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7.12.27 조회수 | 6,653

윤태호 “만화는 경계심 없는 장르…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윤태호 작가와의 인터뷰는 어렵사리 성사됐다. 그도 그럴 것이 <미생> 시즌 2와 <오리진>을 동시 연재 중인데다 한국만화가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어 일주일에 세 곳을 옮겨가며 업무를 본단다. 주말 휴식을 포기한지도 오래라고 했다. 쉼 없는 작업에 어깨와 팔꿈치 연골이 상해 1년간 작품 활동을 쉬었다는데, 작업을 더 미룰 수 없어 ‘그냥’ 다시 시작했단다. 인터뷰 당일 아침까지 <미생> 시즌 2의 마감으로 분주했던 윤태호 작가를 12월 4일, 경기도 분당에 위치한 개인 작업실에서 만났다.


그가 4년만에 내놓은 교양 만화 <오리진 : 세상 모든 것의 기원>(위즈덤하우스/ 2017년)은 오랜 고민에 대한 결과물이다. 많은 책을 읽고 열심히 취재를 해도 늘 그때 뿐. 파편화된 지식들은 휘발되기 일쑤였고 지적 갈증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참 비참한 일이다. 똑같이 시간을 들여서 공부를 했는데 왜 내게는 지식이 머무르는 시간이 이렇게 짧을까. 생각을 해보면 체계가 안 잡혀있기 때문이라는 답 밖에 안 나온다. 더 늦기 전에 그런 작업을 하고 싶었다.”

지적 줄기를 잡아간다는 의미 외에도 <오리진>은 그에게 남다른 작품이다. 벌써 3년 동안 총 열한 명의 작업자가 함께 합을 맞추고 있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경력 30년차인 그도 ‘빨간펜 선생님’ 같은 편집자들과의 작업을 통해 ‘화분 분갈이하듯’ 자신을 재세팅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식에 대한 공포로 시작한 <오리진> 더 늦기 전에 작업하고 싶었다”

Q 어깨와 팔꿈치 연골이 상해 한동안 작품 활동을 쉬었는데, 지금은 괜찮은 상태인 건가.

1년 쉬었더니 더 쉬기에는 힘든 상황이어서 그냥 작업에 들어갔다. (기자 : 의사가 만류하지 않던가.) 병원을 계속 옮겼더니 (몸 상태를) 기억하는 의사 선생님이 없어서…. (웃음)

Q <오리진>은 100회 프로젝트다. 어마어마한 분량인데 어떻게 산출된 회차인가.

그냥 기세다.(웃음) 물론 100권 이상도 갈 수 있는 거고. 위즈덤하우스 연준혁 대표님하고 <오리진> 기획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세상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할 수 있겠다 싶었다. 될 수 있는 데까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고 하니 대표님이 “그럼 100권 못 갈 이유도 없지 않냐”고 하셔서 모양 좋게 100권으로 하게 된 거다.

Q 첫 번째 주제는 ‘보온’이었고 두 번째 주제는 ‘에티켓’이다. 돈, 상대성 이론, 지도, 노화, 기원전후, 열쇠, 아름다움, 알파벳 등 10회차까지의 주제가 공개되었는데 각 주제와 순서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나.


내부적으로는 20화까지 결정이 됐다. (주제를 선정하는) 몇 가지 축이 있는데 탄생과 성장의 순서를 따라가고 있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엄마 뱃속에서 바깥 세계로 나오지 않나. 생명의 기본 조건으로 봤을 때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아기를 꽁꽁 싸매는 게 가장 먼저다. 이후에는 아이가 눈을 뜨고 엄마와 눈을 맞춘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것을 하나의 주제로 확장해서 1~2화 주제인 ‘보온’과 ‘에티켓’으로 이야기한 거다. 이 과정들을 핵심 캐릭터인 로봇 ‘봉투’를 대입시켜 전개한다.

