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6.03.28 조회수 | 7,045

11년 만의 장편소설 윤대녕 "20년 지켜온 고집 버렸다"


* 3단계의 점층적 형식으로 선보이는 ’프리즘 인터뷰’입니다. 삼각형의 틀을 통해 빛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프리즘처럼 작가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쉽고 다양하게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 기자 말





[프리즘 1] 윤대녕의 말, 말, 말



- "삶을 시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여전히 저한테 매우 중요한 글쓰기의 동기로 작용합니다. 인간은 상상력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현실에 완강하게 구속돼 있어도 매순간 삶이 가져다주는 의미를 갈망하거든요."



- "기성세대의 역할은 다음 세대에게 자신들이 이룩한 것을 물려줘 사회가 원활히 존속하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좀처럼 기회라는 걸 내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 "모든 소설은 리얼리즘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작가들마다 가장 절박하다고 느끼는 삶의 문제를 소설로 써내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지금껏 리얼리즘을 추구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프리즘 2] ‘문학적 고집’에서 벗어나 ’세상’을 품다



▷ 윤대녕은 누구? 90년대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이념적 성향이 강했던 80년대 소설에서 탈피해 개인의 내면성과 감각적인 문체를 추구하는 새로운 소설 세계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다에서 살다가 산란을 위해 자신이 태어난 하천으로 회귀하는 ’은어’를 통해 인간 존재의 시원(始原)을 탐구한 첫 소설집 <은어낚시통신>(1994)을 시작으로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 <남쪽 계단을 보라> <대설주의보> <도자기박물관>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 등 스물세 권의 책을 썼다. 현재 동덕여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 중. 작년 캐나다에서 방문교수로 안식년을 보내면서 신간 <피에로들의 집>을 완성했다.



▷ <피에로들의 집>은 어떤 책? 한때는 주목받던 연극연출가이자 극작가인 김명우. 사랑하던 신인 여배우가 종적을 감추자 자포자기 상태로 나체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가 연극계에서도 퇴출당한 채 피폐하고 무기력한 나날을 보낸다. 극장에서 우연히 만난 노파 ’마마’의 제의로 성북동 4층 빌라 ’아몬드나무 하우스’에 입주해 각각의 사연을 가지고 모여든 사람들과 만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점점 파편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고립돼 살아가는 ’도시 난민’과 ’유사 가족’이라는 형태를 통해 공동체의 연대 가능성을 모색해본 소설이다.



▷ 지금 이 작가를 만난 이유 90년대 이후 한국 문학을 이끌었던 중견작가의 장편소설이 11년 만에 나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만나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그런데 흐른 것은 시간만이 아니었다. 작가 스스로 "20년 넘게 지켜왔던 ’문학적 고집’을 버렸다"고 말할 만큼 이전과는 전혀 다른 소설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동안 ’관념적’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내면에 깊이 천착했던 그가 사회와 공동체로 관심을 확대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변화의 계기가 궁금했다.



[프리즘 3] 일문일답 들여다보기



Q 11년 만에 나온 장편소설이라 세간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이번 책 출간과 관련한 소회를 들려주세요.



11년 만이라는 시간적 경과는 작품이 주는 의미와는 크게 상관이 없다고 봅니다. 그 기간에 3권의 소설집과 산문집을 출간했으니 소설쓰기 자체와 거리를 두었던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2005)를 출간한 이후, 다음 장편을 준비하기까지 시간이 지연되면서 그만큼 쓰기에 대한 부담이 커졌던 것은 사실입니다. 언급하신 것처럼 시간의 경과는 독자들의 기대치를 높이는 측면이 없지 않거든요.



소회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그동안 등에 지고 다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심정이긴 합니다. 책이 나오고 한 달 가까이 됐는데, 저로서는 ’이제부터 무엇을 쓸까’라는 문제를 두고 고민하는 중입니다. 작가의 손을 떠나게 되면 소설은 온전히 독자의 몫으로 넘어가게 마련인데, 자꾸 뒤를 돌아보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로서는 역시 다음 작품이 중요하다는 거죠.



Q 이번 소설은 주로 개인의 내면에 천착했던 이전 작품들과 달리 공동체와 사회라는 보다 넓은 범주로 관심사가 확장된 게 가장 큰 특징인데요, 변화의 계기가 궁금합니다.



40대에서 50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저 자신이 비로소 ’기성세대’라는 인식을 뚜렷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저 자신을 나이와 상관없이 그저 작가로서만 인식하고 있었거든요. 아무튼 그 시기에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는 사회적 사건이나 재난들을 지켜보면서 ’내’가 그 속에 연루돼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에 시달리곤 했습니다. 또 그때마다 어느 정도 고통을 느끼곤 했습니다. 이는 제가 작가이기 때문에 그러한 윤리적 압박을 받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시기를 지나면서 타자,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글쓰기에 영향을 주었다고 봐야겠죠.



