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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6.08.19 조회수 | 2,015

[제9회 카오스콘서트] ‘다른 세계’의 문을 열어젖히기

과학 르네상스의 도래

며칠 전 과학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흐뭇하게 한 기사가 떴다. 지식담론이 인문에서 과학으로 옮아가는 과학계 르네상스가 도래했다는 내용의 기사다. 약간의 과장이 보태졌다고는 생각하지만, 요즘 과학이 인기를 얻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매일경제 8월 16일 보도 <인문에서 과학으로…상반기 과학도서 23% 더 팔렸다> )


올해 7월 카오스재단에서는 ‘SNT(Science Night Talk) 밤과 과학 사이’라는 행사를 했다. 이 행사를 후원한 한국과학창의재단은 30~40대 각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는, 소위 리더들을 섭외하기를 원했다. 과연 가능할까. 그런데 섭외를 해보니 전혀 다른 분야의 리더들 중에 생각보다 과학에 관심을 주는 이들이 많았다. 참여의사를 보인 어느 미술 작가는 아예 메일 서명에 '뇌' 모양이 있었다. 게다가 참가자 중에 한 명은 요즘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과학잡지를 읽는 것이 유행이라고 말했다.

 


SNT 밤과 과학 사이 행사 모습 (출처: 감동근 아주대 교수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kamdong)

그러고 보니 요즘 고개를 돌려보면 인문강좌를 주로 여는 아카데미나 지식공동체 같은 곳에서 AI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포스트휴머니즘' 강좌가 열리고 있고, 그 어려운 양자역학 세미나를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것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들은 왜 과학 공부에 열을 올릴까.

다른 세계의 문을 열게 되는 것

8월 26일(금)에 열릴 카오스콘서트엔 ‘뇌’를 주제로 강극(강연+연극)이 열린다. 과학커뮤니케이터로 나서는 안병식, 김정민, 권일 세 배우와 전인철 연출가, 윤지서 조연출은 이를 위해 뇌과학책 여러 권을 함께 읽고 과학 강연을 함께 들었다. 지난주 열린 리허설에서 연출가가 내게 말했다.

“뇌과학책을 여러 권 읽다보니 이젠 다른 세계를 안 것 같아요. 다른 책은 다 재미가 없어졌어요.”

평소 문학이나 인문학 책을 즐겨 읽는 그가 이런 말을 하다니 놀라웠다.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하며, 의미 있는 미소를 지었다. 다른 세계의 문을 열어젖힌 자들끼리만 아는 미소라고나 할까. 어쩌면 우리-이번에 콘서트에 참석할 당신을 포함해서-는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빨간약을 함께 삼켰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세계 자각의 비참함보다 진실의 문을 열어젖혔다는 기쁨이 더 크다.

 


강극 연습 모습

뇌과학만 그럴까. 올해 1월에 열린 카오스콘서트에선 부산대 김상욱 교수의 양자역학 강연이 열렸다. 양자역학은 너무나 어려운 개념이라서 사실 완벽히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지점을 이해하는 순간, 나의 믿음과 고정관념은 모두 무너진다. 단언컨대 양자역학도 당신에게 또 다른 세계의 문을 열어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역시 카오스콘서트에서 강연을 해온 ‘과학계 성시경’이라 불리는 윤성철 서울대 교수와 지난해 카오스콘서트에 참여하여 우주의 감동을 선사한 우종학 서울대 교수의 천문학 강연은 나의 존재를 기껏 100년 역사에 한정 짓지 않고 우주 속의 138억 년 역사를 품은 별먼지로 자각하게 해준다. 그들의 인도를 따라 우주의 역사를 살펴보면 어느새 나는 인류뿐만 아니라 우주 모든 존재를 사랑으로 품는 자애로운 마음이 된다. 우린 모두 138억 년 먼 곳으로부터 온 존재니까.

