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베스트리뷰

수상작
2015년 01월 4째주
  • 스토너영e | 2015/01/27

    평범함이 비범함이 되는 순간, 삶은 문학이 된다. 『스토너』   이렇게 평범한 한 인생이 문학이 되고, 공감을 부르며, 가슴에 남을 수 있다는 게, 애틋하다. 스토너의 삶이 너무 익숙한 모습이어서, 지켜보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 마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그의 삶에 대해 뭔가 더 극적이고 놀라운 어떤 말을 풀어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읽는 내내 답답했다. '아, 이게 아닌데...' 이거 말고 더 진실 되고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찾아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눈에 힘만 주고 있었다. 그의 마지막을 보면서 '우리는 또, 이렇게 왔다가 가는 모습인가.' 싶은 안타까움과 아련함, 담담함, 받아들임, 이었다.   처음부터 말했지만, 『스토너』는 너무 평범한 삶을 살아간 한 남자의 이야기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고 자란 스토너. 그는 제 뜻이 아닌 아버지의 의지로 농업을 배우기 위해 대학에 입학한다. 처음 예정대로라면 그는 대학에서 농업을 배우고 고향으로 돌아가 아버지가 평생 해왔던 농업을 계속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문학개론 수업에서 운명처럼 만난 셰익스피어의 일흔세 번째 소네트가 그의 인생에 없던 길로 인도한다. 이 남자, 문학과의 사랑에 빠진 거다. 혹시 아버지에게 반항이라도 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뜻밖에 그의 결정은 고요하게 합의된 것처럼,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대학에 남아 영문학도가 된다. 그 이후의 삶도 평범했다.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모교의 교수가 되어 문학을 가르친다. 출세보다는 학문을 사랑했고, 아내와의 관계가 어색해도 가정을 의지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는 그냥 '평범하게' 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건 스토너만의 삶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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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작
  • 염불처럼 서러워서 - 김성동프레드9 | 2015/03/18

