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의 연재

제11화

2016.08.08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 알랭 드 보통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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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것 아닌 일들 2


우리는 삶의 중요한 영역들(국제 무역, 이민, 종양학 등)에서는 복잡성을 감안하고. 이견을 수용하고 참을성 있게 해결해나간다. 그러나 가정생활에서만큼은 치명적일 정도로 안이한 가정을 세우곤 하며, 이 때문에 협상이 오래 걸리는 데 대해 날카로운 반감이 생긴다. 욕실 관리 때문에 꼬박 이틀간 정상회담을 하는 건 너무 유별나고, 저녁 식사를 위해 집에서 정확히 몇 시에 출발해야 하는지를 정하기 위해 전문 중재인을 고용하는 건 분명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난 미친 여자와 결혼했어.’ 택시가 교외의 한적한 도로를 질주하는 동안 라비는 두려움과 자기 연민에 빠져 이렇게 생각한다. 그의 배우자 역시 잔뜩 골이 난 채 택시의 뒷좌석에서 그와 최대한 거리를 두고 멀찍이 앉아 있다. 라비의 상상력에는 현재 연루되어 있는 이런 부부간의 불화를 이해할 공간이 없다. 이견, 대화, 절충에 이론상 충분히 대비했지만, 이렇게 완전히 바보 같은 일에는 그러지 못했다. 이렇게 사소한 문제로 이토록 심하게 다퉜다는 얘긴 듣지도 읽지도 못했다. 다음 국면까지 커스틴이 계속 그에게 거만하고 쌀쌀맞을 거라 생각하니 더욱 울화가 치민다. 라비는 태연하게 운전하는 기사를 건너다본다. 대시보드에 붙어 있는 작은 플라스틱 깃발로 보아 아프가니스탄 사람인 듯하다. 가난이나 종족 말살을 겪어보지 않은 두 사람이 그런 문제로 말다툼 벌이는 것을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라비의 눈에 자신은 매우 친절한 사람인데 단지 운이 나빠 친절함을 보여줄 문제를 제대로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바다흐샨의 부상당한 아이에게 피를 나눠주거나 칸다하르의 어느 가족에게 물을 날라다 주는 것이 아내에게 몸을 기울이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쉬울 듯하다.

모든 집안 문제가 동등한 권위를 갖진 않는다. 상대방이 시리얼을 먹을 때 얼마나 소리를 내는지나, 발행일이 지난 잡지를 얼마나 오래 보관하고 싶어 하는지에 신경을 곤두세운다면 즉시 바보처럼 보일지 모른다. 식기 세척기에 그릇을 어떻게 포개 넣어야 하는지나, 버터를 사용한 뒤 몇 분 안에 냉장고에 넣어야 하는지에 대해 엄격한 규칙을 고수하는 사람은 무안을 당하기 십상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갈등이 대단하지 않을 때, 우리는 그 고민에 하찮고 별나다는 꼬리표를 붙이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휘둘리게 된다. 우리는 결국 좌절하는 동시에 우리의 좌절이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지 마저도 의심하게 되어 우리를 미덥지 않아 하거나 인내심이 부족한 청중에게 문제를 차분하게 설명할 자신감을 잃고 만다.

사실 라비와 커스틴의 결혼 생활에서 ‘아무것도 아닌 문제’를 두고 벌어지는 말다툼은 거의 없다. 작은 쟁점들은 사실 단지 필요한 관심을 받지 못한 큰 쟁점들이다. 일상에서의 논쟁은 그들 성격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비어져 나온 실밥이다.

그가 자신이 몰두하고 실망하는 바를 더 예리하게 파악하는 사람이었다면, 이불 밑에서 (실내 온도와 관련하여) 이렇게 설명했을지 모른다. “당신이 한 겨울에 창문을 열어놓고 싶다고 말할 때면 난 두렵고 속이 상해. 신체적이라기보다 감정적인 이유에서 말이야. 앞으로 소중한 것들이 짓밟힐 거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거든. 그럴 때면 당신에겐 내가 벗어나고 싶어 하는 어떤 가학적인 금욕주의와 너무 왕성한 용기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어떤 잠재의식의 차원에서 당신이 진짜로 원하는 건 상쾌한 공기가 아니라, 당신 특유의 매력적이지만 무뚝뚝하고 합리적이고 사람을 위축시키는 방법으로 나를 창밖으로 밀어내는 것일까 두려워.”

