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5.10.01 조회수 | 13,653

‘시 따위’ 쓰지 않아서 행복한 시인 안도현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좋아서 나는 시를 쓰지 않아도 시인이다!”


독자들을 위해 인사 글을 좀 써줄 수 있겠냐는 부탁에 그는 흔쾌히 그러겠노라 했다. 하얀 종이를 책상위에 올려놓고 그는 한참을 고심했다.

“시 아주 어렵게 쓴다니까요. 시 안 써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시를 쓰지 않아서 행복하다고 말했지만, 인터뷰 내내 그는 ‘시의 매력’을 이야기했고 그가 트위터에 올린 글은 한 편의 시와 다름없었다.

2012년 대선 이후 검찰에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된 시인은 ‘현 정권에서는 시를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시는 쓰지 않지만 ‘어떻게든 말을 걸고 싶은 욕망’에 트위터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잡문>은 그가 3년 동안 트위터에 올린 글들을 모은 책이다. 말 걸고 싶은 시인의 ‘잡념과 중얼거림’에 귀를 기울여 본다.



트위터는 가장 예민한 안테나

Q 대선 이후에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웃음) 밀린 시집들 많이 읽었어요. 처음에 시를 당분간 쓰지 않겠다고 한 것이 모든 글을 쓰지 않겠다고 말한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절필선언’이라고 언론사에서 말하고 나니까 심각한 느낌을 주잖아요. 밥 먹던 사람이 곡기 끊은 것처럼 비장해지고.

그동안 시를 붙잡고 있었어요. 소리도 치고 대항도 하고 중얼거리기도 해봤는데, 그런데 이게 참, 박근혜가 대통령인 세상에서 부질없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안 쓴 거예요. 처음엔 불안했어요. 이러다 완전히 놓아버리는 것 아닌가 싶어서.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진짜 행복해요.


Q 트위터는 어떻게 시작하셨는지 궁금해요.

휴대폰이 없다 보니 SNS하고 멀어질 수밖에 없잖아요. 대선 전후에 트위터 한 번 해볼까 싶었어요. 2012년 초에 트위터를 시작했는데 국정원이 시작할 때 나도 시작한 것 같아. (웃음) 저는 뜬금없이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되고 아직도 재판 중이죠. 그런 일을 겪고…

트위터를 해보니까 몇 가지 장점이 있어요. 하나는 세상 흐름을 빨리 알 수 있다는 것, 가장 예민한 안테나 같은 생각이 들고요. 트위터에 조성됐던 이야기들이 2-3일 뒤에 방송에 나오고 또 하루 이틀 지나면 신문에 나오더라고요. 그리고 또 140자 라는 게 나한테 너무 딱 맞는 거예요. 140자면 무슨 이야기든 다 할 수 있거든요.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연결되기도 하니까 아주 짧은 것 같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요. 처음에는 시간을 꽤 많이 뺏겼어요. 신문보다 먼저 보고 쉬는 시간에도 보고, 자기 전에도 확인하게 되고.

Q 국가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자주 표현하셨는데, 요즘은 어떠세요?

똑같죠, 뭐. 세월호 관련된 발언을 몇 번 했었고, 최근에는 문재인 재신임과 관련해서 쓴 것 같고. 시인이 현실에 대해 말하고, 시에 현실을 발언하는 일이 없어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7, 8년 전부터 시인을 다시 광장으로 부르고 있어요. 시인을 한가하고 게으르게 만드는 게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시인한테 어떤 역할이 자꾸 주어진다는 것은 별로 좋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거죠.

Q 정치현실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으면 하고 바라세요?

크게 보면 수십 년 동안 많은 사람들 피와 땀으로 일궈낸 민주주의 가치가 정상화돼야겠고 또 하나는 아직도 분단된 나라에 살고 있잖아요. 분단된 나라에 살고 있는 한, 휴전선 이남은 섬이라고 생각해요, 그것도 이상한 섬이죠. 휴전선이라는 벽이 있는 섬. 남북이 화해하고 협력해야만 거대하게 변화하는 세계사 물결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다, 생각하죠.

모든 게 정치권력의 판단미스로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돌려놓는 것이 필요하죠. 개인적으로 평양에 사과나무 심는 일 하고 있거든요. 지금 완전히 중단됐는데 2008년에 평양 근교에 심어놓은 사과나무가 크고 있는지 빨리 보러 가고 싶어요.

사과나무 심는 일은 2002년부터 4, 5년 했죠. 한겨레 신문하고 08년 봄에 전라북도 장수에 있는 묘목 12000주를 인천에서 남포항으로 실어가서 심었어요. 그 이후에 5.24조치(천안함 사건 이후 남북 간 교역을 전면 중단하는 대북 제재 조치)로 모든 게 중단이 됐죠.

Q 시인이 왜 정치에 관심을 갖느냐는 질문도 종종 받으시잖아요.

