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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4.06.09 조회수 | 4,057

일본 경제소설의 거장 다카스기 료, 돈 그리고 인간의 이야기



기업경제소설은 무엇이고 어떤 것들이 있나


문화는 곧 수용자의 수준을 따라간다. 어느 나라나 그 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는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행동양식과 생활 등이 여느 곳과 차별화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문학의 세계에서도 일맥상통한다. 수용자, 즉 독자들이 관심 갖고 일상으로 즐기는 유 무형의 것들은 곧 활자의 세계로 입성한다. 그렇게 책은 양자간의 소통의 매개체가 되고 그렇게 형성된 공감대와 시대의 대세는 하나의 문화가 된다. 기업경제소설은 이런 분위기에서 탄생했다. 현대 우리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경제와 자본에 대한 정보가 대중들에게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면서 독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문학의 한 장르로 다가오는 것이다. 기업경제소설은 단순히 한 전문분야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놓지 않는다. 대기업 또는 금융권에 종사하거나 돈의 흐름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해 신(新) 정글이라 불리는 돈의 세계에서 본능과 욕심 등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인간의 희로애락을 보여준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고 더 소설보다 더 극적인 곳을 배경으로 기업경제소설은 수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았고, 영화나 드라마로 극화되어 더 많은 대중 앞에 서고 있다.
 




기업경제소설의 거장 다카스기 료


국내 기업경제소설에 우석훈, 장현도가 있다면 우리와 이웃한 나라 일본에서는 다카스기 료가 있다. 그는 일본 도쿄 출신으로 신문사에서 오랜 기자생활 및 편집장을 지냈다. 이때 쌓인 내공과 필력으로 그는 1975년 작가로 전격 데뷔했다. 그가 주로 천착하는 주제는 바로, 기업과 금융권의 가려진 면이었다. 일반인들이 보통 쉽게 떠올리는 기업의 이미지가 사무실 안에서 일어나는 직장인들의 애환 또는 고위직 간의 암투와 로맨스라면 다카스기 료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좀더 깊고 심오하다. 기업의 몰락과 비리, 그리고 이들에 어떻게 돈을 벌고 수익을 내는지, 이런 기업의 운영은 국가전체와 일반 대중들에게 어떻게 엮여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시작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 중년의 샐러리맨들의 이야기를 다뤘으나 작품이 진행 될수록 등장인물들의 직급도 올랐다. 그리고 어느새 경영자와 조직의 거물이 전면에 등장해, 기업의 숨겨진 면에 대한 고발과 폭로의 양산을 띄게 된다.


기자 출신답게 작품 전반에서 배어 나오는 전문성과 리얼리티, 그리고 투철한 취재의식은 그 만의 트레이트 마크다. 그는 작품에 들어가기 전, 압도적인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백 여명이 넘는 업계 관계자를 만나 취재하는 등 보다 세밀하고 정교한 정보와 사실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때문에 위협을 느낀 기업의 실세들로부터 살인경고를 받은 적도 있다. 또한 실제 도서의 출간 이 후 모델이 됐던 회사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일도 벌어져 다카스기는 거대 기업과 싸우는 투쟁하는 소설가로도 인식된다. 그는 데뷔 이래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오며 굴곡 없는 작품패턴을 보여왔으며 기업경제소설이라는 특정장르의 도서를 주요문학장르의 하나로 편입시킨다. 일본 문단에서 가장 대표적인 기업경제소설 작가이며 이 분야를 키우고 자리잡게 한 기업경제소설의 레전드로 불린다.


이 소설은 제 소설 중에서 가장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세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다만, 저는 복잡미묘한 세계를 그리는 것만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쓰든 마찬가지지만, 어딘가에 위안을 얻을 구석도 없고, 로망도 없는 작품 따위는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영웅이 없는 소설은 쓰고 싶지 않습니다, 이 작품을 쓸 때에도 그 점을 깊이 고민했습니다.
- 다카스기 료


욕망산업 (상), (하)


다카스기 료의 <욕망산업>은 그의 경제소설 시리즈 중에서도 단연 역작이다(일본에서는 그의 작품만을 모아 15종 구성의 시리즈로 발간된 바 있다). 이 책은 인간의 욕망이 가장 적나라한 곳, 금융권. 그 중에서도 소비자금융이라는 그럴 듯한 말로 포장되어 있는 대부업에 대해 이야기 한다. 실제 일본의 거대 소비자금융업체인 ’다케후지’를 모델로 허구의 업체인 ’도미후쿠’를 등장시켜 일본의 제3금융권의 실상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실제 모델이 회사가 존재 하고, 취재를 최우선으로 삼는 저자의 작가의식 덕분에 소설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고 자세하다. 그대로 하나의 사금융 표본으로 삼아도 이견이 없는 수준이다. 특히나 가장 규모가 큰 업체인 덕에 저자가 소설 속에서 폭로한 숨겨진 비리와 실태 온갖 부조리들은 일종의 사회고발과 다름없다.


