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5.08.13 조회수 | 17,283

[기획 인터뷰] 한국 소설가와 일본 사회학자의 ‘비정상 회담’ (1) - 장강명과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10문 10답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거의 100퍼센트에 이르는 젊은이들이 “일본에서 태어나서 좋다.”라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일본에 있어 ‘컨서머토리화(만족)’의 목표 지점은, ‘친구들과 가깝게 어울리며 즐겁게 사는’ 라이프스타일입니다. 한국에서 ‘이민’이 현실성 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혹시 일본보다 한국 쪽이 젊은이로서 살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 후루이치 노리토시

 
(좌)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우)<한국이 싫어서>

2015년은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지 70년 되는 해이자 한국과 일본이 수교 관계를 맺은 지 50년 되는 해입니다. 가깝고도 먼 나라 한국과 일본. 올해 민음사에서는 양국 젊은이들의 변화한 가치관에 주목하는 두 권의 책이 나왔습니다. 자기만족적 행복을 위해 이민을 결정한 젊은이의 생각을 속속들이 들려주는 <한국이 싫어서>와 불편과 부당에 저항하지 않고 소박한 행복에 안주하는 사토리 세대를 분석한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이 그것입니다. 광복절 때문일까요, 8월이 되면 과거와 미래에 대해 어느 때보다 생각이 많아집니다. 그 에너지를 받아 소설가 장강명과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가 서로의 나라에 대해 궁금한 열 가지를 묻고 답했습니다. 1편은 사회/정치, 2편은 문화/생활에 대한 내용으로, 첫 번째 포스트는 일본의 정치/사회에 대해 장강명 작가가 묻고 노리토시 박사가 답했습니다. 비슷하고도 다른 나라 한국과 일본. 서로를 거울삼아 다가올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도 8월을 보내는 즐거운 방법이 아닐까요. (편집자 주)



Q 장강명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오랜 팬으로서 느끼는 건데요, 2000년을 기점으로 작품들이 전보다 한층 어둡고 우울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특히 세계의 운명이나 종말을 소재로 하는 ‘세카이계(世界系)’ 작품들이 부쩍 많아진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저는 얼마 전까지 이게 일본 청년 세대의 우울한 세계관이 반영된 현상이라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에서 선생님께서는 ‘요즘의 일본 청년들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의 해석이 잘못된 것일까요? 세카이계 작품들은 중요하지 않은 곁가지인 걸까요?

A 노리토시 저도 신카이 마코토 씨의 <별의 목소리>(애니메이션 ․ 만화 둘 다 있음) 등 ‘세카이계’ 작품을 좋아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사회 분석을 수행할 때는 ‘세카이계’ 작품만을 중시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발행 부수만 놓고 보자면 <원피스> <진격의 거인> 같은 작품들이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원피스>를 관통하는 가치관은 ‘친구를 소중히 여기자.’입니다. 이렇듯 ‘동료’, ‘친구’를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는 현대 일본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세카이계’ 작품은 한 시대를 표현하는 것이라기보다 어느 시대에나 젊은이들이 한번쯤 품어 봄직한 가치관을 체현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걸 두고 일본에서는 ‘중2병’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죽음’, ‘사명’, ‘모험’이라는 주제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Q 장강명 최근 한국에서는 아베 신조 총리의 안보법제에 반대해 일본 젊은이들이 시위를 벌이는 모습이 뉴스에 많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의 청년 세대가 우경화하고 있다며 ‘넷우익’과 ‘혐한’을 지적하는 뉴스 기사도 많았습니다. 한국인의 관점에서는 참으로 혼란스럽습니다. 이를 어찌 생각해야 하는지요? 일본의 청년들은 ’우경화’, ‘혐한화’하고 있나요, 아니면 그 반대인가요?

A 노리토시 일부이기는 하지만 ‘혐한’ 감정을 지닌 일본인들이 존재한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일본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혐한’ 세력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혐한론> <만화로 보는 혐한류> 등 수많은 관련 서적이 베스트셀러가 되긴 했습니다만, 실상 판매 부수를 보면 <원피스>에는 한참이나 미치지 못합니다.

