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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5.12.01 조회수 | 5,084

[2015 11월 4주] 추천도서 리뷰




[환상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책과 영화의 경계가 사라진 느낌이 든다. 과거엔 대부분 책이 영화로 만들어 지곤 했는데 요새는 그게 뒤집혀, 영화가 인기를 얻고 책으로 출판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최근에는 단순히 책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많이 줄었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로 이름을 얻고 책까지 내어 출판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영상 기술이 발전하면서 책에 있던 내용을 영화나 드라마로 표현 하는 것이 과거보다 쉬운 일이 되었고, 글과 영상은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게 되었다.


특히 무블 시리즈, 즉 영화를 의미하는 movie와 소설을 뜻하는 novel이 결합된 이 시리즈는 처음부터 영화와 소설 두 가지를 모두 염두에 두고 쓰인 책이다. 첫 번째 무블 시리즈는 <조선 누아르, 범죄의 기원>이었는데 영화로 제작된 <조선마술사>에 비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있었기에 한국의 영화계와 소설계 모두 풍부한 소스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과거에 비해 책을 즐기는 독자층이 점점 사라지는 지금, 이러한 작가들의 시도는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다.


완전한 순수 문학의 창작과 작품성, 그리고 그 의도도 좋다. 하지만 사람이 매일 같은 밥에 같은 반찬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법! 콧대가 하늘 높이 찌르는 도도한 것보다, 때로는 나의 취향을 살살 긁어주는 사근사근한 것이 끌리는 법이다. 대중들의 인기를 겨냥한 이 소설과, "마술"이라는 새로운 제재를 끌어다 사극에 넣은 작가들의 시도는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훌륭한 ’퓨전요리’를 맛보는 기분이었다. 오! 그리고 장담하건데 이 퓨전 요리들의 재료들도 매우 조화로웠다.


게다가 ’일거양득’으로, 바르고 좋은 이미지로 한창 인기를 얻고 있는 배우 ’유승호’씨가 주연으로 나오는 <조선 마술사>의 원작이라니, 흥미가 가지 않을 수 없는 요소들이 잔뜩이다. 밝히건데, 화자는 절대 유승호씨의 팬은 아니다. 하지만! 포스터를 보면 알겠지만 매끈한 얼굴에 여리여리한 가는 선, 신비로운 오드아이의 강렬한 눈빛, 그리고 그 동안 보여준 탁월한 연 기력, 좋은 시나리오! 이 모든 것을 갖춘 작품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더 힘들 정도이다. 영화는 12월 개봉 예정되어 있는데, 원래 가고 싶은 마음이 잔뜩 있었지만 책을 읽고 더더욱 영화까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마술사>는 책 표지만 봐도 삽화와 표지 디자인에 매우 신경을 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우선 민화를 떠올리게 하는 화법에 조선의 것이라고 보기엔 낯선 공작이 꼬리깃을 활짝 피고 있다.(또렷하고 예쁜 삽화를 보여주고 싶어서, 내 폰 카메라보다는 민음사의 광고 사진을 가져왓다.) 또한 군데군데 있는 삽화도 매우 아름답고 고전적인 미와 절묘하게 섞인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위 그림이 <조선마술사>의 대표적인 삽화인데, 아마 이 사진을 보고 이 책을 소장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늘 지도 모르겠다. 이 장면은 청명공주에게 선보인 ’환희’의 신비로운 마술을 표현한 장면이다. 일반 갓에 비해 높이도 높고, 양태도 긴 이상한 갓을 쓴 남자 ’환희’가 청명 공주를 안고 있다.


이 그림을 봤을 때 배우 유승호씨를 캐스팅한 후, 그를 실제 모델로 삼아 일러스트를 넣은 게 아닌가 싶다. 아니라고 하기엔, 마술사 ’환희’가 너무 유승호를 똑 닮았다. 그리고 이미 ’유승호’씨가 ’환희’라는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아니면 유승호씨의 이미지가 마술사 ’환희’에 딱 들어맞아서인지 유승호씨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얼굴과 ’환희’의 얼굴을 잘 매치시킬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와 책을 읽을 거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되도록 스포일러는 하지 않도록 하겠다. 나는 웬만하면 책의 줄거리를 구구절절히 리뷰에 쓰지 않는다. 내 리뷰의 목적은 내가 읽은 책에 대한 기록과 느낌을 남기고 싶어서가 가장 크지만, 다른 사람들이 책에 대한 소개를 보고 책 선정을 쉽게 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기 때문이다. 줄거리와 결말까지 밝혀 버리면 다른 사람의 즐거움을 미리 빼앗아 버리는 기분이 들고, 리뷰는 책의 요약을 적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읽고 싶은 책이 있어서 리뷰를 보다가, 줄거리를 다 알아버리고 흥미를 잃은 경험이 몇 번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제목이 대 놓고 말하는 것처럼 이 책은 바로 조선시대를 살았던 마술사 ’환희’와 소외된 공주 ’청명’의 이야기이다. 현대에 와서 인기 직업인 ’마술사’를 생각하면 안 된다. 당시 광대패에 속해 있던 ’환희’는 소위 천것이고, ’청명’은 조선국왕의 딸이니 둘의 신분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웬일인지, ’청명’은 책의 첫 장에서 조선땅이 아닌 영국땅을 밟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얘기이되 자신의 얘기가 아닌 것처럼 ’청명’과 ’환희’에 대한 이야기를 여왕에게 들려주기 시작한다.


사실 이 부분은, 많은 사람들에겐 신비롭고 빠져들기 좋은 도입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약간 이야기의 ’허구성’이 느껴지게 하는 대목이었다. 19세기 즈음의 영국과 서양 세계는 ’만국박람회’에서 아시아인이나 원주민, 아프리카인 등을 모아 놓고 "인종 동물원"같은 걸 한창 열던 때였다. 그런 시대상을 생각해 봤을 때, 동양에서 온 정체모를 이국인이 영국의 여왕 앞에서 그것도 즉위식 직전에 일대일 대면을 한다는 부분이 몰입을 방해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소설’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긴 하다.


환희와 청명은 둘 다 못 말리는 고집불통이다. 청명은 순해 보이지만 암투가 일어나는 궁궐에서 제 처지를 알고 몸을 숨길 줄도 아는 제법 강단이 있는 공주이고, 환희는 광대패로 이런 저런일을 모두 겪어 봤을 청년이다. 환희의 마술에 대한 집념을 설명해 보자면, 거의 요새 유행하는 말로 ’마술덕후’ 수준이다. 마술에 대한 애착, 완벽함, 분석, 노력 등 이 모든 것의 집합체가 바로 ’환희’인 것이다.