시인이기 때문에 발언하는 것도 있지만, 말하고 싶은데 말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아요. 정치적 발언은 그런 사람들을 대신하는 것도 있고요. 문학을 하면서 배운 것 중 하나가 세상의 일에 대해서 시인이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정치가 잘 되고 국민들이 잘 먹고 잘 산다고 생각하면 굳이 간섭할 필요가 없죠. 비정상적인 정치현실을 정상적으로 돌리는 데 도움이 된다면 좀 말해야겠다는 것이지 정치에 관심을 갖고 발언을 해서 정치인이 되겠다, 이런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너 장관 되려고 그러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전혀!


혼자 있는 시간은 시인에 가까워지는 시간

Q 안도현 시인의 어린 시절은 어땠나요?
 
범생이죠. 면소재지에서 우리 집은 가게, 점방을 했고요. 외갓집과 큰집이 거기서 멀지 않은 시골에 있었어요. 방학 때는 늘 외갓집이나 큰집에 가 있었어요. 농사짓는 집이었는데 옛날에 놀잇감도 별로 없고, 혼자 있는 걸 잘 버티고 좋아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비 오는 날 낙숫물 떨어지는 걸 오래 봤고, 또 외갓집 뒷산에 야생 버섯이 장마철에 났는데 그런 거 따러 가는 것 좋아했고 혼자 잘 놀았던 것 같아요. 뭐 감수성 이런 게 아니라 혼자 잘 노는 시간들이 개인적으로 잘 쌓였다고 생각해요. 시를 쓰다 보면 어릴 때 순간순간 만났던 풍경들이 어느 틈에 시에 들어와 있을 때가 있어요.

Q 자연이 내는 소리나 생명의 움직임에 예민하신데요, 어린 시절의 경험한 자연이 영향을 주었을 것 같아요.

빗소리라든지 나뭇잎이 물드는 것이랄지 이런 게 나랑 별개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시골 출신이잖아요. 그런 삶이 시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말을 조금 바꾸면 낡아빠지고 촌스러운 태도가 될 수 있지만, 자연이라는 게 도시가 있고, 도시 바깥에 있는 게 아니에요. 문명과 자연을 떼놓고 생각하는 방식도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아파트 안에도 꽃과 나무들이 있죠. 앞으로 태어나고 자라나는 아이들도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병원에서 태어나지만 전세대가 누렸던 만큼 자연과 가까워져야 할 의무가 있고, 기성세대들은 제공을 해줘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Q 자연적인 삶이 시에 가깝다고 느낄 때는 언제예요?

혼자 있을 시간이 별로 없어요. 혼자 있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면 누구나 시인에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요즘 사람들은 혼자 있지를 못해요. 다른 말로 하면 외로워할 줄 모른다. 혼자 있는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하고 그걸 즐길 줄 아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행복할 거라는 생각을 하죠. 세상이 혼자 두게 만들지 않잖아요.

Q 꽃 이야기가 많아요. 따로 꽃에 대한 공부를 하시나요?

식물을 안다는 건 식물이라는 타자를 이해한다는 거거든요. 식물들은 다양하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 다르고 그래서 자꾸 관심을 가지다 보니까 말을 많이 하게 되는 거죠. 잘난 척 하는 거예요. (웃음)


“현 정권 끝나는 날부터 시 발표할 것”

Q 시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하는 글들이 군데군데 나와요. 시인은 사람을 아프게 하려고 태어났다고도 하셨고, 시는 감성으로만 쓰는 게 아니라 지식과 지혜, 열정과 기술로도 쓴다고도 하셨어요. 시란 무엇인가요?

시를 읽지 않아도 돈 잘 벌 수 있고 시간도 잘 가고, 뭐 다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시를 읽고 그 시간에 빠져 본 사람은 그걸 읽지 않은 사람과는 다른 삶을, 빛나는 삶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해요. 저도 고등학교 때 시를 읽는 재미에 빠져서 쓰게 됐는데 소설처럼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되고, 언제든지 펼쳐보면 되고, 또 모르면 모르는 대로 넘어가도 아무 문제없고. 그러다 진짜 좋은 시를 만나게 되면 구름처럼 붕 뜨는 기분이 들어요.

저한테는 백석이 그랬어요. 한 편에 시를 구성하는 게 굉장히 많아요. 언어. 시인의 감성, 소재, 분위기 등등 총체적인 게 모여서 시가 되는데 백석 시는 ‘시는 이래야 한다’고 꿈꾸던 모든 게 거의 모든 시마다 들어있어요. 80년대 해직교사 시절에 외치고 싶은 게 있었어요. 지나치게 외치는 것은 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가르쳐준 것도 백석인 것 같고. 광장에서 지쳐서 시를 때려치울까 할 때도 시는 오래 쓰는 것이라고 알려줬죠.

백석을 가장 좋아했고, 우리나라 시인들의 시를 좋아했어요. 거의 다 읽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고은, 신경림, 황동규, 정현종 같은 어른들부터 최근 젊은 시인들까지 시를 많이 읽었어요. 제가 시를 제일 잘 쓰지는 못하지만 나만큼 읽은 시인은 별로 없을 거예요. 재미있으니까 읽는 거예요. 시를 읽으면 시간이 잘 가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상상력을 만나면 놀라는 재미. 시를 자꾸 읽다 보면 나 스스로 고여 있게 만들지 않고 변화해야겠다는 생각을 시가 가르쳐주죠.

