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4.03.12 조회수 | 14,643

당신이 뱉은 말이 살아 움직인다


말이 보인다. 그냥 보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말하는 사람의 감정과 기분에 따라 형태나 색, 냄새가 달라지고, 머리카락이나 손톱처럼 말하는 사람의 유전자도 갖고 있다. 당신이 말을 할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튀어나와 꿈틀대는 이것은 아주 직관적이고 간편한 형태의 언어다. 다가오는 화이트데이에 사탕과 함께 좋아한다는 고백을 건네는 것도 이것이 있다면 어려울 게 없다. 당신이 말을 하는 순간 당신의 감정 그대로를 담은 무언가가 상대방의 눈 앞에 튀어나올 테니 말이다.


정용준 작가는 자신의 첫 장편소설 <바벨>에서 이 같은 언어의 실체를 ‘펠릿’이라 명명한다. 소설 속 바벨을 사는 사람들은 펠릿을 얻고 말을 잃었다. 그들은 입을 열 때마다 자신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튀어나오는 펠릿을 혐오하고, 그런 사람들에게서 나온 펠릿은 지독한 악취를 뿜으며 부패해간다. 그렇게 말은 과거가 되고 사람들은 바벨을 살아간다.



Q 첫 번째 장편소설 출간입니다. 소재가 독특한데요.


내용까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뒀던 건 아니지만 늘 다루고 싶었던 소재예요.


Q 소설 <바벨>은 동화 ‘얼음의 나라 아이라’로 시작합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이야기인가요?


예전 수업시간에 들었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거예요. 북유럽 어딘가에 말을 하면 얼어붙을 만큼 추운 나라가 있는데 그곳에서는 봄이 오면 겨우내 얼어붙었던 ‘아 추워’ 하는 말이 살아난다는 내용이었죠. 나중에 이 이야기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없더라고요. 말이 얼어붙고 그 얼음이 녹으면 다시 말이 살아난다는 내용이 제 소설적 인식과 맞는 것 같아서 프롤로그처럼 포함시키게 됐어요.


Q 작가의 말에서 소설을 쓰게 된 일종의 계기를 설명하면서 “말이 튀어나오는 이미지는 유년기에 갖고 있던 일종의 망상이었다”고 말했는데 당시에도 펠릿과 같은 형태를 상상했던 건가요?


비슷한 이미지를 갖고 있긴 했어요. 소설을 쓰기도 전부터 생각해온 거니까요. ‘말 하기가 참 힘들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잘 다듬어진 말을 필요한 때에 적절하게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었고, 자연스럽게 소설을 쓰게 되면서 ‘내가 장편소설을 쓴다면 첫 번째 소설은 이걸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한 4년 전부터 이걸 어떻게 풀어낼까 고민했어요.



Q 표지는 펠릿을 나타내는 건가요.



네, 펠릿이죠. 표지를 고르느라 디자인 팀에서 고생을 좀 했어요. 제목도 추상적이고 리얼리즘 소설도 아니라서.


Q 본인이 생각하던 펠릿의 모습과 비슷한가요?


우리 말이 다 다른 것처럼 펠릿도 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니까 이걸 보편적인 펠릿의 모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죠. 하지만 이렇게 생긴 펠릿이 분명 어딘가 있을 거예요. 이건 아마 바다나 물, 강 이런 말을 했을 때 생긴 펠릿 같아요.


Q “말을 할 때마다 무언가를 죽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쉽게 말을 할 수 없었다”는 말을 했어요.


사실 제가 말을 많이 더듬었어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는데,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에요. 가령 제가 ‘책’이라는 단어를 말하려고 하면, 이미 말을 하기 전부터 그 단어가 잘 안 나올 거라는 걸 예감해요. 그럼 재빨리 ‘책’을 다른 단어로 바꾸는 거예요. ‘도서’라든지 ‘서적’으로. 말을 하기 전에 일종의 번역의 과정을 거치는 거죠. 이제는 이런 과정이 익숙해져서 다른 사람들은 제가 말을 더듬는다는 걸 거의 몰라요. 그래도 저한테는 아직 말하는 행위가 쉽지 않죠. 이런 자전적인 부분들이 이 소설에 굉장히 노골적으로 드러나있어요.