또 하나의 축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친숙한 주제라고 생각하는 테마인데 사실은 잘 모르는 것들에 대한 거다. ‘보온’을 예로 들어보자. 1권에서 ‘냉장고도 보온통’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흔히 보온이라고 하면 ‘따뜻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보온’과 ‘보냉’을 따로 쓴다. 그런데 ‘보온’이라는 말 자체가 설정된 온도를 유지한다는 측면에서는 그 두 가지 뜻을 다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지만 막상 들어가 보면 조금은 오해하고 있는 것. 정확히는 잘 모르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Q 연재하면서 새롭게 습득하는 정보들이 많을 것 같다.

엄청나게 많다. 3화 ‘돈’ 작업할 때도 그랬다. 화폐가 어떻게 발생했는지에 대한 주류 경제학 이론들이 있다. 우리는 그것과는 다른 시각으로 문제 제기를 하는 선생님의 글을 받았다. 그런데 나 역시 주류 이론이 익숙했기 때문인지 선생님의 문제 제기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힘들었다. 내가 만화를 집필하고 있지만 모든 에피소드에 대해 창의적이고 일탈된 관점으로 볼 수는 없는 게 사실이다. 매회 주제별로 모든 상식과 이론을 초기화하는 작업이 힘들다. <미생>을 예로 들면 1, 2, 3권을 완성하고 난 뒤에는 4, 5, 6권을 작업할 때 수월하다. 그런데 <오리진>은 한 회가 끝날 때마다 테마가 달라지니 힘들다.

 

Q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게 되자, 오히려 삶의 의지를 잃어버렸다”라는 1화의 프롤로그는 충격적이었다. <오리진>을 기획하게 된 계기와 연결된 지점이 있을 것 같다.

<오리진>을 시작하게 된 건 1권 ‘작가의 말’에도 나오지만 무식에 대한 공포가 컸기 때문이다. 특히 강연 같은데 나가면 ‘뭐 나 같은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하지?’ 싶을 정도의 질문들을 받을 때가 있다. 인생 상담 같은. 난 잘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보면 내 삶이 컬러풀해보일지는 몰라도 사실 표현하자면 ‘저채도’의 사람이다. 만화하는 것밖에는 모르고 만화 끝나면 술 한 잔 마시는 게 최고의 낙이고. 시간이 나면 만화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곳으로 가서 여행하는 게 제일 좋은 그런 사람이다. 너무 작은 사람….

작품을 하다 보면 그 옛날 너무나 모자랐던 나보다는 조금 나아졌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인격적인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한 작품 한 작품을 할 때마다 느껴진다. 캐릭터에 주는 대사의 울림이 스스로 남다르다고 느끼는 몇몇 순간들을 거치다 보면 스스로 ‘좋은데?’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그게 연재 끝나면 싹 사라진다. 취재하면서 배웠던 많은 것들. 스스로 감동 받은 것들이 내재되지 못하고 훅 날아가버린다. 왜 그런가 했더니 만화를 배우고 그리는 과정 말고는 체계를 갖춰서 뭔가를 집중적으로 탐구해본 적이 없는 거다. 책은 항상 끼고 사는 것 같은데 남는 건 없고, 아들이 뭔가를 질문할 때도 분명 책을 본 것 같은데 답이 잘 안 나오고…. 금세 잊는다. 제대로 된 줄기를 못 잡으니 그때그때 가지가 뻗어나가는 대로만 갈팡질팡 따라가는 식이었던 거다.

그래서 일단은 지적 줄기가 정리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더 헤매지 않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사실 되게 슬픈 일이다. 나이를 먹었는데도 며칠 전에 이야기했던 걸 금세 까먹고 웃으면서 넘어가고. 사람들은 또 내 앞에서 같이 웃어주고 넘어가는 것들이… 참 비참한 일이다. 똑같이 시간을 들여서 공부를 했는데 왜 내게는 지식이 머무르는 시간이 이렇게 짧을까. 생각을 해보면 체계가 안 잡혀있기 때문이라는 답 밖에 안 나온다. 그래서 <미생> 시즌 1 할 때도 취재하면서 그렇게 좋은 말씀들을 많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즌2 연재 할 때는 생각이 안 나서 노트를 꺼내 여러 번 읽어봐야 했다. <오리진> 때는 될 수 있으면 키워드 하나 잡아서 그걸 중심으로 연관 지식을 가지뻗기 하는 것처럼 확장시키는 습관을 들이려고 한다. 더 늦기 전에 그런 작업을 하고 싶었다.

