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3.12.19 조회수 | 6,741

자유부인 이후 우리 시대 가장 파격적인 여성상 탄생


연재 내내 한국판 ‘섹스 앤 더 시티’와 ’맘마미아’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던 <유혹>이 마침내 완간됐다. <유혹>은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한 권지예 작가의 네 번째 장편소설로, 문화일보에서 2년간 연재된 작품이다. 총 5천 매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소설을 마치면서 작가는 “2년 동안 ‘글 감옥’에서 지내다 풀려난 기분이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성실히 연재했으니 나름대로는 모범수였다고 생각한다”라고 회고했다.

 

<유혹>은 ‘17살 딸을 둔 37세 미모의 이혼녀’ 오유미를 통해 사회의 욕망 지형도를 파헤친다. 유혹하지 않으면 유혹당하는 21세기 자본주의 경쟁 사회에서 현대인들의 성과 사랑의 단면을 그린다. 성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로 연재 내내 화제를 모은 이 소설은 2012년 ‘제 6회 한중작가회의’에서 작가의 작품을 낭독하기로 한 중국 작가가 읽기 민망하다며 난색을 표한 해프닝도 있었다. 결국 작가의 양해를 얻어 원고의 일부분을 건너뛰고 낭독을 마쳤다.

 

소설이 연재되는 동안 ‘너무 야하다’ ‘여성 작가가 앞으로 어쩌려고 이러느냐’라는 반응도 있었지만 권지예 작가는 “작가로서는 무척 좋은 훈련이었다. 이제 못 쓸 것이 없겠다는 자신감까지 든다”며 환하게 웃는다. “짐승은 발정하지만 인간은 유혹한다”고 말하는 작가에게서 유혹의 본질을 들어봤다.




Q 2년 넘게 문화일보에서 연재한 작품입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작가로서의 커리어가 어떻게 달라졌다고 생각하나요.

 

처음 연재를 할 때는 1년 계약을 했었어요. 그런데 1년이 다 되어갈 즈음 신문사에서 연재 반응이 좋다며 더 해주길 요청하더라고요. 마침 저 또한 그 시기에 소설 전개상 연재기간이 조금 더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터라 흔쾌히 응했어요. 그렇게 총 2년간 연재를 했는데 남자가 2년간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제대한 기분이 이런 것일 거예요(웃음). 꾸준히 글을 쓰다 보니 이전보다 훨씬 필력이 좋아졌어요. 오랜 기간 하드 트레이닝을 받은 느낌이랄까요. 글의 호흡을 알게 됐고 제 글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죠.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Q 2년을 매일같이 연재하면 힘든 일도 많았을 것 같아요.


오히려 연재가 끝나고 나서 몸이 굉장히 아팠어요. 연재 기간 때는 몰랐는데, 항상 몸이 긴장을 하고 있었나 봐요. 연재 중 간혹 시간에 쫓겨 원고를 보낼 때는 기한을 지키지 못할까 불안하고 힘들었거든요. 그리고 소설 이야기가 너무 방대해지다보니 소설 앞부분의 세세한 내용을 잊어버리는 일도 생겼어요. 연재가 끝나고 책을 내는 과정에서 검토해보니 앞부분과 뒷부분의 내용이 다른 게 보이더라고요. 작가로서 소설의 곳곳에 대해 다 알고 있어야 함에도 소설의 분량이 5,000매 정도 되다 보니 내용을 까먹은 거죠. 그런 면에서 연재를 마치고 힘든 점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Q 연재를 같이 작업한 강길석 화백이 얼마 전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어요.


