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3.12.26 조회수 | 28,620

편안한 나비잠 뒤에 숨겨진 인간의 악몽


무언가를 처음 접했을 때 사람들은 ‘새롭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최제훈 작가에게 ‘새로움’이란 처음 접하는 것이 아닌 ‘익숙한 것을 바꾸는 것’이다. 2007년 등단한 그는 <퀴르발 남작의 성>에서는 익숙한 고전소설 속 캐릭터를 열두 가지 작은 이야기로 확장시켰고, <일곱 개의 고양이 눈>에서는 살인이라는 뻔한 소재를 ‘픽스업’ 장르로 승화시켰다. 서로 다른 소설이 해체되고 조립되어 하나의 소설로 재탄생하는 구조는 당시 한국문학에 신선함을 던져주었다. 


그런 그가 2년만에 선보인 장편소설 <나비잠> 또한 욕망에 가득 찬 인간, 내면, 적자생존의 사회 등 낯설지 않은 소재를 다룬다. 하지만 최제훈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또 한 번 도전에 나섰다. 현실과 꿈으로 양분된 세계에 주인공의 자아 역시 두 개로 나뉘어 투입한 것. “익숙한 재료일지라도 조리법만 새롭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소설이 될 수 있다. 현실적 인물을 중심에 세우고 그 인물을 끝까지 쫓아가 보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그의 각오가 담긴 신작이다. 


<나비잠>은 남부러울 것 없는 로펌 변호사가 알력다툼에 점차 몰락으로 치닫는 이야기를 그린다. 갓난아기가 두 팔을 올리고 깊이 자는 ’나비잠’의 사전적 정의가 인간들의 쟁투라는 악몽을 더 끔찍하게 비추기도 한다. “꿈은 사람들의 억눌린 감정이 표출되는 곳”이라고 표현한 그는 인간의 어떤 감정과 삶을 소설 안에서 표현하고 싶었을까. 진짜 자신을 찾기 위해 우리는 어떤 꿈을 꿔야 하는지 작가를 통해 들어보자.

 

  

 


Q 지난해 웹진문지에 연재 당시에는 ‘몰락-전래되지 않은 동화’라는 제목이었는데, <나비잠>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가요?


좀 더 역설적인 의미를 담았어요. 소설은 몰락으로 향해 가지만 제목에서는 평온한 이미지를 상징하는 단어를 넣고 싶었거든요. ‘나비잠’이라는 게 어린 아이가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리고 자는 편안한 잠을 뜻하잖아요. 이런 나비잠이 40대 주인공과 어울리지는 않지만 매일 악몽을 꾸는 주인공도 나비잠처럼 편안한 잠과 휴식을 가장 원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건 잠시도 편안함을 만끽하지 못하는 모든 현대인들이 마찬가지일거고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의아했던 것은, ‘나비잠’이라는 단어를 들은 제 첫 느낌이 편안함보다는 ‘기이함’이었다는 거예요. 나비가 탈피하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고 장자의 ‘호접몽’도 연상됐죠. 갓난아이의 잠이라고 무조건 깊고 달콤할리 없잖아요. ‘나비’와 ‘잠’을 따로 떼어 읽어봤을 때 고통과 공포의 이미지도 연상되었고요. 여러 가지 의미로 나비잠이라는 단어가 소설의 내용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았어요.

 

Q 친숙한 소재를 새롭게 구성하는 기발함은 최제훈만의 특징으로 손꼽히기도 합니다. 전작을 비롯 이번 작품 또한 마찬가지인데 이야기의 영감은 어디서 얻나요.


전 특별한 소재를 찾지 않아요. 이미 널리 읽히거나 완성되어진 소재를 찾아 새로운 이야기를 쓰려고 하죠. 널리 읽힌 고전도 조금 비틀어 보면 아예 다른 소설로 다가오기도 하니까요. 그게 바로 구성이 차이예요. 흔히 독자들은 작가라면 무언가에 꽂혀 글을 쓴다고 생각하는데 닳고 닳은 재료일지라도 조리법만 새롭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소설이 될 수 있어요.
이야기의 영감은 이런 재료들을 막연히 파면서 얻어요. 그렇게 파다 보면 ‘아 이건 뭔가 나오겠구나‘ 싶은 게 있거든요. 그렇게 발견되는 것이 소설로 탄생하는 거예요.

 

Q 그렇다면 이번 소설 <나비잠>은 어떻게 발견하게 된 소설인가요.


