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3.11.08 조회수 | 6,568

소설이 된 성석제의 여덟 개 화두


문을 열다 발가락이 문에 끼고, 말투나 옷차림이 거슬리는 사람과 마주한다는 것. 조금 불편하지만 인생이 바뀔 정도의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 접촉사고를 내거나 당하고, 여행길에서 성가신 사람을 만난다는 등의 이야기는 하루 자고 나면 잊혀질 법한 익숙한 일이다. 하지만 성석제 작가는 이 이야기 속에 능청과 풍자, 재미를 담아냈다. 속도와 변화에만 관심을 두는 현대의 삶에서 사소한 얘깃거리를 포착, 독자들에게 펼쳐낸다.


2008년 <지금 행복해> 이후 5년 만에 낸 소설집 <이 인간이 정말>은 제목만으로도 웃음이 터져나오는 ‘성석제스러운’ 작품 8편이 담겼다. 인생을 흔들 대단한 사건도, 비범한 영웅도 등장하지 않지만 무심코 지나쳤던 어떤 ‘순간’의 기억이 발견되는 재미를 지녔다. ‘이야기꾼의 귀환’을 알리며 돌아온 ‘능청꾼’ 성석제 작가를 홍대에서 만났다.

 

 

 


‘궁극의 이야기꾼’. 성석제 작가에게 늘 따라붙는 수식어다. 소설가는 모두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지만, 특히 성석제 작가는 데뷔 때부터 ‘맛있는’ 이야기를 짓는 소설가로 독자들에게 인정 받아왔다. 하지만 1986년도에 시인으로 등단한 이후, 소설을 쓰는 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시인이라는 조금은 다른 길로 창작을 출발했기 때문에 소설을 잘 몰랐어요. 정통 스타일이라고 해야 하나, 소설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그 스타일을 몰라서 한동안은 시를 쓰는 기분으로 소설을 썼던 것 같아요. 소설가 흉내만 내다 등단한 지 9년이 흘러서야 첫 소설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죠”


1995년 문학동네에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를 발표한 후 성석제 작가는 그 후 부지런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쓴 작품만 200여 편이 넘는다고. 이번에 출간한 <이 인간이 정말>은 그가 발표한 열두 번째 소설집으로, 2008년부터 집필한 여덟 편의 작품을 실었다.


“5년만에 나온 소설집이에요. 요즘은 보통 7~8편의 작품을 모아 소설집을 만들잖아요. 그런데 제가 처음으로 낸 소설집 <그 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에는 64편의 작품이 실렸었어요. 시집은 페이지는 얇고 편수가 많이 실리잖아요. 그 생각을 해서 그런가. 단편이라고 볼 수 없는 한 페이지, 한 줄짜리 작품도 있었죠. 요즘 이렇게 적은 편수로 소설집이 만들어지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해요.”


과거 한 편집자는 소설가로서 성석제가 가장 빛나는 순간은 역시 짧은 글을 통해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한 적이 있다. 유독 필모그래피에 장편소설보다 단편소설이 많은 이유를 물으니, 문장에 대한 호흡을 이야기한다.


“단편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압축성, 그 안에서 상징까지 가능한 문장들이 지금까지 제 소설에 많은 역할을 했어요. 장편소설이 발효가 잘 된 음식이라고 한다면 단편소설은 신선한 재료와 잘 만들어진 조리기구로 순간적으로 맛을 내는 음식이죠. 장편은 쓰면서 긴장을 늦출 수가 없잖아요. 쓰면서도 빡빡하고(웃음). 서사에 가까운 장편보다 한 장면을 묘사하는 단편이 일상의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 맛이 있는 것 같아요.”


제목부터 웃음을 자아내는 <이 인간이 정말>은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특유의 시선이 반영된 작품이다. 조금은 부족하고 더러는 억울한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너무 익숙해서 느끼지 못했던 일상 속 삶의 모습에 집중한다.


