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1.05.30 조회수 | 7,394

마음과 마음 사이를 잇는 건널목을 만들다



습작생들에게 등단이란 ’꿈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는 의미거나 ’꿈’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출간날짜가 찍힌, 인주가 채 마르지 않은 ’내 책’을 받아 든 신인 작가의 감정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감동일 것이다. 그만큼 문단(文壇)의 문턱을 넘어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2007년에만 3개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김려령 작가가 받은 감동의 정도는 쉽게 가늠 하기 어려울 것이다.

김려령 작가는 2007년 <기억을 가져온 아이>로 마해송문학상,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로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그리고 <완득이>로 창비청소년문학상을 휩쓸며 청소년문학의 샛별로 떠올랐다. 특히 <완득이>는 예상을 뛰어넘는 높은 판매고를 올리며 연극으로 재탄생했고, 올 가을 영화로도 개봉될 예정이다.

그녀는 전작의 인기를 등에 업고 <완득이> 2편과 같은, 이른바 ’먹혔던’ 소재로 후속작을 내보일 법도 했다. 하지만 주 독자층인 청소년들이 느끼기에 어두울 수 있는 왕따와 자살이라는 묵직한 소재의 <우아한 거짓말>을 선보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라는 동화를 들고 나왔다. 즉, 동화에서 시작해 명쾌한 청소년 소설을 거쳐 어둠이 드리운 소설, 그리고 다시 동화로 돌아왔다는 뜻이다. 이는 김려령 작가가 짧은 기간에 샛별로 주목을 받았지만, 출판시장의 흐름이나 주변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차분히 걸어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신작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과 ‘동화 작가’로서의 생각을 들어본다면 그가 걷고자 하는 길이 무엇인지 더욱 뚜렷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는 액자식 구성으로 전개된다. 소설 속 주인공인 동화작가 오명랑은 우연히 동네 아이들을 대상으로 이야기 듣기 교실을 차린 뒤 건널목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건널목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는 오명랑 자신의 어린 시절과 맞물리며 소외 당하는 아이들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환기시킨다. 

Q 2007년부터 3년 동안 8권의 책을 출간하며 왕성한 활동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이번 신작은 1년 반이나 걸렸다. 그만큼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에 많은 힘을 쏟았다는 의미인가.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는 미리 써둔 작품이다. 2009년에 나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2010년에는 간격을 두고 싶었다. 단편 등 개인적으로 글은 계속 써왔지만 책을 내는 것은 조금 쉬고 싶었다. 신인은 실수를 해도 다독여주고, 혼나도 덜 부끄러운… 신인이라 누릴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이 있다. 하지만 난 그런 것을 못해본 것 같다. 2006년 12월 수상 이후 정신 없이 달려만 온 것 같다. 

Q 소외 받는 아이들에 대한 동화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어느 날 문득 떠오른 이야기가 아니다. 사각지대에 놓인 친구들에 대한 생각과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인 거다. ‘너와 나’가 아니라 ‘우리’라는 큰 테두리로 그 아이들을 봤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관심이고 배려라고 생각한다. 그런 감정을 인물로 형상화 시킨 것이 바로 건널목 아저씨다. 

Q 건널목이 그려진 카펫을 들고 다니는 인물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은 많은데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사회는 갈수록 세분화되고 우리라는 개념은 점차 희박해지고 있다. 그렇게 소외된 아이들은 더욱 소외되고 있는 거다. 그 아이들을 ‘우리’라는 테두리로 불러들이고 싶었다. 거창한 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저 손 한 번을 내밀어주면 되는 거다. 바로 그런 인물이 건널목 아저씨라고 할 수 있다. 

Q 건널목이란 서로의 울타리 밖으로 나와 상대에게 다가선다는 의미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사실 건널목이란 것이 완전한 사회적 안전장치가 아니라 최소한의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최대, 최고의 안전장치가 될 수도 있다. 내 경험에 비춰보면 무언가 큰 도움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옆에만 있어줘도 든든했다. 같이 앉아서 이야기만 해도 그 날은 무언가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그 안의 끈끈함을 건널목이란 것으로 연결해보고 싶었다.

