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1.12.12 조회수 | 14,028

모르는 사람들이 그려내는 내 안의 성화(聖畵)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았다. 2008년 11월에 출간된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올해 세계 31개국에 판권이 팔리면서 전세계의 독자와 교감을 나누고 있고, 국내에서는 2011년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독자들이 찾은 문학 책 가운데 한 권으로 꼽힌다. 자연스레 올해 한국문학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신경숙 작가와 <엄마를 부탁해>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신경숙 작가는 <엄마를 부탁해>가 아닌 <모르는 여인들>이라는 신작 단편집으로 2011년 한 해를 마무리 지으려 한다. 

지난 팔 년 동안 써놓은 작품들을 모아 읽으며 내가 새삼스럽게 알게 된 것은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채 우리는 서로의 인생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따금 나를 행복하게 했던 나의 문장들도 사실은 나 혼자 쓴 게 아니라 나와 연결되어 있는 나의 동시대인들로부터 선물받은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이 우울하고 고독한 시대에도 문학이 있다는 것에 나는 아직도 설렌다.

- <모르는 여인들> 작가의 말 가운데 -



<모르는 여인들>은 신경숙 작가가 지난 8년 동안 틈틈이 문예지에 발표했던 7개의 단편 소설을 묶어낸 책이다. 작가의 말에서 표현했듯이 <모르는 여인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채 서로의 인생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표제작 ‘모르는 여인들’의 경우를 보자. ’나’는 20년 전 헤어진 연인 ’채’에게서 연락을 받는다. 20년 만에 만난 옛 연인으로부터 받아 든 것은 그의 아내와 아내의 살림을 도와주던 도우미 아주머니가 주고 받은 편지가 담긴 노트. ’나’는 일면식도 없는 두 여인들의 편지를 보면서 20년 전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고, 현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처럼 <모르는 여인들>에 실린 7개의 단편은 한결 같이 알게 모르게 서로의 삶에 영향을 끼치며 살아가는, 저마다의 상처를 갖고 살아가는 이름 모를 이들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Q. <엄마를 부탁해>는 말 그대로 열풍이었다. 누구보다 뜻 깊은 2011년을 보냈을 것 같다. 

4월에 미국에서 <엄마를 부탁해>가 영어로 출간된 이후 유럽에서도 책이 나왔다. 덕분에 예상하지도 못했던 북 투어를 했다. 국경 넘어 있는 독자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서 신인 작가가 된 기분도 느꼈다. 한국사회가 아닌 타국의 사람들과 타 문화를 경험하며 보고 들었던 것들이 내 안에서 어떻게 발효될지, 그 긴장감을 함께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Q. 국외에서의 경험들이 언젠가는 문학으로 녹아나올 것 같다. 

작가가 살아간 시간과 머물렀던 공간은 그 모습 그대로는 아니어도 다른 식으로 변형되어 작품에 녹아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남긴 여운은 이제껏 내가 몰랐던 것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다. 지금은 그러한 것들이 내 안에서 어떻게 발효되고 표현될지 기다리고 있다. 

Q. <엄마를 부탁해>의 길고 긴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신간이 나왔다. 

<모르는 여인들>은 지난 8년 동안 집을 지어주지 않아서 흩어져 있었던 단편들이다. 7개의 단편들에게 새 집을 지어주는 것으로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기쁘다. <엄마를 부탁해>는 나에게는 엄마와 같은 작품이다. 3년이 지났는데도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고 있지 않은가.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라 계속 거기에 머무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르는 여인들>이 새로운 시간 속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 

Q. 이제 <모르는 여인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7개의 단편은 청탁 받은 것이 아니라 쓰고 싶었던 순간, 글로 마음을 다스려야 했던 시기에 쓴 글이라고 들었다. 

