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4.08.01 조회수 | 18,786

나라는 풍경, 당신이라는 바람






시인 정호승이 산문집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로 돌아왔다. 그 동안 ‘정호승의 새벽편지’에 실렸던 글을 정리하고 41편의 새로운 글을 더해 엮은 책이다. 시인의 설명에 의하면 이 산문집은 관계라는 하나의 종착점을 향하는데, 이는 <탕자의 귀향>“관계가 힘이 들 때 사랑을 선택하라”는 구절이 그의 최근 화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관계라는 건 항상 좋지 않은 속성을 지니고 있거든요. 그때마다 내가 사랑이 아닌 미움을 선택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내 삶이 힘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제 인생에 남겨진 과제는 ‘관계가 힘들 때 어떻게 사랑을 선택하면서 살 수 있을까’예요.”

우리는 누구나 다 ‘너와 나’의 관계 속에서 살게 된다. 그게 반드시 인간과 인간의 관계라는 법은 없다. 신과 인간, 자연과 인간, 사물과 인간 등 우리가 관계라는 이름 하에 맺는 인연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 이어져있다. 

“예전에 산사의 처마 끝에 직접 풍경을 달았던 경험이 있는데 그 소리가 정말 좋았어요. 이후에 ‘풍경 달다’는 시를 썼을 정도였죠. 그 소리를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듣고 싶은 마음에 풍경을 사와서 베란다에 달았는데 바람이 불지 않아서 소리가 안 나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느꼈어요. ‘아! 풍경은 바람이 존재하지 않으면 아무 가치가 없구나’ 하고요. 풍경은 바람이 없으면 그냥 쇳덩어리예요. 내 존재의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당신이라는 바람이 꼭 필요합니다.”

시인은 산문집에서 엔소니 드 멜로의 우화를 소개한다. 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의 집을 찾아가서 문을 두드린다. 여자가 안에서 누구냐고 묻자 “나야 나” 대답하는데 여자가 문을 열어주지 않고 돌아가라고 말한다. 나라는 사람은 모른다면서. 남자는 고민한다. ‘왜 안 열어줄까?’ 광야에서 오랫동안 고민한 남자는 다시 돌아와 문을 두드린다. 여자는 다시 누구냐고 묻는다. 그때 남자가 “너야 너” 라고 대답한다. 여자는 그 대답을 듣고 문을 열어준다. 결국 우리는 나이면서 동시에 너라는 것이다. 우리가 맺는 관계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시와 우리의 관계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의 시들이 60년대에 난해시의 정점을 이뤘어요. 그런데 지금 2014년 우리나라의 시들이 다시 60년대처럼 어려워지는 느낌이 있거든요. 그건 시대의 한 양상을 나타내는 거라고 볼 수 있고, 또 한편으로는 타자와의 소통보다는 자기 자의식이 과잉 되는 우리 시대를 나타내는 걸 수도 있어요. 제 개인적인 입장은 우리가 쓴 시를 독자가 읽을 때 시를 읽는 일 자체가 고통스러워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시를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죠. 도저히 시를 쓸 수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고통스러워서는 안 돼요. 시와의 관계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어야죠.”
 

우리는 ‘왜 사느냐’ ‘우리가 무엇을 바라면서 사느냐’하는 문제를 생각해보면 대답은 모두 행복으로 귀결될 것이다. 시 역시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한 수단이고 양식일 수 있다. 그런데 그 양식이 고통스러운 양식이 되어서는 좀 곤란하다는 것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


“행복은 결코 지속적인 게 아니에요. 아무리 좋은 향기라도 계속 그 향기만 맡다 보면 그건 냄새에 불과해져요. 순간 스치고 지나가니까 향기로운 거죠. 행복도 그런 겁니다. 어느 한 순간에 느끼는 거지 지속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오늘을 사는 많은 사람들은 행복이 지속되기를 원해요. 그것이 지속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인정하고 나면 우리가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미리 쓴 나의 버킷리스트’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내 방에 홀로 틀어박혀 아직도 써야 할 시가 남아 있는지 내 가슴을 오랫동안 깊게 들여다볼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써야 할 시가 없다는 것, 그것을 가장 큰 감사와 기쁨으로 여길 것이다.” 무작정 서울을 떠나 여행을 한 뒤 집에 돌아왔을 때 더 이상 쓸 시가 없다면 감사하고 행복할 거라는 시인의 고백. 시인에게 써야 할 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저도 이제 나이가 60대를 넘어가니까 주변에 가까운 이들이 떠나가는 일이 잦아요. 그걸 지켜보면서 ‘나는 과연 남아있는 인생의 시간 동안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은가’ 고민해보면 결국 답은 시에요. 나는 시인이니까. 제 가장 중요한 본질은 시를 쓰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는 경우가 사실은 많죠. 내 속에 시가 가득 들어있는데 그걸 시로 써내지 못하면 곤란하거든요. 

그러니까 나는 인생의 어느 시점에는 더 써야 할 시가 없었음 좋겠어요. 내일 죽음이 다가오는데 ‘큰일났다! 아직 나는 써야 할 시가 많은데…’ 이런 생각이 든다면 굉장히 슬플 것 같아요. 내일 죽음이 다가와도 ‘나는 이제 더 쓸 시가 없으니까 괜찮다’ 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래도 내 직분을 다 한 셈이니 괜찮을 테고요.” 




