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오서 어워즈

제6화

2014.12.10

묘 증후군 | 이현준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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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40분.

이제 자취방으로 향할 시간이었다. 더 지체하다가는 순찰을 도는 경비업체 직원에게 또 부드러운 지청구를 들을 것이 뻔했다. ‘선생님, 12시 전에 본관에서 나가셔야 합니다.’ 늘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또 너냐는 식의 말투가 부담스러웠다. 쫓기듯 대충 가방을 싸고 건물 밖으로 내처 나왔다.

자취방으로 가는 길. 술에 취한 학생들 몇몇이 배회하는 것이 보였다. 목적지가 있어도 급할 것 없다는 태도들이 엉뚱하게도 보기 좋았다. 시계 부품 같은 삶보단, 귀퉁이의 나사 두어 개 빠져도 음악이 잘 나오는 라디오 같은 삶이 좋았다. 그래도 조심해서 가시게. 술 취한 학생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난 마음의 인사를 건넸다.

뭐지?

검은색 고양이 하나가 앞서 걷고 있다. 이미 내게 말을 걸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랬다면 미안하다, 나도 말을 걸었다. 하지만 녀석은 무심한 듯 앞만 보며 걷다가, 느닷없이 데굴데굴 구르며 허공에 발짓을 하고는 또 앞서 걷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녀석의 걸음걸이는 평소 알던 고양이의 것이 아니었다. 부자연스럽게 꼬리가 왼쪽으로 갸우뚱 들려있다. 그리고 꼬리 밑으로 붉게 부푼 암컷의 생식기가 드러나 있다. 동물의 것이라지만 민망한 마음에 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녀석은 가던 걸음을 돌려 나에게 다가와 내 정강이뼈에 등을 비비기 시작했다. 작은 발이라도 밟을까 싶어 내 걸음걸이가 꼬이기 시작했다. 8자를 그리며 녀석의 행동은 계속되었고, 난 어찌할지 몰라 죽을 맛이었다.

“훠이!”

참새라도 쫓듯 손을 꺼두르며 소릴 지르지만, 녀석은 자신의 행동에 집중한다. 결국 난 걸음을 멈췄다. 녀석도 멈췄다. 그리고는 서로 마주 보기 시작했다. 한 동물 프로그램에서 고양이에게 친근감을 보이려면 눈을 깜박이면 된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깜박깜박깜박깜박.

망가진 자동차 방향지시등 마냥 너무 빠르게 깜박였나 보다. 고양이는 갑자기 앞발을 쭉 뻗고 기지개를 켜더니 심드렁한 표정으로 내게서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 곧장 걸음을 옮겨 골목 어둠으로 들어갔다. 등이 검은색 털로 뒤덮인 덕에 몸이 반쯤 어둠에 묻혔는데도 어둠과 하나가 되어 버렸다. 흰 점 하나가 도드라지는 꼬리가 잠시 어둠 밖으로 머물다가 빙빙 원을 두 번 그리고는 그마저 사라져 버렸다. 난 혼이 빠진 모습으로 어둠을 바라다보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얼마 전 내가 술에 취해 쓰러졌던 장소에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미칠 노릇이군. 정말 고양이에게 홀리기라도 한 느낌이었다. 난 가만히 발치를 바라보았다. 베이지색 바지 위에 검은색 고양이 털 몇 가닥이 보였다. 탁탁, 발을 구르지만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내 포기하고 걸음을 옮기던 난 몇 번이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두려움도 아니고, 뭣도 아닌 이상한 감정을 수렴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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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준

제4회 여수해양문학상 소설부문 대상, 2005 평화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이후 10년 동안 간간이 문학잡지에 단편을 발표하면서 스스로를 ‘三文文士(서푼짜리 소설가)’로 부르며 살아왔다. 도보여행과 낙서를 좋아하고, 여행작가가 평생 꿈인 게으름뱅이이다. ‘철학’과 ‘국문학’을 전공했고, 현재는 대학에서 글쓰기 관련 교양과목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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