제도권 금융의 상무까지 올라갔으나 경쟁에서 밀린 주인공 오미야 고헤이는 계열사인 카드사의 사장자리에 앉게 된다. 그러나 공격적인 경영방침으로 퇴출되고만 그는 거대 대부업체인 ’도미후쿠’의 부사장 자리를 제안받게 된다. 제도권의 엘리트 금융인이었던 오미야. 그는 고심 끝에 큰 꿈을 품고 그 제안을 수락하지만 눈 뜨고도 믿기 힘든 광경들을 그 곳에서 목도하게 된다.


제도권 금융에서 평탄한 길을 걸었던 엘리트 금융인 고헤이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1980년 대,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운 사람들을 상대로 성장한 이 대부업체가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돈을 벌어왔는지에 관한 구조적 실태를 파헤치는 <욕망산업>. 이쯤 되면 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다카스기 료의 소설 속, ’도미후쿠’에서 펼쳐지는 이들의 놀라운 행태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경영 메커니즘

소비자금융이라는 말로 그럴싸하게 포장된 대부업은 사실 제도권에서 더 이상 돈을 빌릴 수 없는 사람들에겐 마지막 비빌 언덕이다. 급전을 필요로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저금리로 더 이상 돈을 빌릴 수 없는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대부업체의 문을 두드린다.  돈을 회수하기 어렵다는 부담에도 불구 기꺼이 돈을 빌려주는 운영 시스템에는 혹독한 추심과, 고리(高利)라는 회사의 보루가 있다. ’도미후쿠’의 경영 시스템은 채무라는 사슬에 매인 사람들에게 빚을 갚게 위해 더 많은 빚을 내게 해 대출금을 계속 융통하게 만든다. 발을 들이는 순간 쳇바퀴 속의 다람쥐가 되는 것이다. 채무자의 상환액으로 유지되며 피와 눈물 같은 이 자금이 계속해서 유입되지 않으면 운영이 어려워 은행 등의 기관에서 융자를 제한하면 한 치 앞길이 아득한 암울한 구조. 고헤이는 이런 상황을 파악하고 개선하기 위해 체질을 변화시켜보고자 하지만 암담한 시도로 끝난다. 상식적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도미후쿠의 사장 사토무라는 이런 시스템을 더욱 활용해 돈을 찾는 사람들의 욕망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자본의 악마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인간을 보는 시선

궁지에 몰린 인간들을 상대로 돈놀이를 하는 도미후쿠. 이들의 인간을 보는 시선은 뻔하다. 그저 돈을 갚지 못하면 어떻게든 받아야 내야만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돈을 위해 사람을 희생시키고 소모품 취급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 삭막하고 비정하다. A라는 회사에서 돈을 빌린 돈을 갚기 위해 B 회사에서 융자를 얻고 이 것을 갚기 위해 다시 C라는 회사에서 돈을 빌린다. 터무니 없는 구조 속에서 채무자의 빛은 늘어만 가고 파산을 신청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자에 쫓기며 부지런히 상환한다. 빚에 허덕이는 사람들에 의해 굴러가는 회사, 바로 대부업체 도미후쿠다. 이들에게 사람이란 돈을 빌리는 자와 빌리지 않는 자 둘로 나뉘어 돈을 빌린 사람에게는 최대의 영업효과를 내기 위해 많은 돈을 빌리게 하고 돈을 빌리지 않는 사람은 미사여구로 현혹해 고리의 세계로 발을 들이게 만든다. 사람이 곧 돈이고 돈은 인권 위에 군림한다. 도미후쿠의 인간경시 풍조는 비단 소비자금융을 찾는 고객들뿐 만 아니라 사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수상한 사내풍조

회사 바깥의 사람들이 이미 인(人)이 아닌 돈으로 계산되는 세계에서 회사 안의 사람이라고 대접받을 리 없다. 도미후쿠의 사원들은 명절 연휴 도 없이 회수업무에 올인한다. 추심액이 곧 그들의 영업성과이기 때문에 이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채무자들에게 달려들어 악덕한 모습을 자처하지만 회사 안에는 그저 힘없는 사원일 뿐이다. 자신들과 소비자의 희생으로 오너가 초호화 별장을 짓고 그들만의 욕망을 향유하는 모습엔 서열적 괴리감과 인간적 자괴감이 든다. 오피스 안의 상황을 들여다 보면 이것 또한 진풍경이다. 사원들은 매일 아침 출근길에 회사에 걸린 사장의 사진을 보고 90도 인사를 한다. 둘째 부인까지 거느린 사토무라는 회사 안의 사람들을 자신의 하수인처럼 대하며 여직원들에게도 언제든 검은 손길을 뻗친다. 그야말로 회사는 사토무라의 왕국이고 그는 그 곳에서 전능한 왕이다. 악덕과 만행이 끊이질 않는 희대의 독재 사장 사토무라는 실제 모델인 다케후지의 사장 다케이 야스오와 흡사하다고 한다.

