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후기

등록일 | 2014.09.30 조회수 | 4,207

소설가 한창훈, 거문도에 살다

  

“먼 곳으로 간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고달프다. 기회를 만나거나 만들어야 하고 안 아파야 하고, 다녀와도 될 만한 상황이 만들어져야 한다. 시작되고도 여러 가지를 견뎌야 한다. 그것들을 다 감수하고서도 갈 만한 곳. 그래 나는 극지 북극해의 일각고래와 북극고래를 만나기 위해 배를 탔다.”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북쪽 항해기 1-인천에서 베링 해까지’ 중에서

 

 
↑독자들을 거문도로 안내해준 줄리아아쿠아호

지난 2013년 소설가 한창훈은 일각고래와 북극고래를 만나기 위해 아라온호를 타고 북극으로 갔다. 그로부터 약 일 년이 지난 2014년 9월, 독자들은 전국 각지에서 여수로 모여들었다. 거문도에 있는 작가 한창훈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아라온호을 타고 북극으로 가는 것과는 비할 바가 못 되겠지만, 이날만큼은 모두들 단단히 각오를 해야 했다. 날씨는 화창했지만 파도가 거셌다. 독자들을 섬으로 안내하는 줄리아아쿠아호는 초입부터 거세게 흔들렸다. 

 
↑거문도항에 도착한 여객선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줄리아아쿠아호의 최종목적지, 거문도에 도착했다. 휘청이던 여객선에서 내려 드디어 단단한 땅을 밟은 독자들은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예정되어 있었던 백도관광 프로그램은 거센 파도로 인해 취소되었고, 저자는 대신 등대를 보여주겠다며 독자들을 이끌었다.
 

↑등대로 독자들을 이끄는 저자. 이번 문학기행에 참석한 독자들의 첫 번째 목적지는 거문도 등대였다. 열댓 명의 사람들이 봉고차 짐칸에 앉아 등대로 가는 오르막으로 향했다.

 

 

↑해질녘 저자와 독자들이 함께 타고 가는 봉고차의 그림자가 길가에 비치는 모습. 바로 앞에 보이는 곳은 유림해수욕장이다. 이곳은 저자가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유림해수욕장에 사람이라고는 나 혼자”라는 작가의 말이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해발 1미터에 위치한 한창훈 작가의 자택을 제외하고는 그 무엇도 찾아보기 힘들다.
 


↑등대로 가는 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거문도자연관찰로가 이어진다.
  




↑거대한 암석과 낮은 수풀로 둘러싸여있는 자연관찰로. 수월산에 자리 잡고 있는 거문도의 등대는 남해안 최초의 등대다. 등대로 가는 길은 바다와 숲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인데, 따뜻한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동백나무와 구실잣밤나무 등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독자들을 이끌며 빠른 걸음으로 등대로 향했고, 독자들은 저자의 뒤를 따르며 보이는 남해의 풍경에 감탄하기도 했다.
 
 

↑거문등대. 거문등대는 거문도 수월산 끝머리에 위치하며 동양 최대의 등대로써 1905년에 세워졌다. 25마일까지 불빛을 발산하고 동으로는 일본 큐슈, 남으로는 동지나해의 선박들에게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거문등대의 바로 옆에 위치한 관백정(觀白亭). 바다 쪽으로 튀어나온 절벽 위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거센 바닷바람이 몰아치며 주변 해안절벽이 아주 멋진 경관을 이루는 곳이다.

 

↑관백정에서 한창훈 작가와 독자들의 기념사진

 
↑수월산에서 보는 노을
 

↑노을을 바라보는 저자


“이런 곳에서 살면서 바닷가를 거닐고 육지 다녀오고 태풍을 만나고 원고 쓰고 낚시 가고 밥을 해먹고 술 따르고 음악 들으며 하루해 저물린 다음 길고 긴 밤을 보냈다. 간혹 산에 가고 더 간혹 독서를 한다. 그 외에는 무엇을 하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내 행보는 더 단조로워지고 있으니 이미 단순함을 도착점으로 정해 살고 있는 것이다.”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집’ 중에서


한창훈은 8년 전 고향 거문도로 돌아와 이렇게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는 이번 책에서 “단순한 삶을 노련하게 사는 것만 있을 뿐”이라며 “최소한 이게 평화다”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아주 기가 막힌 하루를 위해 인생을 사는 게 아니다”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거문도 삼호교. 거문등대가 위치한 서도에는 유림해수욕장과 한창훈 작가의 자택인 해발 1미터의 바닷가 흰 집이 있다. 

 
↑소설가 한창훈의 집


소설가의 집을 떠올리면 꼭 경치 좋고 물 좋은 곳에 아담하고 운치 있게 들어서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그러나 직접 가서 본 소설가 한창훈의 집은 책에 묘사된 그대로였다. 을씨년스럽고 초라한 모습. 과연 귀신이 나올 법한 집이었다. 

“월세 십만 원의 내 집은 가로등 불빛 속에서 참으로 쓸쓸하게 서있다. 기르는 개보다도 집이 더 나를 반겨한다. … ‘염병한다고 어디를 싸돌아다니다가 이제서야 기어들어와.’ 집이 말을 할 줄 안다면 이럴 것이다. 고래가 사람 말을 할 줄 모르는 것은 서운하지만 집이 벙어리인 것은 다행이다.”