 이 소설은 재미있는 장치를 곳곳에 넣었다. ’공주’라는 만 백성이 우러러 볼 높은 위치에 있지만 내 놓은 공주 ’청명’은 책이 거의 유일한 친구이다. ’운영전’같은 소설을 읽고 필사를 하다가 그 뒷부분에 제 얘기를 소설처럼 꾸며 덧붙이기도 한다. 이 소설에는 ’청명’ 개인의 마음과 생각이 소설을 그림자 삼아 마음껏 펼쳐져 있다. 또한 청명과 환희가 만나서 마술이 펼쳐질 때마다 그 마술의 이름과 마술에 엮인 이야기들이 덧붙여 진다.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환희비급>에 담긴 ’토와술’ 항목의 그림을 글로 풀면 다음과 같다. 막와이 격언과 상통한다.


짖궂음.
사귀고 싶은 소녀를 일부러 괴롭히는 소년의 마음 같다. 마술사가 관심을 끌기 위해 입에 머금었다가 토하는 것은 개구리, 메뚜기, 지네 등 다양하다. 시간을 끌면 역효과가 나기 쉽다. 분위기를 살펴 짧게 선보인 뒤 다음 마술로 넘어갈 것.
-43P- 


 이 환희비급은 ’환희’의 마술을 모두 모아놓은 서책이다. 이 서책을 발췌하는 식으로 곳곳에 책에 마술의 내용이 삽입되어 있는데, 이것도 소소한 재미이다. 이 책이 만약 몇 부작에 이르는 장편 소설이었다면, 해리포터처럼 ’환희비급’이라는 소설이 스핀오프로 나오는 것도 무척 재밌을 것 같다.


조선 최상위 계층이지만 지울 수 없는 외로움의 그림자를 안고 사는 공주 ’청명’과 신비한 마술사 ’청명’은 첫 만남부터 평범하지 않다. ’환희’만의 신이한 공간 ’물랑루’(물랑루즈를 패러디 한 것일까?)에 간 ’청명’이 감히 물랑루의 왕인 환희의 제안을 그의 뺨까지 때리면서 거침없이 거절한 것이다. 뭐, 어떤 인터넷 소설의 부잣집 도련님 꼬시기 막장편 "감히 내 뺨을 때린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로 진행되긴 하지만(그리고 여기선 청명이 광대인 환희가 감히 바라볼 수도 없는 높은 위치이다), 여성 독자로서 어쩔 수 없이 환희와 청명의 로맨스에 빠져드는 것은 내 죄가 아니오! 거기다 환희에게 유승호씨가 오버랩된다면 더더욱 내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오! 그리하여 ’환희’는 자신의 호기심과 호감, 마술사로서의 자존심을 걸고 ’쳥명’에게 만남을 청하고 그들의 인연은 이어지기 시작한다.


이런 여성 독자들을 홀리는 로맨틱한 소설 전개를 제외하고도 ’영화’를 위해 쓴 ’소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들이 꽤 많다. 첫번째, 시각적인 요소를 극대화 했다. 아름다운 일러스트를 사용한 것 또한 비슷한 의도였을 것이다. 책을 읽노라면, 그 장면을 온전히 상상할 수 있다. ’환희’가 어떤 마술을 펼치면서 공주 ’청명’과 감정을 교류하는지, 그 마술은 어떻게 세세히 이루어지는지. 조금만 상상력이 있는 독자라면 머리속으로 마음껏 한 편의 영화를 찍을 수 있다. 둘째, 책 장이 영화 컷처럼 나뉘어 있다. 영화 장면 전환과 비슷하게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영화와 소설 모두를 염두에 두고 쓴 글이라는 것이 확 와 닿는다. 따라서 많은 독자들이 쉽게 즐기면서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조선 마술사>는 주제로 사랑에 대해 이야기 했으나, 나는 ’마술’이라는 소재를 조선의 공주와 광대에 엮어 낸 것이 더 인상깊었다. 마술이 온갖 현란한 문구로 묘사되는 것들도 신선했고, 마술에 별로 흥미가 없던 내게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마술에 대한 설명이 환상의 한 장면처럼 펼쳐졌다 마지막으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문구로 리뷰를 마무리 한다.


마술사는 판에서 모든 것을 바꾼다. 마술사의 ’변치 않는’ 진심을 논하는 일이 우스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마술사의 진심은 변화한다. 만물을 더 멋지게 바꾸는 것으로 마술사는 진심을 드러내는 셈이다. 변화가 마술사의 진심이란 사실을 알아차리는 이가 매우 적도라도, 단 한 사람뿐이라 해도, 단 한 사람도 없다 해도, 그래도!
-108, 109P-


- 2015년 11월 신간리뷰단 ’동그라미마름모’





[관계의 달인]


불혹을 넘긴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가 이렇소’ 자신있게 내세울 만한 분야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괜히 주눅이 들고 어깨가 움츠러들었던 적이 한 번쯤은 있었으리라 본다. 대학을 졸업하고, 헐레벌떡 취직을 하고, 그러다 또 어물쩡 결혼을 하고, 미처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엄마, 아빠가 되고, 육아서 한 권 읽지 않았는데 학부형이 되었으니 살아온 날들에 대해 괜히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그나마 위안 아닌 위안이라면 남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지 못한 나와 같은 범인(凡人)들에게 나는 이렇게 위로하고 싶다. 그쯤 살았으면 좋든 싫든 ’관계의 달인’ 정도는 된 게 아니냐고 말이다.


김난도 교수의 신작 에세이<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에 대한 리뷰를 쓰려는 당초의 계획에서 조금 벗어난 말이지만 나는 이따금 ’관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내게는 달리 내세울 만한 분야가 없어서일 수도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맺기에 신물이 난 탓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내가 정치인이나 연예인처럼 억지 웃음으로 사람을 살 정도의 넘치는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내 나이에 모자르지 않게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고 그 관계망 속에서 관계의 본질이 무엇인지 이따금 생각한다는 걸 말하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좋은 관계란 기본에 충실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부모는 아이의 보호자이자 인생 멘토로서의 역할, 친구는 즐겁게 어울릴 수 있는 상대로서의 역할, 부부는 종족 보존의 역할 등 관계에 있어서의 기본적 역할에 충실하면 관계는 절대 나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할 때 관계 악화의 가장 큰 요소는 ’상대방을 미안하게 만드는 것’인 듯하다. 부모가 과도한 관심이나 애정을 쏟음으로써 아이가 미안함을 갖게 되는 것, 친구에게 경제적 편의나 이익을 주선함으로써 그로 하여금 나에게 미안한 마음을 들게 하는 것 등은 관계 악화의 주범이라는 말이다. 어떤 관계라 할지라도 둘 중 어느 한 사람이 미안함을 느낀다면 그 관계는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끝없이 미안함을 주입하려 한다. 그것이 곧 상대방에 대한 권력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안함을 느끼는 ’을’과 미안함을 느끼도록 하는 ’갑’의 관계는 언제나 그 한계를 지니게 마련이다. 누군가가 안 돼 보여서 자선을 베풀었다고 할지라도 관계 유지가 우선이라고 생각되어지면 자신이 베푼 자선은 잊어야 한다. 상대방도 잊게 만들 수만 있다면 더더욱 좋겠지만 적어도 미안함을 느끼는 상대방에게 대가를 요구하는 듯한 태도를 취해서는 절대 안 될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조금의 틈이라도 있으면 그 틈새로 미안함을 주사하려 한다.


