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3.08.13 조회수 | 3,443

사랑을 놓지 못하는 우리들의 연애사

 

소설집 <그 남자의 연애사>는 연애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작품 속 단편들은 예쁜 사랑과는 거리가 먼 비루하고 구차하기 그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삶의 의지가 불끈 솟는 이유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깃든 사랑 이야기여서가 아닐까. 

 

사랑은 굶주린 개 앞에 던져진 상한 고깃덩어리와 같다. 개는 앞뒤 가리지 않고 덥석 문다. 허기가 가시고 포만감이 드는가 싶지만 식은땀과 뒤틀림과 발작이 곧바로 찾아온다. 끙끙 오랫동안 앓아야 한다. 그 시기가 지나면 또 한번의 고깃덩어리가 던져진다. 저것을 삼키면 식은땀과 뒤틀림, 발작이 틀림없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뻔히 알면서도 또 덥석 문다.

 

우리는 왜 매번 그럴 수밖에 없는가.

 

<그 남자의 연애사> 작가의 말 중에서

 

사랑하고 헤어지는... 그 아픈 시간을 반복하면서도 우리가 쉽게 사랑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4년 만에 연애 이야기로 돌아온 한창훈 작가는 "사랑의 본질과 관련된 우리들의 연애사(事)이자 연애사(史)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손때가 묻은 봇짐 하나를 메고 거문도에서 올라온 한창훈 작가와 함께 사랑과 연애, 섬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 남자의 연애사

 

 

 

Q ‘바다와 섬 소설가’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그 동안 바다와 섬을 소재로 한 작품을 주로 집필해왔는데, 이번에 작가님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랑과 연애에 대한 소설집을 출간했습니다.

 

제가 연애와 사랑 이야기를 쓴다고 하니 사람들이 의외라고 생각하더라고요. 글을 여러 해 쓰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섬과 바다 이야기를 비롯해서 사람들의 삶과 사연을 가지고 작업하게 되더라고요. 연애와 사랑도 우리 삶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사건이잖아요. 누군가에게는 인생 전부일수도 있고. 특별히 ‘사랑 얘기를 해봐야겠다’고 결심한 건 아니고 그냥 물 흘러가듯 쓰게 됐어요. 

 

Q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집필한 9편의 단편을 묶어 소설집으로 출간했는데요. 주제는 연애인데 단편이라는 형식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사랑을 말하면서 장편으로 만들면 좀 지루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존재의 긴 사랑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보다 여러 사람의 다양한 사랑을 짧게 이야기하는 게 더 매력 있다고 느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전 체질적으로 ‘단편형 작가’인 것 같아요. 오해를 감수하고 한 가지 이야기하자면 개인적으로 저는 소설의 미학은 단편에 있다고 봐요. 짧은 글 안에 모든 걸 담기는 힘들죠. 그런데 예전부터 좋은 단편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장편과 단편을 크게 구분해서 하거나 그런 건 아닌데 예전의 그 마음이 은연중에 남아있었던 듯 하네요.

 

Q 책의 표제작인 ’그 남자의 연애사’가 2쇄부터는 수록되지 않았어요.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그 남자의 연애사’는 2011년 봄 <문학동네>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작품 인물에 모델이 있어요. 그 분께 허락을 받고 취재를 해서 작품으로 발표했죠. 그런데 이번에 책이 출간되면서 자신의 개인사가 자꾸 알려지는 게 불편하다고 하더라고요. 제 문학으로 인해 누군가 불편한 것은 작가인 저로서도 불편한 일이고, 그 분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었습니다. 독자들에게는 죄송스럽지만 이런 일련의 상황으로 표제작이 2쇄부터 빠지게 됐습니다.

 

 

 

 

Q 책에 실린 단편의 배경이 대부분 ‘섬’ 혹은 ‘바다’더라고요. 섬 사람들을 주요 인물로 등장시킨 이유가 있나요.

