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베스트리뷰

수상작
2014년 12월 4째주
  • 존엄성이라는 미로에서hermes91 | 2014/12/26

    최근 서울의 어느 아파트 경비노동자 아저씨의 죽음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아파트의 어느 특정 주민에게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고, 분신했다는 것이 사건의 요점이다. 이 사건을 두고 경비노동자의 최저 임금 예외 건으로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논의가 있을 수 있겠으나 그 중에서도 인간이 타인을 자기와 같이 똑같은 존중을 받아야 하는 인격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주는 충격의 파장은 상상을 초월했다. 스위스 출신의 철학자이자 우리에게는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으로 쓴 <리스본행 야간열차>로도 유명한 페터 비에리 교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하는 특성이자 권리로서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다양한 방식의 문학적 사례를 통해 <삶의 격>에서 기술한다.   어쩌면 페터 비에리 교수가 이 책에서 말하는 삶의 격, 다시 말해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무엇보다 경제적 자립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 체제 아래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돈이 필요하고, 대중은 모두 자신이 가진 노동을 팔아 생활의 밑천이 되는 돈을 벌기 마련이다. 역설적이지만, 그 돈이 없다면 인간으로서 반드시 필요한 존엄성의 유지는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페터 비에리 교수는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에 나오는 인사청탁의 예를 들고 있다. 인사권을 가진 사장 하워드에게 주인공 로먼은 하고 싶지 않은 부탁을 해야 한다. 들어 주지 않을 부탁이라고 생각한다면 청탁자는 부탁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청탁 혹은 부탁은 들어 주는 이에게 일종의 암묵적인 강요가 아닐까. 부탁을 구걸로 만드는 예속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되겠는가.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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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작
  • [자스민, 어디로 가니?] 언제나 우리 가족일거지?luznaile | 2015/10/27

    아무래도 노령 반려견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보면 어쩔 수 없이 끝을 생각하게 된다. 점점 사물을 잘 못 보고, 소리도 잘 못 듣고, 그렇게 빨빨거리며 돌아다녔던 녀석이 차츰 걷는 게 느려지고 반응이 무뎌지고, 잠이 더 많아진다. 앞으로 얼마나 같이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마음을 매번 다잡지만, 우리집 노령견 '똘이할배'를 보면 노화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인간이든 동물이든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오랜시간 함께 있다 반려견을 떠나보낸 누군가의 책이 보이면 무조건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떠나갈 것을 생각해 마음의 준비를 해야한다는 것보다는 떠나간 녀석의 빈 자리를 어떻게 채우는 지가 궁금해서랄까. 동병상련을 느낄 수가 있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자스민 어디로 가니?> 속 자스민은 이미 이 세상에 없다. 작가인 김병종은 이미 세상에 없는 자스민을 생각하면서 에세이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은 자스민에게 보내는 편지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절필을 선언했던 그가 마음을 돌려 글을 쓰고 싶었다고 이야기한 것부터가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자신도 자스민을 그리고 있었다는 것을 힘겹게 고백하는 듯 했다. 떠난 지 3개월이면 무엇이든 잊어버릴 수 있는 시간이라고 작가는 쉽게 이야기했지만, 사실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사람만큼 소중한 존재로 자리잡고 있던 녀석을 떠나보내기엔 함께 한 세월과 추억들이 너무도 많아서 말이다. 아마도 1년이 지난 어느날에도 문득 생각이 날 테다. 이렇게-    야심한 밤에 무심코 의자 아래를 보는 경우가 있다. 거기 늘 앉아 있던 녀석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때면 한 줄기 엷은 바람 같은 것이 가슴으로 지나가는 것을 느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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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반 오소킨의 인생여행파레시아 | 2014/12/26

      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의 줄거리는 참으로 매력적으로 들린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지금의 삶을 되돌리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되돌릴 수 없는 인생을 바라보면서 후회하고 체념하면서 살아간다. 과거에 내가 그 일만 벌이지 않았더라면 하면서 후회하면 살아간다. 그 때 내가 그런 결정만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내 삶은 엄청나게 달라졌을 것이란 말을 한다. 사람들에게는 기회가 세 번 온다고 하는 말이 있다. 그 때가 나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였는데 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그런데 그 기회가 똑같이 주어진다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궁금하다. 지금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인생을 다시 산다면 어떤 인생의 결과가 펼쳐질지가 궁금하다.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읽을 수 있는 책이 바로 이반 오소킨의 인생여행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엣지 오브 투모로우가 생각이 났다. 톰 크루즈가 연기하는 빌 케이지는 외계인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조직된 세계연합방위군 소속의 공보담당 소령이다. 그런 그가 일병 계급을 달고 전장에 배치된다. 그가 인생에서 가장 큰 부상을 당한 것은 종이에 손을 베인 것이 고작이다. 그런 그가 전쟁에 나가서 10분도 안되어서 죽는다. 그런데 죽자 마다 똑같은 곳, 똑같은 상황에서 다시 눈을 뜬다. 반복되는 오늘 속에서 그는 새로운 사람이 되가는 영화이다. 그러면서 마침내 지구를 침략한 외계인을 파괴한다. 이와같은 현실을 이반 오소킨도 기대했던 것 같다.   오소킨은 지나이다를 사랑하였지만 그를 떠나보내고 크루티츠키에게 지나이다가 결혼할 거라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권총을 챙겨 죽으려고 한다. 이런 심정으로 이반 오소킨은 마법사에게 가서 자신의 심정을 말하고 자신의 인생을 되돌리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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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노인으넹엥 | 2014/12/26