“전 사소하고 평범한 것들이 좋아요. ‘범상치 않은’ 일을 소설로 쓸 순 없는 것 같아요. 천하제일의 미남이라든가 천재적인 과학자 이런 사람들은 제 소설에 포섭되지 않아요. 현실적으로 공감할 수 없는 건 SF가 되어버리죠. 눈에는 안보이지만 우리의 인생, 존재 자체를 결정적으로 좌우할 수 있는 미세한 부분을 캐치하고자 했어요. 소설의 균형을 맞추면서 인생의 작은 기미를 발견해 내려고 여전히 애쓰고 있습니다.”

 

   

 


표제작 ‘이 사람이 정말’은 맞선 자리에 나온 백수가 인터넷에서 습득한 잡다한 정보들을 저 혼자 쉴 새 없이 늘어놓아 여자를 질리게 만드는 과정을 담았다. 그는 작품 이야기를 하면서 쓰기 전에 겪었던 에피소드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어느 날 글을 쓰기 위해 카페에 앉아 있는데 도무지 글이 안 써지는 거예요. 멀건이 앉아 있다가 옆 좌석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를 듣게 됐어요. 끊임없이 자신의 얘기를 하는 그 사람의 말을 들으며 내용과 말하는 패턴 등을 관찰했더니 재미있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저에게는 일종의 광석 같은 거예요. 작가는 끊임없이 광석을 채굴하는 광원 같은 존재죠. 최근 데이터마이닝 산업이 발전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작가에게는 그렇게 수집한 소재들이 데이터마이닝 아닐까요.”


제목과 내용을 듣고 단순히 흥미로운 에피소드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인간이 정말’은현대인이 가진 설익은 지식이 가져오는 ‘소통의 부재’의 문제 또한 꼬집는 작품이다. 성석제 작가는 영문도 모르고 끌려나와서 그 시간을 견뎌야 되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라고 충고한다.


“환경이라든가 자본의 독점, 이런 위협성을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다 알고 있잖아요. 모르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해결 할 수 없어서 가만히 있는 거죠. 삼겹살을 먹으러 같이 가놓고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삼겹살을 먹지 말자”고 설토 하는 사람을 만나면 참 곤란해요. 마음먹고 실천하지 않는 이상 개인의 힘으로 환경을 바꾸긴 힘들어요. 전부 구조적인 문제거든요. 그런데 ‘도덕적으로 이게 옳다, 내 말이 맞고 너희는 모른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우월의식을 꼬집고 싶었어요. 얕고 불편한 지식들로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실제로 많아요. 그걸 견뎌야 하는 사람은 얼마나 고통스럽겠어요. 서로 유한한 인생을 살면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할 순 없죠. 독자 분들도 그런 일이 생기면 무리하지 말고 바로 도망치세요(웃음).”


일방적으로 남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경미한 접촉사고가 보험사기로 이어지는 사건을 겪어야 하는 책 속 주인공들의 실체가 궁금했다. 말 한마디로 죽음까지 맞이하는 사람까지 크건 작건 이번 소설집에서는 억울하지 않은 사람들이 없다.


“우리 모두 늘 ‘바른 생활 사나이’처럼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현실을 조금 삐뚤게 봤어요. 다들 일탈을 계획하고 규칙을 위반하고 그러면서 살아가잖아요. 사회 속에 있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 중에 ‘이런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로 인해 누군가는 억울하겠다’라고 생각하고 소설을 썼어요. 고독한 내면, 깊은 생각, 특별한 경험 등에 대해서는 잘 써지지 않아요. 우리가 늘 가지고 있던 시선들을 끄집어내어 글을 쓰는 저를 보면 태어나서 소설을 쓰고 있다는 게 스스로 참 다행스러운 것 같아요.”

 

 

 

이번 소설집에서 유일하게 그 배경이 조선시대인 작품 ‘유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유희’는 복수군의 장수로서 단 한 번도 왜군과 싸우는 일이 없었던 기원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기원에 의해 무참히 죽은 유희의 이야기다. 다른 작품의 인물들이 일상 속에서 소소한 피해를 입는 동안 ‘유희’는 말 한마디로 죽음까지 맞이한, 이번 작품집에서 가장 억울한 인물이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펼쳐내면서 성석제 작가는 진실 속에 숨겨진 거짓말을 찾아냈다.