 

단순히 ‘섬과 바다’를 좋아해서만은 아니고 섬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섬을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곳도 아니고 물리적, 문화적으로도 변방에 있는 곳이잖아요. 제가 사는 거문도도 많은 관광객들이 오긴 하지만 지나간 후에는 기록되지도 조명되지도 않죠. 그런데 섬 사람들이라고 해서 사랑을 안 한다거나 사랑을 하는 모습이 육지 사람들과 다르거나 그러진 않거든요. 이런 이유로 그 사람들의 인생과 삶의 모습을 소설로 쓰고 싶었어요. 그게 작가로서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Q 작품은 아름다운 사랑이 아닌 처연하고 애잔한 분위기가 주를 이륩니다. 사랑의 어떤 모습을 담고자 했나요.

 

저는 사랑의 속성을 슬픔이라고 봅니다. 초기에 아름답게 불타오르는 장면은 정말 짧죠. 그 짧은 시간이 지나면 슬픔을 견뎌야 하는 시간이 와요. 결혼하면 헤어짐 없이 모든 사랑이 완성될 것 같지만, 결혼 후에는 끝없는 진부함과 권태가 찾아오죠. 사실 연애는 살을 발라내고 나면 ‘사랑했다’와 ‘헤어졌다’는 뼈만 남아요. 행복하고 화려한 짧은 시간이 끝난 이후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초점을 뒀어요.

 

Q 인물들이 하나같이 평탄하지 않는 설정이라 고민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고민 안 되요. 제 주변에는 다 그런 사람들밖에 없거든요(웃음). 전 힘들고 처연한 사람들에게 눈이 가요. 무난하게 산 성공한 사람을 찬양하는 게 어떻게 문학이겠어요. 문학은 실패한 사람의 삶을 통해서 창출된다고 봅니다. 실패한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무언가를 깨닫고 또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이 문학이 가진 백신 같은 역할이라고 봐요.

 

Q 짠한 삶을 살아가지만 인물들이 대체적으로 유머를 잃지 않는 것 같아요.

 

제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코드가 유머에요. 웃음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기쁨의 웃음이 있는 반면 슬픔의 터널을 통과해서 나오는 웃음도 있죠.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일수록 잘 웃어요. 힘든 일을 잊기 위해 본능적으로 웃음을 터뜨리죠. 작품에서 워낙 고달픈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 사람들에게는 웃는 시간이 최고의 휴식시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슬픔이 깔려있는 웃음, 제 소설에 나오는 유머는 바로 그런 의미에요.
 

Q 단편 ’뭐라 말 못할 사랑’에서는 인어를 연상시키는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그 동안 작품에서 못 봤던 상상력을 발휘하셨는데요.

 

재미있는 설정을 해봤어요. 인어가 정말 존재한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할까 상상해 본거죠. 우리는 대체로 ‘인어’라고 하면 디즈니를 떠올리고 인어에 대한 상상을 그 틀에 가두잖아요. 하지만 설화에는 식인인어 등 다른 시각이 많아요. ‘인어가 존재한다면 실제는 이런 모습을 보일 것이다’라는 전제가 전체적으로 깔린 작품이에요. ’뭐라 말 못할 사랑’에 상상력을 가장 많이 가미했죠..

 

Q 9편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술’이에요. 작가의 작품 안에서 술은 어떤 역할로 등장하는 건가요.

 

제가 술꾼이긴 하지만 작품에서 술이 어떤 ‘역할’을 하는 건 경계합니다. 술이 등장함으로써 더 문학적이고 예술적이 된다는 걸 우려한다는 뜻이에요. 제 작품에서 술이 잘 등장하는 건 제가 다루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고달프기 때문이에요. 그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술이 등장하는 거죠. 작가가 등장시키는 소품이라기보다는 소설 속 인물들이 스스로 들고 나오는 소지품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Q 작가가 생각하는 사랑에 대해 설명해준다면요.

