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3.08.02 조회수 | 7,317

썩은 과일에서 비롯된 잔인하지만 빛나는 순간

 

< 제 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위저드 베이커리> 이후 구병모 작가는 청소년 문학과 성인 순수문학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해왔다. 이번 새 장편소설 <파과>에서는 범상치 않은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겉모습은 평범한 60대 노부인이지만 실상은 그들의 언어로 ’방역’이라 부르는 청부살인을 업으로 하는 여자, 조각(爪角). 구병모 작가는 60대 여성 킬러의 고독하면서 아름답고, 잔인하면서 슬픈 이야기를 그려낸다.

 

 

 

구병모 작가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여름방학을 맞았다며 인터뷰 장소에 함께 나타났다. "학기 중에는 챙겨줘야 할 게 너무 많아서 앞으론 아이 방학 때만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말하는 그녀. 소설 속 잔인하고 슬픈 이야기와는 달리 따뜻하고 푸근한 모습이 꽤 인상적인 만남이였다.

 

구병모 작가의 <파과> 속으로 들어가 보자. 

 

 

 

Q 이번 소설 <파과>를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느 날 냉장고 청소를 하면서 채소칸에 있는 썩은 과일 한 알을 발견했어요. 그걸 꺼내드는 순간, 이번 작품 <파과>에 대한 영감이 떠올랐죠. 수명이 다해 뭉그러지는 과일을 만지면서 여느 때와는 달리 한참을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언젠가 나도 이렇게 되겠구나’라는 당연한 사실을 그때 처음 인식했던 것 같아요. 

 

Q 그럼 소설 제목 <파과>는 흠집 난 과일에서 비롯된 거군요.

 

’파과’의 사전적 의미는 두 가지예요. 처음엔 부서진 과일이라는 뜻에서 파과(破果)라고 붙였는데, 여자 인생에서 가장 좋은 때인 16세라는 뜻의 파과(破瓜)도 함께 담아보려고 노력했어요. 둘 중 어떤 ’파과’에 중점을 두고 읽을 지는 독자분들의 판단에 맡기고 싶어요. 

 

Q 소설 속 주인공은 청부살인을 업으로 하는 60대 여성입니다. 노년의 킬러를 등장시킨 이유가 뭔가요?

 

뭉그러진 과일 한 알을 발견한 이후, 부서져서 사라져 가는 것들의 찰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그때 받았던 강렬한 인상을 담으려고 노력했답니다.
보통 노인과 여자는 사회 통념상 약자잖아요. 두 가지 약점을 모두 가진 주인공을 통해 억압받는 현실에서 파괴적인 방식으로 저항해 가는 인물을 그리고 싶었어요.

 

Q 그녀의 주변 인물인 투우, 해우를 비롯해 심지어 반려견 무용까지 모두 이름도 독특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평소 작명법이 따로 있나요?

 

저는 소설의 전체 내용을 놓고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을 찾기 위해 한자사전을 뒤집니다. 한자사전이 없으면 안돼요.(웃음) ’해우’는 해우소의 해우예요. 비중 있는 인물은 아니지만 방역업체 에이전트다 보니 근심도 풀어주고 어려움도 해결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투우’는 말 그대로 붉은 천만 쫓아다니는 소싸움에서 가져왔습니다. ’무용’은 주인공 옆에서 존재감은 없지만 실상 감정적으로는 무용하지 않다는 의미로 지었습니다.

 

 

 

 

Q 작품 속에서 청부살인은 방역업이 말하고, 킬러는 방역업자라 말합니다.

 

심부름센터에서 불법적인 일까지 대행해준다는 이야기는 미디어를 통해 접했지만 소설 속 배경은 온전히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거예요. 청부살인업자라고 하면 왠지 느와르 속 킬러나 무협지의 자객을 떠올리는데 실제 소설은 그런 장르가 아니라서 많지 않겠다 싶었죠.

