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3.09.10 조회수 | 5,702

도시의 유령들에게 숲을 열어주다

 

민음사가 경장편 시리즈의 새로운 이름 ’오늘의 젊은 작가’를 출범시켰다. ’오늘의 젊은 작가’는 문학성, 다양성, 참신성을 기치로 한국문학의 미래를 이끌어 갈 신예들만을 엄선해 출간하는데, 그 첫 번째 작품이 조해진 작가의 <아무도 보지 못한 숲>이다. 조해진 작가는 <로기완을 만났다>로 문단의 주목을 받은 바 있으며, 신동엽 문학상을 비롯 최근에는 황순원 문학상 본심에 오르며 ’차세대 작가’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얼마 전 동인문학상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린 <아무도 보지 못한 숲>은 주민등록 말소로 세상에서 유령이 되어버린 소년의 성장기로, 시리도록 아픈 인간의 삶과 가족의 애를 몽환적으로 그려낸다. 엄마가 사채업자에게 진 빚 때문에 쫓기게 되면서 어릴 적 헤어졌던 남매가 12년 만에 재회하지만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조해진 작가는 “아픈 인물들에게 제목 그대로 ’아무도 보지 못한 숲’을 열어줘 현실의 상처와 허기를 달래주고 싶었다”라고 이야기한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Q <아무도 보지 못한 숲>은 어떤 작품인가요.

 

이 소설은 저마다의 상처를 갖고 있는 세 인물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혈연이나 연인 관계로 엮여 있으니 이 소설을 표면적으로 분류한다면 ‘가족소설’ 혹은 ‘연애소설’에 속하겠지요. 하지만 가족의 소중함이나 사랑의 의미 같은 화두로 이 소설을 쓴 건 아니에요. 그보다는 이 거대한 도시를 유령처럼 떠도는 세 인물의 상처가 서로에게 발견되고 교환되어 치유되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Q 작품의 인물들은 상처와 고민을 안고 살아갑니다. 작품을 시작할 때 작가의 고민은 무엇이었나요.

 

이 시대 젊은이들의 모습을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 어떤 공동체에도 강하게 결속된 적 없고 모든 인간관계는 표면적으로 흘러가는, 그래서 누구를 만나도 혼자라고 느끼는 그들.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Q현수’처럼 자신의 신분을 버리고 살아가는 인물을 보니 영화 <화차>가 떠오르는데, 소재 선택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아무도 보지 못한 숲>은 책으로 나오기 전, 계간문예지 <세계의 문학> 2011년 여름호에 소개된 바 있어요. 그러니 2012년에 개봉한 <화차>의 영향을 받은 건 아니에요.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사회적 죽음을 위장하는 인물이라면, 사실 이전의 단편에도 쓴 적이 있는데 첫 소설집인 <천사들의 도시>에 수록된 단편 ‘지워진 그림자’입니다. 이 단편에는 은행 공금을 횡령한 뒤 발각될 위험에 처하자 유서를 남긴 승용차를 강가에 버리는 은행원이 나오기도 하죠. 또한 이전의 장편소설인 <로기완을 만났다>의 로기완’도 ’현수’처럼 보장된 신분 없이 유령처럼 살아가는 인물이에요.

 

Q <아무도 보지 못한 숲>이라는 제목에서 ‘숲’은 ‘선의의 숲’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소설을 읽어보신 분은 알겠지만 이 소설 속 ‘숲’은 실제의 공간이 아닙니다. 상상과 가상의 공간이죠. 또한 이 숲은 세 명의 인물을 이어주기는 매개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맨 처음 ’미수’가 꿈결인 듯 몽롱하게 보았던 상상의 숲을 다른 두 인물이 역시 꿈과 상상으로 공유하면서 서로의 기억, 불행, 아픔 등을 알아가게 되죠. 서로를 이어주는 매개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근원과 마지막을 설명해주는 곳, 그런 의미에서 아마도 선의의 공간이라고 명명된 것 같아요.