다른 세계의 문을 ‘쉽게’ 열어젖히기

‘그럼 과학이 대세에다가, 믿기 힘들지만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어젖혀 준다니까 책 한 권 사서 읽어봐야겠다.’ 이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좋은 생각이다. 헌데 혹시 책이 어렵지는 않은지? 아마 집에 칼 세이건이나 리처드 도킨스 혹은 미치오 카쿠, 정재승 이런 저자의 책 한 권쯤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완독한 책인가? 만약 완독이 어렵다면, 혹은 책을 읽고도 그리 흥미를 못 느꼈다면 카오스콘서트라는 이상한 곳에 와보면 좋을 것 같다. 여기는 정말 이상하니까.

카오스재단은 설립한 지 2년이 채 안 되는 신생 과학재단이다. 와서 보니 정말 이상한, 뭐 이런 조직이 다 있나 싶었다. 직원이 몇 명 없는데, 그 몇 명 없는 직원을 데리고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해주겠다는 말도 안 되는 야망을 가진 곳이다. 아무리 트렌드라지만 과학은 원래 어렵고 재미없는 학문 아닌가. 그런 과학을 이해하려고 굳이 시간 들여, 돈 들여 올 사람이 많을까.

그런데 이상하다. 카오스재단 전 직원과 인터파크씨어터 팀이 두 달 넘게 고생하며 준비를 했더니 참석한 사람들이 카오스강연이, 카오스콘서트가 재밌다고 말한다. 지난해 콘서트는 일찌감치 매진도 된데다가 후기도 호평 일색이다. 부족한 게 많지 않았느냐고 걱정스레 물었더니 그들은 부족한 점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이만한 과학콘서트가 전에는 없었다고 말한다.

 
제7회 카오스콘서트 모습

우리는 콘서트를 준비할 때, 무엇이 일반 과학강연이나 과학콘서트와 차별화될 수 있는 요소가 되는지에 중점을 둔다. 그래서 카오스콘서트엔 과학 강연만 있는 게 아니다. 제작한 과학 영상도 상영하고, 교수들끼리 한두 가지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토크쇼도 만들고, 강연을 쉽게 연극으로 풀어낸 강극도 올린다.

지난해 카오스콘서트 후기를 보면 알겠지만, 김남식 사무국장이 쓴 강극은 주제를 쉽게 설명하는 다리가 되어준다. 이번엔 더 흥미롭다. ‘사랑과 뇌’라니. 과학커뮤니케이터 김정민과 권일이 우리의 사랑을 뇌를 통해 이야기한다. 서울대학교 강봉균 교수가 대본의 과학적 자문을 해주었다.

 
제8회 카오스콘서트에서 열린 강극 ‘빛의 역사’ 모습

많이 이상하지만 와볼 만한

한국의 보통 과학콘서트에 가보면 초등학생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카오스콘서트는 주 타겟층이 성인인 과학콘서트다. 중학생부터 80대까지 오는 콘서트. 평균 연령은 30대 후반이고 양복 입은 아저씨 직장인, 세련된 중년의 여성분들, 심지어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심심찮게 보인다. 남녀 비율은 반반이거나 남성이 10% 정도 더 많다.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올 카오스콘서트의 첫 번째 강연자는 정재승 KAIST 교수다. 10년 넘는 시간 동안 과학계 최고 저자는 단연 <정재승의 과학콘서트>의 저자 정재승 교수다. 그는 유쾌하고 명확한 강의로도 유명하다. 아마도 강연을 듣고 나면 ‘이상하게’ 아이디어가 샘솟을 것이다. 그는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이고, 의사결정신경과학 연구 및 뇌기반 인공지능 연구자이기도 하다. 이번 강연에선 AI와 인간이 무엇이 다른지를 강연해준다.

이 콘서트를 기획할 당시 정재승 교수 섭외를 제일 처음 염두에 두었다. 그는 필자의 섭외 요청 메일에 다음 날 아침 오전 7시에 문자메시지로 참여하겠다는 답장을 보내주었다. 그때 출근길이었는데 얼마나 기분이 좋았느냐면, 사람이 기분이 좋으면 저절로 춤이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호선 환승 지하철역에서 몸을 흔들며 춤을 추었다. 내가 우피 골드버그인 줄...

