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Music Box 등록일 | 2013.11.22 조회수 | 6,108

설렘과 전율을 안기는 힙합 아이콘 에미넴

에미넴(Eminem)에 대한 시선과 평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누구는 그를 가장 성공한 백인 랩 아티스트라 하고, 또 누구는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꿈을 이룬 대단한 인물이라고도 하며, 때로는 디스의 화신이라고 이야기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를 둘러싸고 여러 평가가 오고 가지만 가장 성공한 백인 래퍼라는 의견만큼은 현재로서는 진리나 다름없다. 에미넴의 앨범이 전 세계적으로 1억 장 이상 판매됐다는 2009년 닐슨 사운드스캔의 발표가 이를 튼튼하게 뒷받침한다. 사반세기가 넘는 긴 기간 동안 활동하는 최장수 힙합 그룹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조차도 달성하지 못한 업적이다. 에미넴이 대단한 래퍼임은 명백하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한국에서 에미넴은 힙합과 동의어를 이룬다. 음악 마니아가 아닌 이라도 힙합을 이야기할 때는 꼭 에미넴이 화두로 등장한다. 힙합 팬들이 늘어났다지만 여전히 주류의 인기 장르는 아닌 토양에서 2012년 그의 내한공연은 순식간에 매진을 기록했다. 엄청난 티켓파워를 깔끔하게 증명한 사례였다. 이후 외국 힙합 뮤지션의 내한공연이 줄줄이 기획되고 대형 힙합 콘서트가 생겨나는 등 에미넴은 국내 힙합 공연의 확산에 촉매 역할을 했다. 그가 주연한 영화 [8 마일(8 Mile)]이 자전적 이야기라는 흥행 약점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2003년 국내에서 개봉했을 때 30만에 달하는 많은 관객을 스크린으로 불러들인 사실도 에미넴의 높은 인지도를 부연해 준다. 힙합의 아이콘이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위대해 보이기만 해도 그가 처음부터 잘나간 것은 아니었다. 마셜 브루스 매더스 3세(Marshall Bruce Mathers III)가 본명인 에미넴은 14살 때부터 랩을 하기 시작했고, 1996년 자신의 성장기를 다룬 데뷔 앨범 [Infinite]를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힙합 신에 입문했다. 하지만 앨범은 인디 레이블에서 출품했다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완전히 묻혀 버리고 말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힙합 신이 백인 래퍼들에 그리 관대하지 못해서 에미넴은 로큰롤이나 하라는 조소 어린 피드백을 받을 뿐이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가 가족을 등진 탓에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어려운 유년기를 보냈던 그에게 험난한 처지를 벗어날 좋은 일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성공은 요원했고 어머니와 아내, 딸과 함께 트레일러하우스에서 생활했다. 열악한 환경으로 말미암아 그는 이 시기 폭력적인 자아 슬림 셰이디(Slim Shady)를 가공해 1997년에 선보인 두 번째 작품 [Slim Shady EP]에 투영하게 된다. 같은 해 랩 배틀 대회인 [랩 올림픽(Rap Olympics)]에서 2위를 차지하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은 그는 1998년 힙합 전문지 소스(The Source)에서 유망한 신인을 소개하는 코너를 장식하며 이름을 알려 나갔다. 얼마 후 [랩 올림픽]에 참석했던 인터스코프 레코드사(Interscope Records) 직원의 중개로 [Slim Shady EP]가 거물 프로듀서 닥터 드레(Dr. Dre)에게 전해졌고, 에미넴의 재주에 만족해 한 닥터 드레는 음악감독을 자처하며 에미넴과 새 앨범 제작에 들어갔다.

 

실력 있는 래퍼와 멋진 비트를 주조하는 황금의 손이 만났으니 히트는 떼어 놓은 당상이었다. 중독성 강한 비트와 익살스러운 래핑의 ‘My Name Is’가 빌보드 싱글 차트 36위에 오르면서 2집이자 메이저 레이블 데뷔 음반인 [The Slim Shady LP]는 많은 이의 관심을 받았다. 많은 매체가 에미넴의 랩 실력과 표현력을 극찬했으며 이러한 평가는 2000년에 열린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랩 솔로 퍼포먼스’, ‘최우수 랩 앨범’ 두 개 부문을 수상하는 성과로 나타났다. 2000년에 발표한 세 번째 앨범 [The Marshall Mathers LP] 역시 빌보드 싱글 차트 4위를 기록한 ‘The Real Slim Shady’를 앞세워 히트했다. 또 다른 수록곡 ‘Stan’은 국내 광고 배경음악으로 쓰인 다이도(Dido)의 ‘Thank You’를 차용한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도 익숙한 힙합 노래로 자리 잡았다. 에미넴은 단숨에 유명인의 반열에 들었다.

