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오서 어워즈

제3화

2014.12.07

묘 증후군 | 이현준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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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를 하다 가슴 언저리에 나 있는 작은 생채기를 발견했다. 못에 긁히기라도 한 듯 붉은 선을 따라 살짝 부기가 올라있었다. 난 엄지손가락으로 상처를 쓸어내렸다. 쓰읍, 쓰라림에 입 밖으로 신음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불현듯 내 머릿속에 흐릿한 장면 하나가 스치고 지나갔다. 생각이 날 듯 뇌의 굴곡을 따라 간질이더니, 가볍게 훅 사라져버렸다. 나는 마치 눈에라도 보이듯 사라져 가는 것을 쫓다 입맛을 다셨다. 쏟아지는 뜨거운 물에 가슴팍의 상처가 여전히 욱신거렸다.

새벽 2시, 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되지도 않는 소설을 벌써 1년째 붙잡고 있다. 오버클록 시킨 싸구려 중고 그래픽카드 탓에 컴퓨터는 연신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고 있었다. 젠장, 소설이 쓰이지 않는 탓을 낡은 컴퓨터 탓으로 돌린다. 애당초 개연성 있는 스토리가 나올 소재가 아니었다. 사회에서 고립된 한 남자가, 늘 티브이에서 나와 웃어대는 한 연예인이 자신을 비웃는다고 착각해 복수를 꿈꾸는 내용이었다. 모니터 속 커서는 스테이플러로 상대가 죽을 때까지 온몸에 철심을 박는 상상을 하는 장면에서 멈춰있다. 난 스테이플러로 눈알을 찍는 클라이맥스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순간, 이 잔인한 장면에서 어이없이 눈물이 핑 돌았다. 미쳤다, 싶었다. 그만 자야 할 것 같았다.

애써 침대에 몸을 뉘이자, 삐그그 재생매트리스의 녹슨 스프링이 우는소리를 낸다. 티잉, 녹이 떨어져 나가며 내는 후렴구도 여전하다. 그리고 창밖으로는 늘 그렇듯 고양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린 시절, 고양이들은 초음파로 대화한다고 들은 적이 있다. 누가 했던 말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난 그걸 철석같이 믿어왔다. 언젠가 창밖에서 내려다보이는 단층집 옥상에서 움직이지 않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고양이를 본 적이 있다. 마치 실연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멍하니 있던 녀석은 갑작스레 뛰어올라 어두운 허공에서 무언가를 낚아채고 있었다. 그것은 놀랍게도 박쥐였고, 초음파를 감지하는 탓이라고 나는 믿었다. 그때부터 난 고양이의 무음의 말 걸기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전파 속 사람들의 대화가 항상 내 몸을 관통하듯, 길 가는 내 뒤통수에 말을 거는 고양이의 초음파도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어쨌든 아쉽게도 내가 들을 수 있는 고양이의 소리는 극히 일부일 것이다. 영역을 지키는 수컷의 칼칼한 울음이라든지, 발정 난 암컷의 기묘한 소리처럼.

난 언젠가부터 내 창가 근처에 얼씬거리는 고양이의 소리를 눈치채고 있었다. 아마도 내 자취방이 자리한 건물이 녀석의 세력권 안에 자리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혼자 생활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공간이 부족한 도심에서는 고양이들이 암묵적 동거를 하기도 한다. 단독생활과 집단생활을 필요에 따라 선택하는 유일한 동물이 고양이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 방 창으로 넘어오는 고양이 소리는 한정적이었다. 같은 녀석이거나, 녀석에게 쫓겨나는 불만 섞인 울음소리로.

밤은 깊어가고, 나의 잠은 고양이 소리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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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준

제4회 여수해양문학상 소설부문 대상, 2005 평화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이후 10년 동안 간간이 문학잡지에 단편을 발표하면서 스스로를 ‘三文文士(서푼짜리 소설가)’로 부르며 살아왔다. 도보여행과 낙서를 좋아하고, 여행작가가 평생 꿈인 게으름뱅이이다. ‘철학’과 ‘국문학’을 전공했고, 현재는 대학에서 글쓰기 관련 교양과목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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