       

 


1980년대, 일본의 버블경제가 한참이던 시절, 돈으로 돈을 벌고자 하면 누구나 돈을 버는 시대였고, 한편에서는 돈이 돈 같지 않은 시대였다. 은행 금리는 바닥을 치고, 갈 곳을 잃은 돈은 자고 일어나면 가치가 상승하는 주식과 부동산으로 향한다. 주식과 부동산으로 하루아침에 떼돈을 버는 사람들이 길거리에 늘어났으며 모두가 흥청망청 쾌락을 부르짖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 제도권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던 사람들은 존재했다. 이들은 저리(低利)로 돈을 융통 받아 성장하고 있던 소비자금융업체의 도움을 받기 시작하고 일본의 대부업 시장은 몸집을 부풀리기 시작한다. 이따금 정부에서 제동이 들어온다면 언제든지 엎어질 수 있는 판이었지만 흙탕물 수차가 돌 듯,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끌어들여오는 자본으로 회사는 굴러갔다. 온갖 비상식적인 수단으로 회사를 유지시키던 다케후지는 불법도청 파문 등 각종 스캔들로 내리막길을 걷다가 2011년에는 러시앤캐시로 유명한 국내의 대부업체 ’에이앤피파이낸셜’에 인수 될 뻔 하기도 했다. 저자는 일본의 대부업 규제법이 시행 된 전후 시점인 1983년부터 1984년 까지 이 책을 집필했지만 그 이 후의 다케후지의 행로는 소설에서 예견한 것에서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현재 다케후지는 일본 대부업체의 큰 손 ’J트러스트’에 의해 인수된 상태다.


현실과 허구가 절묘하게 혼합되어 대부업체의 병폐와 비리를 날 것 그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소설, <욕망산업>. 어떻게 보면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 같지만 다카스기 료의 <욕망산업>은 술술 읽힌다. 철저한 취재를 바탕으로 한 탓에 내용의 인과관계, 개연성이 뚜렷하고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대사 로 처리되어 있는 문체도 소설의 가독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기업경제소설이라고 막연히 겁을 먹었던 독자들에게는 매우 반가운 소식일 것이다. 여러 권의 기업경제소설을 집필했지만 묻히는 책 하나 없이 골고루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마니아층을 형성하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과연 일본 기업경제소설의 거장, 다카스기 료다.


금융부식열도


대부업의 어두운 면을 고발한 소설 <욕망산업> 그 후, 십여 년이 지난 뒤 다카스기 료는 은행의 부정부패를 폭로하는 소설 <금융 부식 열도>를 발표한다. 타겟은 달라졌지만 소설의 전반적인 구조는 <욕망산업>과 흡사하다. 명문 은행에서 탄탄한 승진 코스를 밟아 온 부지점장 다케나카에게 갑작스러운 발령이 내려지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주주총회의 여론을 움직이는 총회꾼들을 전담하라는 것. 게다가 회장 딸의 불륜 스캔들을 막아야 하는 극비 미션까지 주어진다. 이와 동시에 금융 화이트칼라로 탄탄한 인생을 살았던 주인공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검은 손길들의 위협이 불쑥불쑥 나타나기 시작한다. 다케나카는 가족과, 금융가로서의 자존심 그리고 자신의 신성한 일터였던 은행을 비리와 스캔들로부터 지켜낼 수 있을까? 소설은 여러가지 딜레마와 상황들이 복합적으로 꼬이며 독자들을 한 순간에 깊은 몰입의 상태로 내몬다. 숨 막히는 사건들과 전개는 그 어떤 기업소설보다 극적이다.


        

출간되자마자 입소문을 타며 판매량이 수직상승 했던 이 책은 1990년 대, 일본의 버블이 꺼진 이후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던 일본금융계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욕망산업>과 마찬가지로 ’노무라 증권 총회꾼 사건’ 등의 실제 사건들을 소설에 녹여내며 현실반영의 수위를 높였고 금융계의 음영을 정면에서 조명한다. 이곳에 등장하는 각종 비리들도 한 두 가 지가 아니지만 특히 불법금융과 금융계 고위층 인사들의 지저분한 실상이 인상적이 대목이다. 1999년 ’쥬바쿠’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바 있으며, 책 속의 굵직한 사건사고들을 현실감 있게 묘사해 일본 열도를 논란과 충격에 빠트리기도 했다. 당시에는 화제가 되며 독자들과 관객들 모두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이 책을 집필할 당시 저자는 조직폭력배를 포함한 100여명의 관련자들을 취재하여 압도적인 현실감을 살리는데 주력했다. 출간 즈음에는 이 책이 폭로할 사실들에 대해 겁을 먹은 이들이 보낸 살인경고를 받은 적도 있다. 버블 이후 일본의 현대 금융과 정치의 현실을 가장 잘 묘사한 것으로 평가 받는 이 책은 오늘의 다카스기 료를 있게 한 명작 중의 하나며 일본의 금융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인터파크 도서 문학인문팀 이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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