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터뷰

북&인터뷰 등록일 | 2011.12.05 조회수 | 10,263

말을 잃은 여자와 빛을 잃은 남자의 이야기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이야기다. 여자는 말을 잃었고, 남자는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 실어증. 그것이 처음 여자에게 온 것은 열일곱 살이 되던 겨울이었다. ’수천 개의 바늘로 짠 옷처럼 그녀를 가두며 찌르던 언어’가 갑자기 사라졌다. 낯선 불어 한 단어에 말을 되찾았던 여자는 20년 만에 다시 말을 잃었다. 이유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추측 가능한 이유는 이혼 뒤 혼자 키우던 아이를 소송 끝에 남편에게 빼앗겼고, 평생 여자를 감싸주던 엄마를 여의었다는 것뿐이다. 여자는 잃어버린 말을 되찾기 위해 낯선 언어, 희랍어를 배우기로 한다. 

남자는 10대에 가족과 함께 독일로 이민을 간다. 지극히 내성적이었던 남자는 문화와 언어와 현실의 균열 속에서 살아간다. 남자는 독일인들도 힘들어하는 희랍어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희랍철학을 공부하지만 이내 유전병으로 시력을 완전히 잃을 것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첫사랑의 실패. 남자는 한국으로 돌아와 희랍어 강사 생활을 시작한다. 그렇게 상실의 아픔을 겪는 여자와 남자는 희랍어라는 공통분모 안에서 만난다. 여자의 침묵과 남자의 어둠이 만나는 시간, 소설가 한강의 신작소설 <희랍어 시간>의 이야기다. 




소설가 한강이 쓴 <희랍어 시간>은 원고지 600여 장 분량의 ’짧은 장편’ 소설이다. 하지만 분량이 적다고 독자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적게 담긴 것이 아니며, 책의 두께가 얇다고 소설의 깊이가 얇은 것도 아니다. <희랍어 시간>는 말을 잃은 여자와 빛을 잃어가는 남자라는, 어쩌면 통속 드라마에서나 나올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소설은 구구절절한 긴 이야기라기보다는 정제된 언어로 압축된 짧은 소설, 혹은 압축된 문장이 만들어낸 시처럼 느껴진다. 그것이 <희랍어 시간>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자 저자 한강의 빚어낸 문장의 특징일 수도 있다.  




Q. 희랍어라는 소재가 독특했다. 고대 그리스어라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알게 됐나. 

작가의 말에도 밝혔는데 7,8년 전에 한 선생님을 만났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희랍철학을 공부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 희랍어가 어떤 언어인지 물어보면서 처음 접했다. 4천 년 전의 언어라서 그런지 매우 함축적이었고, 정교하기도 했다. 

Q.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내가 어떤 물건을 건네 받는 순간과 그 물건을 가지고 있는 순간, 그리고 물건을 다시 다른 이에게 건네거나 버렸을 때 모두 동사활용이 다르다. 영어나 한글은 능동태와 수동태가 있다면 희랍어는 중간태까지 갖추고 있다. 이런 함축적인 언어에 매력을 느꼈고, 언젠가 언어에 대한 글을 쓰게 될 때 이런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Q. 생각만 하던 희랍어를 이번에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소설에서 여자는 말을 잃었다가 나중에 한 마디를 뱉는다. 오랜 침묵에서 말이 나오는 느낌과 희랍어가 가지고 있는 함축적인 느낌이 같아서 희랍어를 소재로 사용했다. 

Q. 소설 속 여자는 실어증에 걸린다. 엄마를 여의고, 이혼한 남편에게 아이의 양육권을 뺏긴 이유 때문일까. 여자의 말처럼 실어증에 걸린 이유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손톱을 깎을 때 떨어진 살점은 금방 썩어 없어지지만 인간의 몸은 죽기 직전까지 썩지 않는다. 생명이란 이렇듯 소멸과 멀리 있지 않고, 소멸과 싸워나가는 것이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침묵과 멀리 있지 않으며, 침묵과 싸워나간다. 그런데 여자는 언어와 현실 사이의 긴장, 불화 등을 견디지 못해서 말하는 법을 잃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Q. 여자는 열일곱 살 때 이미 한 번 말을 잃은 경험이 있다. 당시에는 ’비블리오떼끄’라는 낯선 불어 단어를 듣고 다시 말을 하게 된다. 여자에게서 낯선 언어와 ’비블리오떼끄’는 어떤 의미인가.  

’비블리오떼끄’는 도서관이란 뜻이다. 이 말에 말을 다시 하게 된 이유는 낯설기 때문이다. 여자는 모국어에 굉장히 예민하고 고통을 받는다. 그래서 더 이상 모국어를 말하지 않게 되는데 낯선 언어를 통해 다시 모국어를 찾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말을 잃었을 때 희랍어를 배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Q. 왜 하필 ’비블리오떼끄’라는 단어를 썼나. 