 

Q 등장인물 모두 섬세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데 인물들을 통해 인간 내면의 어떤 모습을 그리고자 했나요.

 

그들의 외로움을 최대한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주중에는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잠이 들고 주말에는 밀린 잠을 잔 뒤 청소와 빨래를 하고, 파티 없이 생일과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그 누구에게도 속 얘기를 편히 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모습과 닮은 외로움. 하지만 외로움 자체만을 쓰려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유대까지, 비록 그것이 언젠가는 부서지고 마는 허약한 것이라도 해도, 그 찰나의 순간까지 담고자 했습니다.

 

Q 전작에서도 타인의 고통에 주목해왔는데 이번 작품은 인물들이 스스로의 고통을 내면으로 숨기는 듯 보입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타인의 고통’ 그 자체만을 쓴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과연 정당한가, 혹은 진실한가에 대한 성찰과 고민이 주를 이뤘죠. 그리고 그 시선의 주체는 대개 자신에 대해서는 엄격한 성향을 띠곤 했습니다. 이번 작품에는 자기 시선을 검열하는 인물은 나오지 않아요. 소설 속 세 인물들은 사회적 타자이자 자기 외의 다른 타자들의 빈 부분을 채워주는 사람들이에요. 그들은 이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감 없는 인물이지만 자신의 고통을 직시하고 극대화하기보다는 또 다른 사회적 타자인 누나, 동생, 연인을 돌봐주고 치유해줍니다. 이런 면에서 인물들이 고통을 내면화하고 있다고 보여진 것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Q 책을 쓰는 동안 위로 받는 쪽은 늘 본인이라고 했는데 어떤 감정이었는지.

 

소설을 쓰는 동안 나 혹은 내가 아는 다른 누군가와 닮은 인물들을 통해 이전엔 모르고 지나갔던 부분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위로 받는 쪽은 늘 나였다’라는 문장을 작가의 말에 썼습니다.

 

Q 소설을 쓸 때 소설 속 인물과 냉정하게 거리를 두려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사실 이성보다는 감정에 좌우되는 부류의 인간이에요. 그래서 제가 쓴 글이 자칫 감상적이 될까 늘 조심하는 편입니다. 소설 속 인물들과 거리를 둔다는 건 내재된 이야기는 슬퍼도 그 표면은 건조하게 쓰려고 노력한다는 의미예요. 최대한 담담하게 쓰고 싶어요.

 

Q 작품을 집필할 때 현실이나 경험은 배제하고 글을 쓰는 편인가요.

 

제 경험이 날 것으로 들어간, 소위 말하는 ‘자전소설’은 아직 써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제가 쓴 모든 소설에는 일정 분량의 경험이 들어가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아무도 보지 못한 숲>에 나오는 미수’의 방은 제가 2년 동안 살았던 원룸과 비슷한데 그 방에서 품었던 특별한 상념이 미수의 감각을 통해 서술되는 장면들이 제법 있습니다. 또한 ’윤’이 느끼는 좌절감에는 대학 졸업 후 뭘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던 제 20대가 녹아 있고요. 함께 졸업한 동기들은 저마다의 갈 길을 잘 찾아가는 듯한데 나 혼자만 뒤쳐진 채 헤매고 있다는 좌절감을 느낀 적이 있었거든요. ’현수’가 이 사회(시스템)의 불필요한 존재(버그)일지도 모른다는 그 소외감 역시 저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쯤은 경험해봤을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Q 본인의 작품 안에서 다루고자 하는 인물들이 ‘대체로 정체성이 없고 흔들리는 존재’들인데, 그런 인물을 그리고자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사실 처음부터 ‘정체성 없고 흔들리는 인물’들에 대해서 쓰자는 다짐 같은 건 한 적이 없어요. 그저 자연스러웠죠. 아마도 저 역시 어떤 공동체에도 단단하게 뿌리를 박은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알기 때문에 보였고, 보였기 때문에 쓰게 된 거죠. 그런데 저는 이런 성향이 저에게만 국한되어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직업이 있어도, 가족을 이뤄도 우리는 대개 비슷한 결핍감 속에서 고독하게 살아가지 않나요? 소설은 구체적인 인물과 사건을 다루기 때문에 제 소설에서는 다만 그런 결핍과 고독이 더 뚜렷하게 보였을 뿐인 것 같아요.

