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의 연재

제9화

2016.03.04

샬로테 | 다비드 포앙키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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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달아나는 데도 실제로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파울라는 시부모에게 가짜 서류를 써달라고 부탁한다.
할머니가 임종을 앞두고 있다는 편지를.
병세가 너무 악화돼, 손녀를 꼭 만나고 싶다고.
이 증빙을 갖고서 샬로테는 프랑스영사관을 찾는다.
그리고 며칠간 머물 수 있는 비자를 얻는다.
그래, 이제 서류는 문제없다.
샬로테는 마지막 몇 시간을 멍한 채로 보낸다.
여행가방 앞에서 꼼짝 않고 앉아 있다.
아주 자그마한 여행가방, 단기체류의 알리바이.
가져갈 수 있는 소지품은 하잘 것 없다.
고작 몇 가지 기념품을 택할 수밖에 없다.
어떤 책을 선택하지
어떤 그림을
마침내 파울라의 음반 하나를 갖고 가기로 한다.
자신이 너무도 좋아하는 카르멘이 담긴 음반.
행복했던 한때를 회상하게 해줄 음반을.
홀로 공동묘지를 찾아 엄마에게 작별을 고하는 샬로테.
여러 달 동안 엄마는 천사가 되었다고 믿었었지.
베를린의 하늘을 떠다니는 엄마를 상상했었지.
희망의 나래를 펴고 말이야.
이제 모든 게 끝났어.
샬로테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하늘은 텅텅 비어 있다.
그리고 엄마의 육신은 여기서 썩어가고 있다.
엄마의 유골을 안고 있는 이 무덤에.


기억나는 것은 단지 엄마의 따뜻함뿐일까
엄마가 자신을 품에 안았을 때처럼
그리고는 자신에게 노래를 불러주었을 때처럼
아니, 이제 더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바로 이 장소의 맨 처음 기억 이외에는.
이모의 무덤에서 자신의 이름을 읽었을 때.
샬로테, 최초의 샬로테.
그래, 여기 영원히 한 몸이 된 두 자매.
샬로테는 묘비 하나마다에 흰 장미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떠난다.


아버지를 마주보고, 그녀는 눈물을 뿌린다.
병약해진 아버지는 딸과 역까지 동행할 수도 없다.
곧 다시 만나자는 말로 서로를 격려한다.
우리, 곧 다시 만날 거야.
모든 게 곧 좋아질 거야.
아버지는 지나치게 조심스럽다.
다정함조차도 그에겐 불편한 걸까.
그러나 이날만큼은 숨을 들이쉬듯 딸을 보듬는다.
마치 무슨 보물을 간직하려는 것처럼.
가능한 한 오랫동안 가슴속에 묻어두려는 것처럼.
샬로테는 오래오래 아버지를 껴안는다.
그리고 그에게 흔적을 남긴다.
립스틱의 흔적이 아니라
입술을 꼬옥 누르고 있었다는 흔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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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비드 포앙키노스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음악가 등 다양한 면모의 다비드 포앙키노스는 1974년 파리에서 태어나 문학, 음악, 영화 등 여러 예술 영역을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는 팔방미인 작가다. 2001년 데뷔작인 『백치의 반전(Inversion del’idiotie)』이라는 소설로 프랑수아 모리악 상을 수상하면서 가능성을 인정받았으며, 이후 2004년에 로제-니미에 상을, 2007년에 장 지오노 상을 수상하는 등, 문학평론가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2011년과 2012년 연속해서 프랑스 베스트셀러 작가 순위 10위 안에 드는 등, 명실상부 문학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한 그는, 10년간의 치열한 조사와 준비를 거쳐 탄생한 소설 『샬로테(Charlotte)』(2014)로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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