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1.07.25 조회수 | 8,688

몸을 팔아야 했던 여성 가장의 지독한 삶



지독하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머리 속에 처음으로 떠오른 말이다. 김이설 작가가 그려낸 <환영> 속 ‘윤영’의 삶은 너무도 지독했다. 지켜보는 독자는 고통스러운데 정작 윤영은 최악은 아니지 않느냐고 스스로 반문하고 자위한다. 윤영처럼 삶의 극한에 몰린 인물은 그 동안 많은 소설에서 등장했다. 하지만 윤영의 삶은 유달리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지독한 그녀의 삶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우리 주위의 수많은 윤영이 존재한다는 점, 그것을 외면하고 모른 채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담담히 말한다.

윤영은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무능력한 남편 대신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젖도 떼지 않은 갓난아이를 집에 두고 백숙집에서 날품을 판다. 윤영이 견디기 힘든 것은 고된 노동이 아니라 가족이다. 남편은 공무원 시험에 자포자기한 상태, 여동생은 자신의 돈까지 떼어 먹은 주제에 끊임없이 돈을 달라고 전화한다. 암에 걸린 아빠를 내팽개친 엄마는 새로운 남자와의 새살림을 위한 방 한 칸을 구해달라고 윤영을 들볶는다. 지옥 같은 현실은 그녀를 백숙집 별채에서 몸으로 남자를 받아내는 극한의 선택으로 내몬다. 그렇게 윤영의 삶은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이다. 


 


환영은 두 가지 뜻을 갖는다. ‘오는 사람을 기쁜 마음으로 반갑게 맞음’이란 뜻의 환영(歡迎)과 ‘눈앞에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란 뜻의 환영(幻影). 소설 <환영> 속에서는 이 두 가지 의미가 한꺼번에 겹쳐진다. 지옥 같은 현실이 윤영을 환영하고, 그 지옥 속에서 윤영은 환영 같은 삶을 꿈꾸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윤영의 모습을 통해 소설 밖 독자들로 하여금 외면하고 있던 현실을 바라보게끔 만든 김이설 작가를 만났다. 




Q
표지부터 심상찮다.

여자가 들어가는 공간이 내 집이 아니라는 느낌과 어두운 공간으로 들어간다는 점, 짧은 치마 이런 이미지가 소설과 잘 맞는다고 본다.

Q
자극적인 느낌도 강하다.

리뷰를 보면서 불편하게 본 독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래도 윤영이란 인물보다 예쁘고 더 많이 가진 사람처럼 보인 것 같다. 표지가 내용을 왜곡시킨다는 느낌도 있다. 표지가 첫 인상인데 호감도 있고 불편함도 있는 것 같다. 눈길을 끈다는 점에서는 표지는 성공적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Q
책을 읽고 지독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에게 소설은 불편함이다. 내 소설을 읽고 독자들이 불편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불편함을 강조하는 이유는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많이 갖고 예쁘고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귀를 닫고 보지 않으려 했던 대상을 바라보고 싶다. 이에 대한 불편함을 이야기하고 싶다.

Q
일종의 의무감인가.

아직 소설을 쓴지 10년도 안 됐다. 지금 이 시기에 더 첨예하고 날카롭게 그려야 한다는 의무감도 없지 않다. 물론 나이가 먹는다고 소설이 더 부드러워지거나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지금 이 시기에는 조금 더 악랄한 느낌을 가져야 할 것 같다.

Q
불편한 이야기를 몹시 담담히 써 내렸다.

내가 담담하지 않고 주인공의 입장과 동일화가 되면 자꾸 변명을 하게 된다. 나를 봐달라, 슬프다, 울고 싶다. 이런 식으로 변명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감정이 아니다. 내 이야기는 아니지만 마치 모두 다 알고 있는 사람인 것처럼 거리감을 부여하고 싶었다. 그래서 인물을 묘사할 때 미사여구보다는 느낌을 강조했고, 문장도 짧게 처리했다. 쓴 사람도, 읽는 사람도 담담했으면 좋겠다.