삶이 힘들다는 것은 인간 관계가 어렵다는 것과 진배없다. 내가 리뷰를 쓰기에 앞서 인간 관계에 대해 길게 늘어놓은 이유도 작가가 이 책에서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관계의 차원에서 절망이란 세상 모든 사람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대가를 지불해야 할 대상이 제 능력을 크게 벗어난 것이다. 그들 중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 기본에 충실한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 그는 적어도 최악의 결심을 하지는 않는다. 만약 누군가 자살을 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은 모두가 져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책에서 작가는 ’1부 그럼에도, 눈부신 날들’, ’2부 좋은 방황, 비로소 내가 되는 시간’, ’3부 간절한 것들은 다 일어선다’를 통하여 누구나 절망에 빠질 수 있고, 그 절망을 안고 방황할 수 있으며, 가슴에 새긴 간절함을 통하여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물론 지금 나를 괴롭히는 바로 그 걱정도 마지막 서랍에 담는다. 그다음엔 동시에 두 서랍이 열리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다. 일할 때는 일거리 서랍만 열고, 집안일을 생각할 때는 가족 서랍만 연다. 어느 순간에도 그 ’고통의 서랍& rsquo;이 동시에 열리지 않도록 집중하는 것이다. 잘 안 되지만, 자꾸 연습하고 노력하면,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고통의 서랍을 임시로 닫아둘 수 있게 된다. 이도저도 안 될 때 쓰는 최후의 방법은 ’웅크리는’ 것이다. 강력한 천적을 만나 보호색 아래서 잔뜩 웅크린 벌레처럼 마음을 줄이고 줄이고 또 줄인다." (p.49 ~ p.50)


그러나 이런 말도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 ’너는 살 만하니까 그런 말이라도 할 수 있지’ 하고 비웃을 때가 있는 것이다. 나와 관계를 맺었던 모든 사람들이 적으로 여겨지는데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의 말이 위로로 들릴 리 없다. 나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거기에 있다고 본다. 부모는 부모라고, 선생님은 선생님이라고, 형은 형이라고, 누나는 또 누나라고 한 사람과의 기본적인 역할 관계보다는 미안함을 주입하는 데 더 열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미안함’에 기반한 그런 압박과 강요를 ’너를 위해서’라는 그럴 듯한 말로 포장하곤 한다.


"작년에 아버지와 동년배인 존경하는 장인어른을 떠나 보내기도 했고, 나 자신이 병원에서 짧은 기간이나마 질병과 죽음을 다시 생각하게 된 탓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점은 어느덧 내가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의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질풍노도 시기에 이르러 당시의 나 못지않게 방황하고 힘들어하는 아들을 보니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제야 희미한 기억 속의 아버지가 선명하게 이해된다. 어쩌면 우리는 아버지에게 진심으로 공감할 때 진짜 어른이 되는지도 모른다." (p.263)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그동안 과도하게 푸근했었다고 말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바깥 기온이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마음도 덩달아 추워지는 걸 느낀다. 살 만하다는 사람보다 죽겠다는 사람이 더 많은 걸 보면 세상은 일 년 내내 영하의 날씨에서 맴돌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세상에서 나도 어쩌면 ’나만 위로해 줘’ 바랬는지도 모른다.


- 2015년 11월 신간리뷰단 ’꼼쥐1’





[’인간다움’을 말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인간의 품격에 대해 논하는 것은 다분히 과거 회귀적이고 시대착오적인 태도로 지탄받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오늘날처럼 문명화되고 인간의 사고가 세련화되고 지식이 고도화된 현실에서는 인류가 과거에 보여준 야만성이 더 이상 자리할 곳이 없을 만큼 인간의 보편적 수준이 현격히 높아졌다고 믿는 경향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불안에 떨게 만드는 테러주의자들의 광분과 불특정 다수에 대한 폭력을 일삼는 반사회적 인물들은 여기서 예외로 취급되지만, 어쨌든 인간의 품격은 우리의 의식에서 완전히 떨쳐낼 수 없는 오래된 주제다. 이런 점에서 데이비드 브룩스가 쓴 『인간의 품격』은 완전히 상반된 양극단의 반응을 불러올 수 있는, 쟁점의 소지가 다분한 작품이다.


도덕적 실재론(moral realism)을 지지하는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브룩스가 지적하듯이 인간이 ’뒤틀린 목재’(crooked timber)처럼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자신의 약점에 맞서 죄와 약점을 성공적으로 극복함으로써 내면의 덕성을 쌓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인물로 성장해가는 것을 제일 목표로 삼고자 할 것이다. 이런 사람은 브룩스가 이 책에 차용하는 솔로베이치크의 개념 중에서 ‘아담 II’, 곧 도덕적 자질을 구현하고 내적 인격을 갖추며 옳고 그름에 대한 굳건한 분별력을 지향하는 내적 아담의 가치에 더 큰 비중을 두기 마련이다.


그에 반해, 미제너레이션(me generation: 자기중심적 사고를 가진 현세대)이 선전하는 자기중심주의(meism)에 끌리는 사람이라면, 인간이 뒤틀린 목재가 아니라 ’진흙 속에 감춰진 진주’이므로 펄에서 건져내어 진흙을 털어내는 약간의 수고만 하면 그 진가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고 믿을 것이다. 이런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의 경우라면 ‘아담 I’에게 더 큰 관심을 보일 텐데, 아담 I은 대단히 과시적이고 성취 지향적이고 가시적인 업적에 몰두하는 외적 아담이다. 여러분은 과연 어떤 입장을 지지하는가?