“얘기를 접한지는 꽤 오래됐어요. 한 20년 전이었나 지금은 돌아가신 외삼촌 댁에 갔다가 들은 이야기에요. 그 지역에 있었던 인물이라고 하더라고요. 듣고 정말 어이가 없었죠. ‘정말 그런 일이 있었을까’ 생각해보니 흔히 우리가 역사라고 생각하는 사실 중에는 거짓말 같은 일들이 참 많아요. 실록이 거짓말 같고 야사가 더 진실 같은 그런 사건들이요. 진실과는 상대가 안 되는 거짓말 같은 소재를 찾은 거죠.”


성석제 소설에 있어서 유머와 능청, 너스레는 빠질 수 없는 요소. 작가는 인터뷰 내내 많은 이야기를 하고 많이 웃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기보다 이야기를 즐겁게 풀어내는 ‘재미있는 사람’에 가까웠다. 이런 작가 본연의 모습이 작품에 베어 나오는 건 아닐까. 예전 한 인터뷰를 통해 “아까울 것 없는 웃음을 우린 너무 아끼고 있다”고 이야기했던 낙천적인 작가의 모습이 떠올랐다.


“제 스스로도 저를 ‘웃기는 인간’으로 생각해요. 잘 웃는 편이고요. 낙천성은 그냥 제게 남들보다 조금 더 주어진 기본적 자세 같아요. 자연 속에서 태어나 자랐고 큰 트라우마나 사고없이 살았고, 소설가로서도 운이 좋았죠. 좋은 사람들은 만나서 즐겁게 지내는 것에도 익숙하고요. 많은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신나게 살 수 있을까’를 이야기하며 살았아요. 저라는 인간의 기본 조건이 그래요. 어른이 되고 나이가 들면서 계속 좋은 날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사람이라는 게 어느 때는 혼자 있고 싶고 별일이 많죠. “혼자 있고 싶다”고 해놓고 “외롭다”고 푸념하는 저를 보면 가끔 웃음도 나와요. 그런 제 모습과 주변의 이야기들이 소설로 포착되는 것 같아요. 제 작품이 익살, 웃음, 해학이 많이 표현되어 있다고들 하시는데, 의도적으로 표현한 적은 없어요. 대개 유머라는 건 의식하는 순간 얼음이 되어버려요. 어떤 소설가가 작품 안에 웃음을 의도하겠어요. 독자와 가벼운 펀치를 주고 받는 정도에요. 전.”


수많은 작품을 써내려 간 그이지만, 이번 소설집은 그에게 세상을 보는 또 다른 시선, 자신이 살아온 시간과 오래된 기억을 꺼내게 한 책이다. 그는 이번 작품을 내고 시간의 흐름 또한 느낄 수 있었다고 전한다.


“이번 책에는 제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내서 쓴 작품이 많아요. 다 쓰고 이렇게 묶고 나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싶어요. 유년기와 첫사랑, 청춘 시절처럼 오래된 기억은 늘 안쪽 깊숙한 데 숨어있죠. 이번 책을 통해 오래된 기억도 이야기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기억을 꺼내놓고 나니 지금은 사람들도 많이 달라져 있고 세상도 빠르게 변한 느낌이에요.“


  



성석제 작가는 올해로 54살이 되었다. 그는 중년작가로서 ‘중년’들이 지닌 삶과 생각을 더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나이든 인물을 늘 소설 한 켠에 등장시킬 만큼 중년을 좋아하던 그였지만 자신이 비로소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세상에는 너무 세월 묻은 이야기가 없었다.


“TV에서나 어디나 너무 청춘들 중심으로 세상이 흘러가는 것 같아요.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누구나 나이를 들고, 변수를 즐기던 젊은 시절을 지나 점점 상수화가 되어가죠. 서른 중반만 되도 살아가는 패턴이 정해지잖아요. 저 또한 남편, 아빠로서의 역할은 물론 취미까지 다 정해진 채로 살았어요. 이런 중년들의 생활이 어쩌면 지루할 수도 있지만 전 개인적으로 소설을 쓸 때 나이든 사람들을 내세우는 편이었어요. 변하지 않아서 더 믿음직스러웠달까. 앞으로도 계속 중년, 노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범위를 소설로 보여주고 싶어요.”