Q 그렇다면 서로에게 다가서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아이들이 힘들면 누구에게든 힘들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당장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언제든 도와줄 수 있다. 너무 위축돼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 

Q 어른에게 기대란 의미인 것 같다. 돌려 말하면 어른들에게 아이들의 버팀목이 되어 주라는 의미겠다. 

그렇다. 마음을 열라는 의미다. 이건 권위의 문제가 아니다. 요즘 아이들이 아무리 변했어도 어른이란 존재에 대해 벽을 느낀다. 아이들이 약자인 거다.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이 다가설 수 있도록 먼저 편안함을 줘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어른들의 권위가 떨어지는 게 아니다.

Q
결국 동화이지만 아이들만을 위한 것은 아닌 듯 하다. 

아이들에게 어른에게 기대라는 의미로 썼는데 주위에서는 어른들도 함께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마도 내 무의식 중에 어른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최소한 이만큼은 해줘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이 아니라 이웃에게도 그래야 한다’는 마음이 분명히 투영된 것 같다.







“인터넷으로 ‘오명랑 작가’ 검색해 보니깐 아무것도 안 뜨던데, 정말 동화작가 맞아요? 무슨 책 썼어요? 되게 후진 출판사에서 나온 거 아니에요?”
종원이 녀석, 얼굴에 의심이 가득했다. ‘정말’과 ‘후진’이라니. 순간 주먹이 툭 튀어 나갈 뻔했지만 겨우 꾹 참았다.
“’문밖동네’라고 엄청 큰 출판사에서 나온, <내 가슴에 낙타가 산다>라는 동화, 그거 내가 쓴 거야.”

-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중에서


Q ‘이야기 듣는 과외’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발상이 독특하다. 

나도 아이들을 키우는데 듣기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요즘 아이들은 말은 참 잘한다. 하지만 듣지를 않는다. 상대가 이야기 할 때는 어떤 말을 던져 상대를 압도할 것인지 그것만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듣는 다는 것은 말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그런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Q
동화 작가라는 직업은 물론 상황 등을 보면 오명랑은 김려령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하다. 직접 만나보니 심지어 말투도 비슷하다. 

남의 말투로 쓰면 어딘가 어색하고 삐끗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내 말투가 그대로 튀어나왔을 것이다. 내 작품이랑 출판사를 비틀어서 패러디를 한 것은 꼬마들이랑 치고 받는 농담쯤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Q
말투나 직업 등 인물적인 부분 외에도 분명 작가 스스로의 모습이 투영돼 있을 것 같다.

맞다. 소설 속에 내가 있다.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이야기 전반적인 부분에 분명히 내 모습이 있다. 이 부분은 이 정도로 남겨두고 싶다. 분명한 것은 내 주변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지만 내가 주인공은 아니어서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고 싶다. 

Q
일종의 ‘거리두기’인가.

거리를 두는 과정은 힘들다. 작가와 주인공이 합일이 되는 순간은 가장 행복한 순간이지만 동시에 함정에 빠질 확률이 높다. 지나치게 그 인물에 빠져있으면 그 인물을 한 쪽의 방향으로만 몰고 갈 수 있다. 그러면 거리두기에 실패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고 나서 한 동안은 보지 않는다. 다시 보고 거리를 두고 또 안 보는 식으로 빠져 나오곤 한다. 그렇게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거리를 두는 방법이다. 

Q
거리를 둔 점 말고도 신경을 쓴 부분은 어떤 점이 있나.

가장 고민을 많이 한 부분은 ‘들려주는 문체’이다. 소설 속에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으로 구어체를 사용했다. 눈으로 읽으면서 가슴으로 들려야 하는데 이 부분이 실패할까 가장 많이 걱정했다. 자연스런 어미를 찾고, 뺄 수 있는 조사는 다 뺐다. 평소 말 할 때 조사는 거의 쓰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구어투와 가깝게 쓰려고 신경을 많이 썼다. 문장이 입에 붙을 때까지 고쳐 쓴 것 같다.

 






Q 소설 <완득이>로도 성공을 거뒀다. 부담감은 없었나. 