물론 이 두 입장에서 어느 하나를 취사선택하라고 하는 것은 이분법적 사고를 부추길 위험이 크다. 그리고 저자의 지적대로 아담 I과 아담 II는 비록 서로 상반된 특성을 보이지만 어쨌거나 인간인 우리에게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본질적인 특징이자 성격이어서, 결국 어느 한쪽을 다른 한쪽에서 완전히 떼어내어 서로 대비시키는 것은 전연 불가능하다. 즉, 어느 한 쪽이 다른 한쪽보다 강해서 두드러지거나 우월하게 나타나기는 하지만, 다른 한쪽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관계와 같다고나 할까. 두 아담 사이에 서로 조화와 균형을 맞추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에서 그렇게 하지 못한다.


이런 사실은 인간이 결코 완벽한 존재가 아니며 조금씩 개선되고 진보하는 존재라는 입장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증거처럼 느껴진다. 우리 모두는 인류가 이룩한 문화, 예술, 과학, 기술의 발전에 경탄하지만, 현실로 돌아와 자신의 모습을 볼 때는 늘 불만족스럽게 느낀다. 그런 현실에 대한 평가도 앞서 언급한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서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도덕적 실재론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현실을 자신이 아직까지 인격적인 성숙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생각하겠지만, 자기중심주의를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현실을 자신의 가치와 능력과 실력과 장점과 잠재력이 아직까지 완전하게 가시적으로 구현되지 못했음을 나타내는 표시에 불과하다고 치부할 것이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이 책에서 우리가 과거에 지니고 있었으나 현재에 상실한 것들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하도록 주문하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정직한 자기 평가와 겸양의 미덕’ 이다. ‘나’의 가치를 절대시하고 ‘나’를 세상의 중심으로 생각하도록 부추김을 받는 현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브룩스의 이런 조언은 마치 이제는 완전히 쓸모없어진 고리타분한 도덕주의나 체면주의의 회귀를 꿈꾸는 몽상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브룩스가 삶을 출세, 입신양명, 성공이 아닌 인격의 도야, 도덕적 가치의 체현, 내면적 덕성의 함양으로 정의하면서 그 증거로 제시하는 여러 인물들의 사례(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조지 엘리엇, 아우구스티누스, 새뮤얼 존슨 등)를 살펴보면, 우리도 그런 인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어쩌면 거의 흡사하거나 완전히 일치하거나 똑같은 인간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품격』을 읽고 브룩스의 입장에 십분 공감하거나 브룩스의 논리를 완전히 배격하는 것은 여러분의 자유다. 그렇지만 우리가 작게는 가족이나 집안, 크게는 직장이나 사회나 국가에 소속된 한 구성원으로 전체 속에서 조화로운 관계와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면, 『인간의 품격』은 자기 자신을 어떤 존재로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한 번쯤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 2015년 11월 신간리뷰단 ’eliot’





[누구에게 먼저 구호의 손길을 보낼까?]


인명 구조원 도착 후 30초에서 60초 사이 부상자들에게 주어지는 4가지 색의 트리아지 태그(triage tag), 즉 MORGUE 검은색: 사망 혹은 사망까지 진통제만 투여, IMMEDIATE 붉은색: 생명이 위험한 상태. 즉각적인 구호 조치 필요, DELAYED 노란색: 구호 조치가 지체되어도 생명에 지장이 없는 부상, MINOR 초록색: 경미한 부상 등으로 구분된다.


모든 부상자들에게 의료 서비스가 필요하지만 부족한 의료진, "어떤 환자에게 우선적으로 의료 서비스를 지원할 것인가!" 구호 조치가 의미 없는 부상자, 구호 조치가 덜 시급한 부상자 대신 구호 조치가 가장 시급한 붉은색 태그를 받은 부상자에게 먼저 의료진을 투입하여 이후 단계별로 치료한다. 그러나 모든 부상자들이 생명이 위험한 상황이라면? 누구에게 붉은색 태그를 줄 것인가, 아니 누구에게 붉은색 태그를 주지 않을 것인가.


내 지갑 속의 돈이, 투자할 수 있는 자금이, 정부의 예산이 부족하다. 거대한 지구도 모든 인류의 욕망을 채워주기엔 부족하다. "누구에게 붉은색 태그를 줄 것인가?" -’프롤로그’ 중에서


함께 잘 사는 경제를 꿈꾸며


책의 출발이 우리들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마치 현재의 상황이 위기인 듯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그렇다. 지금 한국의 경제 상황이 그리 썩 좋은 편은 아니다. 물론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두 차례의 글로벌 경제 위기를 거치면서 지구촌 경제는 전반적으로 저성장 국면에 놓여 있다. 소위 경제 선진국들이 포진해 있던 유럽 지역조차도 일부 국가들의 재정 위기라는 새로운 문제점이 등장, 유럽공동체EU의 결속력에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경제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지식인 반면 어려운 분야이다. 그런데,  경제가 정치를 만나면 이상해진다. 보편적인 복지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정책 입안하는 정치인들은 대체로 둘로 갈린다. 한 쪽에선 아무 생각없기 퍼주기식 선심 복지를 펼치려 하고, 다른 한쪽에선 잘사는 집까지 무상급식을 제공하는 무차별적 무상복지는 안 된다면서 차별적인 복지 정책을 주장한다. 


성장과 분배, 소비와 노동 등 경제 분야의 다양한 개념과 글로벌 경제 이슈를 방송해 온 EBS의 <지식채널e>, 특별기획 시리즈인 <경제 시리즈>의 내용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서 출간했다. 이 책은 단순히 경제 개념들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최근의 토마 피케티부터 먼 엣날의 애덤 스미스에 이르기까지 경제사經濟史의 중요한 이론과 법칙을 정립한 경제사상가의 목소리를 인용,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경제 쟁점들을 쉽고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의 세 가지 물음을 던진다. 이 세 가지 질문은 경제의 기본 개념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각국에서 실행되고 있는 다양한 경제 정책들이 궁극적으로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올바른 성장과 분배를 위해 경제 행위의 주체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담아내고자 한 방송 프로그램의 의도를 여실히 보여주는 셈이다.


최초의 위대한 경제학자


종교 교리보다 이성을 중시했던 르네 데카르트, 프랜시스 베이컨 같은 사상가들처럼, 권위에 따르지 않고 실험과 관찰을 믿었던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갈릴레이, 아이작 뉴턴 같은 과학자들처럼, 새로운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본 최초의 경제학자가 있었다. 18세기 중반, 스코틀랜드에서 명강의로 소문난 존경받는 교수이자 <도덕감정론>을 출간해 유럽 전역에서 유명해진 철학자이기도 한 그는 바로 애덤 스미스(1723~1790년)이다.


