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7.10.31 조회수 | 8,544

김혜진 “우리는 ‘동성애’를 그들 개인의 문제로 한정시키려 한다”

 

“난 그만 포기하고 싶어진다. 그럴 수만 있다면. 딸애의 삶을 내 삶으로부터 멀리 던져 버리고. 딸애의 삶이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떨어져서. 아무 상관 없는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지지와 격려, 응원 같은 좋은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딸에 대하여> 106쪽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진 일이다. 여자가 딸의 동성 연인과 불편한 동거를 시작하게 된 것은. “딸애의 착각이 아닐까”, “오해가 아닐까” 여자는 차라리 딸을 부정하고 싶어진다. 딸의 사랑을 못본 체 하고 싶어진다. 남이라면 얼마든지 보낼 수 있는 지지와 격려도 쉽지 않다. 그녀에게 이것은 남 얘기가 아니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60대의 중년 여성. 하루에도 몇 번씩 타인의 젊음과 자신의 나이듦을 비교하게 되는 사람. 남편이 살아 있을 때도, 떠났을 때도 허전하고 고요한 집 안을 홀로 지켜왔던 사람. 세상에 남은 유일한 혈육인 딸의 ‘특별한’ 사랑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 남에게는 얼마든지 좋은 사람일 수 있지만 딸에게만큼은 쉽지 않다.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에게는 더더욱.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17번째 소설 <딸에 대하여>(민음사/ 2017년)에 대한 이야기다.

이것은 실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무모하리만큼 귀한 시간과 돈을 타인에게 베풀었던 노인을 통해 ‘삶’을 돌아보는 중년 여성의 이야기. 무모하리만큼 사랑하고 무모하게 세상에 부딪히는 딸을 인정하고 때로는 부정하는 한 엄마의 이야기. 김혜진 작가는 그녀를 통해 개인으로서의 엄마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시작된 소설이다.

지난 10월 23일,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북파크에서 김혜진 작가를 만났다. 작품을 끌고 가는 네 명의 여성에 관해, 엄마라는 한 인간에 관해, 동성애를 타인의 관점으로 그려낸 방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는 동안 <딸에 대하여> 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화두들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식은 부모의 기대를 끝없이 배반하며 제 삶을 찾아간다”

Q 작가의 말을 보면 ‘여름에 썼다’고 하셨는데 집필 기간이 어느 정도나 되셨어요?


전 소설을 항상 여름에 쓰게 되는데요. (기자 : 이유가 있나요?) 아뇨. 그건 아닌데 꼭 그렇게 되더라고요.(웃음) 이 소설도 여름에 썼어요. 작년 6, 7, 8월에. 이제는 겨울에 따뜻한 나라에 가서 소설을 써볼까 생각 중이에요.

Q 제목은 <딸에 대하여>이지만, 후반부에 실린 작품 해설의 제목처럼 ‘실은, 어머니에 대한’ 소설입니다. 동성애자인 딸을 둔 엄마이자, 삶의 중년기를 살아가는 한 여자의 이야기예요. 여러 세대가 등장하는데 중년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이유가 있었나요?

생애 주기라고 해야 할까요. 등장 인물들을 보면 청년기를 사는 사람들도 있고 중년기, 노년기를 사는 사람들까지 다양한데요. 그 가운데서 청년과 노년의 삶을 객관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적절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딸을 통해 지난 젊은 날을 생각할 수 있고, 자신의 노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사람으로요.

Q <딸에 대하여>에 등장하는 이들은 서로 완전한 화해나 이해를 이룬 채 관계 맺기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려는 과정 속에 있어요. 작가님이 생각하시기에 ‘모녀’를 다룬 많은 작품들 중 <딸에 대하여>의 차별성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개인으로서의 엄마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엄마이자, 60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 그래서 딸과도 모녀의 관계이기보다 개인 대 개인의 관계로 그려보고 싶었고요. 후반부에 가서는 딸을 ‘또 하나의 객체’, ‘다른 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에 대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거죠. 그런 이야기들을 그리고 싶었어요.

