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5.05.04 조회수 | 6,463

가진 것보다 잃은 게 더 많은 당신을 위해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무언가를 ‘소유’하고자 하는 바람은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무언가를 가졌다는 느낌을 가장 절실하게 깨닫는 순간은 언제일까. 그건 아마도, 내가 가졌던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가 아닐까. 이러한 점에서 삶은 참 아이러니하다. 소유의 기억을 가장 극명하게 불러일으키는 것이 바로 상실의 순간이니 말이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잃어버리고 사라지는 것들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상실의 아픔을 견디고 그것을 잊는 것의 반복이 우리의 삶인 것이다. 삶의 진실은 언제나 이처럼 쓸쓸하다. 그러나 때로는 아프고 애쓴 기억들 모두 우리가 계속해서 살아있다는 생생한 증거가 되기도 한다.






올해로 등단 25주년을 맞은 소설가 함정임이 새로운 소설집으로 우리 곁을 찾아왔다. <곡두> 이후로는 5년만이다. 함정임의 새로운 소설집 <저녁식사가 끝난 뒤>는 다소 쓸쓸한 분위기의 단편들이 주를 이룬다. 뚜렷한 줄거리는 찾아볼 수 없지만 시종일관 나직한 문체로 인물들의 아픔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이야기마다 ‘죽음’이라는 화두를 끊임없이 던지면서도 느긋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로 독자의 감성을 툭툭 건드린다. 단편이 주는 문장의 날렵함과 함정임 작가 특유의 분위기를 접해보고 싶은 이들이라면 기꺼이 한번쯤 읽어봄직한 소설집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무언가를 잃어버린 아픔으로 범벅된 삶을 살아간다. 다양한 상실 중에서도 ‘죽음’이라는 소재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여의고 유년기를 함께 보냈던 고모의 죽음(‘기억의 고고학’), 프랑스를 여행하던 중 접하게 된 P선생의 부고(‘저녁식사가 끝난 뒤’), 결혼식 3일 전에 사라진 남편의 죽음(‘어떤 여름’), 네팔에서 만나 사랑을 느낀 천민 출신 소녀의 갑작스러운 죽음(‘오후의 기별’)등이 그렇다. 이처럼 부모와 남편,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내고 아이를 잃거나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는 등 삶의 큰 상실감을 지닌 인물들이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함정임 작가가 이처럼 상실감의 ‘연대’를 가진 인물을 내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현실에서 만나고 듣고, 경험했던 모든 일들이 기억 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고 살아남아서 제게는 의미심장한 신호를 보냅니다. 그러한 신호를 위안의 형식이든 추모나 복원의 형식이든 각자 제 자리를 찾아주는 작업이 바로 소설이죠.”



그녀의 말은 한마디로 일상에서 경험한 모든 상실의 기억들을 불러내 소설 속에서 재구성하는 것이 자신의 소임이자 역할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우리는 매일 지나는 일상의 모든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상실의 아픈 순간들을 망각이라는 과정을 통해 극복한다는 점에서 망각이란 어쩌면 신이 내린 ‘선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함정임 작가는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무의식 속의 기억들을 끄집어 내어 의식 속에 존재하게끔 만드는 그 고통스러운 작업이 바로 소설가의 일이라고 전한다.



함정임 작가의 소설에는 아코디언, 은촛대, 구두, 수첩 등의 상징적인 사물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것은 소설 속 인물들에게 애정의 징표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집착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사실 이와 같은 사물의 등장은 작가 개인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함정임 작가는 20대부터 유럽 전역을 여행하면서 자신의 콜렉터 기질을 발견했다고 전한다. 그녀는 가까운 곳에 있든 먼 곳에 있든, 매일 보는 사람이든 평생 한 번 본 사람이든 어떤 사람을 기억할 때에는 항상 그 사람과 연결된 사물을 통해 기억하는 특성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서랍이나 서가에는 언제나 세계 도처에서 주워온 낙엽과 꽃잎, 조약돌, 그림엽서, 연필, 팸플릿 등으로 그득하다고. 그것들 중 하나가 비죽이 소설 속으로 흘러 들어가 빛을 내기도 하고, 향을 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물은 좋았던 대로, 어떤 것은 아프고 슬픈 대로 소설 속에서 자리를 잡는 모양이었다.



