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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4.09.16 조회수 | 1,306

[2014년 9월 2주] 북앤기자단과 함께 하는 이 주의 주목신간




#1. 열대 탐닉 _ 신이현

 

이상야릇한 열대과일의 맛 같은 열대 이야기

 

예상보다 조금 빠르게 찾아온 추석 연휴, 늘어지게 낮잠 자고 또 자던 어느 날 하나의 책이 도착했다. 휴일의 낮잠과 궁합이 아주 잘 맞는 책이었다. 불타는 태양과 끈적끈적한 땀이 흐르는 열대의 책이었다. 여태껏 볼 수 없었던 아주 특별한 여행기였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또 어디까지가 소설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여행기이기도 했다. 6년간 캄보디아에 있었던 소설가의 이야기라는 것도 책 앞에 붙어있는 정보를 통해서야 알 수 있었다. 다섯 가지의 열대과일로 이루어진 이 여행기의 구성은 이상야릇한 열대과일의 맛만큼이나 독특했다. 잭프루트, 망고, 두리안, 용과, 파파야의 다섯 가지의 과일은 각각 다섯 가지의 사람을 의미한다. 그녀가 지내던 곳에서 만난 다섯 명을 열대과일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열대의 나라에 가면 가장 먼저 맛보게 되는 것이 바로 열대과일이 아닐까 싶다. 열대의 더위란 살아 숨 쉬는 것과 같아서 공항을 나서는 순간 훅 하고 답답한 공기가 온몸을 감싸는데, 이때 시원한 열대과일을 먹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그 특별한 맛과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마치 과일을 맛보는 느낌이었다. 그 맛만큼 그들의 이야기도 특별했다. 늦게 사춘기를 겪어 결국은 자유로운 열대의 부랑자가 된 잭프루트,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게으름을 누리고 있는 망고 아저씨, 달콤한 맛과 달리 먹고 나면 뜨거운 열이 나는 두리안, 부처님의 마음을 삼킨 것 같은 순한 용과,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자 자신을 빗댄 나긋나긋한 맛의 포근한 파파야 이야기까지 무척 다채롭다.

 

보통 여행기라 하면 특정 나라나 도시의 풍경, 그곳의 사람들 이야기가 중심이 되기 마련인데 이 여행기는 그렇지 않다. 특정 도시나 나라의 관광지가 아닌 열대 자체의 이야기이다. 다섯 명의 인물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이 이야기만의 특징이다. 이 모든 이야기가 어디까지 상상인지, 또 어디까지 현실인지 알 수 없다는 것도 재미있다. 이전에 열대의 나라에 여행을 갔을 때, 사람을 지치게 하는 더위와 끈적끈적한 습기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못 견디던 그 열대가 누군가에게는 이토록 로맨틱한 낭만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뜨거운 공간에서의 시간이 생애 가장 아름다운 한때라고 말하는 저자에게 감탄했다.

 

국수를 삶아 그릇에 육수를 부으며 흘러가는 인생이 있었고, 국수 먹는 사람을 찾아 다니며 축복을 내리면서 흘러가는 인생도 있었다. 맨발의 어린 스님 발에 묻은 고기국물을 핥는 고양이의 인생도 있었고, 수북이 쌓이는 휴지의 인생도 있었다. 열대 우림에서 태어났다 어떤 여자의 눈물 젖은 일기장이 되었다가 폐기처분된 뒤 재활용 휴지로 다시 태어나 이곳까지 흘러온 어떤 나무의 인생도 있었다. 그 휴지 속에 발을 빠뜨린 채 한 소쿠리 나온 푸성귀들을 사랑스러운 손길로 국수 위에 뜯어 넣는 인생도 있었다.

 

세상에는 여러 인생이 있다. 여러 인생만큼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있고 그만큼 또 다양한 여행의 모습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또 한 발짝 나의 세상도 넓어지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맛있는 과일을 먹는 순간, 인생이야 어찌 되었든 상관없어져 버렸다. 우리는 같은 열대병에 걸렸고 그래서 행복해져 버렸다.

 

이런 여행기를 읽을 때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마구 솟구치는데 이번 겨울엔 나도 뜨거운 열대로 떠나볼까 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 떠나지 못하는 자의 심정은 어찌할 수가 없다. 뭐 어쩌겠나, 망고라도 먹어야지. 떠나기 전까지 달콤하고 시원한 열대과일이나 실컷 먹으며 기다려야겠다. 나에게도 올 그 뜨거운 한 순간을.
- 북앤기자단 12기 윤진영 (docyun)

 


#2. 그랑 주떼 _ 김혜나

 