Q 이번 소설은 작가 특유의 감성대를 흔드는 아릿함이 많이 약해졌고, 시적이고 아름다운 문장 대신 담백한 문장이 많더라고요. 기존 윤대녕의 소설을 좋아했던 독자들한테는 좀 낯선 느낌을 줄 수도 있을 법한데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감각의 층위가 달라지고 정서의 색감이 변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요즘은 문장을 쓰면서 장식적 수사를 가급적 피하고 객관적 서술에 치중하려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러한 문장에 매력을 느끼기도 하고요. 말하자면 생물학적 나이가 가져다주는 변화가 저절로 문장에도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이는 의도적이기보다는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봅니다.



하지만 시적(詩的) 메타포가 포함된 문장에 대한 표현 욕구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닙니다. 삶을 시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여전히 저한테 매우 중요한 글쓰기의 동기로 작용합니다. 삶의 순간순간이 가져다주는 의미의 포착 같은 것들이 되겠죠. 인간은 상상력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현실에 완강하게 구속돼 있어도 매순간 삶이 가져다주는 의미를 갈망하거든요.



Q "문학적 고집이 있었는데 벗어난 느낌이다"라고 한 인터뷰에서 말씀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등단해서 약 20년이 경과하는 시점까지 저는 존재의 본질 추구, 구원 가능성, 삶의 생태성 회복이라는 주제에 천착해 글을 써왔습니다. 나이로 보면 대략 40대 후반까지가 되겠죠.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40대 후반의 시기를 지나오면서 저 자신의 변화를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세계에 대한 좀 더 사실적인 접근과 작가로서의 반응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Q 도시 난민처럼 살아가던 사람들이 ’아몬드나무 하우스’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이른바 가족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점점 더 파편화되는 현실에서 너무 낙관적인 희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세계가 점점 더 파편화되고 있기에, 저로서는 이 소설을 통해 유사(모의) 가족의 형태를 실험해보고 싶었습니다. 타자와의 관계가 결여된 삶의 지속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상대적 자아인 타자에 대한 이해와 받아들임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요즘은 개인의 삶 자체가 지니는 무게감 때문에 타인과의 관계를 피하려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공동체의 존속 여부와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전에 개인들의 유대가  붕괴되고 있는 현상에 먼저 초점을 맞추고 싶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제가 독자들에게 손쉽게 낙관적인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던 것은 아닙니다. 작가는 문제를 발견해내는 존재이지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가 못됩니다. 저는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타인의 고통을 자기화하는 지점에서 비로소 삶이 발생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수많은 개인들이 회복되지 않는 한 공동체의 생태도 유지될 수 없는 것이니까요.





Q 연재를 마친 후 1년 동안 여러 번 작품을 고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부분이 그렇게 맘에 안 드셨는지요?(웃음)



작가가 작품을 쓰다 보면 사이사이 표현의 한계에 봉착하게 마련입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계간지에 이 소설을 연재하는 동안 사적인 환경을 포함해 사회적 환경의 변화가 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술의 톤이 일정하지 않고 이야기의 리듬이 불규칙하게 변하는 현상이 발생하더군요. 또한 소설의 후반부를 쓸 때는 환경이 완전히 바뀐 상태였습니다. 작년 한 해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에 연재를 마쳤거든요. 그래서 귀국할 때까지 전체적으로 수정을 거듭해야만 했습니다. 최종 교정은 귀국한 후에 봤고요. 어찌됐든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이 나온 후에는 아무래도 손을 댈 수 없으니까요.



Q 소설에서는 기성세대로서의 죄책감이나 책임의식이 ’마마’와 주인공 명우를 통해 드러납니다. 지금 한국 기성세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또 어떤 노력을 가장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현대사의 굴곡이 심한 나라이기 때문에 기성세대들은 대부분 어려운 삶을 살아왔습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은 말할 것도 없고, 60년대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독점적 경제개발 시대로 들어섰죠. 이후 70, 80년대를 거쳐오는 동안 사회가 수직적 구조로 변하면서 누구나 경쟁에 내몰리는 삶을 살아와야만 했습니다. 따라서 누구나 서로를 경쟁의 상대로 인식하게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 가치와 풍속이 사라지고, 서서히 공동체의 유대가 붕괴됐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기성세대는 경제개발과 민주화의 주역들이라고 자임하는 세대이고 또 그에 따른 경제적, 사회적 기득권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한편 제가 생각하는 기성세대의 역할은 다음 세대에게 자신들이 이룩한 것을 물려줘 사회가 원활히 존속하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는 지나치게 기득권을 독점한 채 다음 세대에게 좀처럼 기회라는 걸 내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정치를 통한 시스템의 변화도 절실하지만 삶의 환경을 조성하는 건 어디까지나 기성세대의 몫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저를 포함한 기성세대의 자각과 성찰이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Q 4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작가로서도 기성세대라는 걸 깨닫게 되셨다고 하셨는데요, 비록 작가는 나이가 들지만 작품은 늙지 않고 젊은 감각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둘 사이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시는지요?



