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오서 어워즈

제4화

2014.12.08

묘 증후군 | 이현준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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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동안 학교는 조용하다 못해 고요했다. 중간고사가 끝난 주라서 다들 학교에서 한 걸음씩 떨어져 있는 듯했다. 영어소설을 읽고 있던 나는 계속해서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읽고 있었다. 낯선 고요에 오히려 집중이 되지 않았다. 잠시 꼼지락대던 발가락을 바라보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창밖을 치어다보았다. 어느새 어둠이 무겁게 창밖의 풍경 위로 내려앉아 있었고, 가로등은 가까스로 빛을 내며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려 애쓰고 있었다.

난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동전의 수를 확인하곤 건물 밖으로 나갔다. 우르르 어둠이 건물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난 경비 아저씨의 눈치를 보며 얼른 문을 닫았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고 아트홀 근처의 자판기에서 200원짜리 설탕커피를 뽑아들었다. 담배가 발갛게 타오르는 사이 어느새 내 동공은 넓어지며 어둠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일송 아트홀’을 지나 잔디가 깔린 운동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한림대가 생기기 전 성심여대가 쓰던 운동장엔 작은 선사시대 유적이 있다. 언뜻 보면 산비탈에 파인 작은 동굴 같은 것인데, 나는 유독 그 동굴이 지닌 어둠을 싫어했다. 춘천에 오는 사람들은 관광지도를 들고 와서는 동굴 앞에서 실망스런 표정으로 어둠 속을 들여다보다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자리를 뜨곤 했다. 좀 더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안내문을 자세히 읽거나 사진을 찍기도 했지만 마뜩잖은 표정을 짓긴 매한가지였다. 나는 동굴을 지나쳐 테니스장 근처의 벤치에 앉았다. 마음이 가라앉자 학교 풍경이 조용히 살아나 움직이기 시작했고 사르륵사르륵 소리를 냈다. 운동장 구석에 자리한 오동나무의 큰 이파리들이 바람살에 내는 제법 묵직한 소리와, 웃자란 잔디들이 내는 가벼운 소리까지 나는 놓치지 않고 감지해 내고 있었다.

‘이잉, 으이잉……’

갑작스러운 괴기한 소리에 놀라 나는 벌떡 일어났다. 그 탓에 손에 들고 있던 뜨거운 커피가 출렁이며 컵을 넘어 바지 위에 쏟아졌고 나도 모르게 짧은 신음을 냈다. 나는 빠르게 마음을 수습하며 다시 귀를 기울였고, 어찌 된 일인지 그 기묘한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으스스한 느낌에 학교 건물 쪽으로 빠르게 발을 놀렸지만, 그 소리는 마치 숨어 있다 나를 덮치듯 내 귀를 다시 잡아챘고 우뚝 걸음을 멈췄다.

갓난아기의 울음소리와 흡사한 소리, 난 차라리 고양이라고 믿고 싶었다. 갓난아기가 늦은 밤, 어두운 학교 운동장의 어딘가에 있다는 가정보다는 고양이가 수백 배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끊길 듯 말 듯한 가느다란 소리는 내가 알던 고양이의 울음소리와도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이내 소리를 쫓던 내 시선이 멈춘 곳은 분명 선사시대유적인 그 작고 어두운 동굴이었다. 나는 급히 피를 쏟아내는 심장을 억누르며 조금씩 동굴로 향해 갔다. 소리는 계속 흘러나왔고, 동굴이 10여 미터 정도 가까워졌을 때 소리는 더욱 가늘고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막연한 두려움이 날 에워싸기 시작했고, 나는 더 이상 다가갈 수 없었다. 뭔가 뛰쳐나온다면 그것이 설령 작은 들쥐라도 내 심장이 견디어 낼지 의문이었다. 어찌 들으면 톱으로 연주하는 소리 같기도 하고, 아니면 불균형한 호흡으로 소프라노 오카리나의 높은음을 부는 것도 같았다. 또한 여전히 고양이 울음소리이기도 했고, 갓난아기의 울음소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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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준

제4회 여수해양문학상 소설부문 대상, 2005 평화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이후 10년 동안 간간이 문학잡지에 단편을 발표하면서 스스로를 ‘三文文士(서푼짜리 소설가)’로 부르며 살아왔다. 도보여행과 낙서를 좋아하고, 여행작가가 평생 꿈인 게으름뱅이이다. ‘철학’과 ‘국문학’을 전공했고, 현재는 대학에서 글쓰기 관련 교양과목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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