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의 연재

제42화

2014.11.26

지금 제가 죽어도 될까요? | 손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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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안성경찰서의 대응은 발 빨랐다. 트위터로 생중계된 사건 탓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사이버 경찰청에서는 3분에 한 번꼴로 확인전화를 걸어왔다. 8년 전 안성시에 배치된 경찰대 출신 형사과장 김문오에게 부임 후 가장 큰 사건이기도 했다.
김문오는 권총과 방탄복을 챙긴 뒤 직접 승용차를 몰았다. 퇴근 시간이후라 어쩔 수 없었다. 대원들은 벌써 출동했다. 내비게이션에 찍은 펜션까지는 경찰서에서 40분이 소요되는 거리였다. 경찰차에 오른 김문오는 운전을 하는 의무경찰에게 최대한 빨리, 라는 말을 수십 번은 외쳤다. 그러던 중 휴대전화가 울렸다. 

“놓쳤습니다. 이미 도망친 것 같습니다.”

제기랄! 특진의 기회였는데. 속으로 울분을 삼켰다. 
“여러 정황을 살폈을 때 가락시장 근처로 갔을 확률이 크다고 봐. 송파경찰서에 공조수사 신청하고 안성시 보개면 일대, 특히 서울로 빠져나갈 수 있는 북가현리에 검문소 설치하라고 해. 어서!”
김문오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러나 미소를 실은 차는 그가 전화를 거는 중에 북가현리를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새벽 한 시를 갓 넘긴 시간이었다.
“정미소, 정미소라고 했나. 안성을 빠져나가기 전에 찾아야 할 텐데!”
김문오가 자동차의 대시보드를 탁 내리쳤다.


뒤통수를 무언가가 딱, 내리쳤다. 정신을 차렸다. 눈을 뜨고도 한동안은 자신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서있는지 누웠는지도 알 수 없었다. 머리는 깨질 것만 같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차다. 번뜩 스쳐간다. 그리고 반대였다. 차가 누워있는 미소의 뒤통수를 올려친 거였다. 워낙 덜컹거려 척추가 따끔거렸다. 등 뒤로 돌려 묶인 팔이 어깨마저 압박했다. 입 안에는 솜 같은 게 잔뜩 들었다. 게다가 테이프로 단단히 봉해진 모양이다. 발목도 비틀 수 없을 정도로 꽉 묶였다. 이래서는 구를 수도 없었다. 그저 누운 채로 조금이라도 편한 자세를 유지하려 했다. 그러나 차에 약간의 진동만 느껴져도 고스란히 미소에게 전달됐다. 겨우 깨달았다. 어쩌면 이곳은 트럭의 짐칸이 아닐까. 그녀 위를 포대 같은 것으로 덮어놓았다. 그나마 3월 하순의 찬바람이 매섭게 틈입하지 않는 이유였다. 

어디로 가는 걸까? 만약 꽃피는 산장과 같은, 전화조차 터지지 않는 곳으로 가게 된다면 당분간 미소를 찾아낼 수 있을까? 그보다 박기역은? 박기역은 어떻게 된 걸까?

어느 순간 차는 속도를 높였다 줄였다를 반복한다. 스쳐가며 경적을 울리는 차들도 많아졌다. 그런데 덜컥 겁이 났다. 이렇게 트럭 위에 단단히 포대를 묶어서 가는 차 중에 경찰의 의심을 받는 차가 몇이나 될까? 야채 배달, 계란 배달, 기타 등등 생계 때문에 빨리 가야한다고 말하면 경찰도 비켜주지 않을까? 그것뿐인가. 미소는 장하나에게 갤로퍼라고 특정했다. 경찰들은 펜션 주인의 갤로퍼를 쫓고 있을 게 뻔했다. 모르겠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걸까? 평범한 그녀의 머리로는 무엇 하나 짚어낼 수 없었다. 그때 유언 같은 생각이 스쳐갔다. 

나는 죽어도 좋으니, 기역 씨, 제발 당신만이라도 살아줘. 응?