"국가의 부란 국가가 보유한 재산이 아니라 국민 전체가 소비하는 상품들로 구성된다"


스코틀랜드 커콜디에서 태어난 그는 1736년 글래스고대학에 입학해 도덕철학을 공부했다. 똑똑한 탓에 그는 3년 후 장학금을 받고 옥스퍼드 벨리올칼리지로 학적을 옮겼지만, 데이비드 흄의 <인성론>을 금서 목록에 올릴 만큼 편협한 학문 분위기에 실망을 해 학위를 포기하고 에든버러에서 대중 공개 강연을 진행하며 독자적인 경력을 쌓았다. 이후 1751년에 글래고스대학에 논리학 교수로 부임한 뒤 이듬해 도덕철학 교수로 임용된다. 1759년 그간의 강의를 묶어 펴낸 책이 바로 그 유명한 <도덕감정론>이다.  


1764년, 그는 대학을 그만두고 젊은 공작의 개인교사가 되어 여행길에 오른다. 수년간 유럽 전역을 떠돌면서 그는 볼테르, 벤저민 플랭클린 등 당대의 지성들과 친분을 쌓았고, 특히 중농중의 거두 프랑수와 케네에 매료된다. 당시 유럽은 산업혁명을 코앞에 두고 정치는 절대왕정, 경제는 중상주의가 절정에 달해 있었다. 사치를 일삼던 절대왕정은 무역상과 제조업자에게 독과점과 특허권을 주면서 그들로부터 자금을 제공받는 야합을 했다.


나라에 금과 은은 쌓이는데, 아사자들이 속출하는 비참한 현실을 목격하고, 애덤 스미스는 일국의 부는 귀금속의 양이 아니라 ’생산’에서 비롯된다는 케네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중농주의를 주장하는 케네와는 달리 그는 부의 원천을 농업이 아닌 공업과 노동력이라고 판단했다. 커콜디로 돌라온 그는 여행하는 동안 쓴 글을 다듬어 1776년 <국부론>을 출간했다.


성서 이래 가장 위대한 책이란 평가를 받는 <국부론>으로 인해 그는 자유주의 시장경제학자들의 국부國父로 추앙됐다. 자유주의 시장경제학자들은 그의 이론 중 도덕적 공감 능력, 공정성, 국가의 책무 등과 같은 도덕적 요인 대신에 경쟁, 이기심, 시장 등의 요인에 주목했다. 특히, 이들은 <국부론>을 오역해 경쟁 시장을 경제의 조절자로 파악하고, 경제를 국가 권력이나 도덕적 책무와는 전혀 무관한 영역으로 분리했다. 이로 인해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반反복지 친親기업’이라는 그릇된 이미지로 바꿔 놓았던 것이다. 한 마디로 오류가 낳은 변태인 셈이다.


GDP 상승이 더 나은 생활을 보장한다(?)


1930년대, 미국의 경제는 멈춰버렸다. 3명 중 1명은 실업자, 파산과 생활고로 고통에 빠진 사람들이 넘쳤다. 하지만 나라의 경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통계가 없어서 얼마나 경제가 나빠졌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던 미국, 이때 한 학자가 신비로운 도구를 발명했다. 이는 바로 국내총생산GDP였다.


"GDP가 미국을 살렸다"
- 미국 상무부 장관(1999년)


일정 기간 동안 한 나라 안에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치를 모두 더한 값이 ’국내총생산’이다. 총생산이 많아진다는 것은 생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며, 총소득이 많아진다는 것이므로 ’생산량’만으로 경제의 흐름을 볼 수 있게 해준 획기적인 도구가 미국을 살렸다는 설명이다. 이후 GDP는 많은 나라들의 경제 목표가 되었다. 하지만 ’생산=복지’라는 등식은 결코 성립하지 않는다.


이런 한계를 진작 지적한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는 "GDP만으로 한 국가의 복지를 추정하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그 이유로 재화가 생산되면 GDP는오르지만 환경오염도 발생하며, 자동화시스템으로 생산량이 늘어나면 GDP는 상승하지만 상대적으로 일자리는 감소한다. 드리도 재해가 발생하면 그 복구비용은 GDP를 상승시킨다.


"보다 더 높은 성장을 목표로 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성장시키려는 것인지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 사이먼 쿠즈네츠, GDP 개 념의 창시자


게임의 법칙


우리가 사냥꾼이라고 가정해보자. 목표물은 사슴 또는 토끼다. 토끼는 혼자서 잡을 수 있고 50,000원이다. 사슴은 여러 사람이 협력해야 잡을 수 있어서 200,000원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사냥해야 할까? 이젠 남들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상대방의 선택에 따라 자신의 이익이 달라진다. 그래서 끊임없이 상대방의 전략을 예측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계속된다. ’현재 받는 보수가 적어서 다들 파업에 참여할 거야’, ’같이 참여하지 않으면 오히려 불이익을 받을지도...’ 등 이런 생각에 참여할지, 아니면 불참할지를 놓고 갈등에 휩쌓인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마케팅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모두에게 손해야’, ’경쟁사 수준에 맞춰야지, 우리만 뒤처질 순 없어’란 생각에 그냥 유지할지, 아니면 올릴지를 놓고 고심에 빠진다.


이처럼 상대방의 전략에 따라 자신의 전략이 달라진다. 이게 바로 게임의 법칙이다. 서로 ’윈윈’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를 연구한 학자가 있다. 미국 수학자 존 내쉬다. 상대방의 전략을 전제로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전략을 택해 소위 ’내쉬 균형’을 만들어 냈다. 이 균형이 유지되는 조건은 "상대방이 전략을 바꾸지 않는 한 나의 전략을 고수한다"이다.


존 내쉬의 삶을 영화로 제작한 것이 <뷰티풀 마인드>이다. 이 영화에서 내쉬 균형을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내쉬가 대학원 친구들과 놀고 있는 술집에 금발 미녀기 들어온다. 당연히 남자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린다. 이때 과연 누가 미녀를 차지할지를 토론한다. 이때 내쉬는 술집 안의 모든 남성이 금발 미녀에게만 매달리면 선택받은 1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불행해지므로 오히려 술집 안의 갈색 머리 여성에게 다가가면 더 많은 파트너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결론을 낸다. 즉 ’내쉬 균형’은 남자들이 모두 금발 미녀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는 이 게임이론으로 1994년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공유지의 비극


다시 풀과 나무가 자라는 데 걸리는 시간, 다시 물고기가 번식하는 데 걸리는 시간, 인류에게 딱 맞는 행성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1968년, 과학 논문에 실린 우화寓話를 살펴보자. 공동으로 사용하는 목초지에서 목동들은 양을 키운다. 어느 날 한 목동이 이런 생각을 한다. "다른 목동들이 양을 더 많이 풀 때 나만 풀지 않으면 ’내 손해!’"라고 말이다. 반대의 경우가 되면 당연히 자신만 이득을 보게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른 목동들도 동일한 생각을 한다.


