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Music Box 등록일 | 2013.12.19 조회수 | 5,487

위대한 지휘자, 카를로 마리아 쥴리니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위대한 지휘자 카를로 마리아 쥴리니는 1914년 이탈리아 남동부에 위치한 바를레타에서 롬바르디아 출신 아버지와 나폴리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쥴리니는 이탈리아 북부 티롤 주의 수도인 보르짜노에서 유년기를 보내게 되었는데, 당시에 티롤지방은 이탈리아가 아닌 오스트리아에 속해있기에 그와 그의 가족은 독일-오스트리아 문화적 배경이 짙은 환경에서 살게 되었고, 심지어 독일 방언을 주된 언어로 사용할 정도였다고 한다. 쥴리니가 이탈리아 출신 지휘자임에도 불구하고 정통 독일 레퍼토리 작품 해석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게 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러한 성장배경에 있을 것이다.

 

쥴리니는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레미 프린치페에게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알레산드로 부스티니에게 작곡을, 그리고 베르나르디노 몰리나리, 알프레도 카셀라에게서 지휘를 배웠다. 재학 중에도 가족부양을 위해 산타 체칠리아 국립 음악원 오케스트라에 입단하여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오토 클렘페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빅토르 데 사바타, 프리츠 라이너,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그리도 브루노 발터 등의 대지휘자의 지휘로 음악을 연주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징집되었으나 집총을 거부 도피 생활을 하기도 하였으며, 1944년 6월 마침내 2차 대전이 끝나자 쥴리니는 드디어 고대하던 음악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다. 파시스트 정권에 협조한 전력이 없는 몇 안 되는 이탈리아 지휘자였던 쥴리니는 같은 해 7월 로마에서 열린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의 전후 첫 연주회 지휘를 맡아 성공을 거두었고, 1946년 로마 RAI 교향악단의 음악감독 및 수석 지휘자가 되었다. 1949년에 베네치아 음악제, 1952년 피렌체 음악제 등에도 출연하였으며, 1950년에는 <라트라비아타>로 오페라극장에도 데뷔하였다. 1950년에는 밀라노 RAI 교향악단을 창설해 수석 지휘자가 되었는데, 당시 쥴리니의 방송 연주회는 이탈리아 전역에서 많은 청중들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방송을 즐겨 듣는 이들 가운데는 전설적 지휘자 토스카니니도 있었는데, 토스카니니는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여 두 사람의 깊은 친교가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토스카니니는 당시 라스칼라의 수석지휘자였던 빅토르 데 사바타와 불편한 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쥴리니를 그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여 자리를 주선하기도 했는데, 덕분에 쥴리니는 사바타의 어시스턴트 지휘자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쥴리니는 사바타의 뒤를 이어 1953년 라 스칼라 극장 음악 감독으로 취임했고 5년 동안 이끌면서 13개의 오페라 프로덕션을 무대에 올렸다.
라스칼라를 떠나면서 쥴리니는 음악활동 주 무대를 런던으로 옮기게 되었는데 1955년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베르디의 <팔스타프>를 무대에 올리면서 영국에서 데뷔하여 큰 반향을 얻었고, 월터 레그가 리드하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의 일련의 연주회 및 레코딩을 통해 활발한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필하모니아와의 연주회와 레코딩을 통해 쥴리니는 비로소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일류 지휘자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1969년부터 1978년까지 쥴리니는 시카고 교향악단의 수석 객원 지휘자를 맡기도 했는데, 후에 “나에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오케스트라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아마도 시카고라고 말할 것”이라고 고백할 정도록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쥴리니는 시카고 교향악단을 지휘하면서 DG와 EMI 레이블을 통해 말러, 드보르작, 슈베르트의 주요 교향곡 등 자신의 주요 레퍼토리 이정표가 되는 해석을 담은 레코딩을 다수 남겼다.