어느 순간 차의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급커브를 도는 느낌도 들었다. 아래로 내려간다. 분명 아래로 내려간다. 얼마 뒤 차가 정차했다. 덜컥 겁이 났다. 그녀를 죽이려는 것일까. 차문이 열리는 소리도 난다. 두 번. 닫히는 소리도 난다. 두 번. 가까이 다가왔던 인기척이 트럭을 덮은 포대를 한 번 건드린다. 미소는 죽은 척 꼼짝하지 않았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몸을 비틀어 일어나려 했다.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고 싶었다. 그러나 영화나 소설과 달랐다. 몸을 움직일 수도, 비틀거나 뒤집을 수도 없었다. 일어나기는 더욱 불가능. 순간 눈물이 흘렀다. 나는 이렇게 죽는다. 체념하고 받아들이기로 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그런데 흐르는 눈물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만 울어. 그만 울라고. 죽음을 받아들이자던 마음이 울지 말자고 다그치고 있다. 그때였다. 눈앞이 환하게 밝아졌다. 비명을 내질렀다. 물론 내지를 수 있을 때 이야기지만. 그래도 내질렀다. 지르고 또 질렀다. 갑작스런 환환 조명으로 흐려진 시야에 얼굴 윤곽 하나가 오롯이 자리 잡는다. 장하나였다. 눈이 아플 정도로 밝다고 생각했던 곳은 어느 건물의 어두컴컴한 지하주차장이었다. 

장하나가 아프지 않게 테이프를 떼어준다. 눈물도 흐르기 무섭게 닦아준다. 그제야 알았다. 장하나도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마치 차례대로 감각이 돌아오는 것인지 장하나의 목소리도 들린다. 괜찮아, 미소야 괜찮아. 괜찮아, 미소야 괜찮아. 그 말에 눈물을 닦아주는 것도 소용없을 정도로 통곡을 하고 말았다. 

칙…칙. 전파음이 무전기에서 흘렀다. 

- 제압! 부부 제압. 1302호. 문을 부수고 들어가겠음.

“가자.”

장하나가 미소를 일으켰다.
차에서 뛰어내렸다. 휘청, 바닥에 엉덩이를 찧었다. 재빨리 장하나가 부축했다. 엘리베이터 통로로 달려갔다. 엘리베이터 단추를 수십 번 눌렀다. 장하나와 정미소, 두 사람만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섯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모두가 검은 조끼를 입었고, 영화처럼 무장했다.

“경찰특공대.”

장하나가 설명한다. 그들과 눈이 마주치는 통에 어색하게 인사했다. 그런 중에도 엘리베이터는 쉬지 않고 올랐다. 띵, 문이 열리는 신호음이 들렸다. 순간 무전기에서 음성이 들린다.

- 남자, 살아있음. 살아있음. 

미소는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웅성거리는 방향으로 뛰어갔다. 문이 부서져 있었다. 바닥에 나뒹구는 손잡이를 피하며 오피스텔 안으로 뛰어들었다. 오피스텔 깊숙한 모서리에는 여전히 압박된 입과 손을 풀지 못 한 채 버둥거리는 박기역이 있었다. 미소가 들어가는 순간, 박기역과 눈이 딱 마주쳤다.
나는 당신의 신호를 알아차렸어요. 박현미라는 이름도. 또 김소월의 시에서도. 살인자라는 즉흥 시 역시. 기역 씨가 포기하지 않았기에 가능했을 거예요. 사랑해요. 사랑합니다. 죽은 김소월이 저와 기역 씨의 사랑도, 또 생명도 찾아주었네요.
미소는 달려가 박기역을 안았다. 그리고 속으로 외쳤다. 

고마워요, 김소월.


에필로그

처음 만났다. 탐정이라는 남자. 그가 박기역의 병실에 문안을 왔다. 장하나가 인사라도 시키겠다며 동반했다. 보고 싶지 않았다. 사건을 찾아 헤맨 것도 미소였고, 박기역 목전까지 달려온 것도 미소였다. 사건에서 떨어진 보푸라기 하나라도 다른 사람들이 주워 먹는 것은 싫었다. 특히 이놈의 탐정이라는 놈은, 소설가란다. 가당키나 하냐고.
눈이 마주쳤다. 아하. 감탄사를 내뱉은 탐정은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눈 둘 곳을 찾지 못 한다. 