양들이 풀과 심지어 풀뿌리까지 뜯어먹어 목초지가 황폐화됨에도 불구하고 목동들은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하며 계속 양들을 목초지에 집어넣는다. 어떻게 될까? 마침내 양 한 마리도 키울 수 없는 황무지가 되어버린 목초지만 덜렁 남는다. 누구의 잘못일까? 개인의 이익을 위해 자원을 남용하면 결국 전체의 손실을 초래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유지의 비극’이다.


무엇을 살 것인가?


아프리카 서해안에 도착한 영국의 배가 아프리카인들을 싣고 서인도제도로 향한다. 서인도제도에서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를 경작하는 농장에 아프리카인들은 노예로 팔려갔다. 18세기, 노예무역을 통해 영국은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누렸다. 당시 이 무역을 강력하게 지지한 상인, 군인, 왕족과 귀족들, 이들은 무슨 권리로 사람을 사고팔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이에 다른 생각들이 조금씩 퍼져나갔다.


’인간을 사고파는 것은 금지되어야 한다’


1791년, 노예무역을 폐지하기 위한 본격적인 운동이 전개된다. ’서인도제도산産 설탕 불매운동’이다. 이 운동으로 서인도제도산 설탕의 판매량은 3분의 1로 감소한다. 반면 동인도제도산 설탕의 판매량은 2년 동안 무려 10배 증가했다. ’소비의 방식’이 바뀌면 ’세상’이 바뀔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1807년, 마침내 영국은 노예무역을 폐지한다.


10여 년 후, 노예제도를 폐지하기 위해 불매운동이 부활한다. 소수만이 투표권을 가지고 잇던 시대, 비록 투표권이 없더라도 소비자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었던 힘을 시장에서 행사했다. 설탕 상점마다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설탕 그릇이 등장했던 것이다. 이 그릇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노예가 만들지 않은 동인도제도 설탕입니다"


피케티가 마르크스에게


200년 전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몰락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즉 최저임금을 받으며 착취당하는 노동자, 이윤을 챙기는 자본가, 기계로 대체되는 노동력, 증가하는 실업자, 기계로 생산한 상품을 구매할 사람이 없어져서 감소하는 이윤 등 이런 현상으로 말미암아 결국 자본주의는 몰락하고 자본가의 자본수익률은 0에 가까워 자본은 고갈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1820년부터 2010년까지 각 국가의 자본수익률은 4~5퍼센트 밑으로 하락한 적이 없었다. 자본수익률은 경제성장률보다 영원히 높을 것이므로 마르크스 당신의 전제는 틀린 것이다. 하지만 한편만 옳았다. 자본주의는 경제적 불평등을 만드는 모순에 빠지고 말았다.


"자본주의는 참을 수 없을 만큼 터무니없을 정도로 불평등의 상황을 초래할 것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사회의 근간이 되는 능력주의의 가치를 송두리째 흔들어버릴 것이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데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 토마 피케티


마이너리티 리포트


"가난은 개인의 탓이다"


이는 300여 년간 바뀌지 않은 영국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1905년, 가난을 구제할 방법을 찾고자 정부가 구성한 왕실빈민법위원회에 속한 한 명 비어트리스 웹(1858~1943년), 사회학자인 그 녀는 "가난은 개인의 탓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한낱 아이디어로 머문 그녀의 놀라운 이야기를 들어보자.


"지역 교육위원회를 만들어 아동에게 맞는서비스를 한"
"아이 엄마에게 가족 수당을 지급한다"
"누구나 건강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생존을 위ㅙ 최저임금제를 도입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국가’가 주도적으로 한다"
"그리고 시민은 자신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1942년,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보낸 일명 ’베버리지 보고서’가 등장했다. 전 국민의 보편적 복지를 국가의 역할로 규정했던 것이다. 이는 바로 현대식 복지국가의 기틀을 만든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서구식 복지국가 모델이다. 이 보고서의 출발점이 바로 1909년의 마이너리티 리포트였다. 당시 웹의 조사원으로 일했던 윌리엄 베버리지(1879~1963년)는 마이너리티 보고서를 근거로 사회보장청 설치와 구빈법 폐지를 제안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아이디어를 잊는 것이다"
- 존 메이너드 케인스


희소성, 그리고 선택과 분배


모든 경제 문제의 출발점은 희소성과 이로 인해 야기된 선택과 분배에 대한 이야기로 전개된다.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지만, 자원은 유한하다는 희소성을 긴급구조시 부상자들에게 주어지는 4가지 색 트리아지 태그와 연결지어 설명하면서 부족한 자원과 예산을 효율적으로 분배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한다. 너와 나, 함께사는 세상이다. 한 발 물러나서 상대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행복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 2015년 11월 신간리뷰단 ’호시우행’





[궁금증은 지식이 되어 나에게로 왔다]


1. 개인적으로 이렇게 호기심을 풀어주는 책을 참 좋아라한다. 워낙에 궁금증도 많고 호기심도 많기 때문일텐데, 정작 내 주변에는 이런 나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해결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런 책이 더 반가운지도 모르겠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궁금증과 호기심의 해답에 목말 라했으면서도 정작 내 조카의 궁금증과 호기심은 풀어주지 못한다는 거다. 한창 이 나이때(조카는 5살,7살) 궁금한것도 많고 질문도 많다. 주말마다 놀러오는 조카들은 끊임없이 질문을 해댄다. 눈에 보이는 것 하나하나가, 질문의 대상이 되고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 아는건 아는범위내에서 대답을 해주고, 모르는건 "아. 이모가 갑자가 생각이 안나네. 다음주에 놀러오면 알려줄께."라고 이야기를 해놓는다. 그런데, 요녀석들. 기억력이 좋은건지, 궁금증에 대한 답을 듣고 싶은건지 한주가 흐르고 나서 나와 대면하는 순간, 그때 듣지 못했던 답을 재촉한다. 그에 대한 답을 알아냈을땐 뿌듯하게 이야기를 해주고, 그렇지 못할때엔 얼버무리게 되는데, 한편으론 참 머쓱해진다.