Q 말을 쉽게 할 수 없었다면 글을 쓰는 것에서 많은 위안을 얻었을 것 같은데 어때요?


그렇죠. 일단 말은 빠르거든요. 단어를 골라서 말할 수 있지만 워낙 빨리 대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그걸 고를 시간이 충분하지가 않죠. 상대가 말을 하기 전에 5분, 10분씩 생각한다고 상상해보세요. 제대로 대화를 할 수가 없겠죠. 그런데 글은 내가 원하는 그 순간까지 기다렸다가 쓸 수 있고, 다 쓴 것을 또 고칠 수도 있잖아요. 다양한 어휘를 사용할 수도 있고 은유나 비유와 같은 표현법도 시도해볼 수 있고요. 그래서 저는 글이라는 방식이 참 좋아요. 단순히 글의 정보적 기능 말고 그것이 우리의 감정이나 감각을 전달하는 방식이 좋아요.


 


Q 많은 사람들이 펠릿을 혐오하고 그것을 실패작인 것처럼 여기지만, 펠릿의 직관적인 특성은 언어로서 아주 뛰어난 기능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본인은 펠릿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요?


저는 펠릿이 아주 실패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펠릿을 잘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아름다울 수 있거든요. 소설에서 그걸 유일하게 해내는 사람이 바로 룸이죠. 룸과 노아가 마음을 담아 이야기할 때 그들에게서 나온 펠릿은 아름답기까지 하죠. 이 펠릿이라는 유기체를 잘 다룰 수 있는 사람에게서는 정말 예쁜 무언가로 나타날 수 있다는 이야기예요. 펠릿은 아주 직관적인 성질을 띠니까요. 그런 면에서 보자면 저는 펠릿이 비록 실패하기는 했지만, 그 실패의 원인은 펠릿을 잘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있지 않나 싶어요.


Q 그렇다면 노아가 꿈꿨던, 혹은 작가가 꿈꾸는 실체화된 언어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아마 성공했다면 아이라의 얼음과 같은 형태로 나타나지 않았을까요? 사람들이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형태였을 거예요. 펠릿처럼 사람들이 혐오하는 대상이지도 않을 테고요. 사람들도 아이라에서 그랬듯 말하는 것을 혐오하지 않고 소중하게 여기는 모습이었겠죠.


Q 룸과 노아는 말을 잘 하지 못해서 소외됐던 인물인데요. 역설적이게도 이들이 만든 펠릿은 아주 아름다운 빛을 띱니다. 또 이들은 펠릿을 해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고요. 어떤 의도로 이 같은 설정을 한 건가요?


말을 잘하는 사람이 하는 말은 가볍다, 이런 식의 흑백논리는 절대 아니에요. 그렇지만 굉장히 오랜 시간 머금고 있다가 하는 말, 아주 애써서 힘들게 한 말이 가지는 무게가 조금 더 무겁다고 말할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온 힘을 다해 이야기하는 느낌 아세요?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 그 한 마디를 하기 위해서 용기를 가지고 진심을 담아내잖아요. 왜 우리 술자리에서도 그런 사람 있잖아요. 조용히 앉아있다가 한 마디 하는 사람. 그런데 묘하게 그런 사람에게 괜히 더 관심이 가고 그런 거요(웃음). 그런 힘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말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거0예요.


Q 이전 단편에서도 언어와 관련된 문제를 겪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 같은 인물 설정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사실 소설을 쓸 때는 어떤 의도를 갖고 썼다기보다, 그렇게밖에 쓰지 못했기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썼다고 말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모든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보는데 저한테는 그게 언어에 대한 인식이었던 거죠. 구체적인 사건으로 드러난 건 아니지만 언어에 대한 감각이 다른 형태로 가공된 거예요. 그래서 제 작품에서는 말을 더듬거나 아예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 혹은 말을 할 수 있지만 어떤 제도나 조직에 의해 말을 하지 못하게 억압받는 사람들이 등장하죠.


Q 자의든 타의든 말하는 것이 어려운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전하려는 바가 있을 것 같은데요.


