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듀나의 장르소설 읽는 밤 등록일 | 2020.12.30 조회수 | 1,859

돌아온 ‘원더우먼’...영화와 함께 즐기면 좋은 책

얼마 전에 ‘원더우먼 1984’가 나왔으니 슬슬 분위기를 타고 관련책을 소개할 때가 된 것 같다. 가장 추천하고 싶은 책은 질 르포어의 논픽션 <원더우먼 허스토리>인데, 이 책은 진짜 기원담이다. 원더우먼이라는 캐릭터가 어떤 역사적 배경 속에서 어떤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알고 싶은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그래도 코믹북 캐릭터이니 코믹북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미국 슈퍼히어로 코믹북엔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다. 뉴비들에게 접근성이 낮다. 웬만큼 유명한 주인공들은 이미 수십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 동안 같은 소속사, 심지어 가끔 다른 소속사의 수많은 다른 주인공들과 온갖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엮였다. 이들이 사는 세계는 툭하면 멀티버스로 갈라진다. 도대체 어디서 시작해야 하지? 이것들을 정말 다 읽어야 해? 무엇보다 이 이야기들에 끝이 있긴 한 거야? 만약 끝이 있다고 해도 한국 출판사가 이걸 다 번역해주긴 할까? 특히 마지막은 한국 독자들에게 정말로 중요하다.

가끔 리부팅할 때 시작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코믹북 슈퍼히어로들은 끊임없이 처음부터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 (그 때문에 몇십 년 동안 따라가다보면 이 반복 자체가 지겨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접근성이 아주 좋아지는 건 아니다. 새로 시작한다고 해도 독자들이 주인공과 고정 캐릭터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치고 전개하기 때문에.

얼마 전에 번역된 <원더우먼: 리버스 디럭스 에디션> 두 권은 새 독자들이 원더우먼을 시작할 수 있는 리부팅 포인트다. 2016년 5월에 시작한’ DC 리버스’라는 리런치 행사의 일부인데 여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정말로 장황하게 길어지니까 (그리고 여러분에게 그 정보들이 다 필요한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인터넷의 검색 기능을 활용하시기 바란다. 단지 ‘원더우먼’ 코믹북을 한 편도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 아주 심각할 정도로 까다로운 책들은 아니라는 건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2권 후반에 텔레비전 시리즈 1 시즌 정도 수준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된다.

기원담은 또 반복이 된다. 다른 차원에 있는 아마존의 섬 테미스키라에 미국인 군인 스티브 트레버가 떨어진다. 주인공 다이애나는 트레버를 데리고 바깥 세상으로 나간다. 나중에 원더우먼이라는 별명을 얻고 저스티스 리그의 일원이 된다. 단지 이 모든 일의 시대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이 아니라 현재 또는 가까운 근미래다. 코믹북에서 묘사되는 테크놀로지는 늘 현대를 넘어서는 경우가 있으니 정확한 시간대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겠지만.

기원담을 담고 있지만 아주 친절하지는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원더우먼 리버스’ 코믹북의 스토리 전개 방식이 조금 복잡하기 때문이다. 현재 배경의 이야기와 원더우먼이 막 바깥 세계로 왔을 무렵의 기원담이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아무 설명 없이 액션 중간에 독자들을 집어던지고 그 중간중간에 조금씩 과거의 사연을 알려주는 식이다. 인물 소개가 있지만, 그래도 에타 캔디(뉴 52 시절부터 흑인이다), 베로니카 케일, 바바라 앤 미네르바/치타, 마루/포이즌과 같은 캐릭터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보면 좋다. 후반의 국면 전환 하나도 지금까지 ‘원더우먼’ 서사를 따라온 사람들에게 효과가 가장 크다.

스티브 트레버가 연애 상대 겸 파트너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인간들 사이에서 음모를 꾸미는 그리스 신화 속 캐릭터들이 나오며 당연히 슈퍼맨과 배트맨도 등장하지만 이번 이야기에서 원더우먼과 얽히며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원더우먼의 친구였지만 나중에 저주로 치타가 되는 바바라 앤 미네르바와 신들의 마수에 빠진 딸을 구출하려는 베로니카 케일이다. 모두 ‘빌런’ 포지션인데, 둘 중 어느 누구도 단순한 악역이 아니고 원더우먼과의 관계도 입체적이다. ‘원더우먼 1984’에서 치타의 비중이 너무 낮아 아쉬웠다고 생각한 관객이라면 이 책들을 챙겨보면 좋을 거 같다.

‘원더우먼 1984’가 참고하고 인용했을 법한 장면들이 있다. 특히 초반의 쇼핑몰 액션신은 영화와 비교해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원더우먼이 부상을 입는 중후반의 위기 장면 역시 영화에 가져왔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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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듀나

SF작가이자 칼럼니스트. <면세구역> <대리전> <용의 이>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제저벨> <아직은 신이 아니야>와 같은 SF 책들을 썼고, '씨네21'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잡글들을 쓰며, 지금은 엔터미디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영화 '무서운 이야기 2'의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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