“오려면 하나 언니 혼자 오면 될 것이지, 왜 혹은 달고 오셨대?”

탐정? 시쳇말로 개 무시하자. 그런데 자는 줄 알았던 박기역이 미소의 손을 살며시 쥔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진다. 그러지 말라는 뜻. 박기역이 슬며시 몸을 일으켰다. 

“반갑습니다. 선배님. 미소에게서 들었어요. 소설가이시라고.”
박기역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미소도 결국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그렇게 많은 수면제와 마취약을 맞고도…… 빨리 건강 되찾으십시오.”
소설가인지 탐정인지, 고개를 숙이는 그의 모습이 고까웠다.
“아마도 이번 사건을 박기역 씨와 정미소 씨에게서 눈을 떼보면, 연쇄살인마는 만들어지는가, 아니라면 태어나는가에 대한 문제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손선영의 이야기에 미소는 허를 찔렸다. 미소와 기역의 관점에서만 사건을 보았다. 그렇게 분석하고 내달렸다. 그런데 미소와 기역의 바깥에서는 이렇게도 보는 모양이다. 
“박기역 씨, 동네 지인이신 권미연 씨 부부가 조금 이상하다는 거, 미리부터 눈치 채셨던 거죠?”
손선영이 박기역을 바라보았다. 박기역은 오랫동안 알고 지낸 권미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인지 고개를 창 밖으로 돌렸다.
 
“권미연 씨가 서울에서 오래 살았고, 또 기역 씨 역시 혼자 살다시피 했을 겁니다. 어린 시절 기억에만 존재하던 권미연 씨를 다시 만난 건 아마 펜션이 지어지던 7년쯤 전이 아닐까 사료되네요.”

권미연과 박동수 부부가 산골로 들어온 것은 햇수로 7년 전이었다. 권미연이 살던 집을 개조했다. 꽃 피는 산장 펜션으로. 3년을 영업했다. 박기역을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몇 년 전부터 코스모스 군락이 자라났다고. 군락은 파헤쳐졌다. 세 명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권미연은 유골에 대해 무연고자가 사망해서 시신을 인수하고 장례를 치른 게 전부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변호사가 권미연의 피해망상과 정신분열을 주장하며 재판은 새로운 형국으로 돌입했다. 변호사가 예로 든 살인마는 찰스 컬린이었다. 그는 간호사로 십여 명의 환자를 다작신 약물로 사망에 이르게 했다. 권미연도 간호사로 근무한 십여 년, 상당한 약물을 축적했던 모양이다. 간단하게는 수면제부터 안락사 약물, 마취제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했다. 권미연에게 정신분열과 피해망상이 생겨난 것은 장동민이 죽으면서였다. 장동민은 권미연이 첫 번째 결혼했을 때 낳은 아이였다. 2004년 장동민이 그녀가 보는 앞에서 사망하며 권미연은 산골에 처박혔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 조각가인 박동수를 만난다. 

현재까지 박동수와 권미연의 만남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었다. 부부라고 하지만 혼인신고조차 되어있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권미연의 결혼은 두 번. 그런데 두 번째 남편이 실종상태였다. 법원에서 사망선고를 받아내며 막대한 보험금을 탔다. 그 보험금이 꽃 피는 산장으로 변신했다. 두 번째 남편은 권미연과 흑룡강을 함께 운영한 것까지 추적되었다.

“아마도 권미연은 아들이었던 장동민의 사망을 계기로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만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정신적 충격이 반드시 살인으로 귀결되는 법은 없습니다. 검찰과 변호사가 밝혀내야 할 것은 정신적 충격과 살인의 논리성일 겁니다. 그렇지만 말이 안 되기는 하죠. 정신적 충격을 받은 사람이 모두 살인자가 된다면, 세상이 남아나지는 않았을 거니까요.”

설명을 하던 손선영이 잠시 주의환기를 위한 이야기를 꺼냈다. 

“참고로 찰스 컬린은 397년 형을 받았습니다. 방송도 많이 탄 이야기라 아는 분들도 꽤 될 겁니다. 이 이외에도 신생아 사십여 명을 살해한 간호사나 죽음을 목전에 둔 시한부 환자 백여 명을 약물로 죽게 만든 간호사도 있었죠. 그런데 권미연의 행적에 의문이 생겨나는 건 바로 박동수를 만난 뒤부터입니다. 박동수를 만난 뒤부터 절대 하지 않을 것 같던 간호사 생활을 몇 년 더 했고, 실제적인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던 호스피스 병동에 봉사까지 가거든요.”