한편 극단적인 ‘호한’ 감정을 품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동방신기는 올해 5대 돔 투어(일본에서도 최상급의 인기 가수만이 할 수 있는 콘서트 투어)를 개최하는데요, 무려 75만 명이나 몰렸습니다. 그리고 가을에는 EXO가 도쿄 돔과 오사카 교세라 돔에서 6일 동안 콘서트를 연다고 합니다. 제 친구 중엔 “EXO가 좋아서 정말 미쳐 버릴 거 같아. 한국에 가서 살고 싶어. 아니, 한국인이 되고 싶어!”라고 말하는 이마저 있습니다. 또 빅뱅을 좋아하는 다른 친구는 “GD를 위해서라면 독도를 한국에 바칠 거야.”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어느 쪽이든 극단적인 예이지만, 여하튼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혐한화’든 ‘우경화’든 정말로 일부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일 뿐입니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등의 문제로 최근 한국에 대해 거리감을 느끼는 일본 젊은이들이 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혐오’ 수준의 감정까지 지닌 사람들은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Q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는 ‘자기만족적인 삶’을 추구하는 젊은 한국 여성이 한국을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이 주인공은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식으로 말하면 ‘컨서머토리화한 가치관’을 가졌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일본의 젊은 사회학자로서, 이 줄거리를 처음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느낌은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합니다.

A 노리토시 ‘이민을 간다.’라는 발상이, 일본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물론 일본에도 ‘자기만족적 생활’을 추구하는 내용을 다룬 소설은 제법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일본)를 떠나야지.’하는 발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거의 100퍼센트에 이르는 젊은이들이 “일본에서 태어나서 좋다.”라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일본에 있어 ‘컨서머토리화’의 목표 지점은 ‘친구들과 가깝게 어울리며 즐겁게 사는’ 라이프스타일입니다. 한국에서 ‘이민’이 현실성 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혹시 일본보다 한국 쪽이 젊은이로서 살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어쩌면 10년 후, 아니면 20년 후엔 일본에서도 <일본이 싫어서>(그래서 이민을 준비하는 이야기)라는 이야기가 유행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Q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를 출간한 뒤로 저는 엇갈린 반응을 듣고 있습니다. 주로 젊은 세대들은 ‘크게 공감이 된다’고 말하는 반면, 중장년층은 ‘청년 세대의 빈곤화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른 선진국들도 지금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라고 비판합니다. 중장년층의 지적에 대해 저는 ‘한국 청년들이 한국 사회에 염증을 느끼는 건 빈곤화 때문만은 아니다’라고 다시 반박하고 있지요. 만약 어떤 일본 소설가가 같은 줄거리와 같은 메시지로 <일본이 싫어서>라는 책이 출간한다면, 일본 사회의 반응은 어떨까요?

A 노리토시 일본에서는 10년보다 훨씬 전에 무라카미 류의 <희망의 나라로 엑소더스>라는 소설이 화제가 됐습니다. 전국의 중학생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북해도(훗카이도)로 이주해 자신들만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일본이 싫어서>가 출간된다면, 저 소설이 줬던 충격과 비슷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말하자면 ‘어른들(기성세대)’은 쇼크를 받게 될지도 모르죠. 하지만 일본의 기성세대는 ‘요즘 젊은이는 참 불쌍해.’라고 여길 수 있는 이야기를 참 좋아하기 때문에 달리 비판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오히려 젊은이들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할 우려가 있습니다. 대다수의 일본 젊은이들은 ‘일본을 버려야지.’라고 생각지 않고 있으니까요. 일본의 중학생, 고등학생의 행복도는 무려 90퍼센트에 이릅니다.

