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5.11.27 조회수 | 8,603

황석영 "드라마 '송곳' 보며 감동... 원로작가로서 자괴감도"



황석영.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 문단의 대작가를 만나러 가는 길에 긴장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경기도 고양시 그의 자택 가까이에 있는 카페에서 좁은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약속한 인터뷰 시간은 딱 한 시간뿐인데,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너무 긴장돼서 인터뷰를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라고 이야기하자 황석영 작가가 껄껄 웃으며 긴장을 풀어줬다.

“긴장할 것 없어. 그냥 내가 얘기한 대로만 쓰면 돼.”

황석영 작가가 11월 새 장편소설 <해질 무렵>을 출간했다. 한국 문단은 올 한 해 신경숙 작가 표절 논란과 문학권력 논란 등으로 줄곧 여론의 매를 많이 맞았다. 올해로 예정돼 있던 신작 출간을 내년으로 미룬 작가도 여럿 있다는 얘기가 들렸다. <해질 무렵>은 그런 가운데 나온 대작가의 신작이라 더욱 반가웠다.

<해질 무렵>에는 기러기아빠로 살아가는 성공한 60대 건축가 박민우와 이런저런 알바를 전전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가난한 20대 연극연출가 정우희가 화자로 등장한다. 장이 바뀔 때마다 서로 각자의 이야기를 번갈아가며 풀어놓다가 하나의 인물, 하나의 공간에서 둘은 만난다. 첫사랑 차순아, 그리고 산동네 철거촌.

황석영 작가는 애초부터 젊은 세대들을 위해 쓴 소설이라고 설명했다. 개발독재를 묵인하고 편승하는 것으로 ‘먹고살 만해진’ 지난 세대들의 숨겨진 회한을 건드리고, 그들의 업보 속에서 남루한 삶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의 현실을 마치 영화 같은 장면으로 보여준다. 기성세대들에게는 그들이 남긴 업보에 대한 성찰을 주문하고, 청년세대들에게는 ‘N포세대’ 같은 욕스러운 이름을 그냥 뒤집어쓰고 살 것인지 질문하고 있다. 

습관화된 체념과 냉소를 성숙한 태도라 여기는 오늘날 사람들에게 70대 원로작가가 던지는 화두는 선명했다. “우리 민우 좀 사랑해주지그랬어”(165쪽)라는 작품 속 차순아의 질문에 우리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 이 소설을 읽고 나면 가로수 아래에 자란 강아지풀이 어제와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전태일 고용주가 흘린 회한의 눈물이 <해질 무렵>의 모티브


Q 이번 작품은 장편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짧은 느낌도 듭니다.

경장편이라고 하죠. 경장편은 현대인들의 생활리듬 속에서 나온 거예요. 회사 오고가는 지하철에서 읽는다거나, 주말에 교외로 나가서 애들하고 좀 놀아주고 부부가 책 한 권씩 들고 앉아서 읽는다거나. 장황한 서사를 기술하는 방식들이 이제는 다 사라졌어요. 길게 묘사하지 않아요. 이미지만 전달하죠. 이 소설은 영화 시나리오를 쓰듯이 시작했거든요. 신(scene, 장면)을 썼어요. 영화 화면이 지나가듯이 장면이 겹치면서 빠르게 지나가죠.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 거예요.(웃음) 


Q 60대 건축가 박민우와 20대 연극인 정우희가 번갈아 화자로 등장합니다. 저는 아무래도 청년 정우희에게 감정을 이입해서 읽게 되더라고요.

이 소설은 처음부터 젊은 세대들을 위한 소설로 의도된 거예요. 화자 박민우가 60대 아버지 세대라고 해서 그 세대를 위한 소설이 아니에요. 그들이 저지른 일의 업보로서 주어진 현실을 지금 젊은이들이 살아가고 있잖아요. 비판적인 시선으로 윗세대를 그려낸 거죠. 두 세대의 이야기가 나란히 같이 가다가 결국 한 공간에서 만나면서 과거와 소통하는 형식의 소설이 되겠네요.


Q 박민우도 박민우지만 작가와 40년 넘게 연배 차이가 나는 정우희라는 인물의 삶에 대해 정말 상세히 묘사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취재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해지더라고요.

