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5.12.10 조회수 | 10,646

만화가 허영만, 커피처럼 쓰고 진했던 '42년'을 회고하다



한식을 다룬 요리 만화 <식객>, 관상 이야기를 다룬 <꼴>, 일제강점기 시대 우리 민족의 삶을 그려낸 <각시탈>, 욕망이 도사리는 도박 세계를 그린 <타짜> 등등…. 만화가 허영만의 이름 뒤에는 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만화가 열거된다. 그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성실히 만화에 매진했는지 대변하고 있지만, 정작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부끄럽다”라는 한 마디였다. “아주 부끄럽지. 난 먹고살기 위해 만화를 그릴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았어. 작품은 많이 할수록 그만큼 완성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작품을 했다는 것이 참 부끄럽지.”

그는 최근, 올 1월부터 중앙일보에 연재하고 있는 <커피 한 잔 할까요?>를 단행본으로 묶어 3권까지 출간했다. 커피 명인 ‘박석’이 운영하는 카페 ‘2대 커피’를 중심으로 신입 바리스타 ‘강고비’와 커피 한 잔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가 짙게 펼쳐진다. 커피를 굉장히 좋아하는구나 싶었지만 정작 자신은 카페인에 약해서 커피를 거의 못 마신단다. “시골에서 밭일하다가 인스턴트커피 한 잔 마시는 그 사람들도 나름대로 커피에 대해 할 이야기들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우습게 생각해선 안 돼. 나만 고고하다고 생각해도 안 되고.” 전문가든 비전문가든, 만화는 누가 읽어도 재밌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은 이번 작품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만화가 허영만은 한 시간 남짓의 인터뷰 내내 연필 한 자루를 손에 쥐고 자신의 답변에 대한 스케치를 사각사각 그려냈다. 그리고 자신과 가장 가까이 밀착되어 있던 만화를 통해 지난 삶을 회고했다. 예술가의 창작성까지도 규제받았던 시대를 살며 자기 검열의 늪에 빠져 괴로웠던 시간을, 최소한의 생활비도 벌 수 없었던 만화가를 그만두려고 매일같이 신문의 구직란을 들여다보곤 했던 날들을. 후배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되고 싶다던 그는 삶이 버거워 세상을 등진 한 후배 이야기에 잠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수 십 년이 흐른 지금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사회의 모퉁이에, 또 그의 마음속에 남은 잔여 감정들이 이따금씩 일렁인다. 그의 작업실에서 신작에 대한 이야기와 지난 40여 년의 회고를 나누는 동안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만화가는 신념보다 ’재미’를 추구해야 할 이유가 있다



Q <커피 한 잔 할까요?> 참 재미있게 봤어요. 개인적으로는 2권에 ‘카페 프릳츠’가 소개돼서 반갑더라고요. 집 근처에 있는 카페라서 시간 날 때마다 가거든요.

 프릳츠? 그 동네 사시는구나? 우리는 그려놓고도 재미있는 줄을 몰라.



Q ‘2대 커피’도 직접 찾아가 보고 싶었어요. 참고한 곳이 있으시죠?

연남동에 있는 ‘노아’라는 커피집이에요. 인물들도 거기서 일하는 친구가 모델이 많이 되었죠. 참고를 많이 했어요. 사실 거기는 글을 쓰는 이호준씨가 잘 아는 곳이에요. 자기 주변에서 아이템을 찾는 거지.



Q <커피 한 잔 할까요?> 글 담당하시는 이호준 씨와는 <식객> 때부터 계속해서 함께 작업하시네요.

그렇죠. 영향을 많이 받아요. 그런데 이번 작업 초창기에는 이호준하고 방향에 대해 이견이 좀 있었어요. 너무 전문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무슨 커피 지침서처럼 이러느냐”라고 그러니까 “커피 좋아하는 사람들 반응이 좋을 거다”라는 거야. 그래서 “아니다. 이건 만화고, 전문적 지식을 얻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전문 서적을 사보지 왜 이걸 보겠냐. 이건 아니다”라고 그랬어. 전문적인 이야기만 나오면 일단 내가 그리면서 재미가 없으니까. 그래서 요즘은 절충을 좀 해서 조절이 됐지. 방향은 정해졌으니 이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죠.