Q 그래서 시는 도대체 뭔가요?

그걸 어떻게 알아, 그걸.(웃음)
굳이 말하라면, 여기가 아닌 여기 너머에 있는 걸 꿈꾸게 해주는 양식인 것 같아요. 늘 여기 갇혀 있잖아요. 이 안에서 잘 먹고 잘 사는데 빠져있지만, 여기가 아닌 더 멋진 세상을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 보여주는 것 같아요. 때로는 사람들이 기대고 싶은 언덕 같은 구실을 하고, 떠 마시는 냉수 같은 구실을 하잖아요. 또 어떤 사람은 시를 읽고 위안 받기도 하고. 시의 역할은 다양한 것 같아요.

Q 시를 쓸 때 타자의 눈으로 자기를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요, 시는 아주 내밀하고 개인적인 문학이라 타자가 낄 자리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시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시에 등장하는 나를 시인과 일치하는 것이에요. 읽는 사람도 쓰는 사람도 시에 나오는 ‘나’를 자신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거든요. 내 이야기만 하려면 일기에 쓰면 되죠. 시를 쓰지 않아도 되요. 내가 아닌 주변 사람들이 말하고 싶어 하는 것, 느끼는 것을 대신 써주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생각해요.

Q 시라면 무조건 고개를 젓는 사람들이 있어요. 시의 매력에 빠지게 하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요? 

우리가 이 세상 모든 노래를 다 좋아하고 다 외울 필요가 없듯이 시도 그 때 그 때 자기가 좋은 것 몇 편만 취하면 돼요. 노래를 누가 공부하듯이 하나요.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즐기는 것처럼 시를 즐겨야지. 학교 다니면서 시로 공부만 해가지고... 시를 보면 함축적 의미를 찾고 그러는데 그럴 필요 없어요.

Q 그런데 정말 이해 안 되는 시들이 있어요.

그럴 때는 그냥 넘어가면 되죠. 왜 붙잡고 있어야 돼요? 코스 음식 나오는데 계속 먹기 싫은 거 나오면 그거 왜 먹어야 돼요? 그냥 나가서 자장면 한 그릇 먹든지. 그것도 음식이잖아요. 싫은 건 안 읽으면 돼요. 머리 짤 필요가 없어요.

Q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별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도 하셨는데 어떤 어른, 어떤 시인이 되길 바라시나요?

아이고, 나 아직 어른 되려면 멀었어요. 아직도 철이 없는데. 진짜 마음은 아직 30대 같아요. 아직까지도 담배 끊으려고 생각한 적도 없고 술도 마찬가지고. 50대가 넘으면 친구들이 전부 몸이 어디가 안 좋네, 거기에 무슨 약이 좋네 뭐 이런 얘기하는데... 그런 거 싫어요.

시는 좋은 시를 쓰고 싶죠. 박근혜가 끝나는 날부터 좋은 시를 쓰고 싶어요. 어떤 친구는 꼬불쳐 둔 거 아니냐고 하는데 실제 시를 쓰고 있지는 않아요. 그런데 쉬었다 쓰면 겁나게 잘 써야 되겠다, 이 생각은 좀 있어요. 그 동안도 열심히 썼지만, 좀 쉬더니 잘 쉬었구나, 이런 말 듣고 싶죠. 문학을 했기 때문에 삶이 아름다웠다는 말을 듣는 사람으로 늙어가야겠죠. 

Q 박근혜 정권 끝났는데, 더 한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해요?

(웃음) 그 때부터는 다시 무기를 갖추고 싸움의 시를 써야죠. 그런 일은 오지 않을 거예요. 나는 낙관론자예요. 

Q 마지막으로 독자들께 하고픈 말이 있다면요?

이 책 홍보를 하겠습니다.(웃음) 이 책은 순서대로 안 읽었으면 좋겠어요.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없어요. 하루에 많이 읽지도 않았으면 좋겠어요. 야금야금 씹어 먹듯이 아무데나 펼쳐서 읽으면 좋겠어요.


사진 : 임준형(러브모멘트스튜디오)




정윤영(북DB 객원기자)

낮엔 요가, 밤엔 과외로 밥벌이 하며 르포를 쓰고 있다. 세계평화를 꿈꾼다. 정말이다. 뭐라도 하고 싶어 펜을 들었다. 팟캐스트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 대본을 썼다. freakss@naver.com

작가소개

안도현

196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났다.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서울로 가는 전봉준』 『모닥불』 『그대에게 가고 싶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리운 여우』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바닷가 우체국』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 『북항』 등의 시집을 냈다. 소월시문학상, 윤동주문학상, 백석문학상, 임화문학예술상 등을 받았다. 『나무 잎사귀 뒤쪽 마을』 『냠냠』 『기러기는 차갑다』와 같은 동시집과 여러 권의 동화,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백석평전』 등을 출간했다. 스테디셀러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는 지금까지 15개국의 언어로 해외에 번역되었다.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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