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5.03.24 조회수 | 5,255

인생은 쫓고 도망치는 유쾌한 활극



신혼여행 중 눈 덮인 대관령 고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도식과 옥자. 혼전 아이로 발목이 잡혀 억지 결혼한 도식은 기회는 이때다 싶어 기절해 있는 옥자를 두고 도망친다. 뒤늦게 깨어난 옥자는 지구 끝까지라도 따라가겠다며 도식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이들이 도착한 곳은 낯 모르는 절과 정육점이다. 알고 보니 이들은 그들의 부모가 만나 사랑하고 청춘을 보냈던 과거를 떠돌고 있었는데....

김도연의 다섯 번째 장편소설 <마지막 정육점>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두 공간, 즉 절과 정육점을 무대로 현재의 주인공과 과거 그들의 부모의 삶이 중첩되며 한 편의 활극을 보는 듯한 재미를 선사한다. 김도연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는 점이다. 이 소설에서도 그는 자칫 비현실적이고 유치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꿈과 환상의 세계를 놀랄 만큼 생생하고 현실적인 언어로 묘사함으로써 그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완성시켰다.

<마지막 정육점>은 정육점과 절이 있는 마을에서 자란 그가 언젠가는 꼭 써보고 싶었던 이야기였다고 한다. 핏물이 뚝뚝 흐르는 정육점과 살생, 육(肉)과는 거리가 먼 것 같은 절, 이 두 곳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다른 세계인지 작가는 독자에게 묻고 싶어하는 듯하다. 고향이 싫어 떠났다가 15년 전 낙향해 지금까지 강원도에서 소설을 쓰고 있는 그와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얼마 전 고향인 진부를 떠나 지금은 원주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정희성




Q 다섯 번째 장편소설 <마지막 정육점>이 세상에 나왔어요. 이 작품이 김도연 작가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오래전부터 저는 정육점이 있는 마을과 거기서 이삼십 리 떨어진 절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그 둘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 다른 눈으로 바라보면 아주 가까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언젠가는 그 이야기를 꼭 소설로 써보고 싶었지요. 그게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이야기를. 성과 속을 아울러 모두가 사람의 일이라는 이야기를.

Q 작품을 쓰시다 보면 술술 쓰이는 것도 있고, 힘들게 쓰이는 것도 있고, 혹은 쓰다가 포기하는 것도 있고 참 다양할 거 같은데요. <마지막 정육점>은 그 과정이 어떠했나요?

준비를 오래 했기에 별로 막히지 않고 작업을 진행했던 것 같습니다. 고향의 도서관에서 초반부를 썼고, 나머지는 원주의 토지문화관 집필실에 들어가 모두 썼습니다. 주로 밤을 새워서 써서 눈이 안 좋아졌습니다.

Q 소설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번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독자가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재미있었다고들 하는데 아마 재미없다고 하면 제가 기분 나빠할까봐 억지로 지어낸 것인지도 모르겠지요. 재미있게 읽었다니 저로서는 정말 고맙습니다.

Q 저는 개인적으로는 소설이라면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재미라는 게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은 ‘이야기의 힘’이라고 생각되는데, 김도연 작가는 소설의 재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요?

어려운 질문입니다. 지난 봄 토지문화관에서 이 소설을 쓸 때, 마침 산짐승들의 짝짓기 계절이라 밤이면 소쩍새가 줄기차게 울어댔지요. 작업을 방해할 정도로. 그런데 그 중 한 마리는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짝을 찾지 못해 울곤 했지요. 며칠을 계속. 나중에는 목이 쉰 채로 울더라고요. 문을 열고 나가 산을 향해 고함을 쳐도 소용없었어요. 하기야 소쩍새로서는 얼마나 중요한 일이겠어요. 결국 일기장에 이렇게 쓰는 걸로 타협을 했습니다. “밤새워 우는 소쩍새 다리를 붙잡고 건너갔던 밤”이라고. 이게 이야기의 힘이자 재미일까요? 그 간절함이 제가 쓰는 소설 속으로 들어오기를 소원했지요.

