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5.11.24 조회수 | 19,371

번역가 컴백 정선희 "하루 세 줄 일기는 매일 하는 근력운동"



개그우먼 정선희. 대중의 뇌리 속에 박힌 그녀의 얼굴은 사뭇 다양하다. 한결같이 밝고 유쾌한 얼굴로 폭풍 수다를 이어가는 옆집 언니의 모습도 있고,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꿋꿋이 이겨낸 성숙한 여자의 얼굴도 있다. 누군가는 그녀의 이름에 ‘똑똑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추켜세우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의혹 어린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이런 그녀가 번역가로서의 새로운 명함을 들고 우리 곁을 찾아왔다. 자신에게는 아직 보여줄 얼굴이 많다는 뜻이기도 할까. 실제로 만났던 그녀는 사소한 일상과 더불어 자신을 둘러싼 오해에 대해, 매일 쓰고 있는 일기에 대해, 그에 담겨있는 자신의 진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매일 세 줄의 일기를 쓰는 정선희의 진심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녀를 만나기에 앞서 자못 긴장했던 것이 사실이다. 어떤 표정으로 무슨 질문을 해야 좋을지 걱정부터 앞섰다. 고민 끝에 건넨 배려나 무심코 내뱉은 말이 그녀에게 작은 생채기를 만드는 것은 아닐는지 내심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카페로 들어선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이러한 걱정은 작은 먼지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의자에 걸터앉은 정선희는 새뜻한 표정으로 주차할 곳이 없어 동네를 헤맸다며 이런저런 푸념을 건넸다. 따뜻한 커피에 코끝을 대고, 깡총하게 자른 쇼커트의 머리를 귀 뒤로 살짝 넘기던 그녀는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자 스스럼없이 눈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예뻤다.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정선희를 보면서도 예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그러나 실제로 만났던 그녀는 생각보다 훨씬 예뻤다. 또렷하고 말간 눈동자, 선명하게 빛나는 피부, 작은 입술에서 나오는 솔직 담백한 말들은 그녀를 예쁘게 보이는데 큰 일조를 하고 있었다. 정선희는 최근 번역가로서 새로운 출사표를 던졌다. 그녀가 번역을 맡은 <하루 세 줄, 마음정리법>은 일본 준텐도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며 자율신경계 분야의 명의로 꼽히는 의사 고바야시 히로유키의 책이다. 이미 일본에서는 192만 부가 판매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난 20년 동안 인간의 면역력과 신경계를 연구해온 고바야시 히로유키는 스트레스로 인해 흐트러진 몸과 마음을 효과적으로 다스리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사실 저는 자기 계발서를 읽지 않아요. 오히려 소설과 같은 이야기나 심리학 분야의 서적을 좋아하죠. 자기 계발서 특유의 독자를 계몽하려는 태도가 불편하거든요. 이제 눈에 뻔히 보이는 계몽에 현혹될 시대는 아니잖아요. 처음 번역 제의를 받고 <하루 세 줄, 마음정리법>을 읽는데 가르치려는 느낌 없이 작가의 노하우를 차근차근 설명하는 부분이 좋더라고요. 적당히 상냥하고 적당히 냉철한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냥 말로만 권하는 게 아니라 작가가 지난 10년간 세 줄 일기를 직접 써왔다고 하니 그에 대한 믿음도 갔어요.”



우리가 일기라고 하면 하루 중 겪은 일들을 그냥 쓰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는 하루 동안 수없이 많은 일을 겪기 마련이다. 그중에서 단 세 가지를 추려내라고 한다면 종이를 앞에 두고도 막상 연필을 들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루 세 줄, 마음정리법>은 하루에 벌어지는 다양한 일 중에서도 핵심을 추려내는 방법과 자세한 노하우를 제시한다. 이를테면 우리가 헬스클럽을 찾아가 운동을 할 때에도 그냥 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트레이너의 설명을 듣고 도움을 받고 나면 훨씬 더 정확한 방법으로 잘 할 수 있게 되지 않나. 이 책은 일기를 쓰는 데 있어 트레이너와 같은 역할을 한다.



정선희는 번역을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 매일 세 줄의 일기를 쓰고 있다. 사실 그녀는 손으로 쓰는 것보다 말로 하는 것에 더 익숙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답답하고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면 차라리 녹음을 하기도 했다. 말이 워낙 빠르다 보니 그 속도에 글이 잘 따라가지 못 했던 탓이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세 줄 일기를 처음 썼을 때만 해도 효과를 잘 느끼지 못 했다. 3주 정도가 지났을 무렵, 조금씩 효과를 느낄 수 있었다.