그 단어를 그곳에 넣은 이유는 직관적인 것이다. 별 생각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 불어를 배웠는데 재미있게 생각했고, 좋아했던 단어였다. 소설을 쓸 때 생각해서 쓰는 것이 많지만 어느 때에는 이 단어처럼 직관적으로 쓰는 경우가 있다. 무의식을 더듬어보면 이유가 있겠지만 글을 쓸 때 그냥 나온 단어가 ’비블리오떼끄’였다. 

Q. 남자가 시력을 잃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소설은 언어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생명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남자의 눈이 멀어지는 것은 생명을 가진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보이는 세계를 점점 잃어간다는 것, 살고 있는 세계를 잃어간다는 것 모두다 우리가 겪고 있는 일이다. 

Q. 말할 수 없는 여자와 보이지 않아 들을 수밖에 없는 남자가 소통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소설 후반부에 ’어둠 속의 대화’라는 장의 이야기다. 앞을 볼 수 없게 된 남자가 여자와 긴 대화를 주고 받는 장면이 담겼다. 실제로 <어둠 속의 대화>라는 체험 전시가 있다. 조를 짜서 캄캄한 공간에 들어가면 어떤 사람이 안내를 해준다. 길을 건너는 것을 경험하거나 시장에서 물건을 고르는 체험을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둠 속에서 체험자들을 안내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앞을 못 보는 사람들인데, 어둠의 공간에서 역전돼 체험자들을 도와준 것이다. 당시 나를 잡아주는 손의 따뜻함과 부드러움, 어둠 속에서 나눈 목소리의 떨림과 그 말 자체를 생각하면서 글을 썼다. 

Q. 어둠 속에서 느낀 감정이 어떤 것인가. 

어둠 속의 대화란 이름을 붙이고 글을 쓰면서 어쩌면 침묵과 어둠 속의 대화가 진짜 대화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책에서 여자는 손가락으로 남자의 손바닥에 글씨를 쓰며 소통한다. 손톱을 바짝 깎아서 서로 다치지 않게 한다고 한다. 이런 방식은 인간이 가진 가장 연한 부분에서 이뤄지는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Q. 침묵과 어둠이라는 상처를 가진 남녀의 소통은 결국에는 조그만 희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고독하게 살아가는 두 사람이 점점 투명해지는 순간들을 통과해서 자신이 가진 가장 연한 부분을 꺼내서 만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인생에 대해 내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밝은 답을 소설을 통해 말한 것 같다. 

Q. 그 답은 소통일까. 

그렇게 읽을 수도 있겠지만 더 여러 겹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전작 <바람이 분다, 가라>는 ’우리는 꼭 이 삶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살아야 한다’는 답을 찍은 소설이었다. <희랍어 시간>은 여기서 한 발 나아가 ’우리가 살아야 하는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소설 속에는 당시에 내가 갖고 있었던 언어에 대한 고민도 담겨 있다. 

Q. 언어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전작 <바람이 분다, 가라>를 1000매쯤 써놓고 8개월 동안 아무것도 못 썼다. 읽는 것도 싫어서 피해 다니고 그랬다. 관념적으로 언어가 싫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내는 단어가 너무 싫었다. 정말 못하겠다는 느낌이었는데, 이럴 때 차라리 말을 잃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늘 그랬듯이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이 던져지면 글을 통해서만 이걸 뚫고 나갈 수 있었다. 이런 생각에 희랍어 시간 초고를 쓰고, 버리려고 했던 <바람이 분다, 가라> 원고를 보니 다시 고쳐서 쓸 수 있었다. 

Q. <희랍어 시간>은 이야기라기보다는 정제된 문장이 이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시처럼 느껴진다는 의견도 있다. 

한 번도 문장에 멋을 부리거나 시처럼 쓰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냥 정확하게만 쓰려고 했다. 문장에 행간을 넓게 둔 것은 그 순간의 조용한 느낌, 정적을 위해 넣은 것이고, 이탤릭체를 쓴 것은 실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나오는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한 것이다. 

Q. 말을 잃은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라는 조합에 대한 스토리를 기대한 독자들에게는 이야기가 다소 짧고, 공허하게 느껴질 것 같기도 하다. 

한 매체의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데 스토리가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스토리가 뚜렷한 소설이라고 말했다. 분량이 짧고 여자와 남자가 제대로 만나는 순간이 한 번이라서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야기는 굉장히 많다. 다만 길게 설명하지 않았을 뿐이다. 소설은 전반적으로 여자와 남자가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인데 다 설명하지 않고 조금씩 남겨뒀다.  