이와 마찬가지로 커스틴도 시간을 엄수하려는 자신의 태도를 면밀히 들여다봤다면, 레스토랑으로 가는 길에 라비에게(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운전기사에게) 가슴 뭉클한 연설을 했을지 모른다. “그렇게 일찍 출발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린 건 결국 공포 증상이야. 그게 내가 무질서하고 놀라운 일이 가득한 세계에서 불안과 정체불명의 지독한 두려움을 지우기 위해 개발해낸 기술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권력을 갈망하는 거나 내가 시간을 지키고 싶은 거나 매한가지야. 안전의 욕구와 다르지 않고.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걸 고려하면, 비록 조금이지만 그 조금이라도 이해되지 않아? 온전한 정신을 지키려고 하는 나만의 미친 방법인 거야.”

 
이렇게 각자 욕구의 맥락을 살피고 서로가 상대방의 믿음에 깔린 원인을 이해했다면 새로운 융통성이 뒤따랐을지 모른다. 라비가 6시 반을 얼마 안 넘겨 오레가노에 갈 채비를 하자고 할 수도 있었고, 커스틴은 그들의 침실에 밀폐형 창문까지도 달았을지 모른다.

협상을 위한 인내심이 없으면 비통해진다. 원인도 잊은 채 화가 나는 것이다. 잔소리를 하는 쪽은 굳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이야기를 끝내려고만 하고, 잔소리를 듣는 쪽은 자신의 반발이 합리적인 반론이나 그도 아니면 가엾고 용서받을 만한 성격상의 결함에서 나온 것임을 더는 설명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

 

양 당사자는 그들에게 똑같이 지루하기만 한 이 문제가 그냥 지나가기만을 바란다.

창문과 실내 온도 때문에 또 한 번 교착 상태에 빠진 와중에 때마침 커스틴의 친구 해나가 자신의 짝과 함께 살고 있는 폴란드에서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다. 즉, (이제 1년 된) 결혼 생활이 어떠하냐는 뜻이다.

커스틴의 남편은 신선한 공기가 필요하다는 아내의 주장에 최대치로 맞설 셈으로 외투를 걸치고 털모자를 쓴 채 유치한 자기 연민에 빠져 이불을 끌어안고 방구석에 앉아 있다. 커스틴은 방금 그를 덩치 큰 어린애라 불렀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아주 잘 지내고 있어.” 커스틴이 대답한다.

부부 사이에 관해 터놓고 얘기하는 흐름이 아무리 유행한다 해도, 숙고하고 시험할 기회가 그렇게 많았음에도 성급히 추진해 안 맞는 사람과 결혼했다고 인정하는 건 아직도 적잖이 부끄러운 일이다.

“여기 라비도 있어. 책을 읽으면서 같이 평온한 밤을 보내고 있어.”

사실 라비나 커스틴의 마음속에 그들 사이에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에 관한 절대 진리는 없다. 그들 삶의 분위기는 끊임없이 회전한다. 단 한 번의 주말에도 갇힌 기분에서 감탄으로, 욕망에서 권태로, 무관심에서 환희로, 짜증에서 애정으로 급변한다. 제3자에게 공정한 판정을 받기 위해 쳇바퀴를 어느 한 지점에 고정하면, 돌이켜 봤을 때 한 순간의 심리 상태를 반영했을지 모를 고백에 영원히 붙박이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우울한 선언은 언제나 더 행복한 선언으로는 능가할 수 없는 권위를 휘두르게 된다. 

어느 누구에게도 그들의 싸움을 목격하게 하지 않는 한 커스틴과 라비는 자신들의 현 상황이 얼마나 좋은지 나쁜지를 굳이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

일상적 난제를 가진 관계는 묘하게 꺼려져 도외시되는 주제로만 남는다. 자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양 극단, 즉 더 없이 행복한 관계 아니면 살인적인 파국이다. 그래서 미성숙한 분노, 한밤의 이혼 협박, 부루퉁한 침묵, 쾅하고 닫히는 문, 평상시의 부주의하고 잔인한 행위 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그로 인해 얼마나 외로움을 느껴야 하는지를 가늠해보기가 쉽지 않다.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예술은 다른 사람에게서 구할 수 없는 답을 준다. 일반 사회가 점잔을 빼느라 탐험하기 꺼려하는 것들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어쩌면 이것을 문학의 요점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권위 있는 책들을 보면 이 저자는 어떻게 우리의 삶에 대해 그렇게 많이 알 수 있었을까 하며 위안과 감사를 느끼고 경탄하게 된다.