이런 그가 요즘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바로 ‘욕’이다. 남의 인격을 무시하고 무조건적으로 누군가를 깎아내라는 현실을 관찰했기 때문이다. 울퉁불퉁한 세상에 대한 또 다른 시선이 생긴 셈이다.


“요즘은 욕이 잘 들려요. 공격적인 태도로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을 박살내는 그런 일을 자주 겪었어요. 살아가는 게 각박해진거예요. 일상을 그리는 작가로서, 사람들이 다 욕만 하고 산다면 그것 또한 일상이겠죠. 가끔 인터넷 기사를 보다가 댓글들을 보면 어쩜 이렇게 창의적인 욕을 할까 신기할 때가 많아요. 용어도 잘 줄이고, 발상이 신기할 때가 많죠. 분노하고 공격하고 화를 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여기저기서 보다 보니 ‘욕을 하는 게 일상이 된 세상인가’하는 생각이 들어버렸어요. 상대를 먼지보다 못한 존재로 깔아뭉개는 것이 ‘욕’이라고 생각하는데, 문학으로 활용 가능한 방법을 생각해보고 있어요.작품이 된다면 착상을 하는 동안 저 또한 황폐해지겠지만요(웃음)”.


소설을 쓰는 건 거창한 사명 때문이 아니라 ‘이게 재미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뿐이라는 그는 “소설은 인간을 드러내는 방법”이라고 덧붙인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그에게는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고, ‘궁극의 이야기꾼’이라는 수식어는 이런 그에게 여전히 유효해보인다. 그에게 내재된 이야기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야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닐까요. 나무가 뿌리와 줄기를 내리고 물을 빨아들여서 열매를 맺듯이  그런 시스템이 제 안에 만들어져 있는 것 같아요. ‘무엇을 쓰지’라고 고민하다 보면 얘깃거리가 찾아지기도 하고 사람들을 보면 보여요.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게 인간이니까요. 그런 이야기를 만나는 게 우연인 것 같아도 저에게는 필연적인 요소였던 거예요.


성석제 작가는 인터뷰 내내 노트북을 앞에 두고 있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간혹 키보드로 문장을 옮겼다. 자신이 쓴 문장을 바라보고 있는 그에게 어떤 작품을 쓰고 있는지 물었다.


“최근에 계간지에 연재를 하나 시작했어요. 현재는 연재 외에 다른 생각은 별로 안하고 있어요. 작품이 끝나면 다시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아가겠죠. 나를 가만히 두고 그렇게 지내려고 해요.”


마지막으로 그는 독자들에게 현실에 대한 염려와 함께 작지만 진지한 충고를 전했다. 스마트폰의 발달로 사람들이 아무것도 기억을 안 하는 현실과 타인과 나누는 긍정적인 교감이 줄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인간이 정말> 작가의 말에는 이런 그의 생각이 오롯이 담겨있다.

 

오늘이 어제의 기억으로 지탱되듯이 현재를 기억함으로써 미래가 만들어진다. 잊지 말지니, 기억의 검과 방패로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것을. 함께 환호하며 가슴 벅찬 기쁨을 누리리라는 기약을.

<이 인간이 정말> 작가의 말 中

 

“점점 공공의 기억이 줄어들고 있어요.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는 기억, 가치, 사건들이 모여 역사가 되죠. 그걸 도구로 다가오는 것들과 맞서야 하고요. 그런데 요즘은 친구 전화번호조차 기억하지 않으니 마치 개개인이 갖고 있는 많지 않은 재산을 잘 보이지 않는 적들에게 빼앗기고 있는 느낌이에요. 이기려면 가지고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무력해지고 무기력해져요. 자꾸 기억하고 감각을 공유하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기쁨을 누렸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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