<궁금증이 지식이 되는 아하!>를 보자마자, 조카들 생각이 났다. 끊임없이 엉뚱한 질문들을 해되는 조카들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서 노란달걀과 흰달걀의 차이와 우체통이 빨간이유를 퀴즈로 내기도 했는데, 7살짜리 조카가 맞추어 버려 충격을 받기도 했다는. 물론 상세한 답까지 자세히 말하진 못했지만, 때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답이 정답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흰달걀과 노란달걀의 차이가 뭐게?
조카: 색깔이요.
나: 응? 색깔.
조카: 흰닭이니까 흰색알 낳구요. 노란닭이니까 노란알 낳구요.
나: 헉.


나: 흠..그럼 우체통이 빨간색인 이유가 뭘까? 조카: 빨간색이 눈에 잘 띄잖아요. 나: 그리고?
조카: 사람들한테 빨리 전해줄라구요.
나: 그거랑 빨간색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
조카: 소방차도 빨리 가야 되니까 빨간색이잖아요. 나: 헉.


2. 저자 이병관을 나는 알지 못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저자의 약력을 살펴본다. 저자는 1994년 기존의 상식과 고정관념을 깨는 책 <어, 그래?> 시리즈를 기획했던 분이셨다. 그뒤에는 mbc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작가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mbc 라디오 <그건 이렇습니다>를 맡고 있다고 하시는데, 청취자들의 호기심 덕분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계신단다. 이 책은 <그건 이렇습니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청취자들과 소통하면서 낳은 결과물인 셈이다. 진작 이런 프로그램을 알았다면 호기심많은 우리 조카의 질문에 답을 찾기위해, 인터넷을 검색하고 책을 뒤적거리며 진땀을 빼진 않았을텐데...그나마 이렇게 책으로 만나게 되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저자는 겸손하게도 청취자들의 질문에 답을 찾아 올린것뿐이라 하지만, 조카의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진땀뺐던 그 순간을 떠올려보자니, 그 과정이 얼마나 수고스러운지를 아는 나는, 참 감사하기만 하다.


이 책은 크게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사회문화이야기를, 2장에서는 정치경제이야기를, 3장에서는 자연과학이야기를, 4장에서는 기술과정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런 책들이 가져다 주는 장점은 지루하지 않다는 것이다. 더불어 소설처럼 이어지는 내용이 아닌,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주는 책이므로 목차를 통해, 평소 궁금했던 내용부터 찾아서 보거나, 호기심 가는 제목을 펼쳐서 읽어볼 수도 있다는 거다. 개인적으로 재미있는 궁금증들이 해소되어 좋기도 했지만, 그와 관련된 역사와 지식,상식을 알 수 있어 좋았던 것 같다.


 더불어 ’더 알아가기’ 코너를 통해 관련된 정보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하나 하나 알아가는 즐거움을 주는 책이랄까.


3. 이 책은 신간서적이라보니, 새롭게 개편되거나 바뀐 내용에 관련된 정보도 수록되어 있어 좋았다. 우편번호와 관련된 것이 그것이었는데, 몇달전에 우편번호가 바뀌었다고 우편 하나가 날아 왔었다. 사실, 그땐 왜 또 우편번호를 바꾸어서 헷갈리게 하나 싶어 불만 아닌 불만도 살짝 가지고 있었더랬다. 왜 갑자기 바꾸는지 궁금했는데, 그 답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우편번호가 우편물을 구분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코드라는 것은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놀라웠던 점은 나는 우편번호가 처음 도입되었을때부터 6자리라고 생각했었다. 6자리에서 이번 2015년 8월에 다섯자리로 개편된거라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나라에서 우편번호가 처음 도입된것이 1970년이라고 하는데 그때 다섯자리로 도입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1988년에 여섯자리로 되었다가, 다시 2015년 8월에 다섯자리가 된 것이었다. 내가 편지를 처음 쓰기 시작했을때(우표를 사용해서 붙인 편지)가 1990년이었으니, 나는 우편번호 여섯자리가 당연하다고(원래부터 그랬던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처음에 다섯자리였을때는 우체국별로 부여한 다섯자리 숫자체계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 당시만 해도 우편번호와 행정구역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그러다가 1988년 행정구역별 여섯자리 숫자체계로 우편번호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2015년의 새우편번호는 국가기초구역번호인데 우편뿐 아니라 소방 통계등 모든 공공기관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번호라 한다. 앞의 두자리는 특별시, 광역시 도 등를 나타내고 세번째 자리는 시 군 구를 마지막 두자리는 지형지물을 경계로 세분한 구역의 일련 번호라는 것이다. 이렇듯 이 책을 통해 몰랐던 정보를 알게 되는 것은 물론이요. 그와 관련된 지식, 역사도 알게 되어 뿌듯하면서도 흥미로웠다.


그럼 이 책은 이런 지식, 정보만 담아내고 있느냐 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가령 ’머리에 가마가 두개면 정말 결혼을 두번 하나?’ 라든가, ’로또번호는 왜 45까지 있을까’,’고사상에는 왜 돼지머리를 올릴까?’,’교도소에서 진짜 콩밥만 먹을까?’ 하는 등의 다소 엉뚱하지만 궁금했던 내용들도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도 궁금했던 내용이기에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이렇듯, 이 책에 실린 궁금증의 종류는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을것 같다.


첫째, 바로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엉뚱하지만 궁금했던 내용들.
두번째, 역사와 관련된 궁금증들 (월남치마와 몸빼는 언제부터 입었을까, 선글라스는 누가 처음 썼나, 기립박수의 기원은?, 열두가지 동물띠는 언제 생겼나?, 불꽃놀이는 언제부터 했을까 등등)
세번째, 정보와 상식을 전해주는 내용들 (위조지폐구별법, 반려동물들의 평균수명, 싱크홀이 생긴 이유, 핫팩 어떻게 따뜻해질까, 노란달걀 흰달걀 뭐가 다를까 등)


그래서, 흥미로웠고, 그 흥미로움은 지식으로 내게 다가왔다.


4.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내용 두가지를 꼽자면 위에서도 언급했던 ’노란달걀과 흰달걀의 차이’ 되겠다. 왜 어떤 닭은 흰달걀을 낳고, 어떤 닭은 노란달걀을 낳을까 싶었는데, 달걀 색이 두가지인 이유는 달걀 껍데기 색깔이 암탉 털 색깔을 닮은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백색 레그혼이나 미놀카 같은 털 색깔이 흰 닭은 흰 알을 낳고, 갈색이나 노란색인 뉴햄프셔나 로드 아일레드종, 황색닭은 노란색 알을 낳는다는 것이다. 사실, 색만 다를 뿐이지 영양분상으로는 큰차이가 없다고 한다. 어릴적엔 흰달걀도 보았던것도 같은데, 지금은 주변에서 쉽게 찾볼 수가 없다. 그 이유가 노란달걀이 흰달걀보다 몸에 좋다는 인식이 퍼져서, 사람들이 노란달걀만 찾다보니 양계농가에서는 흰닭을 점점 키우지 않게 되고, 지금은 거의 흰달걀을 찾아볼 수 없다는 거다. 달걀색이 털색깔 때문이라니 신기했고,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에 흰달걀을 찾아볼 수 없어 아쉬웠던 것 같다.