 

  
↑거문도 해산물 정식

 
↑삼치회. 삼치는 본래 성질이 고약해 낚아 올리자마자 바로 죽어버리는 물고기다. 죽은 후에는 바로 부패가 시작되기 때문에 육지에서는 아주 먹기 힘든 것이 바로 이 삼치회인데, 그 귀한 것이 상에 올랐으니 독자들이 무척 반가워했음은 이루 말할 것도 없다.
 
 

↑거문도 선착장에서

“... 저는 술에 취했을 때 아름다운 사람을 최고로 칩니다. 흥취가 솟아났는데도 부드럽고 조심스럽다면 그 사람은 진짜입니다. 그런 사람은 꼭 들고 평생 친구로 지내야 합니다. 그런 친구 있나요? 저는 몇 명 있습니다.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그러니 어찌 함께 안 마실 수 있겠어요. 아름다운데.”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이별은 훈련이 안 돼-서쪽 항해기’ 중에서


저녁 식사 후에는 몇 가지 주전부리와 함께 작가와 독자들 간의 조촐한 술판이 벌어졌다. 이날 거문도 문학기행에 참여한 독자들 중에는 4년 전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가 출간되었을 때에 이어 두 번째 거문도 방문이라는 이도 있었다.
 

  
↑동성호와 청심7호

“내가 타고 다니는 배는 ‘동성호’이다. 중고로 샀을 때 이미 그 이름이었다. 나는 ‘순심호’나 ‘삼월이호’로 바꾸고 싶은데 배 이름 바꾸는 데도 수고와 돈이 든다고 해서 아직 못하고 있다.”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고래’ 중에서


이튿날 오전. 아침을 먹고 저자와 함께 독자들이 향한 곳은 가두리 양식장이었다. 저자의 배 ‘동성호’와 ‘청심7호’가 독자들을 가두리 양식장으로 데려다 주었다. 
 


↑소설가 한창훈과 그의 배 동성호


“사람은 자신이 가장 오랫동안 바라본 것을 닮는다. 내가 죽을 때 바다를 닮은 얼굴이 되어 있다면 좋겠으나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다. 최소한 빈 술병이라도 닮기를 희망한다. 당신은 어떤가. 혹시 비씨카드나 돈의 얼굴을 하고 죽을 수도 있다고 상상해본 적 없으신가.”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집’ 중에서


청명한 하늘과 이루 말할 데 없이 푸른 바다. 그리고 소설가 한창훈과 그의 배 동성호. 바다와 바다를 닮아가는 그가 한데 어우러진, 누가 봐도 감탄을 자아내는 풍경이었다. 독자들은 카메라를 꺼내 연신 사진을 찍어대며 ‘정말 멋지다’며 감탄을 연발했다. 그를 동경하는 소녀 팬같은 독자들의 모습에 저자는 멋쩍은 듯 웃음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독자들에게 낚시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 작가의 모습


가두리 양식장에 도착한 후, 본격적인 낚시채비가 시작되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직접 미끼 꿰는 법을 알려주며 시범을 보였다. 하지만 거센 파도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바로 옆 가두리 양식장에서 물고기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기 때문인지 안타깝게도 이 날 낚시에서 수확은 없었다. 
 
 




↑숯불에 구워진 삼치소금구이를 먹고 있는 독자들. 별 수확이 없어 아쉬워하던 독자들을 위해 저자는 바다 한가운데 가두리 양식장에서 숯불에 바로 삼치소금구이를 준비했다. 섬에 살고 있어도 자주 먹기가 힘들다는 삼치요리에서 독자를 향한 저자의 정성을 엿볼 수 있었다.
 

↑거문도 선착장으로 들어오는 동성호
  



↑정성들여 책에 사인하고 있는 저자의 모습
 

↑저자와 독자들의 기념사진


어느덧 예정된 일정이 마무리되고 헤어짐의 시간이 다가왔다. 독자들은 저자의 사인을 받고 기념촬영을 한 뒤 여수로 향하는 배에 탑승했다. 독자들은 물론 저자도 헤어짐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헤어질 무렵 거문도여객선터미널에서 독자들을 바라보며 “이별은 훈련이 안 된다”고 말하던 저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고요한 거문도 한창훈 작가와 함께한 1박2일의 거문도 문학기행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인터파크도서 북& 12기 최효정

이 나이대의 청춘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욕심 많고, 하고 싶은 것 투성이인 스물한 살. 보통의 여대생 최효정입니다. 나의 경험, 나의 이야기, 그리고 나의 생각을 담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어렴풋이 작가라는 꿈을 꿨던 어린 시절을 지나 이제는 단 하나, 좋은 글을 쓰고 그 글로 인해 동요될 작은 마음 하나를 꿈꾸는 꼬꼬마 글쟁이입니다.

작가소개

한창훈

1963년 여수 출생. 소설집 『가던 새 본다』 『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 『청춘가를 불러요』 『나는 여기가 좋다』 『그 남자의 연애사』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 장편소설 『홍합』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 『꽃의 나라』 『순정』 『네가 이 별을 떠날 때』, 산문집 『내 밥상위의 자산어보』 『내 술상위의 자산어보』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공부는 이쯤에서 마치는 거로 한다』, 어린이 책 『검은섬의 전설』 『제주선비 구사일생 표류기』 등이 있다. 1998년 한겨레문학상, 2009년 요산문학상, 2009년 허균문학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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