 

 

 

1973년에는 비엔나 교향악단의 수석 지휘자가 되어 3년간 역임하면서 베토벤, 브루크너, 브람스, 모차르트 등 그가 즐겨 지휘하는 주요 레퍼토리를 대부분 무대에 올렸을 뿐만 아니라 베베른, 스트라빈스키, 블라허, 폰 아이넴 등 알려지지 않은 작품도 콘서트에서 소개했다. 또한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라자르 베르만과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을 레코딩 했는데 발매이후 줄곧 DG 메인 카탈로그에 머무르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받아왔다.

 

1978년부터 1984년까지는 주빈 메타의 뒤를 이어 LA 필하모닉 음악감독을 맡았다. 지휘자로서 정점에 서있다고 할 수 있는 60대의 나이를 LA 필하모닉과 보내면서 활발한 음악활동을 진행 중이었던 쥴리니는 부인 마르첼라가 불치의 동맥질환 진단을 받게 되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음악 감독직을 내놓게 되었다. 쥴리니는 가족과 함께 곧바로 고향 밀라노로 거처를 옮겼고 건강이 악화된 아내의 곁을 지키며 그녀가 세상을 떠난 1995년까지 줄곧 밀라노에 머물렀다.
쥴리니는 LA에서 활동 하면서 DG 레이블을 통해 훌륭한 레코딩을 많이 남겼다. 당시 DG에서 쥴리니를 담당했던 책임 A&R 프로듀서 귄터 브레스트는 쥴리니로 하여금 과거에 녹음했던 주요 레퍼토리를 다시 녹음할 수 있도록 했는데, 브람스 교향곡, 라벨, 드뷔시의 관현악, 베토벤, 슈만,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등을 재녹음하였다. 동일 레퍼토리의 EMI 레코딩에 비하면 모두 성숙하고 세심하게 정리된 해석이라고 평가되었다.

 

클래식 음반 산업이 재편성되는 동시에 CD로 대변하는 디지털 레코딩 기술이 전성기에 들어서면서 귄터 브레스트가 소니 클래시컬의 책임자로 스카우트되어 자리를 옮기자 쥴리니도 그와 새로운 계약을 하고 1990년대에 들어서자 다시금 본격적인 레코딩을 시작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레퍼토리가 과거 DG, EMI등 레이블을 통해 발표되었던 작품의 재녹음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소니 레이블에 남긴 쥴리니 레코딩은 지난 수년 동안 카탈로그에서 사라져 있었고 이들 중 몇몇 레코딩은 발매이후 얼마 지나지도 않아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져있었기에 이번에 소개하는 음반 세트는 쥴리니 후기 해석 스타일에 관심이 많은 음반 애호가에게는 매우 반가운 발매가 될 것이다.
그의 마지막 정식 콘서트는 1998년 7월 8일 슈투트가르트 방송악단을 지휘하는 연주회였다. 이후 쥴리니는 2005년 6월 14일 생을 마감할 때까지 대중 앞에서 완전히 사라진 채 여생을 보냈다. 2005년 이탈리아의 브레시아에서 쥴리니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틀 후 라스칼라 오케스트라는 베토벤 <영웅> 교향곡 2악장을 쥴리니를 위한 헌정 곡으로 연주했는데, 쥴리니 추모 콘서트는 쥴리니의 로스앤젤레스 시절에 어시스턴트 지휘자로 일했던 정명훈이 지휘했다.

 

쥴리니의 LA 필하모닉을 이어받아 음악감독을 역임했던 에사 페카 살로넨은 쥴리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쥴리니는 이 시대 마지막까지 남았던 위대한 낭만주의 지휘자였다. 그의 템포는 장엄하고 프레이징은 풍부한 표현력으로 다가오면서 밸런스는 완벽했다. 이 신사다운 인물은 그와 같이 일하는 음악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청중들에게 경이로운 영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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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인터파크도서 음반팀

K-Pop과 한류로 대변되는 요즘의 음악들. 획일화 되어 가는 요즘의 음악신에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지만 정작 다양한 음악을 찾기에는 정보도 시간도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인터파크도서가 국내외 음반사들과 함께 다양한 음악, 레이블 그리고 아티스트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묻혀있던 보석들의 빛이 발현되는 순간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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