소설 속 최변호사는 뒤가 ‘구린’ 사건들만 맡아 처리하면서 입지를 굳혀가는 인물이잖아요. 그런 인물이 한번 베푼 선행으로 몰락의 길을 걷는 이유는 선행 때문이 아니라 몸담고 있던 조직과 이질적인 행동을 했기 때문이에요. MBC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가 처음 시작했을 때 재미있었던 부분이 있었어요. 김건모 씨가 첫 회에 탈락했는데 김제동 씨가 나서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자고 말했던 사건이요. 그 당시 김제동 씨가 지탄을 많이 받았는데 저는 그 현상이 굉장히 흥미롭더라고요. 김제동 씨의 발언은 누가 들어도 선의가 담긴 굉장히 합리적인 말이었어요. 하지만 문제는 스튜디오 안에는 “탈락하면 하차한다”는 프로그램 규칙에 동의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는 거죠. 정해진 규칙에 동의했던 건데 갑자기 다른 논리가 생기니 한 순간에 경쟁주의자가 되어버렸죠. 그 사건이 이번 소설의 시작이 된 것 같아요. 조직이라는 것은 결국 규칙을 가지고 있고, 그 규칙에 대한 암묵적인 동의로 이해관계가 형성되니까요.

 

Q 작품을 구상할 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작품도 그런가요.


소설과 메시지가 합쳐진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소설이란 여러 상황과 사람이 얽혀 있는 골목길과도 같은 거예요. 하지만 메시지는 한두 문장에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담아내야 하잖아요. 이런 건 인문학 혹은 철학에서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물론 이야기 안에 강조점을 두고 말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걸 작가가 직접 드러내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책을 읽고 독자들이 자연스레 생각하고 느끼길 바라는 거죠.

 

Q 그 동안의 작품들은 사건을 중심에 둔 진행이 많은데, 이번 작품에서는 조금 다른 시도를 한 것처럼 보입니다.


지금껏 써온 소설은 물론 <일곱 개의 고양이 눈>도 모두 사건 중심이다 보니 소설 안에서 인물들이 큰 영향력이 없었어요. 인물 대부분 소설 안에서 이야기에 필요한 수단처럼 등장한 사례가 많았죠. 계속 비슷한 방식으로 글을 쓰다 보니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어서 이야기 방식에 많은 변화를 줬어요. 오래 전부터 인물의 삶을 중심에 놓고 그의 의식을 따라가며 써보고 싶었거든요.등장인물의 내면까지 다뤄야 한다는 점이 부담되기도 했지만 저는 새로운 시도였던 터라 해내고 나니 뿌듯한 마음이 커요.

 

 

 


Q 꿈과 현실을 오가는 지그재그 서술 또한 소설의 특징입니다. 이 같은 전개방법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주인공인 최변호사의 삶에서 벌어지는 일을 세밀하고 다면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선택이었어요. 꿈속에서는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지만 무의식 속이라는 이유로 그걸 실제로 인지하지는 못하잖아요. 꿈과 현실을 오가는 경험과 때론 현실을 침범하는 경험, 이를 통해 주인공의 내면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고자 했죠.

 

Q 최변호사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선 부정한 사건만을 도맡습니다. 아들의 진학을 위해 남에게 누명을 씌울 때는 죄책감조차 없는데요. 이런 인물을 통해 대변하고자 한 현대인의 모습 또한 있었을 것 같아요.


주인공을 통해 평범한 현대인을 나타내고 싶었어요. 저는 주인공이 그렇게 지탄받을 만한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어느 정도 나쁜 짓을 하고 사니까요. 최변호사도 그런 의미에서 그냥 평범한 사람인 거예요.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보다 더한 일도 할 수 있는 게 사람 아닐까요. 야구선수 지망생인 아들을 위해 감독에게 뒷돈을 쥐어주기도 하지만 그것도 큰 액수는 아니고요. 로펌 안에서의 사사로운 부정은 사실 그 쪽 세상에서는 흔한 일이에요. 그의 모든 행동은 가족들을 지키기 위한 일이었고요. 최변호사의 모든 행동들은 현대사회에서 크게 거리낄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Q 인간의 삶에 집중하면서 욕망, 불안 등 부정적인 심리에 초점을 둔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람들이 숨기려고 하는 욕망과 불안에 관심이 많은 편이에요. 들키지 않으려고 하는 내면일수록 진실을 품고 있기 마련이거든요. 주인공은 연봉 2억, 야구 꿈나무 아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60평대 아파트 등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삶을 살지만 언제든 조직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어요. 전 그런 불안감이야말로 인간 내면의 가장 원초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모든 것이 무너졌을 때 사람들은 사회의 냉혹한 시스템을 제일 먼저 탓하지만 사실 그 비극의 씨앗은 우리가 품고 있었던 욕망과 불안이거든요. 그 아픔을 겪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인간은 편안한 나비잠을 잘 수 있죠. 중요한 것은 결국 자신의 내면을 알고 들여다봐야 한다는 사실이에요.

 

Q 주인공이 꾸는 꿈 속의 사회는 지극히 비현실적으로 표현돼 있어요. 3시간 거리의 열차표가 2억원이 넘는 등 전개가 왜곡된 면도 많은데 어떤 의미가 담긴 설정인가요.

 
현대사회를 살다 보면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자기 본연의 모습과 거리를 두는 경우가 있어요. 그렇게 어떤 이유로 자신의 모습을 많이 포기했다면 무의식에는 더 많은 부분이 갇혀 있겠죠. 꿈에서 겪는 모든 상황이 조금은 억지스럽기도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게 바로 현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예요. 꿈도, 무의식도 모두 현실에서 버려진 부분이 내면에 갇혀있다가 표출되는 거거든요. 무의식에 짓눌려 있는 욕망이 꿈에서 어떻게 발현하는지에 집중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Q ‘현실의 자아와 무의식의 조화’를 소설 안에서 강조했는데, 이런 조화는 어떻게 해야 가능해진다고 생각하나요.