네. 올해 6월에 간암으로 돌아가셨어요. 강길석 화백은 실력도 좋으셨지만 작품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셨던 분이에요. 연재에 들어갔던 삽화를 모아 나중에 전시회도 열겠다고 하셨죠.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8시간이 걸릴 정도로 한 회 한 회 열심히 해주셔서 감사했어요. 삽화로 인해 독자들의 반응도 더욱 좋았고요. 연재기간을 1년 연장한다고 했을 때도 끝까지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하셔서 간암 투병 중에도 병석에서 마지막 일주일치 그림을 모두 그리셨어요. 제 작품에 많은 애착을 가지신 분인데 돌아가셔서 마음이 너무 아프고 견디기 힘들더라고요.

 

Q 파격적인 소재의 작품이라 고민도 많았을 것 같은데 어떤 계기로 집필을 결심하게 됐나요.


그 동안 여성의 인생에 대해묻는 작품을 꾸준히 써왔지만 여성의 사랑, 남녀의 성은 정면에서 다뤄본 적이 없어요. 아마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 도전해보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마침 연재 제의가 들어왔는데 자극적인 소재를 요구하셔서 타이밍이 좋았어요. 물론 연재소설에 제 글을 맞춘 건 아니지만 연재를 계기로 ‘남녀의 성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뤄봐야겠다’ 결심했죠. ’인간의 성 행동에 대한 양식 보고서’라고 할까요?(웃음) 책에서 “짐승은 발정하지만 사람은 유혹한다”라는 말이 나와요. 짐승들도 물론 유혹하겠지만 그들은 생존 번식을 위한 거잖아요? 하지만 인간은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인간의 유혹은 사회를 이뤄나가는 데 있어 너무나 다양하고 복잡하게 이용되죠. 우리 사회는 다양한 유혹이 존재하는 정글이라고 생각해요.

 

Q 5권의 완결본 중 1, 2권이 ‘19세 미만 구독불가’ 판정을 받을 정도로 성에 대한 묘사가 강렬한데, 부담은 없었나요.


부담이 됐었죠. 여성 작가가 성을 소재로 글을 쓰기란 쉽지 않잖아요. 글을 쓰면서 어디까지 표현을 해야 하는지 고민도 많았어요. 성을 정면으로 다뤘기 때문에 수위는 조금 높지만 저는 제 작품이 단순히 자극적인 성인소설이라고 생각지 않아요. 소설을 통해 사회문제나 사람의 인생을 한번 들여다보길 바라는 주제 의식이 있기 때문이죠. 주인공 오유미가 섹스를 통해서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녀에게 유혹은 곧 생존방식이자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성에 대한 부분도 피하지 말고 제대로 써보자고 생각했고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소설이 19세 미만 관람 불가 판정을 받았을 때 처음엔 많이 섭섭했어요. 요즘 인터넷에서는 이보다 더 선정적인 것들이 많잖아요. 하지만 이제는 별로 개의치 않아요. 19세 이상의 독자가 보시면 되죠.(웃음)

 

 

 


Q 총 5권으로 출간된 작품입니다. 소설 구성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주세요.


소설은 1, 2부로 구성돼요. 1~3권에 해당하는 1부에서는 유혹의 다양한 전략들이 펼쳐지죠. 7명의 인물들이 각각의 캐릭터대로 구현하는 유혹의 파노라마라서 성에 대한 묘사가 강렬한 것이 특징이에요. 2부는 인간 사회에서 성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욕망의 근원과 유혹의 종착역을 찾아가는 과정이 그려져요. 복수와 정체성 탐색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

 

Q 17세의 딸을 둔 이혼녀 오유미는 늘 남자들과 자유로운 사랑을 나눕니다. 사랑과 욕망에 솔직한 오유미는 어떻게 설정하게 된 캐릭터인가요.


새로운 여성상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오유미는 남자에게 끌려 다니지도 않고 경제적으로 예속돼 있지도 않아요. 확고한 사회적 지위와 기반 아래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해 나가는 추진력 있는 여성이죠. 그 동안 제 소설의 여성들은 잃을 것이 많아서 대담하지 못한 인물이 대부분이었는데 유미는 모든 걸 내놓아도 아쉬울 것 없는 여성이에요. 오히려 남들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욕망에 따라 무엇이든 밀고 나가니까 쓰는 내내 저도 속이 시원했어요. 오유미는 TV드라마에서 흔히 그려지는 기계적인 악녀가 아니라 성공보다는 행복을 추구하는 여성이에요. 유미를 통해 인간의 행복과 욕망을 좀 더 자유롭고 솔직하게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아요.