전혀 없었다. <완득이>는 내 경력에 비해 지나치게 빨리 ‘터진’ 작품이었다. 글로 먹고 살 수 있게 만들어준 ‘장남’같은 작품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작품을 쓸 때 전작을 고려하지 않는다. 한 번 재미를 봤다고 더 욕심을 내거나 유사하게 갈 생각은 없다. 그런 쪽으로 무딘 성격이다. 그저 소재에 맞게 소설이면 소설, 동화면 동화를 쓰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Q ‘동화 작가’와 ‘청소년소설 작가’ 사이에서 호칭이 애매하다. 

동화와 성인소설 사이의 완충을 위해 청소년문학이라는 구분을 짓는 것이 요즘 추세이다. 하지만 글을 쓰는 내 입장에서는 청소년문학이란 구분은 필요 없는 것 같다. 나는 잘라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어떻게 잘라야 한다고 보는가. 

내 소설을 예로 들자면 <완득이>나 <우아한 거짓말>은 청소년소설이 아니다. 청소년부터 함께 보는 소설인 거지, 청소년 전유물이 아니다. 영화에서 15세 이상 관람가라고 하면 15세 이상부터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보면 된다. 

Q 본인은 동화 작가라고 생각하나. 

동화만 쓰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로 본다면 동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소설과 동화를 모두 쓰지만 아직은 동화 작가로 불리는 것이 더 좋다. 조금 더 맑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Q 소설에 대한 욕심은 없나? 

왜 없겠는가. 단지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동화로 풀어내야 하는 것들이다. 때로는 중, 고등학교 수준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저 지금은 동화를 더 쓰고 싶을 뿐이다.

Q 동화를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시작은 칭찬이었다. 대학교 2학년 때 동화관련 수업을 들었다. 당시 과제로 동화 한 편을 썼는데 황선미 교수님이 ‘너 동화 써도 되겠다’고 칭찬을 해 주셨다. 딱 한 마디였지만, 내게는 굉장히 커다란 의미로 다가왔다. 칭찬 한 마디에 신이 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이후에 아파트를 소재로 장편 동화를 써서 보여드렸는데, 또 칭찬을 해주셨다. 그 때부터 동화를 써야겠다고 결심했던 것 같다. 

Q 칭찬 한 마디에 인생이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그렇다. 소설을 쓸 때는 장르를 안 가리고 썼다. 다소 잔인한 이야기도 많이 썼다. 심지어 죽이고, 먹는 이야기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글을 썼다는 것이 오히려 동화 작가로 갈 수 있는 길이 된 것 같다. 내 안에 담긴 분노 같은 걸 꺼내고 나니 순수하게 사람이 보였던 것이다. 

Q 창작을 통해 순수해졌다는 것은 다른 말로 착해졌다는 뜻인가.

아니다. 난 여전히 못됐다. 그냥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소위 말하는 악인을 보아도 그 뒤의 이야기를 생각하게 되고, 앞뒤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된다. 꽁해 있던 마음이 풀린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Q 그렇다면 작가의 입장에서 동화의 매력은 무엇인가. 

‘나에게 아직 이런 감정이 남았어?’라며 스스로 놀라는 재미가 있다. 생물학적으로 어른이 되면서 다 사라졌을 법한 그런 순수함이나 생각들이 내 속에 있다는 사실에 희망을 느끼기도 한다. ‘너 그렇게 나쁜 애는 아니야’라고 스스로 다독이는 것일 수도 있겠다. 

Q 독자들에게 어떤 동화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딱히 없다. 작가가 아니라 작품만 살아있었으면 좋겠다. 작가가 유명인으로 알려지기 보다는 내 작품 뒤에 한 발짝 물러서 있고 싶다. ‘저 사람 누군지 알겠는데 뭐 하는 사람이야’라는 반응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욕심이겠지만 작품 뒤에 숨어서 독자들이 ‘이 작가는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쉽게 구분 짓지 못하게 만드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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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김려령

2007년 『완득이』로 제1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우아한 거짓말』 『가시고백』 『너를 봤어』 『트렁크』 『일주일』, 소설집 『샹들리에』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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