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7.12.11 조회수 | 2,994

소설가 김숨 “인간과 사람 사이의 미묘한 차이… 소설 쓸 때마다 고민”

김숨의 두 소설집 <당신의 신>(문학동네/ 2017년)과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문학동네/ 2017년)의 표지가 묘하게 닮아 있다. 면사포를 뒤집어 쓴 새와 어딘가를 응시하는 염소. 각기 다른 목소리를 담은 9편의 소설들을 대표해 이 동물들을 앞세운 이유가 있을까 싶었던 궁금증은, 이내 이것이 ‘인간다움’과 ‘동물적 생’에 관한 어떤 질문이 될 수 있다고 믿게 됐다.

“소설가에게는 그 시대, 혹은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을 통찰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간과 동물에 관한 9편의 이야기. 2009년부터 2017년까지 각기 다른 시기에 쓰여진 소설들이 두 개의 소설집으로 엮인 것은 단순한 우연일까. 소설가 김숨이 바라본 시대의 단면은 무엇일까. 폭력의 대물림과 인간적 삶, 동물적 생에 대해 작가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소설집이 출간된 지 한 달이 지난 11월 말,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북카페에서 김숨 작가를 만났다. 작품과 인터뷰를 관통하는 주제들이 다양했다. 그리고 곧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들과 그리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숨 작가는 한사코 자신의 소설에 대해 이렇다 할 정의를 내리지 않았다. 소설가는 소설을 쓸 뿐, 그것을 어떤 범주에 넣는 것은 평론가나 독자들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소설가는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을 통찰하는 능력 있어야 한다”

Q <당신의 신>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두 소설집이 동시 출간됐습니다.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함께 출간된 이유가 있나요?


편집자분께서 애써주신 덕분에 두 권이 함께 나올 수 있었어요. 동물들이 등장하는 소설들을 골라 원고를 전달을 해드렸는데, 편집자분께서 계간 ‘문학동네’에 발표한 ‘당신의 신’을 읽고 이혼과 결혼을 주제로 한 원고를 묶어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와 동시에 내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오셨어요. 편집자분이 그 이유에 대해 메일로 자세히 설명해주셨는데 충분히 납득이 됐어요. 교정지가 오가고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편집자분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더 깊어졌어요. 편집자로서 특별한 감각을 갖고 계신데 제 소설집 곳곳에서 빛을 발한 것 같아요.

Q <당신의 신>에는 3편의 소설이,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에는 6편의 소설이 실려있는데요, 작품 발표 시기가 2009년부터 2017년까지 다양해요. 주제를 염두에 두고 작업한 결과물인가요? 개별의 작품들이 하나의 주제로 모아진 것인가요?

후자 쪽이에요. 미리 계획하고 쓰진 않아요.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에 묶인 단편들은 발표 시기가 꽤 차이나요. 제가 동물들을 소재로 하거나 주제로 쓴 소설을 여러 편 가지고 있더라고요. 동물을 중심으로 한 권의 소설집을 묶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어요. <당신의 신>에 실린 단편 같은 경우는 ‘읍산요금소’(‘한국문학’ 2015년 가을호)가 먼저, ‘이혼’(‘문학동네’ 2017년 봄호)은 그 뒤에, ‘새의 장례식’은 ‘이혼’을 발표하고 나서 썼어요. ‘새의 장례식’은 미발표작이고요.
 

Q <당신의 신>과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두 소설집을 관통하는 공통된 주제 의식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소설을 쓰고 나면, 그리고 책으로 만들어져서 나오면 주제에 대해서 질문을 많이 받는데 그때마다 설명하기가 힘들어요.(웃음) 무척 곤란한 질문이에요. 최근에 든 생각인데. 단편 하나에도 여러 주제가 있지 않나 싶어요. 여러 주제 중에서 도드라지는 주제가 있겠지요. 똑같은 소설이어도 읽어내는 독자마다 캐치하는 주제가 다를 수 있는 것 같고요. 자신의 기질 혹은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와 보다 닿아 있는 주제가 먼저 읽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당신의 신>에 실린 단편들의 경우 남녀 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싶어서 쓴 소설들이 아니에요.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에 실린 단편들은 저마다 주제가 다르지 않나 싶네요. 스타일도, 문체도, 분위기도 다르고.(웃음)

Q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에서 역시 동물을 매개로 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어리석고 불안하고 본능적인데다가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통해 우월감을 느끼고 있어요. 동물과 인간을 구분짓는 기준이 뭘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자라나 벌, 노루 모두 어릴 적부터 저에게 특별한 영감을 주었던 동물들이에요. 동물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 이야기가 인간과 어우러지면서 또 다른 이야기를 탄생시켜요. (기자 : ‘노루’는 한 편의 연극을 떠올리게 했고, ‘자라’는 어두운 분위기의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었어요.) 자라라는 동물도 그렇지만 자라가 흔히 사는 저수지라는 공간 자체가 그로테스크해요.