Q 커피를 정말 좋아해서 작품을 시작하신 줄 알았는데, 아드님이 추천한 소재였다고 하셨어요. 의외였습니다.

저는 커피 12시 이후로 마시면 잠을 못 자요. 그동안은 녹차 정도를 먹었는데 녹차는 빈속에 먹으니 속을 깎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커피 만화하면서 커피를 먹어봤는데 손발이 떨려요. 아주 ‘벌벌벌’ 떨려. 만약 내가 커피를 좋아했으면 또 다른 스토리가 나왔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뭐 사람들 살아가는 방법 중에 커피가 섞여 있는 거니까. 내가 <각시탈>을 그렸지만 난 유단자도 아니잖아요. 그런 거랑 마찬가지예요. 공부해가면서 그리는 거지.



Q <각시탈> 이야기 나와서 말인데 당시에 신인 작가가 그런 히트작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왜 한 달에 세 권씩만 낼 수 있도록 규제를 했던 걸까요?

그게 왜 그랬냐면 이야기를 하자면 긴데… 신촌에 있던 만화 출판사들과 소년한국일보가 만화 시장을 두고 싸움을 했어요. 쟁탈전을 벌이는데 한참을 싸워도 승부가 안 나거든. 타협을 한 거라. 만화 시장을 반으로 나눴어. 이게 뭐냐면 하루에 만화가 100권씩 나오면 50권씩 나누자고 (타협을 본 거야.) 소년한국일보에 소속된 작가가 있을 거고 신촌 만화 출판사에 소속된 이들이 있을 거 아니오. 반으로 나눈 출간 권수를 작가마다 할당을 한 거야. 그래서 신인들은 3권씩, 기성 작가들은 한 달에 9권도 하고 그랬지. 나는 신인이었으니 3권씩만 냈고. <각시탈>이라는 타이틀만으로는 계속 책을 낼 수가 없으니까 <각시탈과 단군의 자손>처럼 계속 제목을 바꿨어, 시리즈처럼.



Q 창작자들에게도 규제가 엄격했던 시기였어요. 권투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권투 하는 장면이 ‘폭력 조장’이라는 기준 아래 규제되기도 했다죠.

싸우는 장면이라고 3페이지 이상은 못 그렸어요. 정해준 3페이지를 그리고 나면 그 뒤에는 복덕방 이야기나 또 다른 이야기하다가 5페이지에서부터 다시 8페이지까지 권투 장면을 넣었지. 권투 장면이나 싸움 장면에서 주먹이 얼굴을 바로 가격하는 장면도 안 됐어. 얼굴에 닿지 않게 그려야 해. 이런 지랄 같은 체제하에서 만화를(그렸지.) 그때 작업하던 사람들이 남아 있는 사람들 몇 명 안 될 거예요. 대부분 돌아가시거나 은퇴하셔서. 당시에 규제했던 사람들 중에서는 아직도 살아 있는 사람도 있을 텐데, 부끄럽게 생각하는 지나 모르겠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

참, 무서운 시대였어요. 심지어는 군사정권 때는 택시 타고 가다가 정권에 대해 조금만 나쁘게 이야기하면 택시기사가 바로 경찰서로 갈 정도로 말조심해야 하는 시대였어. 지금이야 몇몇 사람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 아니면 우리가 이만큼 살겠냐고 이야기하지만, 먹고사는 것과는 다른 문제야. 먹고살기 위해 인권을 버릴 수가 있는가? 그건 말이 안 되지.



Q 1980년대에 만화 붐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1990년대 이후로는 규제가 많이 완화되었다고 들었어요.

그게 뭐냐면. 또 이런 문제가 생겨버리는 거야. 자, 시놉시스를 제출하고 심의실에서 안 된다 고쳐라 그러면 고치고 그랬어. 그런 여러 가지 문제가 어떤 부작용을 낳느냐면 자기 검열에 들어가는 거야. 만화를 하기 전에 ‘이게 될까, 안 될까? 그냥 하지 말자’ 하면서 다른 것을 그리게 되는 거야. 그게 말이에요. 수박을 키울 때 동그랗게도 키울 수 있고 네모나게도 키울 수 있다고. 어릴 때 곽에 넣으면 그 모양대로 커요. 이런(네모난) 모양 안에 사람이 들어가 있는데 심의(네모 곽)라는 게 나중에 슬그머니 없어졌다고. 그런데 그걸 빼도 사람 모양이 이미 사각형인 거야. 이후로 원래 모양으로 돌아가기까지 내 기억으로는 4년이 걸렸어.

