동이 펼쳐졌다. 그는 어린 시절 그 모습을 지켜보며 ‘목숨 하나 부지하기 힘든 세상에서 공부는 뭐하러 하는 가’,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려고 했으나, 첫사랑을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후 연인에게 “너와 함께 하면 불안하다. 미래가 안 보인다”는 이유로 20살에 실연을 당하고 무려 4년간의 침체기를 보냈다. 군 제대를 하고 나서는 대전의 모 대학교 지역개발학과에 진학했으나, 1년 반을 공부한 뒤 전공공부 역시 포기하게 되었다. 진로에 대한 고민이 가득했던 20대, 그는 ‘돈을 못 벌어도 욕 안 먹는 직업’인 예술가, 그 중에서도 돈이 제일 적게 들어가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이후 공장을 다니며 생활비를 벌었고, 글을 배우고자 다시 학교에 등록했다. 


수십 년간 작가 생활을 이어오면서 그가 소설가로서 터득한 나름의 ‘소설 쓰는 법’이 있다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필사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한창훈은 글쓰기를 배우기 위해 대학시절 학교로 돌아가 문예창작론 강의를 들으면서, 태어나 처음으로 소설을 필사하는 과제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처음 필사한 작품이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이다. 400자 원고지의 저자 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적고, ‘이것은 내가 쓰는 글이다’라고 생각하며 한자 한자 천천히 베껴 썼다. 그렇게 꾸준히 필사를 하고 보니 문외한이었던 그도 글은 이렇게 쓴다는 걸 조금은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터득한 것들은 자신의 이야기에 맞게 최대한 흉내내어보고, 육화(肉化)시키면 더 좋은 글이 탄생하게 된다. 

둘째, “군더더기 없이 빠져라.” 세상에서 가장 좋은 말로 가득한 글이 바로 결혼식 주례사다. 주례사에는 온갖 축복의 말이 넘쳐나지만 정작 하객들은 별 관심이 없다. 나도 이미 알고 있는 말로 남이 나를 가르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우리는 기분이 나쁘다. 아이들의 일기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일기를 쓸 때 갖는 가장 큰 고뇌는 일기의 분량과 ‘느낀 점’ 쓰기다. 그러나 하루하루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 분량을 늘리고 반성과 다짐을 더하면 그 글은 주례사처럼 재미를 잃게 된다. 이는 산문을 쓸 때도 마찬가지이다. 나만 갖고 있는 소재는 아주 재미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글의 반 이상을 느낀 점으로 채운다는 것인데, 이 때 반성이나 가르침이 들어가 버리면 글은 망가지게 되어있다. 작가의 글은 옛 장롱 속에 숨겨진 옛 사진 한 장처럼 장면 하나를 군더더기 하나 없이 정확하게 보여주고 빠져야 한다. 그리고 사진을 보는 사람이, 글의 독자가, 이로부터 스스로 의미를 읽어낼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야 하는 게 핵심이다. 

셋째, “단편소설을 써라.” 이는 그가 문예창착론 수업을 배우면서 터득한 또 하나의 방법이다. 한창훈 역시 젊은 시절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단 두 줄을 쓰고 허리를 세 번 비트는 일이 예사였다고 한다. 글을 쓰기가 너무 힘들어 한창 ‘나는 아닌가보다, 나는 재주도 없는데 이게 다 괜히 쓸데없는 짓은 아닌가’, 라는 고민을 할 때쯤, 교수에게 ‘게으름 때문에 글을 쓰기가 힘들다’고 고백하니 “작가라는 놈들은 원래 다 게을러”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젊은 한창훈에게는 그 당시 그 말 한마디가 큰 위로였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당연히 장편보다 단편이 더 접근하기 쉽다. 글을 쓰다보면 ‘필’이 오는 순간이 있는데, ‘필’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마추어, ‘필’을 찾아 들어가는 사람은 프로라는 말이 있다. 글을 계속 쓴다는 것은 물론 괴로운 일이다. 두 줄 쓰고 허리를 세 번 비트는 일이 이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것을 계속 해야 ‘필’이 더 단단하게 박힐 수 있다.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필은 절대 오지 않는다. 글을 쓸 느낌이 오지 않아도, 그게 고통스러워도 몇 번을 견뎌내야만 단련이 된다. 최소 3번 이상은 이런 ‘지랄’을 견뎌야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한창훈의 지론이다.


강연이 끝나고, 독자들의 질문을 마무리하면서 한창훈은 한국의 작가 지망생들에게 말하고픈 마지막 이야기를 전했다. “좋은 책은 제발 스스로 찾아라.” 한창훈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우선 좋은 책을 고를 줄 아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요즘 유행하는 작가의 글 말고, 베스트셀러나 남들의 의견을 따라가지 말고, 자신이 직접 좋은 글을 찾아 나서라는 것이다. 과거 신경숙 작가가 한창 인기몰이를 하던 시절, 신춘문예에 투고한 글의 10편 중 7편은 그녀의 글을 따라한 개성 없는 글들이었다고 한다. 그런 글은 탈락 1순위다. 오히려 ‘지금 유행하는 책’보다 가장 세고 높은 대상을 목표로 삼아 글을 쓰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고전이 있다. 한창훈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작가로서 대단한 인기나 수입을 기대하거나 남들을 따라가기 이전에, ‘나는 내가 곧 죽어도 이 작품은 이렇게 쓰겠다’라는 다짐을 마음에 품고 흔들리지 않고 밀고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한창훈의 할머니는 스물넷의 나이에 과부가 되고 섬에서 물질을 시작했다. 그의 할머니는  소설가 한창훈에게는 스승과도 같은 존재다. 할머니는 자연과의 대화를 나누며 무생물에게도 인성을 부여하던 사람이었다. 섬사람이다 보니 흙, 풀, 나무에 집착하기도 했는데, 식물이 할머니의 손에만 들어가면 곧잘 자라고는 했다. 그런 할머니는 작가 한창훈의 마음속에 유독 깊게 뿌리내린 존재였고, 얼마 전 돌아가신 그녀의 인생을 기록하기 위해서 소설가 한창훈은 지금도 글을 쓴다고 했다. 이날 그의 강연은, 그의 삶과 소설가로서의 인생을 듣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그만큼 더 소중한 시간이었다. 솔직한 고백과 글쓰기에 대한 성찰이 돋보였던 그와의 만남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과 용기가 되었기를 소망한다.





인터파크도서 북& 12기 최효정

이 나이대의 청춘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욕심 많고, 하고 싶은 것 투성이인 스물한 살. 보통의 여대생 최효정입니다. 나의 경험, 나의 이야기, 그리고 나의 생각을 담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어렴풋이 작가라는 꿈을 꿨던 어린 시절을 지나 이제는 단 하나, 좋은 글을 쓰고 그 글로 인해 동요될 작은 마음 하나를 꿈꾸는 꼬꼬마 글쟁이입니다.

작가소개

한창훈

1963년 여수 출생. 소설집 『가던 새 본다』 『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 『청춘가를 불러요』 『나는 여기가 좋다』 『그 남자의 연애사』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 장편소설 『홍합』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 『꽃의 나라』 『순정』 『네가 이 별을 떠날 때』, 산문집 『내 밥상위의 자산어보』 『내 술상위의 자산어보』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공부는 이쯤에서 마치는 거로 한다』, 어린이 책 『검은섬의 전설』 『제주선비 구사일생 표류기』 등이 있다. 1998년 한겨레문학상, 2009년 요산문학상, 2009년 허균문학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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