Q 작품 후기에 “지식과 정보는 수단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식은 완전한 사람을 만들어주진 못 할지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게 만들어준다. 지식과 교양이라는건 그 역할에 충실히 복무해야 한다. 흔히들 그런 말 하지 않나. ‘오늘은 나도 처음 살아본다’라고. 그런 순간에 더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지식과 교양을 공부해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잘 안다고 해서 내가 더 행복해지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나’라는 문젯거리에 대해 계속해서 스스로 질문하게 만들어주고 답을 찾게 하고 조언을 구하게 만들 것이다. 그런 과정들이 쌓여 경험이 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지식과 교양은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수단이어야 한다는 거다.

 

“작가 경력 30년, 제일 말 안 들을 시기… 화분 분갈이 하듯 머릿 속 휘저어줘야”

Q 인간에 대해 연민을 느낄 수 있는, 학습한 것을 미래 세대에 전송해야 할 임무를 가진 ‘봉투’라는 이름의 로봇이 등장한다. 주인공이 로봇이어야 했던 이유가 궁금하다.

<오리진>을 기획할 때 많이 도움받았던 작품이 ‘바이센테니얼 맨(Bicentennial Man)’이라고 로빈 윌리엄스가 나왔던 영화다. 인간으로 인정받고자 계속해서 법정 투쟁을 벌이는 로봇의 이야기다. 어떤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로봇. 인간은 모순점이 많지 않나. ‘인간다움의 평균치’로 그려낼 수 없는 게 인간이다. 그런 이유들로 로봇이 필요했다. 언제든 백지 상태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예측 가능한 지점도 있고. 1권에 ‘배움이 없으면 배움이 없이 성장한다’라는 말이 나온다. 인간에게 적용할 경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이야기다. 그런데 로봇에게는 바로 적용할 수 있다. 마치 리트머스지가 반응하듯 바로바로 답이 나오는 존재가 필요했다.

Q 작가 후기를 보니 편집자나 각 전문가들과의 소통이 다른 어느 작품보다도 훨씬 활발히 진행된 것 같다. ‘프로젝트’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나.

기획자들과 눈높이를 맞추면서 작업하는 게 <오리진>의 핵심이다. 편집자는 내 작품을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은 독자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 존재하는 그들을 만족시켜야 한다. 작가가 너무 자기 생각에만 빠져서 작업을 할 때는 적절히 제동을 걸어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작가가 작업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지 않나. 그러나 결국에는 책이 잘 팔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다. <오리진>의 경우는 함께 공동으로 기획을 해서 발의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그들도 작품에 일정 부분 지분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들을 동의시키고 싶다.

올해로 만화가 경력이 30년이다. 만약 그들이 만화를 이해하지 못해서 문제제기를 한다면 그건 내가 보여주고 증명하는 수밖에 없다. 편집자들이 내게 교양적인 스킬이 뛰어나길 바라고 관점이 예민해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나 역시 편집자들이 만화라는 문법에 친숙해질 때까지 시간을 기다리면서 그들을 납득시켜야 한다. (기자 : 지금도 그 과정 중에 있나.) 매번 스토리를 쓰면 가장 먼저 (편집자들에게) 콘티를 보내서 검토를 받고, OK하면 그림을 그린다. 나는 이 작업 형식이 이 프로젝트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Q 총 몇 명이 함께 하고 있나?