 

Q 현대인들의 ‘욕망’에 집중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욕망은 작가라면 가장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의 인생을 자동차라고 한다면 욕망은 엔진이에요. 욕망은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가 어떤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를 보여주는 에너지거든요.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을 겉으로 내비치지 않아요. 아마 삶의 힘이 더 세기 때문이겠죠. 마음 속에는 온갖 욕망이 들끓지만 주어진 삶에 충실할 수 밖에 없어서 참아야 되는 경우도 많고요.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시켜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소설에서라도 욕망을 자유롭게 그려보자’라고 생각했고요. 그렇게 인간의 욕망에 집중하다 보니 좀 더 함축적인 소설이 나온 것 같아 글을 쓰는 작업도 훨씬 재미있었어요. 


 

 

Q 유혹하지 않으면 유혹당하는 21세기 경쟁 사회 속 작가의 눈에 비친 사회의 모습은 어땠나요.


경쟁 사회에서 우리는 항상 자신을 어필해야 하죠. 살아남기 위한 동물적 본능으로, 욕망하는 주체로, 또 권력을 추구하는 사회적 전략으로 다양한 유혹이 펼쳐보이는 곳이 현대사회에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매력을 개발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 게 일종의 자기 인생의 마케팅이겠죠? 인생이 소중하고 귀한 만큼 자신을 어필할 마케팅 전략도 필요한 것 같아요. 넓은 의미에서 보면 그것도 유혹이죠.

 

Q 현시대에서 ‘유혹’이 인간에게 어떤 도구로 이용돼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자신의 끼를 잘 활용해서 현명하게 원하는 걸 취해야 해요. 예전엔 사회적으로 억압적인 분위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끼를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잖아요. 저는 젊은 여성들에게 사랑에서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갖고 싶은 게 있다면 끼를 부려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지레 겁먹고 포기하기보다는 도전하는 편이 후회가 없거든요. 저도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저만이 가진 끼를 활용해서 유혹하면서 살아보고 싶어요.

 

Q ‘이번 작품을 통해 섹스가 다른 시선으로 받아들여지길 원한다’는 바람도 전했습니다. 독자들이 섹스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길 바라나요.


첫 문장에도 썼듯이 ‘사랑이 허기라면 섹스는 일종의 음식’이에요. 섹스는 어떤 의미도 부여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과정인 것 같아요. 자신의 분신을 남기기 위한 몸부림이자 본능이면서 젊음의 표현이죠. 제 소설에서 섹스는 인생의 과정이자 인간이 지난 모든 욕망을 드러내는 기술이기도 해요. 작가로서 계속 천착해온 주제인만큼 어떤 비난이나 찬사도 신경쓰지 않겠다는 각오로 끝까지 밀어붙인 경향도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성사회학이나 성심리학적 관점으로 읽어도 흥미롭지 않을까 싶어요.

 

Q 작품을 마친 후 ‘<유혹>을 통해 대중소설의 끝까지 가보고자 했다’는 본인의 욕망은 채워졌다고 생각하나요.


그러진 못한 것 같아요. 저는 <유혹>이 대중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작가분들은 ‘대중소설이 아니다’라고 말하더라고요. 아마 인생과 섹스에 대해 주제의식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겠죠. 처음에는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담을 생각이 없었는데 글을 쓰면서 많은 욕심을 냈어요. 담고 싶었던 여러 주제들을 포기하지 못한 탓에 오히려 내용이 대중소설로는 내용이 조금 어려워지지 않았나 아쉽기도 해요.

