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5.03.18 조회수 | 8,511

살아볼수록 인생은 알 수 없는 것, 그래서 더욱 간절하다



1989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겨울의 환>의 작가 김채원이 11년 만에 소설집 <쪽배의 노래>를 발표했다. 8, 90년대 문학을 좋아했던 독자들이라면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올해 그녀의 나이 일흔. 그렇기에 그녀의 귀환은 독자들을 더욱 설레게 한다.

이번 소설집에는 자매 작가로 유명했던 언니 김지원 작가를 모델로 한 ‘서산 너머에는’, 유년 시절 집에 대한 추억을 섬세하게 묘파한 표제작 ‘쪽배의 노래’를 비롯해 ‘등뒤의 세상’ ‘조금 더 가까이’ ‘물의 희롱-무와의 입맞춤’ ‘소묘 두 점’ ‘누가 빨강 파랑 노랑을 두려워하는가’ ‘거울 속의 샘물’ 등 2002년부터 최근까지 써낸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김채원 소설의 특징이라 일컬어지는 회화적인 문체와 내밀한 심리 묘사는 여전하고 삶에 대한 시선은 더욱 겸손하고 깊어졌다. 가볍게 읽히는 요즘 소설들에 비해 조금은 무거운 느낌이지만, 작가를 연상시키는 소설 속의 ‘그 여자’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 그 어느 때, 힘들었던 그 어느 순간 다시 돌아가고픈 그 어떤 시절로 돌아가 있는 나를 발견한다.

김채원 작가는 지난 10년 동안 힘든 일이 유독 많았다고 했다. 그런 그녀를 구원해준 것은 다름아닌 문학. 글을 쓰는 순간은 물론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면서 숨을 쉴 수 있었다고. “아직도 누군가 나의 소설을 읽었다고 말하면 등줄기에서 땀이 흐른다”고 겸손해하는 노 작가의 소설을 읽고 기자 또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시절로 돌아가 아주 오랫동안 머물다 왔음을 고백한다. 김채원의 소설은 우리에게 그런 존재가 아닐까.




©백수장



Q 2004년 <지붕 밑의 바이올린> 이후 약 십 년간 쓴 소설 여덟 편이 실린 <쪽배의 노래>가 출간됐습니다. 오랜 공백이 있었던 만큼 소회가 남다를 텐데 어떠신지요.

십 년 만이라는 사실은 책이 나오고 나서 그렇게 말씀들을 해주시니 ’아 그런가’ 하고 알게 됐어요. 저 스스로는 그냥 하루하루를 살았을 뿐입니다. 세월은 점점 빠르게 일 년도 한 달처럼 지나가더라고요. 그러나 돌이켜보니 그 십 년간 집중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긴 했었습니다.

Q 1946년생이면 우리 나이로 일흔 살이 되셨습니다. 젊은 사람에게도 소설을 쓰는 작업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건강은 어떠신지, 아직도 이렇게 글을 쓰실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살아오면서 건강이 안 좋을 때가 아주 많았어요. 무엇을 회상하노라면 언제나 안 좋을 때였던 것을 보면 말이에요. 하지만 건강하게 살고 있는 듯 보이려 애쓰느라 이중으로 힘들었던 거 같아요.

글을 쓰는 원동력이란, 자기를 구하기 위해서 쓰는 게 아닌가 싶어요. 문학은 저를 구해주곤 합니다. 내가 씀으로 인해서이기도 하지만 남의 글을 읽으면서 숨쉴 수 있기도 합니다. 세상의 틀이 사람을 못박고 있을 때 문학은 그 못을 애써 빼버리며 기꺼이 해방과 자유로움을 가져다 주죠. 그것이 문학이 지닌 힘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이 덧없는 유한한 삶 자체가 글을 쓰게 하는 힘의 원천인 듯합니다.

Q 작가의 소설은 갈등에 중점을 두는 요즘 소설들과는 달리 마치 일기를 읽는 듯 섬세한 내면에 대한 기록이 특징인데요. 스스로 생각하기에 작가의 소설은 요즘 소설들과 어떤 차별점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TV에서 에드가와 란포의 ‘어느 한 순간’을 본 적이 있어요. 저녁 녘 지하에 있는 방에서 정원으로 나왔을 때 그는 갑자기 오감이 아파서 절절매었죠. 그저 그 저녁 공기를 순간 그렇게 느꼈던 것 같아요. 그 장면은 무척 공감의 웃음을 자아내게 했는데 바로 이런 ’공감의 끈’이 제게는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져요. 어떤 형태의 소설이든 궁극적으로는 인간에 대한, 인생에 대한 탐구일 것입니다. ’나는 무엇인가’를 향하여 제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 쓰고 싶은 것을 쓸 뿐이에요. 