’삶에 대한 긴장의 확보와 유지’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사람은 나이가 들면 차츰 자신의 과거에 안주하려 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로서는 현재의 삶에 열렬히 복무하면서 작가로서의 초심과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게 작품의 젊음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Q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신데요. 선생님이 젊었을 때 생각하던 문학과 지금 이들이 생각하는 문학은 어떻게 다른가요?



저희 세대 때는 자기표현의 방식이 오늘날처럼 다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만큼 글쓰기의 행위와 문학에 대해 종교적 감정을 갖는 문학도들이 많았고, 사회적 분위기도 어느 정도는 그랬다고 봅니다. 문학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게 인식되던 시대였다는 의미가 되겠죠. 이러한 분위기는 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지다, 사회의 이념 체계가 붕괴되고 본격적인 과소비시대로 진입하면서 변화를 맞게 되었다고 봅니다. 대중문학이 그 역할과 기능을 상당 부분 대신하게 되었고요.



지금 문학을 공부하는 세대는 그 압도적인 대중문화의 영향력 안에서 성장해온 세대입니다. 그러므로 문학에 대한 종교적 감정과 태도는 현실적으로 그들에게 요구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정하게 문학에 복무하려는 학생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저는 이들을 아주 귀하게 여깁니다. 문학, 예술에 복무한다고 해서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거든요. 예술가는 스스로 보상받는 존재라는 말도 여기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고요.



Q 이번 소설은 윤대녕 소설의 변화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리얼리티를 가진 소설을 계속 써나가실 생각이신가요?



지금으로서는 앞으로 무엇을 쓸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때그때 절박한 화두들 붙잡고 거기에 매달려 글을 써나가게 되겠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 소설을 쓰면서 얻은 사유와 성찰이 앞으로의 글쓰기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줄 거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모든 소설은 리얼리즘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작가들마다 가장 절박하다고 느끼는 삶의 문제를 소설로 써내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제 방식으로 지금껏 리얼리즘을 추구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 윤대녕 작가가 추천하는 세 권의 책

△ 전성태 소설집 <두 번의 자화상>(창비)
전성태 소설을 읽다보면 누군가 미리 데워놓은 온돌에 앉아 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다 서서히 몸이 달궈지면서 어느덧 뜨겁게 변하는 순간들을 경험하게 된다. 사람에 대한 그의 온화하고도 뜨거운 시선은 어느 소설을 읽더라도 조금치의 어긋남이나 빗나감이 없다. 그리고 ‘이야기를 돌려드리다’에 이르면 그가 작가로 탄생하게 된 경위가 소상히 밝혀지는 바, 작가와 작품이 이토록 정확히 일치하는 예가 있었던가 싶은 생각이 든다.

△ 김성중 소설집 <국경시장>(문학동네)
이 소설가의 작품은 독특하다못해 특별하다는 생각이 든다. 언뜻 국적이 없는 소설처럼 보이나, 이야기의 내부로 들어가면 그 다채로운 상상력과 원시적인 색채감에 곧바로 매료되고 만다. 이는 스케일의 문제와도 직결되는데, 김성중이 그려내는 세계는 그 범위와 깊이가 묘연하고 아득해서 한번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빠져나오는 길을 찾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아직 독자들에게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것 같지만, 그의 소설이 독보적이라는 데는 아마 이견이 없지 않을까?

△ 후지와라 신야 <후지와라 신야, 여행의 순간들>(청어람미디어)
오래전 그의 <인도 방랑> <티베트 방랑>을 읽고 숨이 차올랐던 순간들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일본의 사진가이자 여행작가. 이 책은 1960년대 그가 미술대학을 중퇴하고 무작정 인도로 가게 된 경위와 현지에 도착했을 때의 두려움과 설렘의 진술로부터 시작한다. 그의 흔들리는 사진의 색감은 여전히 매혹적이어서 묘한 충동을 자극하고, 그의 글은 여전히 명상적이고 아름다워서 자주 질투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럼에도 전작들에 비해 보다 담백하게 읽히는 까닭은 이 책에서는 그가 바로 그 자신에 대해 진솔하게 들려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 : 문학동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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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회(북DB 객원기자)

어린 시절, 외롭고 힘들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가장 큰 위안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책이더군요. 가족들이 각자의 자리로 떠난 후 동네 카페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책을 읽을 때, 그리고 그 책의 느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올 때 그 어디서도 얻을 수 없었던 행복과 위안을 느낍니다. 내 안을 가득 채웠던 그 느낌을 함께 나누고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습니다. mimibab@naver.com

작가소개

윤대녕

1962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단국대 불문과를 졸업했다. 1990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은어낚시통신] [남쪽 계단을 보라] [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 [누가 걸어간다] [제비를 기르다] [대설주의보] [도자기 박물관], 장편소설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 [추억의 아주 먼 곳] [달의 지평선] [미란] [눈의 여행자]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 [피에로들의 집], 산문집 [그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등이 있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김유정문학상, 김준성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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