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1.05.11 조회수 | 6,831

씁쓸하고 애틋한 인간의 맨얼굴을 보다




저것은 내 아빠가 아니다. 저것은 짐승이다. 침을 질질 흘리며 송곳니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성난 짐승이다. 아니다. 저것은 짐승이 잡아다 놓은 썩은 고기다. 눈알이 빠지고 내장이 파헤쳐진 먹다 남긴 고깃덩어리. 아니다. 저것은 썩은 고기에 달려드는 파리떼다. 윙윙윙윙 더러운 날갯짓 소리가 들린다. 아니다. 저것은 파리가 까놓은 구더기다. 살을 뚫고 꾸물꾸물 기어 나오는 징그러운 구더기다. 썩은 내가 난다.

- <생강> 중에서


강렬한 서사와 치밀한 묘사는 물론 탄탄한 문체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 천운영이 <생강>이라는 신작과 함께 돌아왔다. 이야기는 한 남자의 고문 장면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생강>은 천운영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로, 작품 준비와 취재에만 1년 여 간 공을 들인 작품으로, 고문기술자 아버지 때문에 모든 것을 잃게 된 딸의 심리를 통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폭력과 죄악, 공포를 번갈아 보여준다. 

창비문학블로그 ‘창문’에 5개월간 연재되었고, 이후 출간까지 반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 작품 <생강>. 날카로운 감각으로 인간의 욕망을 파헤치고 상처를 뒤집는 작가 천운영. 소설집 이후 3년 만에, 장편으로는 6년 만에 출간한 <생강>에서 ‘고문기술자와 그의 딸’이라는 평범하지 않는 소재를 통해 그녀가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지,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Q  제목과 소재가 무척 독특합니다.

 ‘생강’이라는 제목은 사실은 굉장히 탐냈던 제목이에요. <바늘>로 등단했을 때부터 언젠간 ‘생강’이라는 제목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고문기술자의 이야기를 접하고 여러 가지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가면서, 그리고 취재를 하면서 오래 전에 생각했던 ‘생강’이라는 단어가 떠올랐고요. 단어 자체에서 미각과 후각과 청각이 다 느껴지는 그런 단어여서 애착이 많이 가는 단어였죠. 그리고 꼭 한번은 쓰고 싶었던 악에 관한 문제, 그것도 소설가가 되면서부터 고민한 문제였고, 그러니까 어쩌면 등단하면서부터 가지고 있었던 주제에 관한 고민과 언어에 대한 고민이 합쳐진 이야기, 그것이 11년 만에 나온 것 같네요.

Q  어떻게 ‘고문기술자’에 대해 쓰게 되었나요.

유명했던 어떤 고문기술자가 10년 동안 도피생활을 하다가 자수를 하고, 복역을 마치고 나와서 목사가 되었다는 기사를 봤어요. 그런데 그가 다락방에서 10년을 보냈다는 것이 저의 과거의 다락방의 기억과 연결돼서 내가 그 사람의 딸이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됐어요. 그래서 고문기술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업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지금 세대, 혹은 그의 딸의 이야기를 한번 써보자, 그렇게 해서 시작했어요. 그래서 악인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 그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 그 속에 숨겨진 이면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여러 가지 ‘생강’과 같은 느낌들을 얘기해보고 싶었어요.

Q  딸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 소설은 어찌 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열아홉 살 소녀가 아버지가 저지른 죄 때문에 사회에서 밀려나고 고통 받고 움츠러들고, 그러다가 어른이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요. 공포 속에서 살아가던 딸이 그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기로 한 순간부터 공포가 사라지기 시작하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생각했을 때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리고 조금 더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자기 속에 가지고 있는 공포, 숨기고 있는 불안감, 이런 것들을 스스로 똑바로 쳐다보는 일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결국은 그런 과정을 통해서 좀더 성숙해지고 건강해지고, 그리고 봄을 맞이할 수 있는 것 같고요. 그런 얘기가 젊은, 지금 이십 대 청년들에게도 은근히 스며들었으면 좋겠어요.

Q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려주세요.

이 소설을 마치고 나서 더 확신이 든 건데요. 소설은 쉬워야 한다, 어려운 이야기더라도 쉽게 얘기해서 누구나 다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의 여러 가지 맛을 느끼는 건 독자의 몫이고, 그래서 쉬워야 한다는 첫 번째 원칙을 세웠어요. 쉽고 재미있지만 그러나 아름다워야 한다, 그게 제 소설의 목표이기도 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름답지 않으면, 쉽기만 하고 재미있기만 하면 의미가 없을 것 같고요. 쉽고 재미있고 아름답게, 그것이 문장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소설의 맛인 것 같아요. 계속 그렇게 썼으면 좋겠어요.


동영상 제공: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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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천운영

소설이란 세상을 먹고 소화해서 내놓은 ‘그 무엇’이라는 믿음으로 20여 년간 소설을 쓰며 살아왔다. 한국문학번역원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스페인 말라가에서 지내면서 소설 『돈키호테』에 빠져들었다. 그 후 2년간 스페인을 오가며 『돈키호테』에 나온 음식을 찾아다녔다. 『돈키호테의 식탁』 또한 내가 소화한 세상이다. 소설집 『바늘』,『명랑』, 『그녀의 눈물 사용법』, 『엄마도 아시다시피』, 장편소설 『잘 가라 서커스』, 『생강』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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