우리 모두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감추고 살기 때문에 어느 정도 포장을 하는 건 괜찮지만 그 모습이 이중적이라면 안되겠죠. 현실과 무의식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인식하며 생활해야 해요. 스스로의 진심, 욕심 모두 다요. 자기 진심을 외면하다 보면 그게 스스로를 억압하는 틀이 되고 말아요. 원래는 자연스럽게 표출되어야 할 것들이니까요. 아직 잠들어 있는 마음을 바깥으로 꺼내 날아오르게 하는 것이 중요해요.

 

 

 


Q 경영학도였으나 ‘이렇게 살면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소설가가 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작가로서의 삶은 어떤가요.


늦깎이 작가지만, 작가가 되기로 한 것은 제 인생에서 가장 현명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해요. 만약 전공을 살려 경영학을 이어 나갔다면 남들이 만들어 둔 회사에서 자본주의의 폐해를 느끼며 생활했겠죠. 작가가 된 큰 이유는 ‘내가 정한 틀 안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에요. 창작이란 세상의 모든 걸 자신만의 틀로서 보여주는 작업이잖아요. 저는 그렇게 제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현재 작가의 삶이 너무 만족스러워요.

 

Q 뒤늦게 작가가 되어서 좋은 점이 있다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제가 작가로서 출발이 늦어서 좋은 점은 선택의 폭이 넓다는 거예요. 어려서부터 글을 썼다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글을 써야만 한다는 중압감 속에 작품이 자유롭지 않았을 거란 생각도 들어요. 1980년대의 한국문학은 리얼리즘이 득세할 시기라서 그 시기의 작품은 대부분이 리얼리즘을 품고 있죠. 하지만 그 시기를 지나 2000년대에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행운인 것 같아요.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있고 많은 시도도 할 수 있고요. 유연하고 거침없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Q 책 집필 시 다른 책을 전혀 읽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 글에만 집중하려는 거죠. 다른 책을 읽다 보면 은연 중 그 책과 비슷하게 방향이 갈 수도 있고, 좋은 작품을 보면 열등감을 느끼기도 하거든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주인공이 과거로 가서 헤밍웨이를 만나는 장면이 나와요. 작가인 주인공은 헤밍웨이를 만났다는 기쁨에 자신의 소설을 읽어봐 달라고 말하지만 헤밍웨이는 단호하게 거절해요. 이유를 묻자 헤밍웨이는 “소설이 좋지 않으면 내 시간이 낭비되고, 소설이 너무 훌륭하면 화가 날 것 같다”고 말해요. 저 또한 그 부분에 공감하거든요. 그래서 책을 쓸 때는 오롯이 제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다른 책은 읽지 않아요.

 

Q 등단 후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작가로서 어떤 목표를 세워두고 있나요.


7년이라는 말을 들으니까 굉장히 오래된 것 같네요. 그런데 저는 아직도 미흡한 신인이라고 생각해요. 그 작가를 표현할 수 있는 세계는 연륜과 경험이 쌓인 후 발현되는 것이니까요. 저는 아직 다양한 시도를 통해 여러 가지 소설을 선보이고 있는 터라 ‘최제훈만의 작품 세계’가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죠. 독자들에게 제 작품을 설명하고 싶지도 않고요. 왜냐하면 작가가 직접 어떻게 읽어주길 바란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독자들이 자유롭게 책을 읽고 해석할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저도 다양하게 글을 쓰기 때문에 독자들도 다양하게 생각하길 바라요. 그러러면 제가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개개인의 생각을 자유롭게 끄집어 낼 수 있는 소설을 써야겠죠?(웃음)

 

Q 차기작으로 구상 중인 작품이 있나요?


아직 없습니다. 독자로 돌아가 당분간 휴식을 취할 생각이에요. 밀려놨던 책도 읽고요. 그동안 정말 책이 많이 읽고 싶었는데 참았거든요. 재충전이 끝나면 생각을 다듬고 새롭게 시작해야죠. 다음 번엔 제대로 된 미스터리 소설을 써보고 싶어요.

 



 
 



인터파크도서 북DB

인터파크도서에서 운영하는 북디비(BOOKDB)는 국내외 작가, 출판사 DB를 총망라한 도서 정보 사이트로, 작가 랭킹 서비스로 새로운 도서 선택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작가 인터뷰, 연재, 리뷰, 만남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작가소개

최제훈

2007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과 장편소설 [나비잠]이 있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으로 한국일보 문학상(2011)을 수상했다.

낯선 세상의 언어를 가슴으로 내어놓다 2013.12.26
요시다 슈이치 “배우 하정우가 연기해줬으면” 2013.12.24
댓글 주제와 무관한 댓글은 임의로 삭제될 수 있습니다.

0 / 3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