그게 작가의 능력이죠.(웃음) 제가 잘 가는 카페에 젊은이가 하나 있어요. 한번은 제가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그 친구가 찾아준 적이 있어서 친해졌어요. 알바를 여러 종류를 해본 고참이더구만. 그 친구한테 술을 한번 사면서 긴 시간 재미있게 얘기를 들었어요. 자기 친구들이 사는 이야기도 많이 해주고. 미루어 짐작하는 바도 있고 그런 취재를 통해서 충분히 알게 되는 것도 있죠.


Q 박민우를 건축가로 설정한 것은 어떤 이유였나요?

개발독재의 근대화 과정은 도시화 과정인데, 그중 핵심은 도시 빈민가의 처리 문제이거든요. 우리는 그걸 다 밀어버렸단 말이죠. 거기 살던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또 도시빈민의 삶을 이어가야 했죠. 지금도 그 점은 현재진행형이고요. 그런 ‘밀려난 사람들’의 삶이 박민우한테는 없어요. 자기는 거기서 성공적으로 빠져나와서 자기가 살던 동네를 밀어버리고 이웃들을 없애버리는 걸로 성공했거든요. 그게 70, 80년대 중산층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이자 회한이죠. 그리고 산동네에서 만난 첫사랑 차순아를 어떻게 지워버렸는지가 소설에 나오잖아요? 그게 개인의 회한에 불과한 것 같은데, 돌이켜보니까 동시대와 강력하게 연결되는 거죠.


Q 책 마지막 ‘작가의 말’에 한 다큐멘터리에서 본 전태일 분신 당시 고용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지금은 노인이 된 그 고용주의 회한이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됐다고 봐도 될까요?

그렇죠. 전태일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뜻밖에 당시 전태일의 고용주가 나왔어요. 지금은 노인이 됐는데, 큰 부자도 아니고 평범한 아파트에 사는 중산층이죠. 자기 고생한 얘기도 하고 그러다가 고개를 숙였다가 드는데, ‘그때 나도 어려웠는데 그 사람들이 그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더 잘해줄 걸 그랬다.’라고 하면서 눈물을 보이더라고요. 그 사람은 전태일의 분신을 평생 잊을 수 없죠. 그들은 개발독재를 용납하고 편승하면서 살 만하게 된 사람들이라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하고 살아왔지만, 내면에는 회한이나 자책이 다 있어요. 언론의 극우화, 상업주의, 개신교의 범람 같은 것들이 이데올로그로서 그런 트라우마를 지금까지 달래온 거죠.




"87체제 약점 드러나면서 시스템 퇴화... 세월호 참사는 그 경고"


Q 책을 읽다가 ‘강아지풀’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 연필로 동그라미를 쳤습니다. 분명 숨겨진 뜻이 있을 것 같았거든요. 역시 마지막에 중요한 이미지로 등장하더라고요. 그런데 왜 하필 강아지풀이었나요?

지난가을에 산책을 하면서 어느 집 앞을 지나는데, 사람들이 주차를 자꾸 하니까 귀찮았는지 화분을 내놨더라고요. 거기 강아지풀이 번성해 있어서 가까이 가봤더니, 가운데는 비어 있었어요. 길가에 내놓고 돌보지 않으니까 원래 있던 식물은 죽고, 가장자리에 씨앗이 날아와서 자란 강아지풀은 꼭 일부러 물을 준 것처럼 번성했더라고요. 그때 ‘저걸 내 작품의 모티브로 써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작품 속에서 차순아가 아파트에서 강아지풀을 보면서 꼭 제가 했던 것 같은 생각들을 하죠.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박민우가 가로수 밑의 강아지풀을 보고 마당 잔디밭의 강아지풀을 떠올리고요. 강아지풀은 우리가 살면서 밀어낸 것들을 상징해요. 여러 가지 이데올로기의 탈을 쓰고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잖아요. 비정규직이라든가 재개발 지역 철거민들이라든가, 여러 가지 변형된 이름으로 우리 주변에 강아지풀이 있습니다.


Q 차순아의 편지 마지막에 “우리가 뭘 잘못한 걸까요. 왜 우리 애들을 이렇게 만든 걸까요.”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작가의 메시지를 직접 담은 질문 같은데요,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정말 우리는 뭘 잘못한 걸까요?

