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7.12.18 조회수 | 9,611

정여울 “복수는 나쁜 것? 오히려 용서가 비겁한 것일 수 있어”

 

문학평론가이자 작가로서 문학의 힘을 전파해 온 정여울이 이번엔 내면 여행가가 되어 돌아왔다. 작가가 말하는 내면 여행은 자기의 행복을 찾아가는 시간이며, 그 여정은 ‘오래전 상처 입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입양하는 시간’과 다르지 않다. 자기 안에 깊이 숨은 상처를 들여다보고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시간은 길고 괴로웠지만 드러난 상처가 아물고 새 살이 돋는 걸 확인하는 건 즐거움의 시간이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진짜 자기 모습을 보기까지 사람의 마음을 공부하고 타인과 마음을 나눠 온 시간을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민음사/ 2017년)에 고스란히 옮겨 담았다.

 

“상처 많다는 건 핸디캡 아닌 타인 이해하는 힘”

 

작가 역시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었을까. 입버릇처럼 아프다고 말하는 동시대 사람들이 상처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작가에게 치유는 위로에 있지 않고 상처의 뿌리에 있었다. 깊게 박힌 아픔의 뿌리를 봐야만 상처의 진짜 원인이 보이고 그래야 빨리 회복할 수 있기 때문.

 

그가 가족들이 가진 상처의 역사를 쓰는 것에서 이야기를 시작한 건 그것이 자기를 만나는 가장 정직한 여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은 사람들은 작가에게 가족 얘기가 부담스럽지 않은 지 묻지만, 스스로 정직해지기 위해 글을 쓰고 정직해졌기 때문에 용감해진 느낌이라고 답을 한다. 그렇게 자기 상처를 드러내는 만큼 자기 욕망을 알게 되고, 욕망 앞에 솔직해진 만큼 자기다운 삶을 만들어가는 기쁨도 알게 됐다.

 

심리 공부의 목적은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주체적인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나니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21세기북스/ 2013년)에서 “자기 삶을 직접 디자인하는 사람이 진짜 어른”이라던 작가 말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심리 공부는 어른이 되기 위한 공부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작가는 어쩌다가 심리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했을까. 질문에 그는 자신의 20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연애할 때 늘 상대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좋아할 만한 행동을 하려고 했어요. 책 제목처럼 항상 괜찮은 척하면서 산 것 같아요. 칭찬을 들어도 기쁘지 않았어요. 왜 날 칭찬하는지 오히려 의심하고요. 자존감이 부족했던 거죠.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고요. 그때 ‘넌 충분히 행복할 만한데 왜 행복하지 않느냐’는 얘기를 몇 번 들었어요. 그 말이 그렇게 아프더라고요. 그때부터 내 마음을 들여다봐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괜찮다는 말...상처받지 않으려는 방어기제”

 

그렇게 20대 후반에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무의식, 그러니까 자기 욕망이나 억눌린 감정을 의식으로 끌어내는 게 중요하다는 건 알았지만 쉽지 않았다. 인생이, 어쩌면 거대한 바다에서 방향도 모르고 나침반도 없이 혼자서 배를 운전해야 하는 일 같았다. 그래도 심해와 같은 무의식을 이해하고 싶었고, 배 위로 끌어 올리고 싶어 매일 꿈을 받아 적고, 자신이 무엇에 아파하는지 써 내려가며 무의식이 보내는 메시지를 놓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광대해 보이는 무의식은 조금씩 상처의 뿌리를 드러냈다.

 

무의식에 있는 자기 상처와 욕망을 마주해 보니, 더 많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기 상처에 집착해 모든 걸 상처의 눈으로 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자기 상처에 가려 행복할 기회마저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트라우마에 괴로워했던 시간이 인생의 낭비처럼 느껴졌고, 그 시간을 줄이고 싶었다.

 

심리학은 입버릇처럼 하던 ‘괜찮다’는 말도 사실은 상처받기 싫어 작동한 방어기제였다는 걸 그에게 알려줬다. 자기를 보호하는 일에 급급해 괜찮다는 말로 대화를 단절하고 치유할 기회를 오히려 놓쳤다는 것도 배웠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기 상처와 아픔을 인정하고 나면, 밉고 한심했던 자기 모습을 왜인지 모르게 이해해주고 다독여주는 힘이 생기는 걸 느끼고 나니, 자신이 상처 입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용기가 됐다. 상처가 많다는 건 핸디캡이 아니라 타인을 더 이해할 수 있는 힘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심리를 공부하고 상처 입은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며 깨닫는 게 많았다며 말을 이었다.