그러나 견딜 만한 관계란 무엇인가에 대한 현실 감각은 사회와 예술의 침묵에 약해지고 마는 경우가 너무 허다하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커플들에 비해 우리 커플이 훨씬 나쁜 일들을 겪는다고 상상한다. 우리는 불행할 뿐 아니라 우리의 불행이 대단히 드물고 기형적인 형태의 것이라 착각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우리의 싸움들이 기본적으로 전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는 결혼 생활의 증거라기보다는, 우리가 뭔가 드물고 근본적인 실수를 범한 징표라고 믿게 된다.

이 둘은 두 개의 믿을 만한 치유책 덕에 지속적인 비통함에서 벗어난다. 첫째는 나쁜 기억력이다. 목요일 오후 4시쯤이 되니 전날 저녁에 택시에서 무엇 때문에 격노했는지를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라비는 별 이유 없이 일찍 퇴근하게 되었다는 그의 말에 커스틴이 무례하고 달갑지 않게 반응한 것과 그녀의 설핏 경멸하는 듯한 말투와 관련이 있다고 알고 있을 뿐, 불쾌함의 정확한 윤곽은 이미 초점이 흐려졌다. 이는 아침 6시에 커튼을 뚫고 들어온 햇살, 라디오에서 재잘거리는 스키 리조트에 관한 정보, 가득 찬 이메일 수신함, 점심을 먹으며 주고받은 농담, 회의 준비와 웹사이트 디자인에 관한 2시간짜리 미팅 덕분이다. 이것들이 합쳐져 성숙하고 솔직한 대화를 한 것 못지않게 둘 사이를 거의 바로잡는 효과를 낸다.

두 번째 치유책은 보다 추상적이다. 우주가 얼마나 넓은지를 생각하면 너무 오랫동안 분노를 안고 가기가 어렵다. 이케아 사건 이후 몇 시간이 흐른 오후 중반에 라비와 커스틴은 에든버러의 남동쪽에 있는 레머뮤어 구릉으로 오래전에 계획한 산책을 나선다. 출발할 때는 둘 다 말이 없고 시큰둥하지만, 자연이 동정심이 아니라 숭고한 무관심을 통해 서로에 대한 적개심에서 그들을 서서히 해방시킨다. 저 멀리 끝없이 펼쳐진 이 구릉지대는 오르도비스기(紀)와 실루리아기에(이케아가 창업하기 약 5억 년 전에) 퇴적암이 압축되어 형성된 것으로, 조금 전까지 그들 눈에 크게만 보였던 갈등이 사실은 우주의 질서 안에서 그리 중요한 위치를 점하지 못하고, 이 풍경이 입증하는 영겁의 시간과 비교했을 때 무와 다름없다는 것을 강하게 환기시킨다. 무심한 구름은 그들의 상처받은 자존심을 살피려 멈추는 바 없이 지평선을 가로질러 유유히 흘러간다. 아무것도, 그 누구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머리 위를 선회하는 깝작도요 가족, 마도요, 꺅도요, 검은가슴물떼새, 밭종다리도. 인동덩굴, 디기탈리스, 헤어벨도. 펠클루 숲 근처에 드문드문 난 토끼풀을 뜯느라 여념이 없는 세 마리의 양도. 그날 내내 서로에게 무시당한다고 느꼈던 라비와 커스틴은 이제 그들의 삶이 이 광대함 속에 펼쳐져 있음을 이해하고서 위축된 느낌에서 해방된다. 그들은 그들보다 월등히 더 강하고 인상적인 힘들이 가리켜 보여준 그들의 미천함에 보다 기꺼이 웃어넘기게 된다.

끝없는 지평선과 태고의 구릉 덕분에 던스 마을의 카페에 도착할 무렵 그들은 왜 서로에게 화가 났었는지 그 이유조차 까맣게 잊고 만다. 차 두 잔을 마신 후 그들은 합의하에 차를 몰고 이케아로 다시 가서는 결국 둘 다 평생 그럭저럭 만족하며 봐 넘길 잔을 고른다. 스발카 제품의 텀블러형 잔 열두 개를.

 

※ 알랭 드 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연재는 이번 회를 끝으로 막을 내립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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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랭 드 보통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문학과 철학, 역사를 아우르는 소설과 에세이 작품들로 수많은 독자들을 매료했다. 대표작으로는 사랑과 인간관계 3부작으로 불리는 장편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일까》, 《키스 앤 텔》을 비롯해 에세이 《불안》 《여행의 기술》 《일의 기쁨과 슬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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