기획팀이 일곱 명, 그림 그리는 제작팀까지 다 합하면 열한 명이다. 처음 기획한 시점부터 따지면 만으로 딱 3년 됐다. 잘 돼야 한다.(웃음)

Q 지난 9월 ‘어쩌다 어른’에 출연했을 당시 <오리진> 프로젝트에 대해 “내 스스로 권위를 내려놓는 작업”이라 설명한 바 있다. 어떤 의미의 작품인가.

순만화 작업을 할 때는 비문을 쓴다고 하더라도 편집자들이 개성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줬다. 특히 웹툰을 할 때는 ‘플랫폼’에 작품을 납품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심의에 걸릴 만한 험한 표현이 아닌 이상 완성된 작품에 대해서 간섭하지 않는다. 물론 그에 따른 책임도 나의 몫이다. 그런데 <오리진>은 ‘전체연령가’이다 보니 사전 검토에 더욱 민감하다. 문법적으로 안 맞는 글을 습관적으로 쓸 경우 편집자들이 빨간펜 선생님이 되어 체크를 해준다. 왜냐면 만화를 보는 아이들이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으니까.

사실 어떻게 보면 작가에게는 굉장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내년이면 50살이 되고 나름대로 글을 쓰면서 30년을 살아온 사람이고, 어쨌거나 작품으로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며 살아왔다. 작가 경력 30년이면 제일 말 안 들을 때다. 자기 확신이 극도에 차 있고, 심지어 얼마 전에는 <미생>이라는 잘 된 작품도 하지 않았나. 내 입장에서는 남의 말을 들을 이유가 없는 상황일 수도 있다. 그런데 <오리진>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오히려 내가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60살까지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치자. 지금 나는 내 앞의 뜀틀을 뛰어넘기 위해 발판을 밟아야 하는 상황인 거다. 20~30대 때 배운 것으로 지금까지 작품을 만들었다면 나머지 10년 혹은 그 이후까지 작가로서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 재세팅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화분 분갈이하듯 내 머릿 속을 휘저어줘야 한다. 지금도 가끔 대사를 쓸 때 내 머리가 ‘화석’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신선하지 않다는 느낌이 벌써부터 느껴진다. 그러니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 거다. <오리진> 팀원들이 굉장히 예의가 바르기 때문에 나처럼 속 좁은 사람도 발끈하지 않게 배려하면서 나의 부족한 부분을 체크해준다. 그러니 내가 거부할 이유가 없다.

“독자가 작품에 대해 말하고 싶어하는 ‘가치’ 심어주는 게 작가의 역할”

Q <오리진>의 경우 서사와 정보 전달이라는 역할을 모두 소화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제일 힘든 부분이다. 사실 우리가 교양 만화에서 다루는 주제들을 매순간 각성하며 살지는 않으니까. 그러다 보니 내 삶에 그리 많은 이벤트가 일어나지 않는다. 상대성 이론과 관련된 일들이 내 삶에 얼마나 자주 일어나겠나.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노출되지 않아도 잘 생각해보면 생활의 바운더리 안에 녹아들어간 지점이 분명히 있다. <오리진>을 통해 그걸 꺼내야 하는 건데, 혼자는 할 수 없다는 거다. 각각이 그것을 경험하는 지점이 다를 테니 개인적인 경험만으로 이끌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편집자들이 매회 주제와 관련된 여러 자료를 찾고, 이런 경우에는 이런 상황이 있을 수 있겠다고 이야기를 하는 등 관련 정보를 내게 준다. 그걸 바탕으로 만화라는 형식에 맞춰 다른 어법으로 표현하는 거다. 혹은 이어지는 내러티브 안에 어떻게 녹일지, 배치를 어떻게 달리할지 고민한다.

Q 교양 습득을 ‘만화’라는 장르로 소화할 때의 장점은 무엇일까.

