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1.07.18 조회수 | 13,449

열일곱, 기적같은 청춘이 꿈꾼 보통의 삶



청춘. 그리고 여름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의 아름다움. 스스로 아름다워, 아름다움이 아름다움인 줄 모르는 한 소년이, 그렇게, 시리도록 찬물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여름, 여름이었다. 

- <두근두근 내 인생> 중에서


열 일곱. 그리고 청춘. ‘참 좋은 나이’ 라고들 이야기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장을 후루룩, 넘겨버리듯 무심히 그 시간을 떠나 보낸다. 그리고 뒤늦게야 그 소중한 시간을 좀 더 촘촘히 느끼고 살아낼 것을, 허투루 보내버렸다고 후회하곤 한다. 

김애란의 신작 <두근두근 내 인생>에는 누구나 하는 그 실수를 하지 않는 소년 ‘아름’이 나온다. 모든 순간, 세상의 모든 것을 각별히 바라보는 그는 학교 운동장에 남은 축구화 자국을 볼 때도, 어머니의 빗에 낀 머리카락을 볼 때도, 머리맡에서 아버지가 발톱 깎는 소리를 들을 때도 살고 싶어진다고 말한다. 아름은 열 일곱의 나이에 벌써 아버지보다 더 늙어버린, 조로증을 가진 소년이기 때문이다.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로 일찍부터 평단의 주목을 받아온 80년생 작가 김애란은 이번 소설에서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를 그렸다. 열 일곱, 달뜬 열을 주체하지 못해 덜컥 아이를 가진 철없는 부모가 있다. 그런데 그들이 낳은 아들 ‘아름’은 공교롭게도 부모보다 훨씬 빨리 늙는 병, 조로증을 갖게 된다. 육체의 노화에 맞춰 마음도 훌쩍 자라버린 이 아이는 엄마 아빠의 싱그러운 청춘을 상상하며 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을 쓴다. 청춘, 그리고 ‘나이듦’에 대한 따스한 애정과 통찰을 담은 이번 작품으로 “김애란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도대체 가능한가”라는 찬사를 받은 김애란 작가. 그녀를 직접 만나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김애란 작가가 2002년 등단한 후 처음으로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그녀의 단편소설은 따스하고 유머러스한 문장으로 삶의 중요한 순간들을 예리하게 포착해냈다는 평을 들어왔다. 첫 장편소설을 쓰면서 그 동안 들어온 칭찬이 부담이 되지는 않았을까. 

“부담을 갖기도 했지만, 재미도 있었어요. 단편을 쓸 때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노는 기분이 들었다면, 장편을 쓸 때는 제가 저한테 ‘그래, 마음대로 놀아봐’하고 허락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쓰고 나서는 ‘와, 다 썼다’하는 후련함 보다는 ‘아, 내가 이제 장편을 처음으로 경험해봤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예전에 단편들은 충동적으로 쓰는 경우도 있었는데, 장편은 좀 더 준비가 필요하구나 하는 것도 느꼈어요.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그렇고, 분량이나 집필 시간에 대한 감각을 기르는 데 있어서도 그렇고요.” 

열일곱에 결혼한 젊은 부부, 그리고 조로증을 가져 열 일곱에 벌써 죽음을 앞둔 아들. 대강의 내용만 들어도 벌써 예사롭지 않다. 

“처음에는 ‘한 어린아이가 엄마, 아빠의 연애담을 소설로 쓴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가장 싱그럽고 환한 시기에 대한 이야기니까, 오히려 주인공은 그런 시기를 가져보지 못한 아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로증이라는 설정을 하게 됐죠. 아름이가 특별한 병을 갖고 있긴 하지만, 독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부분도 있겠다 생각했어요. 사실 우리들도 대부분 몸의 나이와 마음의 나이가 다르잖아요. 몸은 다 자란 것 같은데 마음은 아직 덜 자라 있는 것 같으니까요.“

<두근두근 내 인생>은 그렇게 성긴 얼개에서 시작했다. 김애란 작가는 아름이를 비롯한 소설 속 인물들이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그러자 소설 속 인물들이 생동하기 시작했고, 이야기가 자연스레 흘러갔다. 