중요한 건 말을 못한다고 해서 말이 사라지는 건 아니란 거예요. 고여있을 뿐이죠. 그런데 말을 하지 못하면 말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Q 글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고등학생 때부터 일기도 아니고 시도 아닌 걸 쓰곤 했어요.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기록하고 싶다기보다는 내가 오늘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기록해두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일기라고 하기도 애매한 걸 써오다가 대학에 와서 문예창작을 복수전공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게 됐죠.


Q 한 인터뷰에서 다른 세계를 그리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한 걸 봤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글로 생활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인데요. 그 말은, 글을 쓰는 데 특별한 목적의식이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이거든요. 물론 모든 작가들이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요. 어쨌든 그런 게 없을 땐 일단 재미가 있어야 계속 쓰겠죠. 저는 세상에 없는 것을 쓰는 게 참 재미있어요. 제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이요. 그래서 장편소설만큼은 다른 세계를 소설의 무대로 갖고 싶어요.


Q 앞으로 그려보고 싶은 다른 세계가 있다면요?


바다. 흔히 우리가 배타고 나갈 수 있는 그런 바다 말고 우리가 모르는 세계로서의 바다를 그려보고 싶어요.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사실 달보다 심해가 훨씬 더 연구가 안 돼있어요. 달을 밟은 사람은 있지만 심해저를 밟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아직 심해에 대한 연구는 0.1프로도 안 돼있는 상태인데, 기술이 발달해서 조금씩 알면 알수록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곳이라는 게 드러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지구의 모든 유기체는 태양 에너지의 도움을 받아야 살 수 있죠. 그런데 그 도움 없이도 살 수 있는 것이 심해에는 있다는 거예요. 그럼 그곳은 새로운 우주라고 봐야겠죠. 그런 새로운 세계의 바다를 써보고 싶어요.


Q 글을 쓰지 않을 때는 주로 뭘 하며 지내나요.


남의 글 읽고 음악도 듣고 사람도 만나고. 아, 미드 봐요. 항상 겨울에는 우울감때문에 힘들어하는 편인데 올해는 미드 ‘하우스’를 보면서 견뎠어요. 작년 11월 말부터 1월 말까지 시즌 전체를 봤더니 나중에 마지막 편을 보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웃음). 내 가장 친한 친구가 죽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Q SNS 활동도 한다고 들었는데 계정을 못 찾겠더라고요(웃음).


SNS를 하긴 하는데 실명을 쓰는 게 아니라서요. 그냥 찌질한 글 쓰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문단 사람들하고 소통하고 그런 용도가 아니라(웃음). 그런 거 있잖아요. ‘아 외롭다’ ‘오늘 왜 이러지’ 새벽에 이런 거 쓰는 거죠. 사람은 무조건 찌질함을 발산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식으로든.


Q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사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저한테는 아직도 독자라는 개념이 뚜렷하지가 않아요. 독자라는 개념 자체가 허구인 것 같기도 하고(웃음). 연예인은 방송에 나오면 바로 시청자들에게 피드백이 오는데, 저 같은 경우는 그렇게 바로 직접적으로 독자들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도 누군가 제 소설을 읽어준다면 일단은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독자가 있어야 작가도 있는 거니까요.


Q 작가로서 갖고 있는 목표나 계획은요?


요즘 선배 작가들을 보면서 멋있다고 생각한 게 나이 들어서도 꾸준히 글을 쓰는 모습이었어요. 저는 지금도 글 쓰는 게 힘들거든요. 그런데 돌아가신 이청준 선생님의 전집을 보면 아득해질 때가 있어요. ‘사람의 감각이란 게 나이를 먹으면 분명 녹슬 테고, 또 사람마다 전성기라는 게 있을 텐데 그 순간이 지난 다음에도 과연 내가 글을 계속 쓸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이 되는 거예요. 평생 글 쓰는 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직업의식을 갖고 사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그래서 평생 글 쓰는 분들을 보면 정말 멋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렇게 살고 싶고요. 쉽진 않겠지만 그렇게 계속 쓰다 보면 그 중에 몇 작품 정도는 좋은 게 있지 않을까요(웃음).







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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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정용준

1981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2009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했고, 소설집 『가나』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중편소설 『유령』, 장편소설 『바벨』 『프롬 토니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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