가장 처음에 나오는 ’세상 끝의 신발’은 제목에서도 느껴지듯 묘한 위기감과 고독감이 담겼다. 어딘가의 끝에 놓여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들 하나하나의 존재라고 본다. 작품을 쓸 당시에 우리는 타인에게 서로 빛이 되어 주기보다는 서로 밀어내며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 스스로도 깊은 고독에 흔들리고 있는 시기였기에 그런 작품이 나왔다.
’화분이 있는 마당’은 언제까지나 함께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 세계로부터 느닷없이 작별을 통보 받은 인물에 대한 이야기다. 통보를 받았다는 것은 자기가 믿었던 세계가 깨지는 아픔을 겪었다는 뜻이다. 사실 우리 인생은 관계가 깨지고 믿었던 것으로부터 버림 받는 순간들로 이뤄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시에 나 역시도 평생 친구로서 일생을 마치리라 생각했던 사람에게 아직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작별의 편지를 받았었다. 아마도 그 시간을 견디기 위해 썼던 것 같다. 

Q.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조금씩의 소외감이나 상실감을 갖고 있는 보통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 

어느 순간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평범하게 보이는 이들이 가진 강인함이라고 생각한다. 평소에는 모르지만 어떠한 상처나 재난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강인함과 그들이 보여주는 일상이다. ’세상 끝의 신발’에서 죽음의 순간에도 희생하는 낙천 아저씨 같은 인물이 그렇다. 이런 사람들은 소설이라는 언어로 조명하지 않으면 존재했는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이 세상 구석구석에서 자기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들로 인해 세상은 균형을 이루고 유지가 된다고 생각한다. 

Q. 일면식도 없지만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살아간다는 작가의 말과 의미가 닿아있는 것 같다. 

땅바닥으로 넘어지면 땅을 짚고 일어나야 한다. 사람에 의해 상처받고 다치지만, 사람에 의해 일어나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렇기에 동시대에 대한 연대의식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20년 전에 헤어졌던 애인의 아내와 그녀의 일을 도와주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주고 받았던 편지를 통해 나 자신이 변하는 것도 같은 의미이다. 우리는 만나지 않은 상태에서도 동시대에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끼치고 살고 있다. 이런 것이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Q.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살아가는 모습이 <모르는 여인들>에서는 신발을 매개로 이뤄지는 모습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왜 신발이었나. 

의식하고 쓴 것이 아니다. 쓴 소설을 모아 놓고 보니 그런 장면이 꽤 있더라. 친하게 지내고 있거나 그렇게 되고 싶은 사람들이 벗어둔 신발에 몰래 발을 넣는, 혼자만의 비밀이 있다는 걸 이번 소설을 쓰고서 깨달았다. 어릴 적 아버진 신발을 끌고 대문 밖으로 나갔던 것, 벗어둔 신발에 몰래 발을 넣어보곤 했다. 

Q.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소설 속에서 신발이 갖는 의미는 특별하게 느껴진다. 

신발은 일상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한 사람의 일생을 담고 있지 않은가. 신발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이 살아낸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예전에 칼럼으로 쓴 적이 있는데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선수가 우승 후에 인터뷰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책상 밑으로 발이 보였는데 빨갛게 부풀어 있고 상처투성이였다. 어떤 완성으로 가기까지 인간으로서 치러내야 하는 고통스러움이 바로 신발이 감싸고 있는 것이다. 즉, 신발 뒤에 있는 맨발, 그것이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이다. 

Q. 표제작을 ’모르는 여인들’로 정한 이유는 따로 있는가. 

7편의 소설의 행간에는 모르고 있는 사람이 내게 끼치는 영향이 일관되게 흐르는 것 같다. 내가 손을 잡고 눈을 마주보고 뺨을 어루만질 수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대면할 수도, 대면하지도 않은 이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그 의미가 가장 큰 ’모르는 여인들’을 표제작으로 정했다. 

Q. 7편의 소설 속 인물은 ’모르는 이들’에 의해 결국에는 균형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상실과 작별, 슬픔 같은 것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단단해진다. 그것이 인생이다. 때론 이런 시련을 극단적으로 받아들이고, 마치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시간은 매순간 흐르고 우리는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렇게 흘러가는 과정에는 관계가 있고 기쁨과 좌절을 느끼며 균형을 찾아간다고 본다. 어쩌면 늘 가장 빛나게 살아야 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Q. 7개의 단편들 사이에는 8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차이가 있다. 