’영원히 감춰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성희롱, 성폭행과 같은 성범죄는 살인만큼이나 무겁고 큰 죄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어딘가에서 성폭행은 영혼을 죽이는 것과 같다는 문구를 읽었던 적이 있다. 그만큼 성희롱이나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는 평생을 그 끔직한 기억을 가슴 한 켠에 묻고 살아간다고 한다. <그랑 주떼>의 주인공은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이다. 그저 아저씨가 도와달라는 말에 친절하게 도와주러 간 거밖에 없던 어린 여자 아이는 자기가 뭘 당했는지도 모른 채 끔찍한 일을 경험한다. 그리고 도움을 청한 여자 아이에게 쏟아진 세상의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분명 피해자는 여자주인공이건만 이 아이를 보호했어야 하는 어른들은 뒤에서 수군거리며 아이를 자신들의 세상에서 배척하기에 바쁘다. 소설 속 이 상황이 뼈저 리게 가슴 아프게 느껴지는 이유는 실제 우리 사회의 모습이 너무나 현실적으로 반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자 주인공 ’예정’은 발레를 가르치는 선생이지만 정작 자신은 춤을 추지 못한다. 그저 스트레칭을 하고, 발레 동작들만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예정의 발레 동작은 정확하고 아름답지만 그녀는 결코 동작들을 연결해 음악에 맞춰 춤을 추지는 못한다. 나는 그녀의 이러한 행동이 어린 시절의 상처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해본다. 아무도 어린 시절 그녀가 당한 고통을 이해하고 보듬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에 와서도 이 고통이 이렇게 또 다른 식으로 발현되어 괴롭히고 있는 게 아닐까? 발레 학원에서 강사로 일을 하면서 우연찮게 예정은 유치원생 아이들의 발레 수업을 보조하게 된다. 병아리 같이 귀여운 어린 아이들이 예정에게 도움의 손길을 구할 때마다 예정은 뭔지 모를 혼란에 맞닥뜨린다. 어린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예정은 어린 시절 자신이 잊고자 했던 그 끔찍한 기억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어린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그제야 자신의 과거의 기억을 스스로 치유한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일어났던 그 끔찍한 기억들은 자신의 탓이 아니라는 걸, 아이들이 모두 저마다의 빛으로 빛나는 것처럼 자신의 어린 시절 역시 병신, 왕따, 쓰레기가 아니라 아름다운 빛이 흘러나왔을 것이라는 걸 말이다. 예정은 모두가 돌아간 후, 무용실에서 드디어 춤을 춘다. 그리고 학창시절 자신이 동경했던 친구 마리가 했던 그 동작, ’그랑주떼’(Grand jete)를 하며 새로운 인생의 희망을 품는다.

 

 ’그랑주떼’는 불어로, 공중으로 날아올라 두 다리를 일자로 벌리는 발레 동작을 뜻한다. 책 제목이기도 한 그랑주떼라는 단어를 보면서 이 책에서 그랑주떼라는 동작을 통해 예정이 유년 시절부터 자신의 가슴 속 한 구석에 묻어둬야만 했던 상처를 던지고 가볍게 빛을 향해 나아가는 예정의 모습을 상징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정말 이상하게도 우리 사회에서는 성범죄 피해자가 가해자처럼 숨어 다닌다. 성범죄 피해자들은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외부에 함부로 말하기가 쉽지 않다. 사회의 시선과 반응 때문이다. 마치 피해자가 잘못한 것처럼 바라보는 시선과 잘못된 동정 때문이다. 개인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첫 걸음은 자신의 상처를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누구에게나 가슴속에 묻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누군가 용기 내서 어렵사리 꺼낸다면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면 좋을 것 같다.
- 북앤기자단 12기 김민정 (najoycjstk)

 


#3. 레드 셔츠 _ 존 스칼지

 

운명의 주인은 누구인가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 운명에 대한 이런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운명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무의미한 것인지도 모른다. 말 그대로 &rsqu o;초인간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운명이 신에 의해 결정되어 진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운명이란 유전자에 의해 이미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운명보다는 인간의 자유 의지의 가능성을 믿고 살아간다. 규정되어진 것은 없으며, 노력에 의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레드 셔츠>의 무대인 ’인트레피드호’에선, 이러한 믿음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현대 과학의 성과라고 불릴 수 있는 우주 함선에서,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일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인트레피드호’ 대원들은 탐사만 나가면 누군가가 반드시 죽는다. 그것도 땅벌레에게 뜯어먹힌다거나, 생체폭탄이 터진다던가 하는 당황스러운 방식으로. 더욱 기묘한 것은 탐사대에 5명의 고위 장교들이 포함되어 있으면 대원들의 사망률이 현저히 높아지는데, 막상 그들은 결코 죽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쯤되면 영화 ’데스티네이션’ 시리즈가 생각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레드 셔츠>의 분위기는 그렇게 공포스럽지 않다. 공포 영화 보다는, 다 죽어도 중요 인물은 살아남는 것으로 보아, 주인공은 반드시 살아남는 헐리우드의 B급 영화가 떠오른달까. 오죽하면 ’테러 발생시 살기 위해선 가족이 있는 30대 미국인 백인 남성을 따라다녀라’라는 우스갯소리가 생겼겠는가. 생각해보면 전쟁, 재난, 스릴러, SF, 공포 등 많은 장르의 영화에서,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들이 ’각본’을 위해 대수롭지 않은 이유로 죽어간다. 존 스칼지는 <레드 셔츠>를 통해 이러한 영화들을 비꼬며, 운명과 자유의지에 대해 말한다.