Q 소설을 쓰실 때 어떤 점에 가장 중점을 두시는지요?

전체 이야기가 한 폭의 그림 속에 온전히 들어앉기를 바랍니다. 독자가 다 읽고 나면 한 폭의 그림이 눈앞에 떠오르기를 소원합니다.

Q 이번 소설 이야기로 돌아와서, 소설의 주 무대인 정육점과 절은 뭔가 어울리지 않는 공간임에도 절묘하게 어우러집니다.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두 공간을 소설의 주 무대로 사용하신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사실 저는 그 두 공간이 같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절 안에 정육점이 있고, 정육점 안에 절이 있는데 우리는 일부러 그 풍경을 보지 않으려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곳을 분리하려고 애를 쓰지요. 우리의 어떤 선입견 때문에. 그러니 우리는 늘 고통스러워합니다. 저곳을 떠나 이곳으로 왔다고 여기니까요. 그게 사람의 마음이 만들어낸 감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는, 실은 그 두 곳이 같은 곳이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Q ‘마지막 정육점’은 세상 끝에 몰린 우리네 인생사를 은유하는 것 같은데요. 이 작품을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으셨는지요?

이 모두가 사람의 일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너무 막연한가요?

Q “인간 세상이란 배 가른 돼지들을 갈고리에 걸어놓은 정육점 같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세상을 너무 비극적으로 보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한데, 작가가 실제로 생각하는 인간 세상도 이와 다르지 않은가요?

마음의 시력이 약한 건 인간의 약점이자 장점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에 가서 아름다운 절과 부처님만 보고 이삼십 리 떨어진 푸줏간에 가서 피를 뚝뚝 흘리는 고기만을 보는 것이겠지요. 어쩌면 그 착시가 좋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네요. 하지만…… 그게 전부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Q 작가로서 <마지막 정육점>을 독자들이 어떻게 읽어줬으면 좋겠는지 바람 같은 게 있다면요?

주인공인 도식과 옥자의 도망치고 쫓는 유쾌한 활극이라고 보아주면 좋겠습니다. 긴 세월 동안요.



Q 첫 작품부터 꿈과 현실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소설을 쓰셔서 ‘현실 같은 꿈’을 쓰는 작가라는 수식어가 있어요. 다른 소설과 구별되는 김도연 작가만의 소설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환상적인 측면을 절묘하게 사용한다는 느낌도 받는데요. 이렇게 일관되게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형식을 취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소설에서 꿈과 현실이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게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형식이라면. 그렇게 해서 아파하는 사람의 마음을 잘 드러낼 수만 있다면. 또 하나의 이유는 아마도 제가 자란 강원도 산골의 정서 때문일 겁니다. 어려서부터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 법한 것들에게 더 친근함을 느끼며 자란 탓일 겁니다. 세 번째는 제가 스스로 만든 저의 감옥에서 탈옥할 생각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고요.

Q 어느 인터뷰에서 “꿈과 현실을, 도망치고 싶으나 어김없이 돌아오는 인생을 이해하려고 글을 쓰는 것 같다”라고 하셨는데요. 작가에게 소설이 “도망치고 싶으나 어김없이 돌아오는 인생”을 이해하기 위한 돌파구와 같은 역할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아마도 한 편 한 편의 소설을 쓰면서 나를, 주변을, 세상을 조금씩 알아나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끝이, 도착지가 어디인지는 아직 모르겠네요. 어쩌면 영원히 도착하지 못할지도 모르겠고요.

Q 작가에게 ‘꿈’은 다른 사람보다 더 깊은 의미를 지닌 것 같아요. 지금까지의 작품 세계도 그렇고 임순례 감독이 영화화한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도 실제로 꾼 꿈에 영감을 받아 쓰였다고 들었어요. 예지몽을 꾸는 사람도 있고, 꿈에 민감한 사람들을 주위에서도 볼 수 있는데 김도연 작가에게 꿈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꿈은 제 마음을 보여준 거울이었단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거울이었다면 아마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꿈은, 그 마음을 이리저리 비틀어서, 마치 암호처럼 뒤섞어버렸기에 제게 매력적인 소재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그 상형문자 같은, 사라진 나라의 언어 같은 꿈을 소설로 새롭게 해석하고 싶었습니다.