Q
불편함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거북할 수도 있겠다.

지금 시대는 굳이 소설을 읽지 않아도 재미와 따뜻함, 위로의 감정을 충족시킬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소설 속에서 웃음이나 따뜻함 같은 감정에서 큰 의미를 찾지 않는다. 물론 나중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불편한 이야기에 마음이 가지 않는 독자에게 굳이 읽어보라고 강요할 수 없다고 본다.







Q
이번 소설은 가족을 위해 성매매에 나선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이 소재로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있었나.

파행적인 성윤리 행태를 고발하는 시사 르포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고 그것을 비켜가기 위해 벌어지는 일련의 현상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때 백숙집과 관련된 장면을 보고 저 공간에서 일하는 누군가, 저 공간을 찾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그것이 이제서야 소설돼 나온 것이다.

Q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이었나.

제작진이 카메라를 숨겨놓고 들어간 부분이었다. 평일 대낮에 멀쑥한 남자 혼자 방이 있는 백숙집을 찾아간다. 그리고 한 종업원이 음식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간 후 한참을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인터뷰를 통해 그 공간에서 성매매가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런 이미지가 소설에 녹았다.

Q
작가의 말에서 ‘다시 시작이었다’라는 마지막 문장에서 소설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어떤 의미인가.

윤영이란 인물은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결국 그 현실로 다시 들어가야 한다. 결국 끝을 낼 수 없는 삶의 고리라는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시작이었다’는 문장과 상통한다. 슬프지만 현대인들은 태생적으로 빈부든 계급이든 벗어나기 힘든 굴레를 갖는다. 그런 현실을 생각하면서 인물이 만들어져 나온 소설이다. 이 인물이 벗어날 수 없는 끔찍한 현실로 들어가야 한다는 설정으로 시작한 셈이다.

Q
개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계급에 대한 문제, 사회에 대한 메시지처럼 느껴진다.

그렇다. 첫 소설인 <나쁜 피>의 연장이고, 두 번째 책 <아무도 말하지 않은 것들>과도 이어진다. 어쩌면 같은 선 위에서 변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이 소설 앞서 말한 ‘전복될 수 없는 계층’에 대한 이야기다. 윤영이란 인물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해 말하고, 그런 인물을 방치하게 된 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궁극적인 메시지였다. 하지만 고백하지만 이 소설이 거기까지 담아내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소설 안에서는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불행으로 그려졌다. 작가는 늘 작품으로 말해야 하는데 미흡했다. 아쉽고 부끄러운 부분이다.

Q
사회의 불편한 부분을 소설에 담았다. 그래서 소설이 소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현실보다 더 끔찍하다는 리뷰를 많이 봤다. 하지만 모두다 알고 있듯, 힘겹고 지긋지긋한 삶은 소설이 아니라 현실 속에 더 많다. 이게 정말 현실인지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사실은 이미 알고 있는 의문이다. 이것보다 더한 것이 현실이란 사실 말이다. 결국 현실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모른 척한 것은 아닐까. 독자로 하여금 이런 생각을 갖게 만들고 싶었다. 나 스스로도 쓰면서 정말 살만한 세상인지 자문했다.

Q
지독한 현실도 그렇지만 그 속에서 꿋꿋이 살아남는 윤영도 지독하게 보인다. 윤영이 처한 마지막은 절망인가 희망인가.

윤영이 삶을 놓치는 않듯, 최악은 아니다. 그렇다고 생을 유지하는 것이 희망은 아닐 것이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죽어버리면 끝인데 윤영은 살아남는다.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가족에 대한 책임 때문이다. 책임은 사람을 살게 만드는 힘이다. 