 

삶을 한 편의 연극에 비유하는 말이 있듯, 우린 ’운명’이라는 잘 짜여진 극본의 등장인물인지도 모른다. 다른 모든 것들을 무시할지라도,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러나, 우리 삶에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 일정 부분 운명의 존재를 믿을지라도, 그것에 대응하는 방식은 다를 수 있다. ’인트레피드호’의 많은 대원들은 그것을 무시하려 했고, 누군가는 그것으로부터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달 소위’는 투쟁했다. ’달 소위’의 투쟁은 자유 의지를, 운명을 결정할 기회를 갖기 위한 투쟁이었고, 가치 있는 죽음을 위한 투쟁이었다. 삶을 위한 투쟁이 아닌, 죽음의 가치를 위한 투쟁이란 것은 슬프게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주체적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찾고자 했기에 ’달 소위’는 ’인트레피드호’에선 죽음의 위협을 받는 ’단역’일지 몰라도, <레드 셔츠>에선 주인공이다.

 

그렇다면, ’운명의 주인은 누구인가?’에 대한 답은 중요하지 않다.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무엇이든 상관 없다. 그저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되면 되는 것이다. 동양의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깨달음이, 달 소위의 말과 맞닿아 있다. 

 

제가 정말로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 진짜인지 가짜인지 신경 쓰지 않아요. 지금 전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건 제가 해야 할 일이죠. 지금 그걸 하는 중이고요.
<레드 셔츠> 중

 

 

- 북앤기자단 12기 김민지 (kmj711)

 


#4. 살인자의 딸들 _ 랜디 수전 마이어스

 

’쿵’, ’삐그덕’, ’찐득한’, ’피’, ’흥건한’. 다소 그로테스크한 단어의 조합으로 첫 장을 열고 있는 이 책은 제목만큼이나 섬뜩하고도 흥미롭다. 별거 중이었던 아빠가 집으로 찾아온다. 문을 열어주지 말라던 엄마의 당부에도 첫째 딸 룰라는 문을 열어준다. 아빠는 말다툼을 하다가 우발적으로 엄마를 칼로 찔러 죽이고 둘째 딸 메리까지 칼로 찌른다. 이 사건으로 아빠는 감옥에 들어가고 두 딸인 메리와 룰라만이 남게 된다. 소설의 시작은 피가 흥건한 살인현장이다. 하지만 이 끔찍한 기억은 한 순간의 악몽이 아닌, 평생의 멍에로 소설을 이끌어간다.  감옥 간 아빠와 돌아가신 엄마, 그 어디에도 의지할 곳 없이 남겨진 두 딸에게 ’살인자의 딸’ 이라는 주홍글씨는 이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두 딸은 외가와 보육원을 전전하다 평범한 가정집에 입양되어 안락한 삶을 영위하는 듯하다. 하지만 살인자 아빠의 존재를 잊고 살고 싶어 하는 룰라와는 달리, 메리는 아빠를 면회하러 교도소를 꾸준히 방문한다. 이 둘은 판이하게 다른 성격만큼이나 아빠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도 다른 모습을 보인다. 둘의 상반된 삶의 태도는 이 소설을 지루할 틈 없이 내달리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살인자의 딸’이라는 주홍글씨에 힘들어하는 두 딸이 아니라 나름의 방법으로 이 무거운 멍에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모습이 인상 깊다. 물론 그것이 룰라에게는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고, 무시하는 것이기도 하는 것이고, 메리에게는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맞는 것이다’라고 딱 꼬집어 말 할 순 없지만 나는 메리의 태도를 본받고 싶다. 가장 아픈 부분을 세상에 내놓는 것. 어떤 책에서 그랬다. ’아픔을 세상에 내놓아야 무뎌지고 둥글어져 비로소 편안해질 것이라고.’

 

이 책은 단순히 살인을 파고드는 책이 아니다. 삶을 살다가 한번쯤 덮어 쓸 수도 있는 멍에로부터 벗어나는 법과 용서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책이 맞다. <살인자의 딸들>에서 우리는 ’살인자’가 아니라 ’딸들’에 더 집중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메리와 룰라가 ’살인자의 딸’이라는 멍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몸짓과 손짓에서 절절함과 용기의 무게를 가늠해 볼 필요가 있다.
- 북앤기자단 12기 김수현 (druas12)


인터파크 도서 문학인문팀 이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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