그랬다. 경찰은 권미연이 살인행각을 저지른 것을 호스피스 병동에 다니면서부터가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제 결론은 이겁니다. natural-born-killer라고 볼 수 있는 박동수와 살인의지를 서서히 잉태하기 시작하던 권미연이 바로 이 호스피스에서 만났던 건 아닌가.”
“뭐야. 날 때부터 살인마인 박동수와 아들의 죽음을 자책하며 서서히 살인의지를 잉태하던 권미연, 즉 만들어진 살인마가 만났다는 거야?”

깜짝 놀란 듯 장하나가 말한다. 그 말에 손선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쇄살인마, 그래서 손선영은 처음 ‘만들어지는 연쇄살인마’와 ‘태어나는 연쇄살인마’로 서두를 꺼낸 것이었나. 정미소의 머릿속도 덩달아 복잡해진다. 

“생각해봅시다. 날 때부터 살인마였던 박동수는 살인마가 될 자질을 가진 권미연을 알아본 거죠. 그리고 그녀 속에 숨어있던 살인의지를 잉태시키는 겁니다. 트레이닝이든 충격이든 박동수가 어떤 방법을 썼을 겁니다. 향후 구체적으로 밝혀져야 할 사실입니다만 권미연이 살인을 실행했다면 두 사람은 살인마로는 최고의 조합이 됩니다. 그렇지 않나요?”
“말 같지도 않아요. 그냥! 기역 씨를 죽이려던 게 전부였어요. 아직 밝혀진 거라곤 유해 세 구가 전부이고요.”

미소는 참지 못 하고 손선영의 말을 잘랐다. 하지만 의문부호가 눈앞에서 반짝이는 건 사실이었다. 천상 살인마와 만들어진 살인마 부부!
이때 박기역이 말한다. 

“김소월의 시에 ‘깊이 믿던 심성’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오고 가는 옛날 친구에게 던지는 말로 결론을 맺는 시입니다. ‘이제는, 당신네들도 다 쓸데없구려’. 갑자기 그 시가 생각나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쓸데없는 이야기를 많이 해버렸네요. 늘 자신을 믿지 않는 스컬리에게 멀더가 그러죠.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고.”

말 같지도 않은. 김소월의 시를 전설적인 SF드라마 ‘X-파일’로 되받다니. 미소는 결국 고개를 젓고 말았다. 아무렴 어떤가. 박기역은 살아났고, 살인미수와 기타 여죄에 대한 추궁은 경찰과 검찰에서 최선을 다해 수사하고 있다. 진실이 저 너머에 있다 해도 결국은 누군가가 발을 들일 것이다. 진실에게로. 
미소는 벌떡 일어나 사람들을 들러보았다.

“어쨌든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저를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던 하나 언니. 어쭙잖은 실력이었지만 그래도 괜찮은 조언을 해주셨던 탐정님. 그리고 제가 흔들릴 때마다 암송할 시를 선물했던 김소월 시인까지. 고마워요. 모두 고맙습니다. 무엇보다 박기역! 당신이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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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선영

소설도 쓰고 시나리오도 쓴다.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 한국추리작가협회 신예상 등을 받았다. '연봉 1억 물질'과 '연봉 3백 만족' 사이에서 방황하다 결국 만족을 택했다. '만족'이 주는 부가적 안빈낙도에 자주 당황해한다. 일본 본격미스터리 작가 아야츠지 유키토를 코스프레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자주 듣지만 그에 연연하지 않고 꾸준히 글을 쓰고 있으며 글쓰기를 방해하는 것들과는 타협하지 않으려 한다. 장편 [합작-살인을 위한 살인], [죽어야 사는 남자] 외 30여 편의 단편을 발표했다. 시나리오 [그들의 전쟁], [죽어야 사는 남자] 등이 영화화 진행 중이다. 블로그 '손선영의 추리미스터리 세상'(http-//blog.daum.net/ilovemyst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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