오래 걸렸죠. 충분히 발전할 수 있는 많은 시간들을 여기에 소비를 해버린 거야. 자기 검열하는 버릇이 한 4년 가더라고. 오래 가요. 좌우간 그때는 검열기관 (도서 잡지 윤리 위원회)에서 OK를 안 하면 그림을 못 그릴 정도로 거의 조종을 당하고 있었던 거 아니오. 조종사가 없어도 누군가가 나를 조종하는 것 같은 그런 의식 속에서 창작 생활을 해야 하니까 쉽지 않았지.



Q 현재도 상황에 따라 창작의 자유나 개개인의 발언, 행동이 그 자유를 보장받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혹은 ‘표현의 자유’를 앞세운 지나친 오류들이 사회 문제로 확장되기도 하고요.

A하고 B하고 대화를 할 때도 여기서 해야 할 이야기와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가 있을 것 아니오. 이런 문제는 난 인간 사이에서 영원히 일어난다고 봐. 이 잣대는 너나 나나 다 다를뿐더러 그 잣대는 수시로 변하니까. 시시때때로 변하는 잣대를 어떻게 맞춰가면서 사느냐고. ‘의견이 다르다는 것은 소통의 시작이다.’ 이거 참 중요한 이야기에요. 서로 인정해가면서 그런 걸 해 나가야지, 법으로 어떻게 인간을 규제를 하나. 지금 말이오. 인간이 내뱉는 언어, 토씨 하나하나가 전부 자기 이익하고 관계된 이야기에요. 그렇잖아. 그거 때문에 첨예하게 네가 앞서니, 내가 앞서니 싸울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라고.

지난번에 ‘비정상회담’에 나가서 ‘표현의 자유’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요. 블로거들이 음식점에 갔다가 맛있다고 거짓말로 쓴다는 거야. 돈을 받았을 수도 있고,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왜 거짓말을 하느냐”라고 그랬더니 옆에 있던 누군가가 “거짓말도 표현의 자유다”라는 거야. 나 이거, 이런 엉터리 이야기가 어디 있어? 표현의 자유는 좋은데, 자신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상대에게 내 거짓말이 악영향을 끼쳤을 때는 말의 책임을 져야지. 어떻게 그걸 표현의 자유라고 생각하느냐고. 사람이라는 것은 자신의 입 밖으로 나오는 말에 책임을 져야 되는 거야. 개, 돼지가 아니라고. 난 정말 깜짝 놀랐어. 거짓말도 표현의 자유라고 해서. 극도로 개인주의가 발달해서 툭하면 인터넷에 난리도 아니야. 큰일도 아닌데 서로가 손가락질하면서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만 따져. 세상에 밥 먹고 그렇게 할 일들이 없나.



Q 그래서 사람은 환경이라는 게 참 중요한 건가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은 만화를 통해 꼭 지키고 싶었던 신념이 무엇이었나요? 만화 역시 사람이나 사회 분위기를 형성하는 기준이 될 수도 있잖아요.

특별히 메시지를 주려는 건 없어. 이미 그 사람의 성향이 만화 속에 스며든 것이니까 따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거야. 다만, 자나 깨나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그릴까’ 이런 생각인 거지, 뭐. 재미있게 그려가지고 독자들이 책을 들고 있어야지 메시지도 전달할 기회가 생기는 거 아니오. 재미없으면 던져버린다고. 그럼 기회도 없어지는 거니까 일단은 재미있어야 해 만화는. 그리고 재미가 없으면 그리는 나부터가 그리기 싫어요.

그리고 독자들이 만화를 보면서 ‘아, 이 사람 이거에 대해 공부 좀 했구나’라고 인정할 정도는 해야 된다고 생각해. 전문가가 봐도 ‘이거 봐라. 우리도 자주 안 쓰는 이야기를 하네?’ 이럴 정도로.





만화를 너무 가볍게 보는 것은 아닌가 싶은 작품들 … ’스스로의 담금질’ 필요



Q 요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 굉장히 많아지면서 역으로 만화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졌어요. 작가님의 작품도 굉장히 많은 콘텐츠의 원작으로 활용되었는데, 이런 추세를 어떻게 보시나요?