결국 정치사회적 문제들과 결부되죠. 민주정부 10년 동안 가장 극명하게 신자유주의가 들어와서 설쳤어요. 노동계에 대한 탄압도 보수정권에 못지않았죠. 민주주의는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문화 등 여러 가지 부분의 민주주의가 있는 겁니다. 87체제는 군부 개발독재 세력과 형식적 타협을 하면서 탄생한 거예요. 6월에 민주화항쟁 이후에, 7, 8월 노동자대투쟁이 일어났을 때 민주화 세력들은 다 외면했거든요. 노동자들은 그냥 깨졌죠. 두 세력이 만나지 못했고, 변혁이 더 심화되지 못한 거죠. 자꾸 87체제의 약점들이 드러나면서 시스템이 과거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런 것에 대한 경고가 세월호 참사 같은 것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Q 이 작품을 통해 ‘성찰’이란 화두를 읽었습니다. 최근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등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가 높은데요,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또 다른 화두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언론이 2030세대들에게 부여한 ‘N포세대’니 뭐니 하는 이름들이 있잖아요. 이런 용어 자체를 욕스럽게 생각해야 된다고 봐요. 어떤 시대에나 자기 세대의 세대의식이나 시대정신을 공유하지 않은 세대들이 그 이후에 한 시대를 끌고 나가는 능력을 보여준 예는 없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 젊은 세대들은 너무 파편화돼서 그런지, 그런 게 안 생겨나고 있단 말이죠. 말은 과격하고 주장도 급진적이지만 늘 말로만 소비해버리고 말거든요. 이런 흐름들을 대학에서 우선 바꿔나가는 흐름들이 필요해요.

몇 년 전 한진중공업 노동자 김진숙이 크레인 위에서 1년 가까이 농성할 때 몇몇 사람들이 시작한 희망버스 같은 것. 작가들이 또 참여해서 글을 쓰고 했잖아요. 나는 그런 것들이 더 심화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흐름들을 젊은 세대들이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그 세대의 세대의식이나 시대정신이 나오거든요. ‘언론이 무책임하게 부여한 N포세대 같은 이름을 그냥 뒤집어쓰고 갈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하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그게 되냐?” 하는 식의 냉소가 습관화돼 있어요.

‘국제시장’이라는 영화가 유행한 적이 있었잖아요. ‘열심히 먹고살았다’ 하는 게 주제예요. ‘착한 백성 신화’예요. 남이 어떤 못된 짓을 저질러도 모를 뿐만 아니라 관심도 없이 살아온 사람들. 그 영화에는 시민이 없어요. 그건 시민이 아니라 신민이에요. 보는 내내 메시지가 왜곡돼 있다고 느꼈죠. 지금 역사교과서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역사를 비판적으로 보면 패배주의적 인식을 갖게 된다’ 그러는데, 미래에 더 잘하기 위해서 과거를 비판적으로 보는 거예요. 역사는 ‘뭘 잘못했는가’가 ‘뭘 잘했는가’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요. 비판적 시선이 있어야 다음에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것 아니에요? 그런 것들을 짚고 넘어가는 게 역사예요.


Q “분단시대에 서서 한국의 근대와 그 이후 세대를 잇는 다리가 되고 싶다”라는 꿈을 밝히신 적이 있습니다. 역시 ‘분단 극복의 문학’이라는 화두를 빼놓고 황석영 작가를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 요즈음은 분단이니 통일이니 하는 얘기를 좀 촌스럽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오래된 화두이긴 하지만 엄연히 살아 생동하는 화두임에는 틀림없어요. 그걸 촌스럽게 여긴다는 것 자체가 현실에 대한 왜곡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어쨌거나 후대의 사가(史家)들은 지금의 문학을 ‘분단시대의 문학’이라고 명명할 거거든요. 다만 민족문학 내에 속해 있는 민족주의라는 생각은 좀 곤란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언젠가부터 분단문제를 동아시아라는 지역에 넣어서 지역문제로 봤거든요. 그런데 정부가 분단 극복을 실천은 안 하고 마케팅으로만 써먹었어요. 지금은 70년대 ‘멸공통일’, ‘흡수통일’ 시절로 돌아가 있는 형편인데, 그런데도 마케팅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평화로써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으로 하고 있죠.