    살다 보면 도망이 아니더라도 창문을 넘어 어디론가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현실적인 이유를 에둘러대며 이상을 꿈꾼 자신을 향해 헛헛한 웃음을 지어 볼 뿐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에게 찾아온 100세의 노인 '알란 칼손'은 용감하게도 창문 넘어 도망쳤다. 무릎의 통증을 느끼는 노인이 슬리퍼를 끌고 겨우 650크로나(약 10만 원)의 돈이 든 지갑만을 든 채 양로원을 '탈출'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행보는 우연과 필연 사이를 넘나들며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노인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양로원을 탈출한 주인공 알란은 버스 정류장에서 한 청년의 트렁크를 맡아주려다 돌연 훔쳐 버스에 오른다. 그는 자신이 그것을 왜 훔쳤을까를 생각하며, 48크로나로 갈 수 있는 '뷔링에 역'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가 내린 결론은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고, 인생의 연장전에 접어들면서 이따금 변덕을 부릴 수도 있는 일이지'였다. 그 트렁크 안에는 신발 한 켤레쯤은 들어있을 것이라는 알란의 예상과 달리 3,760만 크로나의 현금이 들어있었고 그로 인해 그를 찾는(쫓는) 사람들은 늘어만 간다. 그러나 노인은 추격에 당황하거나 돈에 들떠있거나 하지 않는다. 100세 노인은 팔팔한 청년에게 잡혔을까? 형사는 그를 찾았을까? 궁금하다면 책을 펼쳐보길 바란다. 알란이 살아온 1905년부터 2005년은 전쟁과 냉전, 냉전의 종결로 이어지는 시대다. 그는 사회주의냐, 자유주의냐의 이념과 상관없이 자신이 할 줄 아는 일을 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그가 할 줄 아는 일이 '폭탄 제조와 폭발'이었다는 점이 예사롭지 않지만 말이다. 그는 스웨덴의 윅스홀트에서 태어나 스페인, 미국, 중국, 북한, 러시아, 이란, 발리, 프랑스 등 전 세계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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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민주화는 가능할까?챨리양배추 | 2014/12/22

    지난 대선의 화두는 복지였다. 아쉽게도 보수정당이 복지라고 하는 진보가치를 선점에서 선거에 이겼다. 복지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함께 대두되었던 말이 ‘경제민주화’이다. 정치적 민주화는 경제적 민주화를 통해 결실을 얻는다. 생경한 이 말은 곧 국민들 사이에 회자되었고 사람들은 대통령 후보가 약속한 경제민주화가 어떻게 실현될 것인지 의구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약속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미덕임을 강조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의 개념조차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할 정도로 이 단어는 지금 잊혀졌다. 지금은 아무도 경제민주화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국민들이 속은 것이다.   이미 뭔가를 가진 사람들은 그 뭔가를 얻기 위해 자신이 땀 흘리고 수고한 것을 기억한다. 그렇기에 자신은 그것을 누릴 충분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이렇게 된다. 어떤 사람이 지금 뭔가를 가지지 못한 것은 그 뭔가를 얻기 위해 땀 흘리고 수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뭔가를 누릴 권리가 없게 되는 셈이다. 참으로 무서운 논리다. 뭔가를 가진 이들은 자기 혼자의 힘을 그것을 얻었다고 착각한다. 정말 혼자의 힘으로 그것을 얻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는 홀로 여기까지 오지 않았다. 특히 노동자들의 땀과 헌신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지금의 부를 결코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정부로부터 받은 법률적 제도적 혜택은 별도다.   부자들에 대한 증세는 빼앗는 것이 아니다. 받은 것을 돌려주는 것이다. 그들이 그 자리에 오르기 까지 받았던 여러 가지 혜택을 세금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사회에 돌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부자들은 이것을 빼앗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증세를 말하는 자들을 사회주의자 더 나아가서 빨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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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벌거벗음 - 우리 개개인이 갖는 벌거벗음의 의미소룡매냑 | 2014/12/22

    벌거벗음이란 무엇일까. 인간에게 벌거벗음이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걸까. 현대 사회 속 우리들에게 옷이란 거의 공기와도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무의식중에 우리가 숨을 쉬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하듯이 옷을 입고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라볼 때 '벌거벗는다'라는 것은 원초적인 인간 그 자체로 회귀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이 책은 유럽을 대표하는 이탈리아 철학자인 조르조 아감벤의 철학적 그리고 신학적 사유를 담고 있는 인문철학 책이다. 신학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종교적 접근성이 책의 저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비 종교인의 입장에서 이 책을 접한다면 사실 조금 난해할 수도 있을 법하다. 마치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한 권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성경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기에 너무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을 듯하다. 철학자 아감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종교가 아닌 인간에 대해 서기 때문이다. ​ 신학적 측면에서 우리 인간은 원죄를 갖고 태어난 존재로 여겨진다. 그 원죄란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로부터 파생된 인간의 죄라고 할 수 있다. 최초의 인간은 지금처럼 자신의 몸을 가리기 위해, 추위를 피하기 위해, 멋을 내기 위해 등등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옷을 입지 않았다. 왜냐고.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벌거벗었지만 벌거벗지 않았기 때문이다. 벌거벗음을 알게 됨으로 인해 원죄가 생기게 되었고 그 후세의 인간들은 그 원죄를 짊어지고 태어나는 숙명을 갖게 된 것이다. ​ 나는 벌거벗음을 이렇게 생각해본다. 우리가 입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벗어남을 의미하는 벌거벗음이다. 자유, 해방 그리고 나아가 탈인간 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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