내가 시초인 거는 모르겠지만 가장 많이 하긴 했을 거야. 하나의 소재를 놓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할 때,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것 아니오. 이미 시나리오가 완성되었다고 치더라도 이게 과연 재미있게 된 건지 아닌지를 알 수 없고. 그런데 만화는 이미 검증이 되어 있잖아. 그림으로 되어 있으니 글보다 훨씬 이해도가 높고. (콘티와 같은 역할인 거죠?) 그렇지. 소재를 찾을 때도 시나리오 작가에게서만 찾기도 좀 그러니까 소설이나 희곡이나 만화도 두루두루 찾다 보니 만화를 요즘 많이 하는 게 아닌가 싶어. 만화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 그만큼 만화라는 콘텐츠의 활용 폭이 넓어지는 거니까.



Q 작품성을 배제한 채로 상업적인 부분으로만 특화된 만화들을 보면서 회의를 느끼실 때는 없으신가요? 일부만 성공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만화를 그릴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품성이 떨어지는 만화가 있을 수 있거든요.

뭐랄까. 만화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굳이 무겁게 그려야 할 필요는 없지마는 ‘이 사람은 이러고 말겠다’라는 생각이 더러 드는 작가들이 있다고. 얼마 전에 <송곳>을 보는데, 참 대단해. 아주 잘해. 그런 사람들이 자꾸 나와야 해. 잘하면 돈도 잘 벌어야 하고. 명예? 명예가 밥 먹어 주는 게 아니오. 만화는 상업성을 떼고 볼 수 없어. 알려져야 명예도 따라오지. 그러니까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해.

얼마 전에 울릉도에 갔다가 태풍 때문에 일주일 갇혀 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너 지금 안주하고 있는 거 아니냐’라고. 스스로가 그런 생각을 했어. 그러고는 ‘그래, 사실 좀 그렇다’ 싶었지. ‘안 돼. 안주하고 있다는 건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 거야. 여기서 되지 않을지라도 한 번 더 차고 나가야 해’ 이런 생각을 했을 때 내 스스로가 얼마나 뿌듯했는지. ‘괜찮아. 아직 안 죽었어’ 이런 생각이 들더라니까. 그런 스스로의 담금질이 요즘 웹툰 작가들에게 필요하지 않겠나 싶어.

만화에 대한 센세이션은 몇 년 뒤에 금방 사그라질지 몰라. 절대 남이 하는 거 따라 하지 말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지키고 찾아나가야 해. 이런 식의 만화를 몇 년 뒤에 얼마나 할 수 있을지를 돌아봐야 해. 그러려면 공부를 끊임없이 해야 하고. 책을 보고 영화를 보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자주 만나고. 그 속에 아이디어가, 이야기가 있으니까.





Q 시대 변화에 맞춰 새로운 형식의 ‘웹툰’이 떠올랐습니다. 종이에 국한되어 있던 방식이 확장된 거죠.

(만화 시장이) 굉장히 와이드 해졌지. 그런데 층이 좀 얇아. 그런데 이걸 두껍게 하는 것은 지금 있는 벌판 위에 서 있는 만화가들이 해야 할 문제고, 일단 만화 시장은 완전히 만들어진 거야. 긍정적인 것도 부정적인 것도 있는데, 일단 공짜로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굉장히 기존 만화 시장에 타격을 주었기 때문에 개선되어야지. 큰 회사에서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그런 서비스를 했지만 수익 창출을 위해서는 유료로 가야 되는 거야. 우리(만화가들)로서는 애써서 그려놓고 공짜로 보여준다고 하면, 아무리 소정의 원고료를 받는다고 해도 사람들이 ‘만화는 공짜’라는 등식을 갖게 되니까 우리로서는 불만이 있지.



Q 최근 눈여겨보시는 작가 있으신가요?

<술꾼도시처녀들> 의 미깡. 그 친구 참 괜찮아. 나도 술꾼이지만 그 친구하고 한 번 술을 같이 먹었어. 윤태호한테도 며칠 전에 통화하면서 “너 미생 다시 시작했더라. 그런데 말이야. 너 좀 힘들어 가는 거 아니야? 힘 좀 빼라” 그런 이야기 한 적이 있어. 갑자기 말이야 좀 그러지 않나 싶어서 우려스러워서 전화를 했어. 그러니까 “아, 그렇게 보였습니까? 신경 쓰겠습니다.” 그러더라고.