Q. 왜 그렇게 썼나. 

예를 들어 여자가 기르던 백구가 사고를 당해 죽기 직전에 여자를 문다. 이것은 단순히 백구에 대한 이야기만 담긴 것이 아니다. 죽기 직전에 손을 잡아줄 수도 있고, 핥아줄 수도 있는데 백구는 왜 죽기 직전에 물었을까. 살아 있는 존재는 그렇게 필사적으로 상처를 주는 것일까. 이런 물음은 여자가 갖고 있는 세계와 인간, 삶에 대한 고민과 닿아있는 것이다. 한 줄의 문장이지만 이와 같은 여자의 고통을 담아서 쓴 것이다. 

Q. 소설의 마지막에 여자는 다시 언어를 찾으면서 끝난다. 여자의 첫 마디는 무엇이었을까. 

마지막은 열어놨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그렇게 중요할 것 같지 않다. 어둠 속에서 긴 대화를 나누고 두 사람의 가장 내밀한 순간이 지나간다. 그 이후의 시간은 그냥 열어두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Q. 한강이란 이름은 본명인가 필명인가. 

본명이다. 원래의 뜻은 강은 길게 흐르니깐 오래오래 잘 살라는 의미인데 성과 붙으면서 사람들이 특이하게 생각한다. 어릴 때는 놀림도 많이 받았다. 중,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어려운 문제를 내고 풀이를 시킬 학생을 찾으면 난 그때부터 미리 풀고 있어야 했다. 어릴 적에는 그런 불편함이 있었다. 

Q. 그래도 한 번 들으면 쉽게 잊혀지지 않는 장점도 있을 것 같다. 

어릴 땐 그런 점이 너무 싫었다. 좀 잊혀지고 싶어서 학원에서 수업을 수강하게 되면 딴 이름으로 등록을 했다. 굳이 기억되는 것이 싫었다. 등단할 때도 이름이 주는 그러한 특별함이 싫어서 이름을 바꿔서 투고하기도 했다. 이후에 필명을 쓰겠다고 하니 주변에서 필명에 버금갈 이름을 갖고 있는데 왜 그러느냐고 말렸다. ’강’이란 이름이 그렇게 싫었던 것도 아니고, 작가로서 기억이 잘 된다는 것도 의미가 있어서 본명을 쓰고 있다. 

Q. 아버지 한승원과 부녀 소설가로 유명하다. 소설가인 아버지의 영향을 어려서부터 많이 받았을 것 같다. 

집안 환경은 ’방목’하는 분위기였다. 집에 책이 많아서 어디에든 책이 있었다. 어떤 책을 읽어도 아무 말씀이 없어서 어려서부터 문예지까지 그냥 막 읽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그런 환경이 작가인 나에겐 축복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그렇게 읽은 걸로 치면 지금보다 훨씬 더 글을 잘 써야 할 것 같다. 

Q. 글 쓰는 아버지를 보면서 글을 쓰겠다고 생각했나. 

어릴 적 아버지의 모습은 그저 몇 장의 사진처럼 남아 있다. 디스크가 있어서 글을 못 쓰실 때는 책상에 사전을 여러 권 쌓아 그 위에 타지기를 올려 놓고 서서 글을 쓰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런 뒷모습을 보면서 ’왜 저렇게 서서 해야 할까. 나는 저렇게 힘들게 살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

Q.
다른 직업을 꿈꿔본 적은 없나. 

대학생 때는 내가 재능이 없는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때부터 내가 쓰는 문장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내가 과연 글을 계속 쓸 수 있을까’란 생각을 늘 가졌다. 연극을 보는 것을 좋아해서 연극배우를 해보고 싶었다. 어둑어둑한 객석에서 불이 켜지기 직전의 무대를 보며 내가 저곳에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문학 작품이 주는 매력이 너무 컸기 때문에 글만큼 매혹된 것은 없었다. 

Q. 1990년대에 등단해 20년 가까이 작가로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독자들에게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너무 어려운 이야기다. 나는 기억되지 않고 내 소설이 기억되면 좋겠다. 작품 뒤에 숨고 싶다. 한 작품을 쓰고 나면 가장 힘든 것은, 집필하는 동안 내 인생의 거의 모든 부분을 차지한 그 작품의 세계에서 쫓겨나는 것이다. 그 순간이 힘들기 때문에 다시 다음 소설을 쓰는 것 같다. 이렇듯 내 인생에서는 소설이 나보다 더 큰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균형이 잘 잡힌 것이다. 독자들도 내가 내놓은 세계에 조금 더 집중하고 그 안에 있기를 바란다. 내가 어떤 작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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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한강

1970년 늦은 겨울 광주에서 태어났다. 1993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시 「서울의 겨울」 외 네 편을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흰],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등을 출간했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이상문학상, 동리문학상, 만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말라파르테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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