사실 지금도 내가 2009년에 이명박 대통령하고 중앙아시아를 갔다고 어쩌고저쩌고 말이 따라다니는데, 그때 내가 좀 성급했어요. 그때가 내가 방북한 지 20주년 되는 해였거든요. 뭔가 해봐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나 봐요. 동몽골을 공동개발하고 북한과 두만강 개발을 같이 하자, 알타이 경제문화 연합을 만들자, 하는 것들을 제안했는데 이명박 대통령도 하겠다고 하니까 내가 나선 거죠. 그런데 그게 어긋났죠. 그 과정에서 좌우 양쪽에서 욕도 많이 먹었어요. 이제 직접 나서는 건 안 하려고 하고 소설만 쓰려고 그래요.(웃음)



"한국문학 위기, 현실에서 멀어지면서 자초한 것 아닌가 생각"


Q 2012년 저희 북DB와 한 인터뷰에서 “요즈음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은 시대정신에 대한 관심보다는 개인의 정서 흐름에만 매달리는 느낌이 강하다”라고 쓴소리를 해주셨어요. 올해 9월 한 강의에서 ‘한국문학이 이 꼴이 된 것은 대학의 문예창작과 때문이다’라는 요지의 발언을 하신 것도 그런 점을 꼬집은 거였나요?

그건 일부러 논란을 일으키려고 언론에서 만들어낸 거예요. ‘문창과가 문학을 망쳤다’는 식으로 얘기한 적이 전혀 없어요. 강연이 끝나고 청중 질문이 들어왔는데, ‘소설가가 왜 문학하고 관계없는 철학과를 갔느냐’ 하는 거였어요. 그런 질문은 그 전에도 몇 번 받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 예술교육이 얼마나 잘못되고 있는지 대답한 거였어요. 세잔이나 고흐, 고갱은 미술대학 근처에도 안 가봤어요. 마크 트웨인이나 헤르만 헤세,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문창과는커녕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않았어요. 안톤 체호프는 의대 나왔고, 프란츠 카프카는 법대 나왔어요. 그런데 왜 우리는 대학에서 하는 예술교육을 강조하는지 모르겠어요.

신춘문예 심사를 몇 번 해봤는데, 예심 거쳐서 올라오는 작품들은 다 비슷해요. 어느 정도 수준이 돼 있고 무난해요. 그런데 눈에 띄는 작품이 없고 뽑기가 아주 힘들어요. 좀 서툴러도 자기 개성이 있어야 하잖아요. 남의 문장 베껴서 연습하는 걸로 소설가가 되는 게 아니에요. 작가의 눈이 가장 중요합니다. 작가의 관점에서 서사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나오거든요. 문장을 온갖 미사여구로 그럴 듯하게 꼬부려놓고 그걸 문장이 좋다고 하는 것은 문학을 아주 잘못 알고 있는 거예요. 그날 이런 이야기들을 한 거예요. 언론 기사에는 내가 “한국문학이 이 꼴이 된 것은 대학의 문예창작과 때문이다”라고 했다는데, 그런 말은 한 적이 없어요.


Q 2015년 한 해 동안 한국문학은 매를 참 많이 맞았는데요, 한국문학이 위기라는 걱정의 목소리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요새 ‘송곳’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미생’도 참 흥미 있게 봤지만 ‘송곳’은 ‘미생’보다 더 근본적이에요. 그거 다 만화 아니에요? 문학이 그런 서사를 다 놓치고 있다니! 그 현실 접근 방식을 보고 정말 놀랐어요. 한국 젊은 소설가들이 바로 이런 당대의 문제에 접근을 해야 됩니다. 그 드라마들이 현실에 강력하게 접근하면서 공감을 이끌어내는 힘을 보면서, 한국문학의 위기는 한국문학 스스로가 현실에서 멀어지면서 자초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소설이 아니라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감동을 받았다는 게 원로 작가로서 굉장히 쑥스럽고 자괴감이 드는 얘기네요.


Q 2012년 저희 북DB와 한 인터뷰에서 “이제 중,단편을 다시 쓰려고 한다. (줄임) 그런 작업을 청년기에 했는데 그에 대한 그리움, 예술을 하고 싶은 것이다. 조금 더 문예반적인 작업을 할 것이라 보면 된다.”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이 작품(<해질 무렵>)이 그 응답이에요. 예술을 오래간만에 한 느낌이 들어요. <한씨연대기> <객지> 쓰던 때로 돌아간 것 같아요. 앞으로도 계속 이런 작품들을 내놓을 생각이에요.