Q 어느 날 불쑥 ‘철저한 타인’이 돼버린 딸을 부정하기도, 이해하고 싶어하기도 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이 작품에 대해 ‘어머니의 성장소설’이라고 하는데, 그 설명이 포괄적으로 잘 맞는 표현 같아요. 어머니의 삶은 결국 나의 아이가 나와는 다른 ‘타인’이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이거든요. 자식은 어머니의 기대를 끝없이 배반하면서 자신의 삶을 찾아가고요. 거기에 노동에 대한 이야기, 노후에 대한 이야기 등 다양한 질문들이 등장해요. 단순히 ‘여성’에 대한 소설이라고만 하기에는 굉장히 복잡하고 다양한 면이 있는 소설이에요.

Q 엄마와 딸 외에 또 하나의 관계가 있죠. 딸과 그 동성 연인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이들의 이야기가 제3자의 관점에서 그려지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어요.

말하자면 이 소설은 사실 ‘퀴어 소설’이기도 하죠. 하지만 동성애를 주요 소재로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니에요. 여전히 세대 간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 중 하나가 동성애잖아요. 주인공과 딸이 ‘다르다’, ‘이해하기 힘들다’라는 측면에서 동성애 이야기가 저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왔어요. 어떤 인터뷰에 갔더니 “이렇게 힘든 걸(동성애) 어떻게 쓰셨냐”라고 물으시던데 사실 지금 시대에, 특히 저희 또래에게는 힘든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많이 자연스러워졌죠. 그러나 여전히 세대간 갈등 중에서 큰 이슈로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Q 모든 문장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엄마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었어요. 중년 여성의 심리를 굉장히 세밀하게 표현하셔서 놀라웠습니다.

저는 완전한 허구라는 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모든 게 경험에서부터 출발을 하는 거죠. 가까이는 우리 엄마의 모습이 있을 테고, 친척 어른들을 보면서 참고한 것도 있어요. 직업적인 묘사는 워낙 노동에 관심이 많아서 요양보호사가 일하는 병원에 가보거나, 관련 영상 등 취재를 통해서 간접적인 경험을 했어요.

“동의하지 않는 어떤 것을 받아들인다는 건, 나를 무너뜨리는 과정”

Q 동성애를 딸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된 주인공이 점차 현실을 인정해가는 과정이 인상 깊어요. 이러한 과정들을 서술하기 위해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타인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기본적으로 이해를 못한다고 생각하고 만날 때 더 좋기 때문에. “이해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동의하지 않는 어떤 것들을 받아들여야 할 때, 마주 해야 할 때는 내 안의 틈이 생기는 거잖아요. 내가 쌓아온 어떤 것들을 무너뜨려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이건 제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어떤 것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데 받아들일 때 어떨 때는 ‘내가 훼손된다’라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요. 이 과정 속에 주인공에게는 특히나 더 크게 다가오겠죠. 60세가 넘은 사람이 딸의 동성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건 아닌 것 같았어요.

어떤 분들은 ‘왜 화해를 하지 않고 끝내냐’라고 하시는데, 전 오히려 그렇지 않아서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주인공이 이들을 완벽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어쨌든 삶이 섞인 거잖아요. 얽혀있기 때문에 실패를 하더라도, 계속 시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 놓여 있다는 것. 그런데 그 상황을 견디는 정도. 그렇다면 이 엄마에게도 큰 시도 혹은 모험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Q 주인공은 현실을 부정하려고도 하고, 딸의 사랑을 ‘실수’라고 표현하면서까지 사회적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도록 회유하기도 하죠. 반면에, 사회에서 차별받는 딸의 모습을 목격하면서 ‘우리 애가 차별받지 않기를 원하는’ 모순적인 마음을 갖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주인공이 굉장히 이중적이잖아요. 본인과 상관 없는 일에 대해서는 좋은 사람이 되지만,정작 자신과 연관 있는 일에는 그렇지 못해요. 특히 딸 아이와 관련된 것들. 그런 모습에 대한 일종의 질문 같은 거였어요. 주인공뿐만 아니라 저도 그렇거든요. 우리 모두에게 이런 이중적인 모습이 있지 않나, 그런 잣대로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진 않나, 묻고 싶었어요.