Q 고향을 떠났다가 2000년 1월에 다시 돌아와 지금까지 글을 쓰고 계시지요. 빈손으로 다시 고향에 돌아왔을 때가 가장 힘든 시절이었을 것이라 추측되는데요. 그때는 어땠는지 당시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한마디로 암담했습니다. 이 미터쯤 내린 눈 속에 파묻힌 느낌이었습니다. 십 미터도 넘는 잣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불어오는 바람에 휘청거리는 심정이었습니다. 수영도 할 줄 모르는데 갑자기 물이 눈썹 아래까지 차오른 것 같았지요. 지금 생각하면 엄살 중의 엄살이었던 것 같아 부끄럽기 짝이 없지요. 세상에서 나만 아프다고 징징거린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지금은 그 고향에서의 십오 년을 정리하고 원주에 와 있습니다. 이곳에서 이 년을 산 다음에 또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습니다. 고향 아니면 객지겠죠. 그렇게 마음마저도 낡아가는 것이겠지요.

Q 고향을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농사일 하는 게 너무 싫어서요. 농사꾼의 자식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면 즐겁게 농사일을 할 수 있을까요?

Q 어느 인터뷰에서 “아직도 내가 사는 이 지역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셨어요. 지금은 고향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고향에 대한 생각은 그때그때마다 달라지는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이 고향인지도 모른단 생각도 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엔 어떤 미묘한 감정들이 개입돼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한 사람의 벌거숭이 시절의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은 매력적인 곳이지요. 어린 시절 거의 지붕까지 쌓였던 폭설의 대관령이었으니까요. 그때 내렸던 눈을 떠올리면 아직도 마음이 환해집니다.

Q 고향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 관심이 없다는 말씀도 하셨어요. 그렇다면 이문구와 김유정의 아류밖에 안 된다며…… 그래서 환상적 측면을 더 극단적으로 몰아붙이고 싶다고 하셨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작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혹 아직 아니라면 지금은 어떤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아직 멀었습니다. 한참 멀었습니다. 이제 겨우 걸음을 뗐다고 하는 게 맞을 겁니다.

Q 소설을 읽는 이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럼 소설가의 밥벌이는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이는데 소설가로서 이 같은 상황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계속 이야기를 찾아다닐 겁니다. 소설은 사라질지 몰라도 인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야기는 계속된다고 봅니다. 그 이야기에 어떤 옷을 입히느냐 하는 것은 그때 생각하겠습니다. 설마 밥을 굶겠습니까?

Q 진부도서관 이야기가 인상 깊었어요. 고향에 돌아와서 어슬렁거린 지 삼 일째에 발견했는데 마치 자신을 기다리기라도 하듯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었다면서요. 마땅히 갈 곳도 없는 작가에겐 마치 구세군과도 같았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어땠나요? 당시의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한 십오 년 동안 고향의 자그마한 도서관에서 소설을 쓰고 책을 읽고 가끔 낮잠을 잤습니다. 도서관 벤치에서 다방 커피를 배달시켜 마시기도 했고 술 냄새를 풍긴다고 쫓겨나기도 했지요. 그 도서관은 마치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 같았습니다. 흰 등대가 있는. 어떤 때는 폭설 속에 갇혀 있는 절 같은 곳이기도 했지요. 고향에서 제가 낮 동안 숨어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습니다. 아리따운 사서를 훔쳐보며 백일몽을 꾸었지요. 손등에 침을 흘리며. 저는 그 도서관의 가장 오래된 손님일 것입니다. 그동안의 모든 사서를 짝사랑한 유일한 소설가가 분명합니다.