Q 제자인 윤태호 작가의 활약도 굉장히 두드러집니다. 드라마 ‘미생’이 소위 ‘대박’을 쳤고, 최근 개봉한 영화 ‘내부자들’도 반응이 좋아요. 작가님께서 윤태호 작가 칭찬을 굉장히 많이 하시더라고요. 재주 덩어리라고. 가까이서 지켜보셨을 텐데 남다른 재목이라는 걸 작가님은 일찍이 알아보셨겠어요.

잘해요. 그런데 재목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했을 수 있어도 꼭 맞는다고 볼 수가 없어. 만화는 그림만 잘 그려서 되는 게 아니라 스토리를 끌고 나가는 능력이 같이 있어야 돼. 그 능력(스토리 구상 능력)이 없으면 문하생 밖에 못 돼. 내 밑에 있던 문하생들도 그림 잘 그린다 정도까지만 알 수 있는 거지, 스토리 능력은 누구도 알 수 없는 거야. 하지만 그런 자질이 있어야 클 수 있어.





만화 붐이 없었다면 진작에 전업했을 것… 매일 구직란만 찾아봤다



Q 꾸준히 작업 활동해 오신 것만 봐도 참 부지런하시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올 초에 전시회 준비하시면서 작품이 그렇게 많은 줄 처음 아셨다면서요.

깜짝 놀랐지. 215점. 난 150점 정도 되지 않나 싶었어. 부끄러워.



Q 쉼 없이 부지런했다는 이야기인데, 그게 왜 부끄러우셨는지 궁금했습니다. 솔직히 저로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아서요.

부끄러웠지…. 많이 할수록 완성도가 떨어지는 거야. 그때는 만화를 그려서 돈을 번다는 것은 ‘많이 버는’ 개념이 아니라, 그저 삼시 세끼 큰 걱정 안 한다는 정도였어요. 그러니까 항상 내일에 대한 불안이 있었어. 우리가 무슨 퇴직금이 있어, 보너스가 있어. 아무것도 없는 거 아니오. 내일 당장에 무슨 일이 있으면 만화를 못 그려서 가족들이 굶을지도 모르는데. 그러니까 끊임없이 그릴 수밖에 없는 시절이었거든. 그건 요즘도 마찬가지야. 인세 들어오는 게 있다고 쳐도, 계속 유지되는 게 아니고 계속 점점 줄어들기 때문에 꾸준히 작업해야 해. 자전거를 타서 페달을 안 밟으면 넘어지잖아. 난 항상 그 생각을 했어요. 내 인생이 그랬어.

오은선이라고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여자 산악인이 있어요. 그 친구와 산을 한 번 같이 가는데 “야, 은선아. 뒤를 한 번 쳐다봐라. 너무 아름답지 않냐” 그러니까 “우리는 산을 갈 때 뒤를 쳐다볼 시간이 없었어요.” 그러더라고. 난 그 이야기가 믿어지지 않는데… 우리와 같은 의미가 아닌가 싶어.



Q 이렇게 대표작이 많은 지금도 불안하다고 하시니, 당시에 느꼈을 중압감은 말도 못 했겠네요.

마누라하고 만날 하는 이야기인데, 마누라가 만약 시간을 돌릴 수 있으면 몇 살 때로 돌아가고 싶은지 묻는 거야. 그래서 마흔 살이라니까 깔깔 거리면서 웃어. 왜 서른 살, 스무 살, 열 살도 아니고 왜 하필 마흔이냐고. 난 마흔이 되기 전까지 얼마나 불안했는지 몰라. 그때 애들 둘이 있었으니까, 내가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으면 마누라와 아이 둘이 거지같이 살까 봐 너무 무서웠어. ‘아, 적어도 거지같이 살지는 않겠구나’라고 생각했던 때가 마흔 이오. 만약에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내가 가진 재산을 다 팔면, 마누라도 아이들도 그래도 힘들게 살아가지는 않겠구나, 라고 생각한 때가. 그전에는 너무 불안했어요. 아내는 아마 그런 중압감을 몰랐겠지. 그래서 마흔 살 이전으로 돌아가서 전전긍긍한 삶을 살고 싶지 않아. 청춘이 아무리 좋다지만 그런 생활을 하고 싶지 않아.