 

사랑을 설명해서 뭐하겠어요(웃음). 머리말에 써놓은 ‘Amor’라는 단어 의미 그대로예요. 사랑은 죽음에 저항하는 행위죠. 사랑은 너무나 달콤하고 행복하지만 고통스러운 시간을 과정으로 품고 있어요. 다만 그 화려한 짧은 순간을 사랑의 완전한 세계로 보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행복한 사랑의 순간’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숱한 슬픔과 외로움을 통해서 만들어지니까요.

 

 

 

 

Q 거문도 이야기를 묻고 싶어요. 여전히 거문도에서 잘 생활하고 계시죠?

 

거문도에 내려간 지 벌써 8년째네요. 생활은 뭐 특별할 거 없이 비슷해요. 글 쓰고 그냥 살고. 섬 생활에 이거 2개 빼면 뭐가 있겠어요. 주민들은 작가님이라고 부르는데, 정작 대하는 건 일반 주민이에요(웃음). 아, 예전처럼 낚시를 많이 하진 않아요. ‘내가 물고기를 너무 많이 죽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Q 섬사람으로 바라본 섬 안에서의 사랑은 어떤 모습인가요.

 

물리적인 환경 때문에 사랑이 힘들어요. 특히 섬은 여자가 없어서 남자들이 혼자 사는 경우가 많아요. 거리가 멀어서 사람을 사귈 기회도 흔치 않은 게 섬 생활의 고달픔이죠. 섬을 떠나고 싶어하는 여자와 섬에서 계속 살고 싶어하는 남자 사이의 갈등도 많고 이뤄진다 해도 왕왕 헤어지기도 하고. 거문도 같은 경우는 섬이 큰 편이라 비교적 다른 사람에 비해 젊은 사람이 많지만 여자는 부족해요. 환경적 제약이 크다 보니 쓸쓸함이 더 크게 보이는 것 같아요.

 

Q 경향신문에 1년 넘게 ‘거문도 사람들’이라는 코너를 연재 중인데, 거문도 생활이 친근하게 그려지더라고요. 최근 또 다른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이번에 30대 총각 하나가 소개로 여자를 만났는데, 여자가 결혼해서 거문도에 살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어요. 섬에서는 아주 큰 사건이 일어난 거죠. 주변 사람들이 혹시 여자가 마음이 바뀔까 봐 밥 사주고 술 사주고 잔치를 벌였어요. 어쨌든 섬에서 살게 되면 여자들은 ‘억순이’가 돼요. 사랑은 희미해지고 삶만 남죠. 그럼에도 여자가 섬에서 살고 싶다고 했으니 거문도에서는 아주 큰 사건이 아닐 수 없어요.

 

Q 줄곧 바다와 섬을 배경으로 소시민의 삶을 진솔한 이야기로 묶는 작업을 많이 했는데 외도해볼 생각은 없는지.

 

전 섬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남겨놔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들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소설로 남겨놓으면 기록이잖아요. ‘대한민국의 작가들 중에 이런 작업을 한 작가가 동시대에 있었구나’라고. 스스로에게 부여한 임무 같기도 하고. 그런 이유가 자꾸 작품을 쓰게 만드는 것 같아요. 운명이죠.
 

Q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주세요.

 

이런 게 있어요. 섬에는 나이 든 해녀들이 많아요. 매일 끙끙 앓으면서도 바다를 나가죠. "왜 그렇게 힘들게 매일 바다를 가느냐"라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해요. “어제도 했기 때문에”. 계획을 묻는 질문에 이 대답이 가장 적합할 것 같네요. 저도 그냥 해왔던 대로 계속 할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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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한창훈

1963년 여수 출생. 소설집 『가던 새 본다』 『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 『청춘가를 불러요』 『나는 여기가 좋다』 『그 남자의 연애사』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 장편소설 『홍합』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 『꽃의 나라』 『순정』 『네가 이 별을 떠날 때』, 산문집 『내 밥상위의 자산어보』 『내 술상위의 자산어보』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공부는 이쯤에서 마치는 거로 한다』, 어린이 책 『검은섬의 전설』 『제주선비 구사일생 표류기』 등이 있다. 1998년 한겨레문학상, 2009년 요산문학상, 2009년 허균문학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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