표제작 ‘저녁식사가 끝난 뒤’를 비롯해 소설집에 수록된 여러 단편에는 바닷가의 풍경을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다. ‘저녁식사가 끝난 뒤’에 등장하는 인물 ‘순남’은 저녁식사의 약속 시간을 시간으로 제시하지 않고 “바다색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시간”이라 이야기할 정도다. “바다와 하늘을 가까이에 보면서 살고 있기에 보통 사람들보다 더 예리하고 다채롭게 바다의 풍경을 이야기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빛의 흐름을 좇아 붓과 물감을 들고 밖으로 나갔던 인상파 화가들과 같은 감각과 정신으로 소설 속 장면을 구상 합니다. 그래서 제게는 바다를 비롯한 강과 들판, 거리와 골목에 어리는 그때그때의 빛이 매우 중요해요. 순간과 순간, 사이 사이 깃드는 흐름을 아주 예민하게 표현하고 싶거든요. 그러한 흐름은 감정에 크고 작은 파동을 일으키고요. <저녁식사가 끝난 뒤>를 통해 그러한 세계를 그리고 싶었고, 독자들의 무의식에 짓눌려 있거나 접혀 있는 감각을 자극하고 싶었습니다. 대부분 그러한 순간을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갈 것이고, 그것이 사는 데 있어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지만 그 순간을 자각하고 느끼는 것이 때로는 목숨과도 같은 힘을 갖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스스로 ‘노마드’를 자처하는 만큼 함정임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도 전 세계를 누빈다. 1960년대의 부산 골목 어귀를 시작으로 미국의 주요 도시들, 멕시코, 프랑스 남부, 네팔에 이르기 까지 소설 속의 무대는 끊임없이 변화를 꾀한다. 함정임 작가는 다양한 공간을 빌어 인물들의 상처를 드러내는데, 그녀가 상처를 봉합하고 꿰매는 방식으로 택한 것은 바로 ‘여행’이다. 사실 그녀가 인물들에게 부여한 상처의 극복 방식은 대체로 작가의 경험적 측면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전 세계를 떠돌았던 그녀의 개인적 경험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도시들은 모두 제가 직접 가보았던 곳이에요. 그 동안 여행을 했던 곳들 중에서 ‘저녁식사 끝난 뒤’에 등장하는 ‘루르마랭’이라는 곳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이곳은 남프랑스에 위치한 자그마한 마을로 카뮈의 묘가 있는 곳이죠. 세계소설사에 이름을 남긴 작가 카뮈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공동묘지에 묻혀 있는 곳인 동시에 그의 아름다운 산문을 만든 알제의 태양과 초목들의 자연을 닮은 곳이기도 하죠. 공동묘지에 이르도록 어떤 푯말도 없어서 마을을 몇 번이나 빙빙 돌고 돌아 찾아갔던 기억이 나네요.”



이처럼 그녀는 몸으로 직접 체득한 문장을 통해 다채로운 공간을 넘나들며 부단하게 이어지는 만남과 헤어짐, 삶과 죽음을 기록한다. 함정임 작가는 ‘삶을 벗어난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진실성에 주목하는 작가다. 그녀는 자신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이야기마다 실제로 겪었던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갖고 있을 만큼 실제의 삶에서 빚어진 것들을 바탕으로 소설을 구성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 ‘그는 내일이라고 말하지 않았다’이다. 소설 속 ‘무일’이라는 인물은 허구로 창조되었지만 맨해튼에서의 해고와 구직 현실은 실제 모델의 이야기를 담았다. 특히 소설 속에 등장하는 공주님은 그녀가 실제로 미국에서 만남을 가졌던 이해경 여사를 지칭한 것이다. 이해경 여사는 고종의 손녀이자 의친왕의 다섯 번째 딸로 조선의 마지막 공주다. 함정임 작가는 맨해튼과 근접한 허드슨 강 건너 뉴저지에 위치한 몽블랑 베이커리에서 실제로 이해경 여사를 만난 바 있다. 그녀는 더불어 작가의 실제 삶과 무관하게 이뤄지는 작품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작가가 겪는 모든 것이 작품의 재료가 된다는 것이다. 그녀는 작품을 쓰는 내내 인물이 겪는 문제와 심리적 흐름 등에 대해서 스스로 얼마나 이해했고 진실했는가에 대해 자문자답 한다. 그러한 질문을 스스로 끊임없이 주고 받으면서 시점과 시제, 주제, 상징 등의 연출 기법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함정임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소설 쓰기란 추모의 형식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녀는 이번 소설집을 읽는 시간이 살면서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제대로 보듬어주지 못했던 크고 작은 상처에 대한 애도의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먼 여행에서 돌아온 심정으로, 낯선 곳의 사람들과 장소들로부터 얻은 에너지와 추억들로 조금은 너그러워진 마음으로, 현실에서 응어리지고 해결할 수 없었던 것들을 털어내고 가벼워진 상태로 읽어달라고도 덧붙였다. 



“저는 데뷔 때부터 작품으로만 소통하는 장애가 있었습니다. 여러 신문사 신춘문예에 동시에 당선되었다는 것, 불문학을 전공한 20대 여성 작가의 이국적 취향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 첫 남편이었던 故 김소진 소설가와의 만남과 사별에 대한 것이 제 발목을 잡았던 것 같습니다. 너무 이른 나이에 데뷔를 했고, 또 너무 젊은 나이에 생의 비극이 저를 덮쳤고 제 소설을 압도했지요. 새로움을 생명으로 삼고 있는 창작자인 제게는 죽음과도 같은 세계였습니다. 하지만 제 운명인 만큼 겸허히 받아들였고, 저를 둘러싼 삶과 세상에 예의를 다해 돌파해 나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삶이 주는 진솔한 문장 쓰기를 화두로 삼고 있으며 그러한 문장과 문장들이 모여 이끄는 세상을 꿈꾸고 있지요. 앞으로는 선입견에 의한 방해 없이 독자들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소설 속 죽음의 얼굴은 우리가 흔히 떠올릴법한 슬프고 비극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무턱대고 두려워할 존재도 아니었다. 죽음으로 인해 생긴 상실의 빈 자리는 여행이라는 매개체로 인해 새로운 에너지로 넘쳐났고, 그 에너지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지켜주는 힘이 되었다. 어쩌면 함정임 작가가 내세운 죽음이란 작가 개인이 그 동안 버텨온 뜨거운 몸짓이었던 동시에 우리에게 던지는 새로운 형태의 위로가 아니었을까.



윤효정(북DB 객원기자)

언제나 자유롭고 언제나 사랑하며 언제나 배우고 언제나 글을 쓰고 언제나 즐기며 계속해서 뿌리가 깊어지고 품이 넓어지는 나무처럼 살고 싶습니다. egloo@daum.net

작가소개

함정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버스, 지나가다』 『저녁 식사가 끝난 뒤』, 중편소설 『아주 사소한 중독』, 장편소설 『춘하추동』 『내남자의 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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