 

때마침 제가 살던 37년 된 낡은 저층 아파트는 방역업체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했죠. 그곳에서 세스코를 자주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방역업체라는 이름이 만들어졌어요.(웃음)

 

Q 킬러간의 총격전과 액션 장면이 디테일하게 묘사돼 있는데요. 자료조사는 어떻게 했나요.

 

이 소설을 쓰면서 엔터테인먼트적인 부분은 염두에 두지 않았어요. 하지만 액션이나 총격전 같은 긴장 요소들은 큰 주제 안에서 꼭 따라와야 한다고 생각해서 공부는 했습니다. 글로 배웠어요.(웃음) 직접 체험하지는 못하고 경호용 무술과 무기 교본을 참고했어요.

 

Q 주인공은 한때 ’손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현재는 ’조각’이 됐는데요. 이름의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나요.

 

’조각’은 과일이 부서졌을 때 한 조각을 의미합니다. 또 한자사전을 보면 짐승의 발톱과 뿔이라는 뜻도 있죠. 사람으로 치면 손톱이겠죠. 주인공의 심적인 변화을 대변해주는 것이 바로 손톱입니다.

 

Q 청부살인업자로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없는 주인공이 결말에서 네일케어를 받습니다. 그녀가 방역업계를 떠나서 자유를 찾게 되는 건가요?

 

에필로그는 희망 찬 미래로 그려졌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행복을 찾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녀가 이제 방역을 하지 않을 순 있지만 완전히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봐요. 네일케어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처럼요.

 

결말은 그 동안 자기 손에 피를 묻히고 살아온 주인공에 대한 작가로서 최소한의 윤리라고나 할까. 그 이후 이야기는 독자의 상상에 맡겨야죠.

 

Q <파과>를 통해 작가님이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부서져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찰나의 시선을 담았습니다. 그 찰나의 순간은 아주 잠깐이지만 그것이 있기에 우리는 빛나는 존재라고요.

 

 

 

 

Q 최근 행성궤도 출신 작가들의 작품을 모은 테마 소설집 <쓰다 참, 사랑>이 출간됐습니다. 소설 창작 커뮤니티 ’소행성 B612’는 작가들의 창작 모임이라고 들었는데, 소개해주세요.

 

소설가 박상우 선생님께서 테마 소설집을 기획하시면서 당신 제자들을 모으신 거예요. ’소행성’은 창작을 가르쳐 주는 소모임이에요. 창작에 대한 열망을 가진 분들이 많아서 현재까지도 꾸준히 기수가 늘어나고 있는 걸로 알아요. 

 

Q 등단 전 여러 차례 고배를 마신 걸로 아는데요. 어떻게 견뎠나요.

 

고등학생 때부터 본격적으로 일년에 한 번씩 신춘문예에 응모했는데, 15년 연속 떨어졌어요. 소설가의 꿈을 품게 된 건 초등학교 때였는데 꿈을 이룬 것은 한참 뒤였지요. 일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쉴 틈 없는 생활을 하면서 견뎠어요.

 

Q 데뷔작인 <위저드 베이커리>의 반응이 굉장해서 작품 쓰는 데 부담이 있을 것 같아요.

 

어떤 소설을 쓰더라도 <위저드 베이커리> 그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거기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은 하겠지만요. 작품이 좋으면 독자가 알아줄 것이라고 믿어요. <위저드 베이커리>를 좋아해주신 분들 덕분에 빈곤의 문제를 크게 걱정하지 않고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써올 수 있었다는 점에서 굉장히 감사하고 동시에 제가 안고 가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 독자들에게 어떤 작가로 남고 싶으세요.

 

채워지지 않은 여백의 상태로 남고 싶어요. 제가 굉장히 많은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활동기간은 5년 밖에 안되거든요.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글을 쓰고 있어서 기간에 비해 결과물이 많이 쌓인 것 같아요. 한편으론 작가 이름은 잊혀지고 작품만 남는다고 해도 상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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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구병모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나 2008년 <창비청소년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단 하나의 문장』 , 장편소설 『위저드 베이커리』 『아가미』 『파과』 『한 스푼의 시간』 『네 이웃의 식탁』 등이 있으며, 2015년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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