이건 좀 다른 문제인데, 우리는 ‘동성애’를 너무 그 사람들 개인의 문제로 한정시키는 경향이 있어요.사랑이라는 것은 결국 자본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거든요. 동성애라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똑 떨어진 문제가 아니라는 거에요. 그들의 사랑 속에는 노동도 있고, 관계도 있고, 직장의 문제까지 복합적인 사회 문제들이 섞여 있다는 거죠. 주인공인 ‘엄마’는 치매 노인인 ‘젠’을 통해서 딸과 그 연인이 서 있는 자리가 굉장히 위태롭다는 것을 알게 되고요. 엄마의 시선으로 그런 이야기들도 하고 싶었어요.

Q 그런 의미에서 젠은 주인공에게 참 특별한 사람이었어요.

젠이라는 인물을 참 좋아해요.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됐어요. 한국 사회에서 나이가 든다는 것.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서. 아무리 훌륭한 일을 해도 보장되는 게 없잖아요. 정작 당사자들은 그런 걸 두려워하지 않지만요. 그런 질문들을 젠이라는 인물로써 독자에게 던지고 싶었어요. 저에게는 젠이 멋있는 사람, 훌륭한 사람이에요. 젠을 통해서 결국 딸을 헤아리게 되는 측면도 있고, 반대로 딸을 더 말려야겠다는 마음을 갖기도 하죠. 전 이 인물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Q 주인공은 차츰 주변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가족이 되어 갔습니다. <딸에 대하여>는 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가족’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작가님께서는 이 작품을 통해 말학자 했던 ‘가족의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우리나라는 혈연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이제는 가족의 형태가 너무 다양하잖아요. 친구들끼리 노후를 함께 돌봐준다는 약속을 할 수도 있고, 쉐어하우스도 큰 카테고리 안에서는 새로운 가족의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반면 핏줄에 매달리고 서로에게 책임과 의무를 지게 하는 관계들에 대해서는 복잡한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자꾸 질문을 던지고 복잡한 생각을 갖고 썼다고 하니까, 소설을 통해 사회를 바꿔보고자 하는 사람 같은데 그렇진 않아요. (웃음) 그냥 작은 질문들이 있었고 그런 것들에 답답함을 느끼고 살고 있었던 것이 표출된 것 같아요.

Q ‘여성 소설은 아니다’라고 하셨지만 여성 중심의 소설이었다는 점은 분명해보입니다. 주인공인 ‘엄마’와 치매 노인인 ‘젠’, 그녀의 딸과 연인 ‘레인’까지 모두 여성인 점만 봐도요.

일부러 남성들을 배제하고 쓴 건 아니에요. 이 사람들의 노동, 그러니까 이들이 서 있는 자리가 남성을 잘 만날 수 없는 자리인 거죠. 대학 시간 강사, 요양보호사 등. 아예 남성들이 없는 위치는 아니지만 잘 만날 수 없는 환경인 건 사실이니까요.

Q 차기작은 언제쯤 출간하실 계획이신가요? 다음 작품의 소재나 캐릭터에 대한 접근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궁금해집니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항상 있어요. 글을 쓰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잡다한 것에 관심이 많잖아요. 그렇지만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건 좋아하지 않아서, 영화를 본다거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등의 방법을 통해 주제를 많이 생각해보게 될 것 같아요. 올해는 너무 바빠서 아무런 생각을 못해서 이제 차츰 구상을 해야 할 것 같네요.

​사진 : 임준형(원파인데이스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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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영(북DB 기자)

취재와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탐색 중입니다. iylim@interpark.com

작가소개

김혜진

1983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치킨 런]이 당선되었다. 2014년 제5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중앙역]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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