Q “근데 아줌마, 인간하고 사람하고 뭐가 달라요?”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속 ‘자라’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와요. 저는 이 대사가 소설을 관통하는 상징적인 대사라고 생각하는데요. 어떤 부분에서는 독자에게 건네는 물음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인간과 사람, 같은 말이죠. 그런데 왜 “이 인간아”, “인간 같지도 않은” 같은 표현은 ‘인간에 이르지 못한 인간’의 의미로 쓰기도 하잖아요. 소설 속에서 여자가 ‘인간’이라고 말할 때와 ‘사람’이라고 말할 때의 미묘하게 달라지는 뉘앙스를 남자가 느꼈을 거예요.

소설 쓸 때 실제로 고민이 돼요. 인간이라고 쓸지, 사람이라고 쓸지. ‘인간’과 ‘사람’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있어요. 인간으로 썼다가 사람으로 고칠 때가 있어요. 그 반대일 때도 있고요.

Q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에서는 각 주인공들의 자식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성으로 서로를 부릅니다. 최씨, 박씨, 백사장 등등. 주요 인물들이 온전한 이름을 갖지 못했던 이유가 있었나요?

성들이 갖고 있는 독특한 아우라, 분위기가 있어요. 어릴 때 동네 남자 어른들이 서로를 부를 때 성만 부르는 걸 흔히 보았어요.

“결혼이 선택이듯, 이혼도 선택… 최선의 선택에 대한 격려 필요하다”

Q <당신의 신>에는 대물림된 폭력에 엮인 사람들이 등장하는데요, 그들은 하나같이 자기객관화가 어려워 보입니다. 망각하고 있는 사실들을 주로 타인을 통해 깨닫는 격이에요. 이들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인간의 모습이 있었나요?


인간이 복잡하고 이율배반적인 존재 같아요. 누군가와의 관계에서는 약자인데, 또 다른 누군가와의 관계에서는 강자가 되기도 하잖아요. 열려있고 깨어있는 사람이 자신의 문제 앞에서는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하고요. 너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가 될 때 달라지는 태도를 볼 때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아이러니해요.

Q 폭력이 대물림되는 환경에 노출된 <당신의 신> 속 등장 인물들은 모두 피해자이거나 가해자인데요. 특이한 점은 이들이 자신 또는 타인의 과실을 잘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예요.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에도 무디고요. 이들은 왜 제대로 판단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걸까요?

제 이야기가 아니면서 제 이야기이기도 하고, 제 친구들의 이야기가 아니면서 제 친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여러 사례가 나오는데 내 친구들, 자매들, 어머니들의 사례와 공통분모가 있어요. 우리 세대 어머니들을 보면 대개가 병을 앓고 계신 것 같아요. 참고 사는 것을 여자의 미덕으로 알고, 너무 참고 살아서 그 증상이 심각한 질병의 형태로 나타나고 난 뒤에야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되는 것 같아요.

Q 특이한 점은 이들이 무언가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거나, 반복되는 상황 속에 놓여 있다는 겁니다. 부모, 직장 선배, 그리고 이혼을 앞둔 ‘이혼’의 주인공이나 끊임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는 ‘읍산요금소’ 속 주인공 등이요. 이들의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는 뭘까요?

악순환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걸 끊기 위한 노력들을 해야겠죠. 실제로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들이 폭력을 대물림하는 퍼센테이지가 무척 높아요. 가정폭력의 희생자에서 어느 순간 가해자가 되어 있는 것이죠. 안타까운 일이에요. 트라우마이자, 잠재의식 속에 되물림된 폭력성을 극복하는 것이 당사자에게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닐 거예요.

Q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에게 남편은 “한 인간의 영혼을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아내를 가해자로 몰아갑니다. 정작 자신은 노동자들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유방암에 걸린 아내가 늘 뒷전이었으면서요. 오래전 이혼해 혼자 살고 있는 주인공의 직장 선배는 사회적으로 매장 당한 뒤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아가기도 하고요. ‘이혼’은 기형적인 사회의 단면을 들춰본 느낌을 줘요.