흔히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과연 인생이 정말 마라톤처럼 경쟁에 불과한가? 시인은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뒤쳐지면 안 된다’ ‘지면 안 된다’ ‘1등 해야 한다’ 이런 류의 강박을 안고 사는 사람들은 그렇다고 대답할지 모르지만, 인생은 경쟁이 아니다.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살아가는지가 중요하다. 

“인생에 내가 있는 현 시점 이 자체가 중요해요. 지금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항상 도달하지 못한 다른 목표점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현재는 너무 무가치해지겠지요. 사실은 현재가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데 말이죠. 

우리는 그걸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냥 모르고 지나갈 때가 많아요. 저는 지방을 오갈 때 주로 기차를 이용하는데 그 때마다 차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걸 좋아해요. 특히 기차를 타고 가다가 비가 올 때 차창 밖에 쏟아지는 빗방울들, 그리고 그 비가 오는 기차 바깥의 풍경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요. 비가 쏟아지는 그 순간이 저한테는 너무 중요한 거에요. 그래서 저는 비가 올 때면 모든 걸 중단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려고 해요. 비는 금방 그쳐버리거든요.”


비 오는 차창 밖 풍경 외에도 시인에게 소중한 순간들이 있다. 실패의 순간이다. 시인은 매년 12월 31일을 실패기념일로 삼고 해마다 자신의 실패를 기념한다. 자신의 성공은 굳이 본인이 챙기지 않아도 주위에서 기념해주지만 실패는 내가 아니면 누구도 기념해주지 않는다. 모든 실패는 성공을 위한 실패이기 때문에 기념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성공이라는 말을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면 실패라는 수 만 마리의 개미가 기어 다닌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저는 시인이니까 시를 쓰는 과정에서 실패를 주로 겪습니다. 일단 시집에 실은 걸 완성 된 시라고 본다면, 그 시 한편이 완성되기까지는 끊임없이 고쳐 쓰는 과정이 있어요. 고쳐 쓴다는 건 끊임없이 실패하는 거에요. 완성이 안 되는 거잖아요. 저는 쓰던 시를 항상 책상 앞에 프린트해서 놔두고 머리가 맑을 때 꼼꼼하게 읽어보고 고쳐요. 그걸 또 프린트해서 놔두고, 다음에 보고 또 고치고. 끊임없이 고치는 거예요. 정말 끊임없이 실패하는 거죠. 고침이라는 끊임없는 실패를 통해서 그래도 한 편의 시를 (실패 요소는 있지만) 어쨌든 완성했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처음부터 완성작을 쓰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게 잘 안되거든요. 자꾸 주물럭주물럭 고쳐 쓰니까 그래도 그 한 편이 완성 되는 거에요. 그런데 그렇게 완성된 시를 문예지에 발표하고 나서 그게 저한테 우송돼 와요. 저는 그걸 받아서 펼쳐보겠죠. 그럼 또 고치는 거에요, 빨간 펜 들고(웃음). 그때 가면 또 잘못된 게 보여요. 아마 원고 마감이 있으니까 ‘할 수 없다’ 하고 손을 드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 계속 고치고 있을 거예요.”

인생에 완성이란 없다. 누가 완성된 인생에 대해 확언할 수 있겠는가. 설사 확언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모두 사회적인 잣대에 기초한 아주 주관적이고도 관념적인 대답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인은 다시 한번 강조한다. 끊임없는 실패와 그에 대한 확실한 자기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삶에 확신을 갖고 살아갈 수 있다.

“인생은 물리적 시간으로 주어져요. 어떠한 형태로든 우리는 어느 인생의 시점에서 죽음이란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그 여행을 떠나지 않는 사람은 없어요. 그럼 여행을 떠나기 전에 ‘내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죠. 

한 인간의 삶이 어떤 하나의 응결체로 남게 된다면, 저는 그것은 분명 사랑일 거라고 믿어요. 내가 세상을 떠날 때 한 인간으로서 과연 어떤 사랑을 남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언젠가 세상을 떠날 때 무엇을, 어떤 사랑을 남기고 떠날 것인지 저와 함께 고민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강서현

라디오, 노란색, 필통, 고양이, 산책, 미드, 눈, 시계, 세탁소 냄새, 노리플라이, 일기, 새벽, 손, 달, 이불, 밥, 겨울, 복숭아, 이어폰, 약속, 스티치, 열쇠, 이야기, 나, 너를 좋아합니다.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나요? 바라건대 지금 내가 들려줄 이야기를 당신이 좋아해주길. paranoiac@interpark.com

작가소개

정호승

1950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했으며, 경희대학교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반시(反詩)’ 동인으로 활동했다.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서울의 예수》《별들은 따뜻하다》《새벽편지》《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이 짧은 시간 동안》《포옹》《밥값》《여행》《나는 희망을 거절한다》《당신을 찾아서》와 시선집 《흔들리지 않는 갈대》《수선화에게》, 동시집 《참새》를 냈다. 이 시들은 영한시집 《A Letter Not Sent(부치지 않은 편지)》《Though flowers fall I have never forgo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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