다른 강연자 감동근 교수는 IBM ‘왓슨’의 연구원이었다. 알파고가 뜨기 전에 과학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공지능은 단연 왓슨이었다. 거기서 오랫동안 근무를 하다가 현재 아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렇게 그는 경력도 특이하지만, 이번에 바둑과 인공지능 책을 발간했다는 독특한 이력이 있다. <바둑으로 읽는 인공지능>. 바둑 좀 아는 사람 중에 알파고가 도대체 왜 이겼는지 이해가 안 되는 이가 있다면 이 책을 읽으면 된다. 이 책도 좀 이상한데, 공학자의 책이지만 책의 마지막 부분에 휴머니즘도 담겨 있다. 

내가 바둑을 사랑하는 이유는 바로 복기(復棋)에 있다. 바둑을 다 두고 난 뒤에 다시 처음부터 놓아보는 것을 말한다. 이세돌 9단이 1국에서 돌을 거둔 직후 복기를 시도하려다가 맞은편에 앉아 있던 상대는 알파고의 대리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멋쩍게 손을 거둬들이는 장면이 중계 화면에 잡혔을 때 참 안타까웠다.

- <바둑으로 읽는 인공지능> 중에서

마지막 강연자 임창환 교수의 강연을 들으면 아마 처음엔 미소가, 나중에 감탄사가 나올 것이다. 그는 볼 때마다 환한 미소를 짓는 과학계의 ‘미소천사’라 그를 보면 누구나 저절로 함께 미소를 짓게 된다. 딱딱한 뇌공학을 연구하는 이가 이런 미소를 짓는 것도 이상한데 그의 저서를 읽어보면 더욱 이상하다.

필자가 (안타깝게도 많은 재정적인 지원을 받고 있지는 못하지만) 동료 연구자들의 근심 어린 눈길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타자기’ 연구를 계속하는 것은 그 대상이 비록 소수일지라도 그들이 간절하게 원하는, 가족과 따듯한 한마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싶어서다. - <뇌를 바꾼 공학, 공학을 바꾼 뇌> 중에서

정신적 타자기란 생각만으로 타자를 칠 수 있는 장치를 말한다. 의식은 있으나 루게릭병 등으로 외부와의 의사표현이 어려운 환자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만약 내 가족이 갈증도 소변도 슬픔도 표현하기 어려운 중증 루게릭병 환자라면 그가 정신적 타자기를 통해 ‘물’ 한 글자를 썼을 때 얼마나 큰 감동을 줄까. 그의 선한 미소가 이런 마음에서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뇌공학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책으로, 카오스재단이 자신 있게 추천하는 카오스북클럽 도서다. 콘서트 참석 후에 읽어보면 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SNT 행사에서 그는 이 주제와 비슷한 강연을 했는데, 끝나고 예술가들 몇 명이 그를 찾아 자문을 구했다. 그의 강연엔 미래, 과학, 아이디어 등이 풍부하게 담겨 있어 영감이 팍팍 떠오른다고.

지금까지 카오스콘서트가 이상하단 이야기를 쭉 해왔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 최고로 이상한 이야기는 교수들이 며칠 전부터 리허설을 한다는 점이다. 국내 과학계 최고 언변을 보여주는 정재승 교수가, 뇌공학으로 수십 번 강연을 해왔을 임창환 교수가, 알파고 경기 때 바둑 해설까지 해온 감동근 교수가 이번 콘서트를 위해 사전 리허설도 하고 관련 회의도 한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교수들이, 과학계 교수들이 이런 경우는 정말 드물다.

게다가 사전에 스태프들, 콘서트 참가자들 다들 모여 단합도 다진다. 그래서 이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콘서트를 준비하는 필자는 행복하다. 당신도 이상한 과학 콘서트에 참석해서, 전에 느껴본 적 없는 이상한 경험을 해보기를 바란다.

■ 제9회 카오스콘서트 자세히 보기

글 : 김수현 카오스재단 팀장 / 사진 : 카오스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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