Q 장강명 선생님께서는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에서 "일본 젊은이의 ’이등 시민화’가 진행되고 있다"며 "일부 일등 시민이 국가와 기업의 의사를 결정하는 데 분주하고, ’이등 시민’은 태평하게 하루하루의 삶을 소일하는 구도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내다보셨습니다. 이때 선생님께서는 이 이등 시민들에게 Wii나 PSP를 쥐어주기만 한다면 폭동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도 하셨지요. 저는 이 대목에서 게임기보다 오히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떠올렸습니다. SNS에 대해 중요한 사회참여 도구이며, 새로운 민주주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기대를 거는 사람도 있고, 저처럼 오히려 정치 참여의 장애물이라고 보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A 노리토시 저는 SNS가 젊은이들의 사회 참여에 플러스 요소가 될 수 있고,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는 최근 실즈(SEALDs)라고 하는 젊은이들로 이뤄진 정치 단체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들은 국회 심의에 오른 ‘안전보장법안’에 반대하며 대규모 데모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당연히 SNS를 활용하여 사람들을 모으고 정보를 퍼트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단기적으로 사람을 끌어 모으는 데는 SNS가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한편 SNS는 ‘김빠지게’ 하는 효과도 불러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트위터에서 정권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엄청난 사회 운동’을 해낸 듯한 착시 효과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SNS는 ‘혹시 일어날지도 모를 사회 운동의 불씨’를 꺼트리는 것입니다.

또 SNS 등 새로운 매체는 어느 시대에나 상당히 과잉 평가돼 왔습니다. 1990년쯤엔 동구권 혁명과 소비에트 붕괴가 ‘위성 방송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고 말해지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매체에 지나치게 기대를 거는 건 실망감만 키우는 일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자제하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장강명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공대를 나와 건설 회사를 다니다 그만두고 ’동아일보’에 입사해 11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 2011년 장편소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문학상을, <2세대 댓글부대>로 제주 4.3평화문학상을,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문학동네 작가상을 받았다. 장편소설 <호모 도미난스>, 연작소설 <뤼미에르 피플>이 있다. 정확하고 통찰력있는 문장, 사회를 관통하는 시사성있는 소재로 대표되는 개성적인 이야기꾼으로 주목받으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후루이치 노리토시
1985년에 일본 도쿄 도에서 태어났다. 현재 도쿄 대학교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 박사 과정에 있으며 게이오기주쿠 대학교 SFC연구소 방문연구원을 겸하고 있다. 사회 현상보다 컴퓨터그래픽스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으나 우연한 기회로 듣게 된 사회학 수업 덕에 사회학자의 길을 선택하게 됐다. 그동안 대학교 연구실이 아닌 도쿄의 오모테산도, 서울의 전쟁기념관, 전 세계를 일주하는 피스보트 등 누구도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연구를 진행해 왔다. 

일본의 NGO 단체와 세계 일주를 하고 나서는 <희망난민 일행 여러분: 피스보트와 ‘승인 공동체’의 환상>을 썼고, 신생 기업 젠트(ZENT)의 마케팅 분야 관리자로 근무하고 난 뒤에는 <우리들의 앞날>을, 각국의 전쟁 기념 시설을 답사한 후에는 <아무도 전쟁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를 펴내기도 했다.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관심사는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다. 그는 복잡한 이론 연구를 지양하고 실제로 사람들이 살아 숨 쉬는 ‘진짜 사회’ 속에서 각종 사회 문제들과 정면 대결해 왔다. 숱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일본에서 출간된 지 2년 만에 15만 부가 팔린 화제작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또한 자신이 속한 세대의 진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기 위해 집필한 책이다. 장차 이 젊고 도발적인 사회학자가 과연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일본 전체를 긴장하게 만드는 학자. 지금은 세계 각지를 돌며 새로운 연구를 구상하고 있다.




* 해당 인터뷰는 ‘민음사’ 제공입니다.

* 장강명과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비정상 회담’ (2)는 다음 주 월요일(8월 17일)에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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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장강명

소설가. 장편소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등 다수의 장편소설과 연작소설집 『산 자들』, 소설집 『뤼미에르 피플』 이 있다. 르포르타주 『당선, 합격, 계급』과 에세이집 『5년 만에 신혼여행』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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