“집안을 둘러보면 살면서 꼭 필요한 것도 있지만 나중에 필요할까 봐 혹은 누군가와의 추억 때문에 버리지 못하는 것들로 뒤섞여있잖아요. 어차피 다 버리지 못할 거라면 일단 정리는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세 줄 일기를 쓰면서 하루하루를 단순화 시키다 보니 삶이 조금씩 정리되더라고요. 특히 제가 가졌던 분노의 원인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됐어요. 어떤 일로 인해 화가 났을 때를 돌이켜 보면 그 당시가 가장 뜨겁잖아요. 나를 덮쳐서 잡아먹을 것 같던 분노가 막상 일기로 써놓고 보니 다 식은 짬뽕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웃음) 들끓던 감정에 거리를 두면서 온도조절을 하다 보니 왜 화가 났는지 이유를 알게 됐고, 삶의 방향성을 잡는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하루의 삶을 정리한다는 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많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하루 세 줄 일기로 스트레스를 디자인 하라



지난날의 정선희는 한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연이어 겪으면서 좀 더 성숙한 어른의 삶으로 접어들었다. 자신을 이해하는 동시에 타인의 삶도 들여다볼 줄 아는 여유가 생겼다. 이러한 그녀는 심리학에도 관심이 많다. 심리학 서적을 읽으면서 ‘저 사람은 대체 왜 저러지?’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곧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스트레스에 대한 개념도 바뀌었다. 무작정 스트레스를 없애려고 하기 보다 자신에게 맞도록 디자인해서 적당히 활용하자는 태도가 생겨난 것이다.



“스트레스 없이 어떻게 살겠어요. 산속에 들어가 살아도 스트레스는 받을 거예요. 자연도 관망할 때가 좋지 삶의 터전이 돼서 생계가 관여되면 치열해지거든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트레스라는 원석을 자신을 빻고 찧는데 쓰는 것 같아요.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해서 누군가를 해치거나 접시를 깨는 것도 능사는 아니고요. 그런 점에서 스트레스를 디자인하는 방법이 많이 나오면 좋겠어요. <하루 세 줄, 마음정리법>도 그 방법 중 하나이고요. 물론 이게 정답은 아니에요. 수많은 방법 중에서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걸 찾으면 되죠.”



최근 정선희는 방송활동을 줄이고 매니저의 도움도 받지 않은 채 홀로 활동 중이다. 시간이 날 때면 혼자 극장을 찾아가 영화를 본다. 모자도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슬리퍼를 신고 나가 동네를 배회하기도 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맨 처음 홀로 밖을 나설 때만 해도 주먹을 꽉 쥔 채 양말을 당겨 신고 운동화 끈을 더욱 바짝 조여 맸다. 부들부들 떨리는 마음에 문밖을 나섰다 들어오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오뚝이처럼 홀로서기에 전념하고 있는 그녀는 막연하게 ‘잘 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현실을 또렷이 직시한 후에 ‘잘 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견고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을 감고 현실을 부정한 채 어딘가에 희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이라 느껴졌다. 그런 정선희에게 있어 세 줄 일기는 현실을 바탕으로 근육을 키워주는 근력운동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망한 것 같고, 저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 행복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울적하고 분하기도 했죠. 더 이상 아무것도 될 수 없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너무 힘들었고요. 사람들이 저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오해를 풀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하지만 제가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저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제 얘기는 다 변명이고 불편한 이야기일 뿐이더라고요. 이미 식어버린 것을 저 혼자 100도로 끓이고 중탕을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하지만 그렇게 살아오면서 배운 점도 많아요. 홀로 설 수 있었다는 점이 그래요. 요즘에는 정말 애 하나 키우는 심정으로 저를 돌보고 있거든요. (웃음) 어떤 순간이 와도 저에 대한 끈을 놓지 않으려고요. 무엇보다 제가 가진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써요. 제가 누리고 있는 것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당연하게 여기는 순간 공허해지는 느낌이 한순간에 찾아오더라고요. 그래서 고마운 감정에 늘 예민하게 깨어있으려고요. 그게 삶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생각해요. “



그녀와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비가 내리는 가로수 길을 걸어갔다. 젖은 낙엽들이 머리 위로, 어깨 위로 하나둘씩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는 이유로-실은 귀찮기도 해서-그것들을 좀처럼 털어내지 않았다. 그러자 젖은 낙엽들은 몸 여기저기 거추장스럽게 들러붙기 시작했다. 어쩌면 매일 세 줄의 일기를 쓴다는 것은 젖은 낙엽을 가볍게 털어내는 일과 같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때그때 털어내지 않으면 결국에는 한 걸음조차 내딛기가 힘들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세 줄의 일기를 쓴다는 것이 우리 삶의 만병통치약은 될 수 없겠지만 성숙한 삶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한 줌의 사전 약방문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이내 세 줄 일기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트스튜디오)


윤효정(북DB 객원기자)

언제나 자유롭고 언제나 사랑하며 언제나 배우고 언제나 글을 쓰고 언제나 즐기며 계속해서 뿌리가 깊어지고 품이 넓어지는 나무처럼 살고 싶습니다. egloo@daum.net

작가소개

정선희

MBC 정오의 희망곡에 이어 SBS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라디오는 늘 우리 곁에 머문다. 동네 언니와의 수다처럼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은 우리를 웃겼다가 울렸다가, 고된 삶에 힘이 되어주고, 가끔은 "힘빼!"라며 독설도 주고, '슬픈 땐 또 한 번 웃지요!' 하는, 그냥, 뭐, 인생 같다. 옮긴 책으로 [인생이 알려준 것들], [정선희의 드라마 일본어]등이 있다.

재테크의 여왕 성선화, 이번엔 '재테크 독설'이다 2015.11.26
둘째딸 주인공으로 그림책을… '직장맘' 조미영 작가의 소통법 2015.11.24
댓글 주제와 무관한 댓글은 임의로 삭제될 수 있습니다.

0 / 300자

    작가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