8년의 시간이 함께 묶여있어 자칫 그 시간을 뚫고 나가지 못하고 낡은 느낌이 날까 염려스러웠다. 교정을 보면서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그 시간을 무사히 견뎌준 작품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Q. 8년 전 소설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작품은 그래야 한다. <모르는 여인들>은 물론이며, 이전 작품들에게 바라는 것은 언제 읽어도 그 시간을 견디어 주는 것이다. 낡고 오래 된 작품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사람들과 호흡하는 느낌으로 살아남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외딴 방>도 1995년에 나온 작품인데 아직도 읽히는 것을 보면 벅차고 기쁘다. 







Q. 지난 작품은 여전히 읽히고, 국경을 넘어서도 읽히고 있다. 작품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사랑받는 이유는 보편적인 감성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인 듯 하다. 

내 관심은 트렌드보다는 인간의 근본적인 것에 있기 때문이다. 한 인간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성숙하며 느끼는 것들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마음은 변한다. 무엇인가를 배반하기도 하고,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을 응시하기도 한다. 이러한 근본적인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이라고 본다. 

Q. 보편적인 감성에 ’신경숙’의 색을 어떻게 덧칠하는가. 

새로운 것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작가만의 독특한 숨결이 있는, 향기가 배어나는 문체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같은 이야기를 써도 그 작가의 냄새가 나는 것이 중요하다. 가령 땅바닥에 표지도 없고, 저자 이름도 없는 책이 놓여있다고 하자. 이 책을 집어 몇 장만 읽어도 ’이건 신경숙 소설인데’ 이렇게 알 수 있는, 구분해 낼 수 있는 문체를 통해서 새로움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Q. 작가만의 문체를 갖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소설을 건축물로 본다면 문장 하나는 벽돌 한 장이다. 이 벽돌이 모여서 하나의 건축물을 이룬다. 만약 벽돌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시간에 의해, 바람에 의해서 흔들려 무너진다. 문장도 마찬가지다. 밀도 있게 한 문장씩 쌓여 균형을 이루고 균형이 잡혀야 한다. 성성하고 빈틈이 많은 문장으로 이뤄지면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Q. 많은 독자들은 그러한 신경숙만의 문체, 소설에서 위로와 위안을 얻는다. 그렇다면 작가 스스로는 무엇에서 위로를 얻는가. 

나는 소설을 통해 질문을 할 수 있지 않나. 소설은 해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작품을 하나씩 쓰는 것은 세상에 대한 나의 질문이 하나씩 표현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걸 통해서 나는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다. 

Q. 결국은 작가와 독자 모두 작품으로 위로 받는 셈이다. 

아마 나는 글 쓰는 사람이 되지 않았다면 완전히 균형감각을 상실한 끔찍한 사람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내 작품에 나오는 인물이 겪는 우울과 고독에만 치우쳐 보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이 그 순간을 어떻게 뛰어넘어서 타인과 관계를 맺는지 집중해줬으면 좋겠다. 단순히 위로 받았다는 공감이 아니라 각성이 함께하는 공감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언젠가 다시 읽어보고 싶은 작품이 되길 바란다. 

Q. 타의든 자의든 <엄마를 부탁해> 이후로 국민작가라는 이미지를 갖게 됐다. 다음 작품에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만약 첫 작품이 그런 환영을 받았다면 잘 모르겠지만, 지속적으로 작품을 써왔고 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물론 국경을 허물어 준 의미 있는 작품이고 큰 사랑을 받아 작가로서 행운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이뤄낸 성과인 것이다. 나는 그저 내 모국어로 좋은 작품을 써내면 되는 것이다. 그 이후는 그 작품이 가진 운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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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신경숙

1963년 전라북도 정읍에서 출생하여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85년[문예중앙]신인문학상에 중편[겨울 우화]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작으로[풍금이 있던 자리][외딴방][기차는 7시에 떠나네][엄마를 부탁해][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등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1993), 현대문학상(1995), 만해문학상(1996), 동인문학상(1997), 오영수문학상(2006), 맨 아시아 문학상(2012)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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