저도 그렇지만… 편견이 있잖아요. 이혼에 대한, 이혼한 여자에 대한… 본인 자신도 편견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하고. 이혼에 대한 가족의, 주변인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하는 것 같아요. 결혼도 선택이듯, 이혼도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면, 최선의 선택을 인정하고 격려해주는 태도들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소설을 어떤 범주에 넣는 것은 독자의 몫… 소설가는 소설을 쓸 뿐”

Q 폭력의 대물림 속에 놓여 있는 여성들. <당신의 신>에는 그들의 직간접적인 목소리가 담겨 있어요. 일각에서는 <당신의 신>을 페미니즘 도서, 혹은 그와 가까운 성격의 책으로 언급하기도 합니다. 그에 대한 의견은 어떠신가요?

저는 소설을 썼고, 편집자는 책으로 만들었고…. 제 소설을 어떤 범주에 넣는 것은 독자분들의 몫인 것 같아요. 저는 뭔가를 지향하면서 소설을 쓰지는 않는 것 같아요. 쓰고 싶은 소설이 있고, 써지면 써요. 그런데 그렇게 쓴 소설들을 모아놓고 보면 한결같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어요. 그 ‘무엇’을 독자분들이 읽어내시는 게 아닐까요.

Q <딸에 대하여>(민음사/ 2017년) <현남 오빠에게>(다산책방/ 2017년) <다른 사람>(한겨레출판/ 2017년) 등 여성의 시선으로 여성의 삶을 대변하는 소설들이 전과 비교해 많이 출간되고 있어요. <당신의 신> 역시 그렇고요. 이 작품들의 역할이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소설가에게는 그 시대, 혹은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을 통찰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말씀하신 작품들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찰하는 소설가의 시선들이 확보된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여성들의 삶에 대해서요. 물론 여성의 삶을 대변하는 소설들은 예전에도 있었죠. 그 소설들도 그랬지만, 말씀하신 소설들이 여성과 여성의 삶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할 수 있는, 귀한 장을 만들어주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Q <당신의 신>과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역시도 그런 통찰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동물들은 제게 영감을 줘요. 동물이 등장하는 소설을 언젠가 또 쓰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번 소설집에 묶지 않은, 동물이 등장하는 소설이 몇 편 더 있고요.

남자 형제들 속에서 자라서 저 자신이 남성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어요. 연민의 시선이 남자 쪽에 더 가있기도 했고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연민의 시선이 여자 쪽으로 옮겨가더라고요.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현대문학/ 2013년)도 그렇고 <한 명>(현대문학/ 2016년)도 그렇고, <당신의 신>도 그렇고요. 저는 제가 여자인 게 좋아요. 종국에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여자, 남자의 구분은 떠나 인간에 대한.

Q 차기작에서는 어떤 주제를 다룰 예정인가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더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써지고… 중간에 다른 단편을 쓸 수도 있겠지요. 쓰고 싶은 또 다른 이야기가 제게 찾아오면 계획대로 쓰게 되는 것 같지 않아요. 출간 시기도 그렇고요. 두 권이 동시에 출간된 것 역시 제 계획대로 된 것은 아니니까요.

도 그렇고 차기작이라고 밝히신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도 그렇고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에 관심이 있는 것 같네요. 이유가 있나요?

위안부 피해자들이 증언할 수 있도록 돕는 작업을 오래 전부터 해오신 분들 앞에서도 했던 이야기인데, 제가 사명감을 갖고 <한 명>을 쓴 것은 아니에요. 도 그렇고요. 쓰고 싶어서 썼어요. 세상에 소설을 내놓고 나니까 외면할 수 없이 사명감 같은 것이 생기더라고요. 소설을 썼지만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내가 아직도 모르는 게 많다는 걸 알아요. 더 많이, 깊이 알고 싶어요.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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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영(북DB 기자)

취재와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탐색 중입니다. iylim@interpark.com

작가소개

김숨

1974년생.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느림에 대하여]가, 1998년 문학동네신인상에 [중세의 시간]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 허균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소설집 [투견][침대] [간과 쓸개] [국수], 장편소설 [백치들] [철]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 [바느질하는 여자] [L의 운동화] [한 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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