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6.07.11 조회수 | 6,796

소설가 김숨, 이한열의 훼손된 운동화를 되살려내다

※ 기자가 < L의 운동화>를 쓴 김숨 작가를 만나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이한열 열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구성한 기사입니다. – 편집자의 말



 



이한열 열사에게



한여름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이른,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6월입니다. 며칠 전에는 종일 흐릿하더니 늦은 오후가 되자 빗방울이 떨어져 내리더군요. 샌들을 신은 맨발이 축축하게 젖었지만, 우산 위로 톡톡 떨어지는 빗방울의 소리가 참 좋았습니다. 당신이 살아 숨 쉬던 29년 전의 6월은 어땠을까요. 1987년 6월, 한 켤레의 운동화를 남긴 채 우리 곁을 떠난 당신을 다시 한번 떠올려 봅니다.



사실 고백하자면 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신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몇 번 보았던 분으로만 기억하고 있었지요. 그저 이순신 장군이나 안중근 의사 등 위인전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의 계보에 끄트머리쯤에 계신 분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세상을 떠나던 해, 저는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이런 제게 당신은 교과서에 등장하는 역사 속 인물 중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당신이 아주 특별하게 다가온 순간이 있었습니다. 바로 소설가 김숨이 펴낸 < L의 운동화>라는 장편소설을 만난 이후였지요. 소설 표지에는 당신의 이름이 올곧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소설은 소설가 김숨이 당신의 운동화를 소재로 한 장편소설입니다. 당신은 1987년 6월 9일, 전두환 정권을 규탄하는 시위에 나섰다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었지요. 친구의 품에서 팔다리를 축 늘어뜨린 채 머리에 피를 흘리던 당신의 사진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경영학과 2학년, 고작 스무 살의 나이였습니다. 하지만 당신으로 인해 500만 명의 시민이 목소리를 높였고 6월 민주항쟁이 터졌습니다. 그때 당신이 신고 있던 운동화가 28년 만에 복원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요? 운동화의 복원을 맡은 이는 미술품 복원 전문가 김겸 박사입니다. 김숨 작가는 우연히 김겸 박사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복원'을 주제로 한 강의였는데 수업 중 당신의 운동화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었다고 하더군요. 사실 김숨 작가는 꽤 오래전부터 복원이라는 작업에 흥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물건이든, 기억이든 훼손된 것을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 놓는 과정에 호기심을 느껴왔었다고요. 김겸 박사의 강의에서 당신의 운동화 이야기를 전해 들은 그녀는 곧장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현재 진행형으로 쓰인 이한열 운동화 복원



< L의 운동화>의 화자는 복원가입니다. 그는 당신이 남기고 간 한 켤레의 운동화를 복원할 것인지, 그냥 방치해 둘 것인지를 오래도록 고민합니다. 복원하기로 한 이후에도 복원 과정은 지극히 천천히, 세심한 시간 속에서 흘러갑니다. 운동화의 복원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설은 끝을 맺습니다. 소설을 잘 들여다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현재형으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김숨 작가는 당신의 운동화로 상징되는 민주화 운동의 정신이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현재형으로 썼다고 전했습니다.



이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 작은 궁금증이 하나 생겨났었습니다. 왜 당신의 운동화를 주요 소재로 했음에도, 당신의 이름을 실명으로 거론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부분입니다. 아마 당신도 궁금하셨겠지요. 김숨 작가는 당신의 이름이 직접적으로 거론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이 글은 소설의 형식을 빌리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처음부터 당신의 이니셜인 'L'로 지칭했다고 다짐했습니다. L이라는 이니셜로 설정한 덕분에 작가의 자리에서 당신과 거리를 두는데 조금 더 수월할 수 있었다고요. 이 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민주화 항쟁의 역사적 흐름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프레임이 결코 투쟁적이지 않다는 점입니다. 시종일관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이지요. 오히려 이런 건조한 문체가 당신의 실체를 더욱 구체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에는 이미 운동화가 복원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김겸 박사의 복원 연구소를 찾아가 복원 중인 운동화를 직접 살펴보기도 했고, 복원과 관련된 각종 화학지식이나 약품 등을 조사하는데에도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무엇보다 당신이 남긴 일기와 편지를 유심히 살펴보았다고 했습니다. 현재 마포에 있는 당신의 기념관에는 여러 자료가 남아 있지요. 그녀의 말에 따르면 당신이 남긴 글에는 자신을 성찰하는 부분이 많았다고 하더군요. 시도 잘 쓰셨다고요. 그녀는 당신의 글을 읽으며 당신을 좀 더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녀 역시 처음에는 당신이 그저 먼 존재처럼, 추상적으로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이 소설을 쓰기 전까지만 해도 당신에 대해 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요. 당신이 대학을 다니고 있었을 그즈음, 그녀는 10대 소녀였습니다. 지방의 변두리에서 살고 있던 그녀는 대학생들이 데모하고 있다는 소식을 어른들로부터 전해들을 수 있었습니다. 동네에 살고 있던 한 대학생 오빠가 데모에 참여했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그 오빠의 어머니는 밤새 애를 태우고, 사복경찰들이 종종 동네 골목에 잠복하기도 했었다네요. 하지만 그녀가 민주화 항쟁의 함성을 피부로 직접 느낀 것은 아니었습니다. 서울에서의 뜨거운 함성이 지방의 작은 변두리까지 깊숙이 전달되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우리 삶도 당신의 운동화처럼 훼손되었더라"