“소개팅을 할 때와 비슷해요. 처음 소설 속 인물들과 만나면 겸연쩍고, 눈도 잘 못 마주치고, 서로 어색하니까 쓸데없는 농담도 던지죠. 한편으로는 ‘내가 이 아이의 마음을 잘 만질 수 있을까, 잘 그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됐고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니까요. 더욱이 아름이가 아픈 아이이기 때문에 ‘내가 잘 다가갈 수 있을까, 다른 방식으로 다시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닐까, 혹은 아름이가 성질을 내지는 않을까’ 하는 여러 가지 마음이 있었어요.” 

조로증에 걸린, 그래서 열 여덟의 생일을 맞을 수 있을지 불투명한 아이. 언뜻 보면 절망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김애란 작가는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한 번 더 질문을 던짐으로써 소설을 쓸 수 있었다. 

“막 등단했을 무렵에는 훨씬 더 저한테 집중해서 글을 썼던 것 같아요. 자의식도 강했고, 사람들에 대해서도 예민했고요. 스무 살 중∙후반 까지만 해도 나를 중심으로 이 세계를 바라봐서 그런지, 이 세계가 망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아이 엄마가 된 친구들, 조카들을 보면서 다른 사람의 입장을 함께 생각하다 보니 이 세계는 망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짜 희망이나 낙관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비관적인 상황으로 갔을 때도 ‘그럼 그 다음은?’하고 묻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시선으로 쓸 수 있는 이야기를 고민하게 됐고요.”







이윽고 그 말들은 스스로 노래하기 시작한다. 아버지, 내가 아버지를 낳아드릴게요. 어머니, 내가 어머니를 배어드릴게요. 나 때문에 잃어버린 청춘을 돌려드릴게요. 아버지, 내가. 어머니, 내가.

 - <두근두근 내 인생> 중에서

 
<두근두근 내 인생>의 주인공 아름이는 철없는 나이에 부모가 되어 자신을 키운 부모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로 우등상도, 학사모도 아닌 이야기를 택한다. 

“아름이는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니까 자신의 상황에서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을 택한 거죠. 또 한편으로는 자기가 본 적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부모님의 청춘을 이야기로 복원시켜드린 것이기도 하고요. 선물하려고 쓴 이야기지만, 결국은 아름이 자신에게도 선물이 된 것 같아요.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이 태어난 시기, 그 기원으로 되돌아 간 것이니까요.” 

잃어버린 부모의 청춘을 되살려주고 싶은 마음. 그것은 아름이의 바램인 동시에 김애란 작가 자신이 세상 모든 부모들에게 품은 애잔한 마음이기도 하다. 

“소설을 쓰는 동안 ‘가장이 되기 전의 남자, 혹은 우리 아버지들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또 우리들을 낳았을 무렵의 아버지들은 어린애였네,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노동을 해오셨다는 것이 대단하기도 하지만,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참 겁나고 떨렸을 텐데 아버지가 된 그 자체가 대단한 것 같아요.”

그녀는 ‘부모’라는 말과 ‘노동’이라는 말을 함께 떠올렸을 때 건드려지는 ‘마음의 통점’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전작에서도 그랬듯, 김애란 작가는 가난하고 고단한 삶의 풍경을 날 것 그대로 독자들에게 펼쳐 보이지 않는다.

“제 딴에는 아름이의 엄마가 피곤에 찌들어있는 장면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넣었지만, ‘자, 보세요!’하고 강조하는 느낌으로 넣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런 이야기를 환히 드러내기보다 곁가지로 돌려 말해서 독자가 등장인물들의 마음을 알아서 헤아려 주길, 더 안쓰럽게 혹은 더 장하게 여겨주길 바랬거든요. 또 실제로도 그 상황에 있는 분들은 우리가 어떤 감정을 미리 준비하고 다가서서 안쓰럽게 보이는 것이지, 사실은 씩씩하고 명랑한 분들이 많거든요. 저도 그렇게 그리고 싶었어요.”

세상을 그리는 아름이의 눈, 그리고 김애란 작가의 눈은 줄곧 밝고 따스하다. 그러나 작가가 우리네 삶 곳곳에서 일어나는 속되고 악한 일들을 모른 체 한 것은 아니다. 아름이를 취재하러 온 PD와 작가는 뒤돌아서 ‘이번 회 대박 날 것 같다’는 말을 주고받고, 누군가는 TV에서 방영된 아름이의 사연을 보고 ‘나 같으면 자살할 텐데’라는 악플을 남기기도 한다.