 

Q 이번 작품을 쓰면서 스스로 어떤 점이 변화되었다고 생각하나요.

 

세 번째 장편소설이자 네 번째 책이에요. 지금까지 몇 매의 원고를 썼는지는 계산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꾸준히 쓰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네요. 지치지 않고 쓰고 있다는 것, 그것이 저에게 용기를 줍니다. 그래요, 이 작품 덕분에 좀더 용감한 작가가 되었습니다(웃음).

 

 

 

 

Q 현재 미국에 머물고 계신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한국문학번역원의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어 미국에 오게 됐습니다. 세인트 루이스에 있는 워싱턴 대학교에서 낭독회가 있을 예정이어서 준비를 하고 있고, 역시 같은 대학의 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에서 한국문학과 관련된 수업도 하나 맡게 됐습니다. 생활은 매우 단조로운 편이에요. 오전에는 책을 읽거나 강의를 준비하고 오후에는 학교에 나가 있으며 저녁에는 글을 씁니다. 물론 아무것도 쓰지 못한 채 빈 화면만 마주보다가 컴퓨터를 끄는 날도 많지만요.

 

Q 7월 <로기완을 만났다>로 신동엽 문학상을 수상했고 현재 각종 문학상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어떠세요.

 

감사한 일이죠. 전 독자에게 그 어떤 감정도 강요하고 싶지 않아요.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소설 속 세계로 스며들기를 바라며 글을 쓰죠. 그런 부분을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계신 것 같습니다.

 

Q 여성작가로서 본인만의 장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문장을 쓸 때 한 가지 원칙은 있어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말자는 것. 직접적인 표현 대신 풍경과 사물, 상황과 장면으로 대신 전달하려고 노력하죠. 예를 들어 소설에서 ’미수’가 연인인 ’을 잃은 상실감을 이렇게 표현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 당시 윤의 세계는 영원히 통화로는 연결되지 않는 자동응답기 하나만 놓인 텅 빈 로비 같았다’ 이런 문장이 제가 추구하는 표현이에요. 독자와 평단이 이런 부분을 ‘섬세하다’라는 말로 과찬해주시는 것 같아요.

 

Q 최근 읽은 책 중에 마음에 남은 책이나 구절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미국에 와서 읽은 책 중에 정찬의 소설집인 <정결한 집>과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정찬의 소설집에 ‘흔들의자’라는 단편이 있는데, 자본에 짓밟힌 노동자 남편의 파멸을 아내가 서술하는 내용이에요. 노사협상이 이루어져 파업을 중단하고 공장 굴뚝에서 내려온 남편을 기다리고 있던 건 회사의 엄청난 손해배상 청구였고, 결국 남편은 그 굴뚝으로 다시 올라가 자살을 하죠. 이 비참한 장면을 ‘꽃숭어리 같은 별’이라든지 ‘하늘에 떠 있는 정원’이라든지 하는 표현으로 아름답게 묘사한 부분이 있어요. 그 장면을 읽으며 많이 울었습니다. 소설은 설명이 아니라 이미지로 아픔을 전달하는 장르라는 걸 다시 한 번 절감했어요.  

 

Q ‘젊은 작가 시리즈’를 기대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한 말씀해주세요.

 

한국 소설이 따분하고 어렵다고 외면하시는 분이 많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보시면 그런 생각이 선입견이었다는 걸 아시게 될 거라고 감히 확신합니다. 오늘날 이곳의 문제들과 직면하고 있는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들을 통해 서로의 그늘과 진실이 더 많이 공유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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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조해진

2004년 『문예중앙』에 소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단순한 진심』 등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 이효석문학상, 백신애문학상, 형평문학상, 대산문학상, 김만중문학상 등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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