 

히트는 멈출 줄 몰랐다. 4집 [The Eminem Show]의 ‘Without Me’와 ‘Cleanin’ Out My Closet’이 빌보드 싱글 차트 10위 안에 들었으며 자신의 첫 빌보드 싱글 차트 1위곡이 된 [8 마일]의 사운드트랙 ‘Lose Yourself’는 무려 12주 동안 정상을 지킴으로써 에미넴의 인기를 시사했다. 2004년에 발표한 5집 [Encore]에서는 ‘Just Lose It’, ‘Encore’, ‘Like Toy Soldiers’, ‘Mockingbird’ 등 네 편의 싱글이 빌보드 싱글 차트 40위 안에 진입해 또 한 번 저력을 입증했다. 2005년 컴필레이션 앨범 [Curtain Call: The Hits]를 발표할 때 은퇴를 암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최근 ‘Crack A Bottle’, ’Not Afraid’, ‘Love The Way You Lie’ 등의 연이은 히트로써 전혀 쇠함 없는 능력을 표출했다. 게다가 [The Marshall Mathers LP]부터 [Recovery]까지 다섯 번 연속으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오르는 대기록을 세웠다. 2011년에는 동료 래퍼 로이스 다 파이브나인(Royce Da 5’9")과의 듀오 배드 미츠 이블(Bad Meets Evil)로서 음반을 출시해 창작욕을 불태웠다.

 

2012년 5월 에미넴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새 솔로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후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The Marshall Mathers LP]의 속편은 아니지만 그 시절의 분위기를 찾으려는 의도로 타이틀을 [The Marshall Mathers LP 2]라고 지었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The Marshall Mathers LP]와 마찬가지로 에미넴이 10대 시절에 살았던 디트로이트의 집이 커버 사진으로 재등장해서 정감을 자아냈다. 전작들에 이어 이번에도 닥터 드레가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으며 힙합 명가 데프 잼(Def Jam)을 설립한 릭 루빈(Rick Rubin), 리하나(Rihanna), 힙합 신의 새로운 강자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떠오르는 여성 싱어송라이터 스카일라 그레이(Skylar Grey) 등 쟁쟁한 아티스트들이 참여한다는 보도로 팬들을 또 한 번 흥분케 했다. 여기에 매체들은 일제히 그의 신작을 ‘2013년 가장 기대되는 앨범’ 리스트에 올리면서 에미넴을 향한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표시했다.

 

리드 싱글 ‘Berzerk’는 빌보드 싱글 차트 3위에 오르며 화려한 복귀를 알렸다. 곡의 프로듀서를 맡은 릭 루빈은 마치 비스티 보이즈의 초기 음악을 송환한 것 같은 하이브리드 스타일로 1980년대 중반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뮤직비디오의 어안렌즈를 이용한 촬영, 키치적 영상 연출도 비스티 보이즈가 종종 행했던 방식으로 이 또한 그들에 대한 오마주로 해석할 수 있다. 록과 힙합을 끈기 있게 섞은 릭 루빈 특유의 반주와 에미넴의 장점인 생동감 넘치는 플로가 만남으로써 노래의 힘은 배가됐으며, 유명인을 야유의 대상으로 삼고 줄곧 당당하게 나아가는 가사도 노래의 기세를 곱절로 만들었다. 8월 말에 출시된 ‘Berzerk’는 10월까지 미국에서만 디지털 다운로드 100만 건을 넘기며 성공의 역사를 이었다.

 

비디오게임 [Call Of Duty: Ghosts]의 예고편에 쓰여 게임 애호가들에게도 어필한 두 번째 발매곡 ‘Survival’은 그가 현재의 위치에 서기까지 얼마나 거칠고 끈질기게 살았는지 언급하며 힙합 신이 적자생존, 승자독식의 냉정한 룰이 지배하는 세상임을 이야기한다. 디제이 카릴(DJ Khalil)이 주조한 록 스타일의 반주와 에미넴의 단호한 내용과 래핑은 강한 폭발력으로 나타났고, 디제이 카릴 등 작곡가, 프로듀서들이 결성한 4인조 밴드 뉴 로열스(The New Royales)의 리즈 로드리게스(Liz Rodrigues)가 참여한 파트는 짧은 분량임에도 귀에 빠르게 안착하는 친화력을 보인다.

 


세 번째로 발매된 ‘Rap God’은 엄청난 래핑으로 에미넴에게 그 어떤 토를 달 수 없게 한다. 재차 자신의 위대함을 주장하는 노래는 어마어마한 플로로 위용을 과시한다. 그의 래핑은 언제나 날렵했지만 여기에서는 그 수준을 넘어 아주 시원스레 날아다닌다. 특히 4분 25초 즈음부터 속력을 높여 랩을 하는 부분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힙합 신의 사건과 이런저런 인물을 예로 들며 자신을 치장하는 재치, 라임을 풍요롭게 구성하면서 조금의 막힘도 없이 속사포 같은 래핑을 구사하는 재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낙제생에다 약물에 절은 쓰레기였지만 실력이 영예를 가져다줬어’라는 가사는 그래서 공감에 또 공감을 부른다.

 

먼저 공개한 몇 곡만으로 에미넴은 음악팬들에게 충분히 설렘과 전율을 안겼다. 단 한 시도 자신감을 잃지 않는 노랫말은 근거 없는 거들먹거림이 아니라 뛰어난 소질의 발현임을 이번에도 온전히 음악으로 증명한다. 어째서 많은 평단이 그의 앨범들을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작품으로 꼽았고, 왜 그를 대중음악계의 위대한 인물로 선정했는지 그의 음악을 들으면 쉽게 인정하게 된다. 막대한 상업적 성공이 뒤따라오는 것은 당연했다. [The Marshall Mathers LP 2]는 에미넴에게 붙는 찬사를 더욱 번창하게 할 멋진 연단이 될 것이다.


한동윤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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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인터파크도서 음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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