      김성동 선생은 독립운동가 유족들에 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다. 선생은 정부 초청으로 귀국한 김좌진 장군 외손녀와 허위 선생 증손녀가 한국 국적도 없이 비참하게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해 말한다.(다행히 몇 년 전 무국적 사망 독립유공자들은 호적을 획득했다고 한다.) 그리고 선생은 자신의 집안사에 대해서 들려준다. 선생의 아버지는 좌익 활동을 하다가 6·25가 일어난 직후 학살당했으며, 6·25 당시 면장을 하고 있던 큰외삼촌은 얼치기 좌익들에게 학살을 당했다고 한다. 선생이 연좌제 때문에 중이 되려했고, 결국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선생의 집안이 이 정도로 비참한 일들을 겪어야했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소설가가 되고 나서도 선생은 연좌제의 쇠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하니, 그 고통이 얼마나 참담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선생은 우리 역사가 어디서부터 꼬여버렸는지를 알려준다. ‘과대망상증 환자’로 업신여겨지는 궁예, 서경 천도를 통해 백성들의 삶을 변화시켜보려 했지만 ‘요망한 중놈’으로 일컬어지게 된 묘청, 평등과 자유를 고갱이로 한 개혁을 시도했지만 ‘가짜 중’으로 알려진 신돈 등 선생의 눈길은 역사의 반역자로 치부된 이들에게 닿아있다. 당에 의존하는 신라에 반해 자주국가를 꿈꿨던 김헌창, 양반들도 군포를 내야한다는 혁명적 주장을 펴던 참 북벌론자 윤휴, 새 세상 남조선(南朝鮮)을 열어젖히겠다고 다짐했던 김개남 같은 이의 뜻도 선생은 받들려 한다. 그에 견주어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 그리고 그 후손들은 지금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선생은 그 진상을 들추려 한다. 민영휘는 평안감사 시절 백성들 재물로 금송아지를 만들어 고종과 민 중전(명성황후라 불리는 여자다. 선생이 부르는 대로 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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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독하게 종교적인 소설다윗 | 2015/01/31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니, 불가능한 무언가를 만날 때 작가는 번민한다. 실존의 분명한 인식과 이를 향유하는 엄연성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언어에 갇혀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서글프다. 언어는 모든 걸 정의하지 못한다. 존재의 본래적 성질이 가지는 다양한 층위를 언어는 대등적으로 연결해내지 못한다. 정의定義의 메커니즘 속에도 '시간과 공간'이라는 직관적 형식이 있다. 언어가 무언가를 풀어내려고 할 때, 바로 그 찰나의 지점에서 시공간상의 불일치를 띠게 되면 의미 전달은 굴곡되고 수용受容은 본연성의 파괴를 낳는다. 언어가 인류의 위대한 발명작이면서도 뚜렷한 한계를 지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언어가 가진 역량의 역부족은 '사랑'을 만날 때 확연한 기조를 띤다. 언어는 사랑의 본질을 추출해 정리할 재간이 없다. 근본적으로 사랑은 언어 위에 존재하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무언가다. 사랑은 오직 사랑을 통해서만 말할 수 있다. '아가페([그리스어]agapē)'로 명명되는 신성적 사랑의 디테일은 바로 이 지점을 관통하면서 생성된다. 사랑의 언어는 오직 사랑뿐이다.신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은 서로 병렬적으로 위치해 있지 않다. 인간의 사랑은 신의 속성에서 파생된 에너지의 극히 작은 함량의 일면이다. 인간의 본래적 실존은 신의 형상에서 연원한다. 이 지점에서 '신'과 '사랑'은 동의어가 된다. 그리고 인간의 궁극을 이탈한 비본래성의 비극은 오직 신과의 종속성을 통해 회복될 수 있다. 그렇다. 사랑은 바로 '그런 것'이다.우리시대의 가장 사랑받는 소설가 공지영은 새로운 소설을 통해 사랑을 예찬한다. 그의 신간 <높고 푸른 사다리>는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랑을 대등한 구도에 상정함으로써 종국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곱씹는다. 한국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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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냥하게 산다는 것도요새 | 2015/01/30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자주 '상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람들 사이에서 그 말은 '친절하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듯하다. 내가 듣게되는 그 말이 나쁜 의미는 아니라는데서 칭찬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친숙한 단어여서 그런지 '상냥하게 살기'라는 책 제목이 궁금증을 일으켰다. 우선 하이타니 겐지로라는 작가에 대한 느낌을 적어야겠다. 쟁기를 든 표지의 모습이 얼마나 낯익고 친숙한지 금방 손을 뻗어 악수라도 나누자고 다가올듯하다. 그는 직업 칸에 문필업이라고 써넣을때 저항감을 느낀다고 하면서 섬에서 농사일에 매진?하는 모습을 이 책에서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생각되는 것은, 작가는 어디에 살면서 무엇을 하든 경험하는 모든것들을 글로 완성시키는구나! 하는 것이었다. 결국 어쩔 수없이 써넣어야 하는 문필업이 그의 본업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될 것이다. 이 책의 강점이라면 무엇보다도 너무너무 편하게 읽힌다는 것이다. 작가는 문해능력만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안배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려운 낱말이나 난해한 문장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가 아와지 섬에서 농사를 통해 관계맺은 섬사람들과의 동맹과 또한 작가로서의 일상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을 친숙한 느낌으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안배한 것은 그의 상냥함이 만들어낸 선물일 것이다. 하지만 진짜 독서의 즐거움을 배가시키느 부분은 따로 있다. 사랑스러운 자연과 뭇생명들에 대한 경외감, 순수한 사람들과의 소박한 생활에서는 한없이 친절한 그지만 부당하고 비뚤어진 사회에 대한 냉철한 판단과 올곧은 비판적 글쓰기에 대해서는 작가에 대한 존경심을 갖게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아이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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