Q
우문이지만, 조금은 희망적으로 쓸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희망적이면 거짓말일 것 같았다. 솔직히 표현하면 이 정도만 해도 최악은 아니라고 본다. 물론 남편이 개과천선하고, 엄마가 괜찮은 남자와 재혼을 하거나, 윤영이 자신의 가게를 차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결론은 소설 속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현실을 그대로 복기할 생각은 없지만 현실과 많이 닮아있는 소설 이길 바란다.

Q
제목인 ‘환영’이란 말은 전혀 다른 두 가지 뜻을 내포한다. 어떤 의미인가.

첫 의도는 반긴다는 의미의 환영이다. 윤영이 집에서 백숙집으로, 백숙집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는 모두 ‘어서 오세요’라는 표지판이 있다. 이처럼 윤영을 기다리는 현실과, 그 현실로 내몬 가족이 있는 집으로 가는 길도 모두 윤영을 ‘환영’한다. 어쩔 수 없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나를 향해 환영한다는 역설적인 뜻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는 뜻도 내포한다. 일반적인 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보통의 삶이 소설 속 인물들에게는 ‘환영’과도 같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Q
필명으로 알고 있다. ‘이설’이란 이름은 어떤 의미인가.

다를 이, 말씀 설 이렇게 합쳐서 이설이다. 다른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입장의 표명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Q
다른 이야기란 뜻은 남과 다르다는 의미인가.

다른 작가와의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다른 이야기란 의미다. 습작기간이 꽤 길었다. 자꾸 떨어지면서 이 작품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과는 다른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면서 바꾼 이름이다.

Q
필명 전에는 어떤 글을 썼는가.

쉬폰 드레스를 입은 아가씨가 시련을 당하고 이겨내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썼다. 사회담론에서 개인담론으로 넘어가는 그런 시기에 소설을 읽고 답습했기 때문이다. 사실 내공 깊은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내공이 없으니 야들야들한 이야기를 썼다. 그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다가 시각을 사회와 현실, 우리로 확장시키면서 필명을 쓰게 된 것이다.

Q
계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아이를 가진 것이 계기였다. 결혼하고 임신 중에 쓴 소설로 등단을 했다. 임신 중에 딸이란 것을 알았는데 이 아이가 어떤 세상에서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면서 많이 변했다. 이전에는 안락하고 완벽한 것들을 알았는데 그것이 붕괴됐을 때에 대한 아픔이나 상처, 시선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하게 됐다. 그전에는 굉장한 얼뜨기였지만, 아이를 갖고 고민을 하면서 조금 깊어진 느낌을 갖게 됐다.

Q
불편한 사회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등단을 했다. 이후 꾸준히 개인보다는 사회에 대한 고민을 작품에 담고 있다. 작가로서의 일종의 사명감인가.

사명이란 단어는 벅차다. 그저 귀를 기울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직접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 이런 것이 현실일까' 정도의 의문을 갖고 서로 이야기할 수 있게끔 하고 싶은 것이다.

Q
첫 작품부터 지금까지 불편함과 낮은 곳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같은 색을 갖는 것은 장점이지만 단점이 될 수도 있다.

깊은 시선을 보여주고 싶지만 그것이 매너리즘이고, 했던 이야기만 하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모든 장르를 다채롭게 쓸 수 있는 작가가 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변주에 능숙하고 다른 색감도 소화할 수 있는 작가가 되는 것이 바람이다. 나이가 들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변하면서 색깔도 변할 것이다. 하지만 나 스스로를 끌고 와서 변화를 강요하진 않을 것이다. 현재로서는 지금의 색을 저버리고 싶지 않다.

Q
이번이 3번째 작품이었다. 앞으로 어떤 작가로 독자에게 기억되고 싶은가.

촌스럽고 우직한 작가였으면 좋겠다. 세련되지는 않지만 자기 색을 분명히 갖고 열심히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









인터파크도서 북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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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김이설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열세 살」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오늘처럼 고요히』 『잃어버린 이름에게』, 경장편소설 『나쁜 피』 『환영』 『선화』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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