Q 만화가들의 설자리가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만화인들의 삶이 나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겠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작가들이 굉장히 많다고 해요.

많지. 다른 어떤 분야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어떻게 다 똑같이 많이 벌 수가 있나. 난 그럴 수가 없다고 봐. 대신 돈을 정말 많이 버는 사람이 계속해서 나타나야 해. 그런 사람들이 계속 등장해줘야지 분발을 한다고. 롤모델이 계속해서 되어야 해. 그 분야에서 최고로 잘 나가는 사람이 얼마 못 벌면 안 되지. 스타라는 게 별거야? 작품과 그에 따른 수입이잖아. 다 같이 먹고 살 수는 없지만, 그런 사람은 여러 의미로 꼭 필요해.

심지어 전에 일본에서 ‘주간 소년 선데이’ 출판사 편집장을 만났어요. 너희 원고료가 얼마냐고 물으니 아주 형편없이 주는 거야. 그래서 “다들 어떻게 먹고 사느냐”라고 물었더니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먹고사는 건 그 사람의 일이지, 우리 일이 아니”라는 거야. 다른 사람들이 얼마든지 호화스럽게 사는 사람이 있으니까. 밤새 아르바이트를 하고 또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그렇게 천천히 올라가야 한다는 거지.



Q 선생님도 책임감이 있으시죠? 후배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되기 위한.

그런 건 있지. 원고료를 가장 많이 받을 것. 그리고 좋은 지면을 만들 것. 그래야 후배들이 쫓아오지. 선배로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런 거야. 또 내 행동을 보면서도 많은 부분을 닮아 가겠지. 아무리 놀러 다녀도 할 일 다 해놓고 놀러 다니고, 항상 연필을 손에서 안 놓고. 외출할 때마다 가방을 들고 다니는데 거기에 연필이니 스케치북이니 메모니, 그 안에 다 들어 있으니까 항상 어디서든지 준비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든지 이런 걸 보고 배우는 거야. 말로서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하는 대신 날 보고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해. 내가 강연을 잘 안 하는 이유가 “난 이런 사람이오”라고 나서서 말하기가 싫어. 세상에 그런 오만이 어디 있어.



Q 롤모델이 되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최근에 이 소식 접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최근, 한 일러스트레이터가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창작자들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이거 무슨 인터파크가 시사 문제까지…. 얼마 전에 이야기 나온 게 그 사람인가? 안 됐지. 어떻게든 살아보려다가 계속 절망하고 버거워서 그런 선택을 했을 텐데…. 삽화로 생활하기가 요즘 굉장히 힘이 들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좋지 않았을 거야.



Q 그분이 절망하셨던 것 중에 하나는 좋은 모델이 없다는 것도 있었거든요. 열심히 노력해왔는데도 불구하고 생활이 나아지지는 않았고 앞으로도 잘 되리라는 보장이 없었을 테니까요. 좋은 선례가 있었다면 희망을 가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작가님도 그 마음을 누구보다 이해하실 것 같습니다.

일단은 최소한의 생활급이 아니라면 그 일을 하기 어려운 것 아니오. 굶어가면서 하는 것도 며칠이지. 어휴…. 방법이 없나. 구석구석에 있는 사람들까지 다 챙겨주었으면 참 좋겠지만 쉽지 않지. 참….





Q 마흔이 되기 전에 작가님도 너무 불안해하셨다고 했는데, 만약 그때 생활이 나아지는 것 없이 늘 제자리였다면, 그래도 계속 만화가의 길을 걸었을까요? 아니면 다른 일을 하셨을까요?

내가 서른네 살 즈음에 만화가 굉장히 불황이었어. 만화 시장을 두고 소년한국일보하고 신촌에 있는 출판사들끼리 싸웠다고 했었지. 그렇게 반반씩 해 먹으니까 나아지는 게 없는 거야. 쉽게 일류 작가가 될 수도 없을뿐더러 일류 작가가 되도 원고료를 안 올려줘. 그런데 일류 작가는 대충 그려도 원래 받던 원고료를 받아. 그러니 나아지는 것 없이 만화가 아주 재미없었을 때가 있었어. 점점 만화 판매 부수는 떨어지고 타격이 컸지.