Q 칠순의 연세에 다시 청년기로 돌아가겠다는 선언을 했고, 실제로 그때와 같은 마음으로 쓴 작품을 내놓으셨습니다. 그렇다면 팔순에 선보일 작품은 어떨까 벌써 궁금해집니다.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귀띔해주시죠.

앞으로 10년 뒤면 83세잖아요. 부지런히 써도 서너 권 정도 더 쓰는 거예요. 내가 그동안 자전(自傳)을 정리하다가 덮어놓고 있는 게 있는데, 처음엔 그걸 하기 싫은 일거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따져보니까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80년대 민주화 혁명과 망명, 투옥, 이런 걸 다 겪은 작가가 이젠 없어요. 선배 세대들은 다 돌아가시고 유일하게 내가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걸 정리하는 자전을 써야겠다는 생각이에요. 그런데 여기(한국)는 아직 억압이 심해요. 자전을 쓴다면 방북 이야기나 광주 이야기를 잘 써야 되잖아요. 여기는 제약이 너무 많아서 완전히 낯선 해외로 나가서 한 6개월 동안 정리해서 쓰려고 해요.

저는 늘 리얼리즘의 확대를 이야기하면서 형식실험을 했잖아요. 전반기 문학과 후반기 문학의 형식적 차이가 꽤 있고, 또 분리돼 있어요. <바리데기><손님>이 과거 <한씨연대기>나 <객지>와 분리돼 있다는 얘기죠. 하나는 우리 전통적 기법의 현실인식, 하나는 철저히 서구적인 기법에 입각한 리얼리즘. 이게 자연스럽게 합쳐진 양식으로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데 그건 아직 안 나왔거든요. 그걸 해내야 되겠죠.

그래서 지금도 망설이는 것이 오래전부터 기획했던 ‘철도원 3대’ 이야기예요. 옛날 같으면 열 권짜리 대하서사로 썼어야 하는데, 두세 권짜리로 쓰겠다고 생각했다가, 이번 소설을 쓰면서 생각을 또 바꿨어요. 그걸 완전히 해체해서 리얼리즘적으로 확장되고 일신한 면모의 새로운 소설을 써내면 좋겠다고요. 당대의 이야기를 쓰되 그런 형식과 내용이 서로 잘 녹아들면 좋겠다는 거죠. 그런 실험들 중에 <손님>에서 비롯된 게 <바리데기>에서는 아주 잘 발현됐고, <심청>이나 <낯익은 세상> 같은 경우에는 균형이 잘 안 맞았던 게 지금은 보이거든요. 그런 걸 잘 맞춘 좋은 물건을 장인적 솜씨로 만들어내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Q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씀 있다면 해주십시오.

지금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 중에 대단한 작가들 많아요. 세계 어디다 갖다놔도 뒤떨어지지 않을 기량을 가지고 있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도 꽤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대중들이 소설을 잘 안 읽잖아요. 책을 내놔도 팔기가 힘드니까 여러 가지 변화도 시도하고 몸부림들을 치고 있죠. 그런데 선진국들에 비해서 환경이 그렇게 불리한 건 아니에요. 다만 선진국에서는 여러 가지 프로젝트와 지원책들이 있어서 젊은 작가들이 성장하게 해주는데, 우리도 그런 걸 좀 더 만들어서 작가들이 마음 놓고 글쓸 수 있게 해줘야 돼요.




사진 : 신동석



최규화(북DB 기자)

인터파크도서 북DB 기자입니다. 대한민국 제10대 대통령과는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대통령보다 높은 사람, 당신보다 낮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somecrud@interpark.com

작가소개

황석영

1943년 만주 장춘에서 태어났고, 고교 재학중 단편소설 「입석 부근」으로 『사상계』의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해병대에 입대, 베트남전에 참전했고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단편소설「탑」이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89년 『무기의 그늘』로 만해문학상을, 2000년 『오래된 정원』으로 단재상과 이산문학상을 수상했다. 2001년 『손님』으로 대산문학상을, 2018년 프랑스에서 『해질 무렵』으로 ‘에밀 기메 아시아 문학상’을 수상했다.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웨덴 등 세계 각지에서 『오래된 정원』『한씨 연대기』 『삼포 가는 길』『바리데기』『심청, 연꽃의 길』『낯익은 세상』 등이 번역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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