요즘 많이들 듣는 팟캐스트를 생각해보자. 문턱이 없다. 팟캐스트 듣겠다고 할 때 자격을 묻지는 않으니까. 그런 것처럼 무언가에 접근할 때는 경계심을 없애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공부든, 운동이든, 어떤 분야를 경험할 때 필요한 문턱이 사라지고 있는 시대지 않나. 특히나 만화는 더 그렇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만화를 깔봐서 문턱이 없었지만, 지금은 만화가 생활 속에서 굉장히 많이 서비스되고 있기 때문에 장르에 대한 경계심 자체가 없다. 문장으로 설명할 때보다 그림으로 함께 설명이 가능한 도판의 기능까지 할 수 있기 때문에 만화는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 굉장히 다채로운 장점이다. 그래서 만화는 안 없어질 것 같다.(웃음)

Q 허영만 작가는 “만화가 저급 문화로 취급받던 1960~1970년대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 바 있다. 만화 콘텐츠에 대한 인식은 그때와 지금 다르고, 또 앞으로도 달라질 것이다. 달라지는 가치와 문화 속에서도 만화가 자신만의 영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요소들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나.

예를 들어보자. 새우깡이나 또는 꿀꽈배기…. 아, 예를 드는 것도 아재스럽네.(웃음) 어떤 상품을 가지고 꾸준히 리뷰를 하거나 비평하는 건 드물다. 먹고 싶으면 구매하는 상품이니까. 하지만 문화를 소비한다는 건 다른 이야기다. 대부분 영화 보러 가기 전에 리뷰 한 번씩은 찾아보지 않나. 사람들은 더 이상 모르는 것에 돈을 쓰지 않는다. 때문에 문화적인 힘을 갖추기 위해서는 담론이 뒤따라가줘야 한다. 싱싱한 이슈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문화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말하고 싶은 가치를 심어줘야 한다. 누군가는 자신의 취향에 자부심이 생기기 때문에 그 문화를 소비하는 측면도 클 거다. 만화를 그리는 나의 입장에서는 결국 독자들에게 취향의 자부심을 심어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내 역할만으로는 문화가 형성될 수 없을 거다. 비평가 혹은 독자들이 작품에 대해 말할 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작품을 만들었다고 해서 그 작품을 작가가 제일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비평가 혹은 독자가 객관적인 관점에서 작품을 더 잘볼 수 있을 거다. 그들의 영역이 하나의 ‘담론’이 되어 서로의 의견에 반론하기도 하고 증명하기도 하는 것이 문화다. 그 정도가 아니라면 문화라기보다는 상품이 아닐까. 자발적인 무형의 가치 공유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만화가 안정적으로 오래가지 않을까.


 

사진 : 임준형(원파인데이스냅)

 



[ⓒ 인터파크도서 북DB www.bookdb.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임인영(북DB 기자)

취재와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탐색 중입니다. iylim@interpark.com

작가소개

윤태호

만화가. 1993년[비상착륙]으로 데뷔한 이래 드라마틱한 이야기 구성과 탁월한 작화 연출로 인간의 본성과 사회적 현실에 깊이 천착한 작품들을 발표하며 대중과 평단의 고른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다. 대표작으로[야후 YAHOO],[이끼],[미생: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내부자들],[인천상륙작전],[파인] 등이 있다. 문화관광부 오늘의 우리 만화상([야후 YAHOO]), 문화관광부 대한민국 출판만화대상 저작상([로망스]), 제1회 대한민국콘텐츠어워드 만화 부문 대통령상([이끼]), 부천만화대상([인천상륙작전]) 등을 수상했으며,[미생: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로 2012 문화체육관광부 오늘의 우리 만화상, 2012 대한민국콘텐츠대상 만화 부문 대통령상, 2013 대한민국 국회대상 올해의 만화상, 2017...

‘영어 두통 해결사’ 김영철‧타일러 “언어는 게임 포인트 쌓기 아닌 활용하는 것” 2017.12.29
신승훈, 성시경이 사랑한 작사가...심현보의 영업 비밀 2017.12.26
댓글 주제와 무관한 댓글은 임의로 삭제될 수 있습니다.

0 / 300자

    작가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