Q 소설 속 주인공들을 이해하면서도 조금은 답답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주인공들이 너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나약한 모습이라서 그랬는데요. 저처럼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작가로서의 변을 들려주신다면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요?

소설 속 인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성향이야 어떻든 결코 나약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진실이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사람들이죠. 또한 진리를 찾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싶기도 해요. 무엇인가를 찾기에 헤매고 아파하는 것이지, 찾지 않는다면 헤맬 까닭도 없을 것입니다. 괴테의 유명한 말도 있지요.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꼭 이래야 한다는 정답은 예술에는 그리고 인생에도 없는 것 같아요. 물론 모자람을 많이 느끼고 어찌하면 좀더 좋아질 수 있는가 늘 무의식 속에서라도 바라고 있지만요.

Q 우리는 보통 나이가 들면 삶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고 명확해지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그런데 이번 소설집은 작가가 예순 이후에 쓴 글들인데도 주인공의 모습은 여전히 삶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자신 없어하는 느낌을 줍니다. 어찌 보면 삶에 대한 겸손한 태도인 것도 같은데요. 실제로도 작가에게 삶이란 여전히 알 수 없는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그렇습니다. 살아볼수록 인생은 수수께끼와도 같구나 생각해요. 그러기에 더 간절해지는 것 같아요. 불교에서 던지는 화두를 보면 그렇게 참선을 하고서도 끝까지 모르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요. 그것이 무지와는 다른 모름이겠지만요. 

Q 작가의 소설들은 마치 일기나 에세이 같아서 소설 속 주인공들이 마치 작가 자신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어디까지가 자신인지 궁금합니다. 

책을 내며 마지막 교정을 볼 때 ‘물의 희롱―무와의 입맞춤’ 뒷부분이 참을 수 없이 지루하다고 느껴져서 어느 부분을 뭉턱 지워버렸어요. 저 스스로도 그렇게 느끼니 독자들도 그런 느낌을 당연히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소설이란 써놓고 보면 설령 아무리 나를 쓰려 했다 해도 ‘나’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곳에 서 있는 것을 보곤 해요. 어디까지가 자신인가 하는 것은 의미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거기에 있는 그 사람은 소설 속에서 새로 태어난 어떤 인물일 뿐이니까요.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쓰려고 하는 대상을 어떻게 연주해내는가 또한 인생이라는 이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의 문제가 있을 뿐이죠.

비어 있는 백색 공간인 노트는 언제나 미지와 미로예요. 그 속에서 길 찾기를 하느라 노트 위는 씨름판이 되죠. 진정성이라든가 어떤 그릇에 담는가 혹은 문체 등이 소설의 승패를 가를 수 있겠으나 어떤 렌즈로 어디에 포커스를 맞추어 읽는가, 어떤 독서를 하는가도 매우 중요한 것 같아요.

Q 소설집은 독자가 읽고 싶은 작품을 먼저 읽거나 읽고 싶은 것만 골라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수록된 여덟 편의 단편 중 독자가 꼭 읽어보았으면 하는 작품은 어떤 것입니까?
 
‘서산 너머에는’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는 어떤 여자인지 한번 써보자 하는 생각에서 출발한 소설이에요. 언니를 모델로 쓴 소설인데 그래서인지 교정을 보기 위해 다시 읽었을 때 감정이 북받쳤어요.

‘쪽배의 노래’는 무엇인가 안에 있던 것을 많이 쏟아놓았다는 후련함이 있습니다. 마음속에 들어 있던 유년의 집 형상을 언어로 묘파해냈다는 후련함 또한 있고요. 주인공 여자가 쪽배를 기다리는 것은 조금 비약인 듯하지만 신을 기다리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어요. 자신이 품었던 한 가족을 위해 바람 앞에 목을 내밀었다는 것은 분명 사랑일 것입니다. 그리고 ’신은 곧 사랑이다’라는 등식이 성립됩니다. 이 소설을 쓴 사람으로서 쪽배가 오리라 믿고 싶어요. 그리하여 허무와 맞설 수 있었으면 합니다.



“언니 김지원의 2주기와 때를 같이하여 나오게 된 이 책은 내게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어딘가에 바친다는 느낌이 이런 것인가 하고 새삼 깨닫는다.”

‘작가의 말’ 중에서



Q ‘작가의 말’에서 언니 김지원 씨의 2주기에 나온 책이라서 더욱 각별하다고 말씀하셨고, <먼 집 먼 바다>라는 공동 작품집도 내셨는데, 김채원 작가에게 언니 김지원 작가는 어떤 존재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가는 매 길목마다 서 있던 언니를 돌이켜 그려볼 수 있어요. 언제나 어김없이 그곳에 서서 자신이 먼저 체험한 것을 가르쳐주려 애쓰던, 이제 그녀가 없는 세상을 저 혼자 걸어가보고 있어요. 앞으로 언니와의 일을 어떻게 해결 보는가 하는 것이 내 남은 인생의 큰 과제인 것 같습니다. 