“저는 이 소설에서 환한 꽃밭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니라 진창에서 어렵게 움을 틔운 꽃 한 송이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름이의 주위 인물들이 아름이에게 상처를 주긴 하지만, 소설을 쓸 때 그들이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 그냥 보통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썼어요. 살아가는 것은 그 자체로 자기도 모르게 남에게 조금씩 상처를 입히는 일 같아요. 모두들 마음 속에 어떤 욕망이 있고, 크고 작은 나쁜 일을 하잖아요. 그렇게 부족하고 모순덩어리인 사람들이 아주 가끔 보여주는 찰나의 ‘선’을 그리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런 태도나 결정이 주는 울림이 더 클 거라는 바람도 있었어요.”







어른이 되는 시간이란 게
결국 실망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글이란 게 그걸 꼭 안아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보다 ‘잘’ 실망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무엇인지도 모르겠어.

 - <두근두근 내 인생> 중에서


<두근두근 내 인생>은 남들처럼 평범하게 나이를 먹으며 살아갈 수 없는 소년의 이야기이지만, 그러기에 더더욱 ‘나이 듦’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김애란 작가에게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제 직업적인 코드로 얘기하면 ‘단어장이 많아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단어카드의 수가 늘어나기도 하지만, 똑같은 단어인데 여러 장을 갖게 되는 느낌. 똑 같이 ‘여름’이라고 써 있어도 초록색 여름이거나 빨간색 여름.. 하는 식으로 색깔이 다를 수도 있고, 폰트가 다를 수도 있죠. 대신 그렇게 많은 단어장을 갖게 되기까지 경험하고, 넘어지고, 울고, 투정하고, 또는 사랑하면서 치렀던 비용도 있죠. 그런 것이 나이에 대해서 소설가로서 갖게 되는 관점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열 일곱 무렵, 김애란 작가는 어떤 소녀였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시골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녔는데, 당시는 인터넷도 없고 심심해서 미팅도 많이 하고, 에너지가 널을 뛰어서 그런지 댄스 음악도 좋아하고, 여고 축제에 나가려고 친구들이랑 팀을 꾸려서 젝스키스, 디바 같은 그룹의 노래를 연습한 적도 있어요. 완전한 모범생도, 완전한 날라리도 아니고 별 생각 없이 살았던 것 같아요. ‘야자가 언제 끝날까’하면서 학교에 다니고요. 지금보다는 훨씬 괄괄했어요. 평범했고요.”

괄괄하다니, 의외였다. 내친 김에 그녀가 평소 즐겨보는 만화나 개그 프로그램이 있는지 물었다. 특유의 유머가 빛나는 그녀의 문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서였다. 

“집에 TV는 없지만 규칙적으로 몇몇 프로그램을 다운 받아서 보는 편이에요. <라디오 스타>도 좋아하고, <무한도전> <개그 콘서트>도 보고, 유세윤 씨도 좋아해요. 윤종신 씨나 신정환 씨도 좋아했고요. 그런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농담이나 애드립에서 느껴지는 리듬감이 좋아요. 만화는 <이나중 탁구부>나 학원코메디물을 좋아하고요. 그런데 제가 원체 어릴 때부터 우스개 소리하는 걸 좋아했어요.” 

독자들의 반응 중 ‘소설을 읽고 나서 나도 글을 쓰고 싶어졌다’는 말이 가장 기쁘다는 김애란 작가. 독자들에게 그들만의 ‘이야기 충동’을 선사하고 싶다는 그녀는 앞으로의 계획을 이렇게 밝혔다. 

“이번 소설을 내고 나서 독자 분들의 힘을 많이 받았으니까, 그 힘으로 더 혼자 있고, 더 고요해지고, 더 중심을 잡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첫 장편이니까 반응이 궁금했는데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기뻤어요. 언젠가 제가 어려운 시기에 놓이거나 지금보다 훨씬 더 외로워지는 순간이 왔을 때, 주위 탓을 하지 않고 지금의 마음을 기억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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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김애란

1980년 인천에서 태어나 충남 서산에서 자랐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를 졸업했다. 2002년 단편 「노크하지 않는 집」으로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고 같은 작품을 2003년 『창작과비평』 봄호에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비행운』 『바깥은 여름』,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이 있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신동엽창작상, 김유정문학상, 젊은작가상, 한무숙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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