 

 

 


Q 어린 여동생을 대신해 작가가 되기를 결심했다고 들었는데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제 여동생은 3년간 암투병을 하다가 17세에 세상을 떠났어요. 동생은 그림을 그리고 글 쓰는 걸 좋아했는데 만약 살아있었다면 저보다 더 훌륭한 작가가 되었을 거예요. 동생이 죽고 나서 ‘신이 재능 있는 사람을 너무 일찍 데려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억울한 날도 많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런 시간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동생이 하고픈 이야기들을 모아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동생은 제가 작가가 되도록 신이 보낸 수호천사인 것 같아요. 동생의 삶과 죽음이 저에게 많은 영향을 줬고 그 마음으로 지금 작가로 살아가고 있어요.

 

Q 현재 작가로서의 삶은 만족하나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만족하고 행복해요. 작가는 굉장히 아이러니한 직업인 것 같아요.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은 늘 힘들고 스트레스지만 신기하게도 글을 쓰는 동안은 행복하거든요. 동생의 삶을 대신 살고 있는 것이 아닌 지금은 소설가가 된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Q 지금까지의 작품에서 주로 남녀의 사랑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사랑’은 작가에게 어떤 주제인가요.


저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굉장히 소중하게 여겨요. 특히 남녀의 사랑은 정말 크죠. 사랑을 처음 시작할 때 서로에게 빠져 자신의 무엇이든 주려고 하는 그 때를 굉장히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그 때야말로 정말 순수한 때니까요. 사랑만을 이야기한다기보다는 인간의 감정, 인생을 그리다보니 사랑이 빠지지 않게 되었어요. 아름다운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것도 사랑이죠. 요즘은 다양한 사랑의 모습이 관심이 많아요. 다음 작품에서는 조금 더 광범위한 사랑에 대해 써보고 싶어요.

 

Q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1년 6개월은 좋아하는 나라에 가서 생활하며 글을 쓰는 게 꿈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가고 싶은 나라는 어디이며 그 이유 또한 궁금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젊은 시절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글을 썼어요. 개인적으로는 그리스나 동남아시아를 좋아하는데 여러 나라를 6개월씩 돌아다니며 생활해보고 싶어요. 프랑스에서 7년간 살아본 경험이 있어서 어디를 가더라도 잘 생활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노트북 하나만 들고 돌아다니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제 의견에 가족들은 모두 동의해줬지만 막상 제가 마음의 준비가 아직 안됐어요. 머릿속으로는 자유를 꿈꾸지만 실천으로 옮기기엔 엄마, 아내, 며느리로서 제가 현실을 떨칠 준비가 안되어있더라고요. 50대가 지나가기 전에 꼭 해보려고요.

 

Q 본인의 책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길 바라나요.


제 작품을 통해 조그마한 생각의 씨앗을 얻는다면 만족할 것 같아요. 주인공을 욕하더라도 ‘아, 주인공에 비해 난 잘 살고 있구나’ ‘내 삶이 이렇게 소중하거나’라며 내 삶을 돌아볼 수 있다면 충분하죠. 제 작품이 누구에게나 교훈을 주는 훌륭한 작품이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시선에 얽매여 쓰고 싶진 않아요. 다만 바라는 것은 제 글로 인해 누군가의 인생이 행복해졌으면 하는 거예요. 잠시나마 간접적으로 억압된 삶에 자유로움을 느끼게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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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권지예

권지예는 1997년 《라쁠륨》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퍼즐》 《꽃게무덤》 《폭소》 《꿈꾸는 마리오네뜨》, 장편소설 《사임당의 붉은 비단보》 《유혹》(전 5권) 《4월의 물고기》 《아름다운 지옥1,2》, 그림 소설집 《사랑하거나 미치거나》 《서른일곱에 별이 된 남자》, 산문집 《권지예의 빠리, 빠리, 빠리》 《해피홀릭》 등이 있다. 2002년 이상문학상, 2005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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