그때 나는 전업하려고 했어. 마누라와 아이들이 잘 못 먹고…. 비전이 없는 거야. 당시에 우리 큰 애가 다섯 살, 둘째가 두 살 이럴 때야. 매일 신문을 보면서 구직란만 찾아보고 있는 거야. 내 적성에 맞든 안 맞든 간에 일단 구직란을 봐. 그러다 보면 딱 걸리는 게 있어. 최종 학력. 전문대 졸업 이상에서 딱 걸리는 거야. 나는 고졸이거든. 그리고 나이에서 걸려. 그때는 일본 만화영화 하청업체에서 일도 잠깐 했었어. 그런데 꼭 그리라는 대로만 그려야 해. 어항은 이런 모양으로, 사람은 이렇게. 그래야 영화가 일관성이 있으니까. 이걸 못 참겠더라고. 내 그림이 아니니까.

그러던 와중에 1980년대에 일본 만화 ‘캔디 캔디’가 인기를 끌면서 만화 붐이 일어난 거야. 그때가 서른여섯 살쯤 됐을 때야. 그때 내 집이라고 조그만 집은 있었지만 정말 한심스러운 생활을 했어. 나 때문에 가족들이 힘든데, 계속 만화를 그린다고 할 수가 있나? 그건 아니지. 땅을 파서 노동을 하더라도 가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니까 만화 붐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난 분명히 전업을 했을 거야.



Q 그때 작가님과 같은 고민을 하는 분들이 지금도 정말 많을 거예요.

많지, 수없이 많지…. 요즘 내가 하는 이야기는, 평생 해야 할 일을 하라는 거야. 삼성? 그건 평생 해야 할 일이 아니다. ‘내가 어떤 일을 좋아하는가. 평생 이 일을 해도 지겹지 않겠는가’를 분명히 계산을 해야 해. 만화가 하면서 힘들 때도 있었고, 가끔 지루할 때도 있지만 미칠 정도로 지겹지도 않아. 지겹다가도 재미있어. 내가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거 정말 중요한 거야.



Q 지난 40여 년간 만화를 그리시면서 좋은 만화가이자 좋은 롤모델이 되어주셨는데요, 작가 생활 중에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으신가요?

<타짜> 연재할 때 내가 굉장히 힘들 때가 있었어. 만화를 곧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정말 지쳐있을 때 광화문을 지나가는데, 한 남자가 지나가다가 다가와서는 허영만 씨냐고 묻더라고. 30대 초반쯤은 됐나? 샐러리맨이었는데 대뜸 그러더라고. “내가 일생에 만나야 할 사람이 세 명 있는데, 그중 한 명이 허 선생님이다. 좋은 작품 많이 그려주세요.” 하더라고.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난 그때 만화를 그만뒀을 거요. 너무 힘들고 지쳐서. 아마 슬럼프였던 것 같아. 그 이후로 지금까지 버텨오는 거야.



Q 차기작에 대해서 잠시 언급하셨는데 이번엔 어떤 작품일지 궁금합니다.

그건 자세히 이야기할 수 없어. 그냥 ‘주식’과 관련된 것으로 알면 돼. 돈 이야기지.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트스튜디오)




임인영(북DB 기자)

취재와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탐색 중입니다. iylim@interpark.com

작가소개

허영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만화가이자 식객. 허영만 화백은 2019년 5월 14일부터 지금까지 TV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을 통해 전국의 숨겨진 맛집을 찾아다녔다. 그만의 맛집 기준은 첫째 ‘집밥 같은 백반’, 둘째 ‘비싸지 않은 가격’, 셋째 ‘그럼에도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맛’이다. 밥을 먹다가 어머니의 손맛이 절로 그리워질 만큼 마음을 파고드는 맛, 다양하고 풍성한 반찬과 제철 음식으로 신선하게 담은 넉넉한 한 상. 그중 소박하지만 확실한 한 끼를 선사하는 진짜 맛집을 골라 이 책에 담았다. 그리고 이 책과 함께 백반기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1974년 공식 데뷔한 허영만 화백은 《각시탈》 《오! 한강》 《아스팔트 사나이》 《비트》 《미스터Q》 《날아라 슈퍼보드》 《타짜》 《식객》 등 수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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