 

“자기표현을 잘 하는 게 자기 치유의 첫걸음 같아요. 자기표현을 자기자랑으로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자기감정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게 자기표현이에요. 심리학을 통해 저는 거절할 권리를 배웠어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덜 하고 싶은 걸 내려놓는 거죠. 어른이 된다는 건 자기 마음을 알고 건강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는 것 같아요. 그게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감정이더라도요.” 

 
“보고 싶지 않았던 상처 들여다본 덕에 내 모습 찾을 수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작가에게 뼈아픈 장소가 있었다. 그 장소를 떠올리고, 그곳을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괴로웠던 때가 생각나, 그게 또 상처가 됐다. 그러던 언젠가 그곳이 아픈 장소라는 사실을 잠깐 까맣게 잊었단다. 상처를 극복하려고 애를 쓸 때는 꿈쩍도 하지 않더니 어느 순간, 알지도 못하는 사이 상처는 치유되었고, 상처였던 장소는 아프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운 장소로 바뀌어갔다. 그 변화를 작가는 무의식의 힘이라고 했는데, 그 힘을 느끼기까지 어떤 경험을 했고 그 경험을 삶에 어떻게 녹여냈을까.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에게 처음 에너지를 준 건 복수심이었다.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는 <중력과 은총>에서 복수 하고 싶은 욕망은 균형을 잡기 위한 본질적인 욕망이라고 설명한다. 복수심은 유치한 감정 같지만 기울어진 마음 상태와 관계를 바로잡기 위한 가장 원초적인 욕망이라는 것. 그 역시 자신에게 상처가 됐던 상대를 생각하면 복수 하고 싶은 감정이 먼저 차올랐다. 복수심에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멋지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야 누구도 자신을 무시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자기 행복을 찾아 심리 공부를 시작한 작가는 복수심이 자기 치유의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복수의 감정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복수가 나쁘지만은 않아요. 어찌 보면 용서가 비겁한 것일 수 있어요. 용서는 본능적인 감정도 아니고 싸움을 포기해 버리는 거죠. 그런데 상처를 극복하는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때 복수심은 동력이 되죠. 그런데 복수심보다 더 중요한 건 자기 인생을 사는 거예요. 모두가 자기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사실 어려워요. 내가 원하는 걸 발견하고 새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해요.”

 

사람의 마음을 공부하면서 스스로 달라지는 것을 그는 많이 느꼈다. “내 안에 전사가 깨어났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고 했다. 자기를 이유 없이 비난하거나 상처 주는 말에 전처럼 도망가거나 숨지 않는다. 그동안 자기 상처에 가려져 있던 잠재력이 하나둘 수면 위로 떠 오르는 걸 보며 망망대해 위 인생의 운전대를 잡을 힘이 생겼다는 걸, 방향을 모르고 나침반이 없어도 두려움 없이 항해할 수 있는 힘을 확인했다.

 

그 힘을 아파하는 모두가 되찾았으면 하고 작가는 바랐다. 우리는 작고 사소한 말에 상처 입고, 그 상처를 평생 끌어안고 사는 것도 모자라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같은 상처를 입히며 살고 있으므로. “인정하고 싶지 않고, 보고 싶지 않았던 상처를 깊이 들여다본 시간이 있었기에 우울함을 털어내고 자기 모습을 찾아가게 되었다”는 작가 고백처럼, 애써 외면하던 상처를 드러내고, 상처 입고 아파하는 내면의 자기에게 말을 건네 보면 어떨까. 타인에게 늘 괜찮다고 말하는 대신 말이다. 그때 비로소 상처와 작별이 시작되고 진짜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회복할 테니.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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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영(북DB 객원기자)

낮엔 요가, 밤엔 과외로 밥벌이 하며 르포를 쓰고 있다. 세계평화를 꿈꾼다. 정말이다. 뭐라도 하고 싶어 펜을 들었다. 팟캐스트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 대본을 썼다. freakss@naver.com

작가소개

정여울

여행을 일상처럼 편안하게, 일상을 여행처럼 짜릿하게 만들고 싶은 글쟁이. 자신의 상처를 솔직하고 담담하게 드러내며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작가. 세상 속 지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글을, 한없이 넓고도 깊은 글을 쓰고자 한다.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였고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네이버 오디오클립 [월간 정여울: 당신의 감성을 깨우는 글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한겨레], [경향신문], [중앙일보]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인문학과 글쓰기, 문학과 심리학에 대한 강연과 북콘서트를 계속하고 있다. 저서로 [월간 정여울] 시리즈,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마음의 서재], [헤세로 가는 길], [공부할 권리], [늘 괜찮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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