Q 젊은 독자들에게 김지원 작가를 소개해주신다면 어떤 말씀을 해주시고 싶으신지요? 그리고 김지원 작가의 작품 중에서 꼭 읽어보았으면 하는 소설을 추천해주신다면요?

러시아에 가면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들의 말이 줄줄이 그대로 시라는 얘기를 예전에 들은 기억이 있어요. 바로 그처럼 언니는 저절로 무엇인가를 얘기하는 것 같아요. 터져 나오는 것 같다고 할까. 그것이 언니이자 작가인 김지원의 소설입니다. 우리는 등단 후 초기에만 서로의 작품을 읽었을 뿐 자유를 주기 위해 일부러 읽지 않았어요. 때문에 고르기가 매우 힘들지만 굳이 고르자면 ‘폭설’이라고 얘기해둘까요. 그리고 1주기 때 나온 <김지원 소설 선집 세트>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Q 소설 속에 많은 영화들이 등장합니다. 주로 예전 영화들이 많던데요. 혹시 지금도 극장에 가서 영화를 많이 보시는지요? 이 영화들이 소설을 쓰시는 데 어떤 영감을 제공하기도 하는지 궁금합니다.

지금은 영화를 노트북으로 가끔 봐요. 영감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지만 아마 알게 모르게 많이 받을 거예요. 저는 아주 좋은 것들은 아껴두는 경향이 있어요. 참 어리석은 일일지 모르나 너무 좋은 노래, 너무 좋다는 영화도 그래요.

Q 영화를 직접 만드셨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텐데요. 어떤 계기로 만들게 됐는지, 또 어떤 영화인지 소개 부탁 드릴게요.

그냥 만들어보고 싶어서 만든 것이에요. 여중 시절 어느 순간 문득 느꼈던 의문, ‘모든 소리는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하는 한 구절을 형상화시켜 본 겁니다. 소리가 그대로 있다면 이 세상은 엄청난 굉음의 도가니가 될 것이지만 소리가 사라지기에 다른 소리들이 순간순간 새롭게 흐를 수 있고, 바로 그 순간들이 모여 한 사람의 일생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바람을 직접 보진 못해도 나무가 흔들리는 것으로 바람을 감지하듯 소리가 사라지는 것으로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게 되는 것에 착상을 둔 것이죠. 여기서 거울이란 죽음을 의미하고, 샘물은 새로운 순간이 솟는 그 생명을 얘기하는 거라고, 나로서는 그렇게 형상화 시켜보았어요. 영화 작업 중에 있었던 에피소드라면 여기 나올 아이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유치원 같은 데도 가보곤 했는데 어느 유치원에서 외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함부로 들어왔는가 경찰에 알리겠다고 해서 결국 쫓겨났어요.

Q 이번에 11년 만에 소설집을 내면서 건재하심을 보여주셨고, 많은 후배 작가들에게 귀감이 되신 걸로 압니다. 앞으로도 작품을 계속 발표하실 계획이 있으신가요? 

끝까지 자기 일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이에요. 선배 작가 분들도 그렇게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변 친구들 또한 모두 일하고 있고요.

Q 이번 작품집을 통해 젊은 독자들도 김채원이라는 작가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이전 작품들에 관심을 갖게 될 것 같습니다. 이들에게 작가의 작품 중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요? 

<먼 집 먼 바다>에 묶인 비교적 초기 소설들, 그리고 ‘겨울의 환’을 꼽고 싶습니다. 아직도 누군가 내 소설을 읽었다고 하면 등줄기로 땀이 흘러요. 몇 작품을 빼놓고는요. 문학 수업이라는 것이 전혀 없이 등단해 많이 갈팡질팡했습니다. 나만의 독자적인 길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이미회(북DB 객원기자)

어린 시절, 외롭고 힘들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가장 큰 위안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책이더군요. 가족들이 각자의 자리로 떠난 후 동네 카페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책을 읽을 때, 그리고 그 책의 느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올 때 그 어디서도 얻을 수 없었던 행복과 위안을 느낍니다. 내 안을 가득 채웠던 그 느낌을 함께 나누고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습니다. mimibab@naver.com

작가소개

김채원

1946년 경기도 덕소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1975년 [현대문학]에 단편소설 [밤 인사]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겨울의 환]으로 제13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초록빛 모자] [봄의 환] [달의 몰락] [가득찬 조용함] [달의 몰락] [지붕 밑의 바이올린],중편소설 [미친 사랑의 노래], 장편소설 [형자와 그 옆사람] [달의 강], 장편동화 [장이와 가위손] [자장가], 자매 소설집 [먼 집 먼 바다] [집, 그 여자는 거기에 없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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