Q 지금은 작업실이 있는데도 변함없이 매일 도서관에 출퇴근한다고 들었어요. 지금도 아홉시에 가서 여섯시까지 머무시나요? 작업실이 있는데도 도서관에 매일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진부도서관은 작아서 편합니다. 긴장감을 유지시켜줍니다. 사서가 보는 앞에서 소설을 쓰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하지만 지금은 진부도서관을 떠나 원주의 도서관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원주의 도서관은 매우 큽니다. 책도 많습니다. 자료실도 넓습니다. 드나드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바로 진부도서관입니다. 떠나고 싶지 않았는데 현실은 진부도서관을 떠나야 했습니다. 진부도서관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그게 쉽지가 않네요.

Q 실제로 도서관을 소재로 소설도 몇 편 쓰셨고, 사서와의 로맨스도 있었다고 들었어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 로맨스 살짝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소설가의 일방적인 짝사랑입니다. 사서가 바뀔 때마다 짝사랑했습니다. 모두 퇴짜 맞았습니다. 그래서 소설을 썼습니다. 그게 저란 소설가의 운명인 모양입니다.

Q 김도연 작가 일화 중에 등단작인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첫 독자가 집에서 기르는 개였다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더라고요. 신문 칼럼 등에서 고라니, 멧돼지, 쥐, 소들의 후원으로 소설가가 됐다고 공공연히 말씀하셨다는 말도 들었는데요. 이번 소설에서 사람이 돼지, 쥐 등과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부분도 그와 같은 본인의 실제 경험이 녹아들어 있는 건가요?

시골은 사람보다 짐승이 더 많은 곳입니다. 더군다나 어느 집에 가도 가축들이 있었습니다. 가축은 들짐승보다 훨씬 가까이에서 사람과 관계합니다. 어쩌면 가족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어떻게 그들을 모른 척할 수 있겠어요. 저는 늘 그들의 말이 궁금했습니다. 그들이 인간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래서 말을 걸었던 것입니다.

Q 얼마 전부터 산악자전거에 빠지셨다는 근황도 들었습니다. 최근 산악자전거를 타고 다녀오신 곳은 어디인가요?

제 자전거는 삼천리호 자전거입니다. 싸구려라고 남들이 얘기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탔습니다. 오대산 상원사에도 갔고, 정선 동강에도 갔고, 정선 구절리에도 갔었습니다. 심지어는 파도가 밀려오는 백사장도 달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다른 사람이 타고 다니는 어떤 자전거를 타보았습니다. 그 자전거는 손가락 하나로 들 수 있을 정도로 가벼웠습니다. 이후로 제 자전거를 타지 않고 있습니다.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그게 너무 미안해서 이번 봄 원주에 꽃이 피면 치악산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 꽃구경을 시켜 줄 생각입니다.

Q 책이 나온 지 얼마 안 됐지만 혹시 다음 작품도 구상중인 게 있으신가요? 기다리는 독자들을 위해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중학생이 주인공인 폐광촌 이야기를 쓸 예정입니다. 폐광 속으로 들어갔다가 길을 잃은 아이들의 이야기. 그 깊고 어둡고 미로처럼 어지러운 갱도 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이야기일 것인데 아직 구상중입니다.

Q 긴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인터파크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옛날옛날에 여우가 우는 캄캄한 밤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이는 문을 걸어 잠그고 두꺼운 솜이불 속에서 꿈속까지 따라오는 그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고 합니다. 오줌을 참으며. 그 밤으로부터 우리는 얼마만큼 멀리 떠나온 것일까요……



이미회(북DB 객원기자)

어린 시절, 외롭고 힘들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가장 큰 위안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책이더군요. 가족들이 각자의 자리로 떠난 후 동네 카페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책을 읽을 때, 그리고 그 책의 느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올 때 그 어디서도 얻을 수 없었던 행복과 위안을 느낍니다. 내 안을 가득 채웠던 그 느낌을 함께 나누고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습니다. mimibab@naver.com

작가소개

김도연

강원도 대관령 출생. 강원대학교 불문과 졸업. 2000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작품 활동 시작. 소설집 [콩 이야기], [이별전후사의 재인식], [십오야월],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장편소설 [누에의 난], [마지막 정육점], [산토끼 사냥], [아흔아홉], [삼십 년 뒤에 쓰는 반성문],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산문집 [눈 이야기], [영], [강릉 바다]등이 있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임순례 감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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