그녀는 취재를 명목으로 당신 가족들을 만나지는 않았다고 했습니다. 감히 그럴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고요. 가족들에게 있어 당신의 이야기는 여전히 큰 상처로 남아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김숨 작가는 이 소설의 초고를 넉 달 만에 마무리 지은 후에도 마음이 많이 쓰였다고 했습니다. 이런 그녀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저는 보통 소설을 어떻게 끌고 나갈지 계획을 세우지 않고 바로 쓰기 시작해요. 이후 과정은 우연에 맡겨두는 편이죠. 쓰다 보면 제 머릿속에 떠돌던 이야기들이 하나의 퍼즐처럼 맞춰져서 소설로 연결되거든요. 이 소설 역시 취재를 하는 것보다 우선 쓰는 것이 먼저였어요. 소설을 쓰는 동안 특별히 많은 고민을 하지는 않았고요. 한 개인의 물건이 역사적인 흐름 속에서 시대의 유물로 변화되는 과정을 쓰는 것에 빠져들었죠.



하지만 소설을 쓰고 난 이후에 오히려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됐어요. 제가 쓴 소설이 결코 쉬운 소설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죠. 힘든 소설을 멋모르고 썼던 것 같아요. (웃음) 그런데 쓰기 전부터 여러 생각을 했더라면 쓰는 동안 굉장히 위축되었을 거예요. 이한열 열사가 실존했던 인물인데다 유가족분들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데 있어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았어요. 그래서 이 소설에는 저의 통제를 벗어난 지점들이 존재했고, 저는 그 지점들을 최대한 잘 끌어안고 가야 했어요. 소설과 관련된 대상에 다가갈 때, 더욱 섬세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고요. < L의 운동화>는 저에게 참 많은 것을 가르쳐 준 소설입니다."



이 소설 속에는 당신의 운동화를 둘러싼 다양한 에피소드가 등장해요. 그런데 묘하게도 모두 해체된 가정의 이야기를 품고 있더군요. 김숨 작가는 오늘날 우리의 가정이 그런 모습인 것 같다고 했어요. 당신의 운동화가 버텨온 지난 29년의 시간, 그 시간 동안 우리의 삶도 당신의 운동화처럼 훼손되었다고 설명했죠.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며 하나의 큰 질문에 부딪혔어요. 당신의 운동화를 왜 복원해야 하는지,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만큼이나 중요한 일인지에 대한 물음이었죠. 소설 역시 화자, 즉 복원가를 통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어요. 김숨 작가 역시 소설을 쓰는 동안 이런 질문을 계속했었다네요. 생각해보면 당신의 운동화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된 제품이었죠. 화려한 디자인이나 독특한 기능을 앞세운 것도 아닌, 값나가는 브랜드의 제품도 아니었어요. 그저 흔하게 살 수 있었던 보통의 운동화에 불과했지요.



< L의 운동화>는 개인의 평범한 운동화가 어떻게 시대의 유물로 변화하는지, 그리고 땀과 피와 눈물로 얼룩진 당신의 운동화를 기억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인지를 전하고 있어요. 그 목소리는 외침도 절규도 아니지요. 그저 잠잠하고 고요하지만 특유의 자장력을 갖고 있어 귓가에 오래도록 머물러요. 또한, 당신처럼 희생한 이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묻고 있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님을, 당신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결코 누릴 수 없음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 소설을 덮으며 앞으로 하루하루 더 치열하게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민주화의 한가운데를 거침없이 달려갔던 당신의 운동화를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영원히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당신에게 이 편지를 바칩니다.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토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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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정(북DB 객원기자)

언제나 자유롭고 언제나 사랑하며 언제나 배우고 언제나 글을 쓰고 언제나 즐기며 계속해서 뿌리가 깊어지고 품이 넓어지는 나무처럼 살고 싶습니다. egloo@daum.net

작가소개

김숨

1974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느림에 대하여」가, 1998년 문학동네신인상에 「중세의 시간」이 각각 당선되어 등단했다. 장편소설 『철』 『노란 개를 버리러』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 『바느질하는 여자』 『L의 운동화』 『한 명』 『흐르는 편지』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 『너는 너로 살고 있니』, 소설집 『침대』 『간과 쓸개』 『국수』 『당신의 신』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등이 있다. 동리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허균문학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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