 며칠전에 물건을 주문하고 사은품으로 핫팩을 받았더랬다. 일나가시는 어머니를 위해 핫팩을 드렸는데, 사용법을 물어보셨다.(어머니가 시력이 좋지 않아, 작은 글씨 보기가 힘드신;) 사실, 나도 핫팩을 쓰지 않다보니,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몰랐는데 뒤에 설명서를 보니 봉지를 개봉한후 10회~20회 흔들어주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화상에 주의해야 하며, 손수건등으로 핫팩을 감싸서 사용하라는 말도 적혀 있었다. 또한 핫팩이 14시간정도 지속된다는 말이 적혀있어 어머니에게 그대로 전해드렸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요즘 나오는 물건들은 정말 신기하시다면서, 어떻게 봉지를 개봉하고 흔들기만 했는데 그것이 14시간이나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느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머쩍은 웃음만 날리며,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는데, 이 책에 그에 대한 해답이 실려 있었다. 책을 읽다 말고 안방으로 달려가서 왜 그런지를 설명할 수 있어 나름 뿌듯하기도 했다. 더불어 알아가는 즐거움을 다시금 느낀 순간이기도 했다. 책의 설명을 빌리자면, 흔들면 따뜻해지는 가루형 핫팩은 철을 간 철가루와 함꼐 활성탄, 소금 소량의 물, 그리고 질석, 톱밥이 들어 있다고 한다. 철이 공기에 노출되면 녹이 스는데, 산소로 인해 산화하는 것이라 했다. 이때 산화 과정이 길게 일어나기 때문에 산화되는 그 시간(8시간~24시간까지)까지 올라간 온도로 따뜻하다는 것이다. 사용전에 봉지를 개봉하는 이유역시, 공기와 접촉하면 산화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과학의 원리를 활용화시킨 제품이었던 셈이다.


책을 읽으면서 실생활속에서 궁금했던 내용들을 마주하면서 신기했다. 그리고 정치경제의 정보도 얻고, 원리가 보이는 과학을 접하며 흥미로웠던 것 같다. 더불어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는 궁금증도 많아 유익했던 시간이었다. 사람들의 궁금증은 끝이 없다. 개인적으로 이런 시리즈물은 2권, 3권 시리즈로 나와도 반가울것 같다. 단 식상하지 않는 궁금증과 질문들로 우리를 찾아온다면 말이다. 평소 궁금증과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정보와 지식을 그리고 상식을 재미있게 쌓고 싶은 사람이라면 <궁금증이 지식이 되는 아하!> ,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 2015년 11월 신간리뷰단 ’별이’




[자연의 흐름에 눈뜨게 하는 첫 자연동화]


유아기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우리 아이는 여섯살인데도 아직 뿌직, 뽕~ 이야기를 무지 좋아하거든요
<쏘옥뿌직> 이야기는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는 먹고 싸는 이야기랍니다.
글밥은 아주 작지만,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아주 단순화된 그림이 눈길을 끄는데요.
자연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흥미를 주며 읽어주기 좋은 책, 첫 자연동화로 추천해요.
아주 단순한 이야기이지만 나무에 열매가 열리고, 그 열매를 동물들이 먹고 싸고,
비를 만나 다시 새싹을 만들고 다시 열매가 되고 자연의 유기적인 흐름을 아주 간략하게 보여주고 있거든요.


여섯살인 아이가 보기에는 조금 어린 책 같지만,
요즘 한창 동물이나 자연 그리기에 흥미를 보이고 있어서인지
자연물을 단순화해서 보여주는 단순한 그림이 있는 그림책을 보는 것도 필요하더라구요.
아이에게 무턱대고 이거 그려봐 할 때 보다 이렇게 단순화한 그림책을 보여주고,
먼저 엄마가 따라 그려보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도 금새 따라 그리거든요.
이 때, 꼬옥 엄마는 좀 어눌하게 아이보다 조금 못 그려야 해요.
그래야 아이가 스스로 자신감을 가지거든요.
아이보다 월등히 잘 그려버리면 아이가 스스로 포기하는 경향이 있어서
우리 집에선 이렇게 하고 있어요.

도토리가 나무에 쏘옥
시작은 도토리가 나무에 열매를 맺는 순간부터 시작합니다
앞서 다른 책을 읽어주고 이어서 덤으로 더 읽어주던 참이라 아이가 쉬이 집중을 않했어요.
그래도 그림도 단순하고 글밥도 짤막해서 이런 순간에도 읽어주기 좋은 책이더라구요.
종이를 접으면서도 힐끗 책 한 번 봐주며 엄마가 읽은 대목을 따라하고
그림도 힐끗 보고서는 도토리가 나무에 매달려있다고 합니다.
아, 이 책을 처음 읽어주는 모습은 아니랍니다.^^.


도토리가 나무에 쏘옥 열리고, 이내 다람쥐가 와서 도토리를 쏘옥 먹습니다.
다람쥐는 원래 도토리 먹어!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얘기해요.


근데 다람쥐만 도토리를 먹는 게 아니에요.
다람쥐가 도토리를 먹고 똥으로 뿌직 싸는데.. 그걸 다시 새가 먹고는 날아가면서 바다 속으로 뿌직 새똥을 싸며 날아가요.
얘들 도토리 먹고서는 왜 자꾸 똥으로 싸?
그러게. 도토리가 딱딱해서 소화를 못 시키는 걸까?


새똥을 지나 또 다른 동물들이 먹고 싸고..
그러던 중 비가 오고나니 똥 속에 있는 도토리에서 새싹이 쏘옥 내밀어요.
도토리, 모자 벗었어.
도토리에서 새싹이 나오면서 도토리 머리 위에 씌워져 있던 껍질이 벗겨지는데
그 그림이 넘 이쁘게 되어 있어서 아이가 모자를 벗었다는 이쁜 표현을 하는 거 있죠.


도토리에서 새싹이 돋아나 그 새싹이 자라 나무가 되어 다시 도토리 열매를 맺고,
그 열매를 다시 동물들이 쏘옥 먹고 뿌직 똥을 싸는 왠지 끝이 없을 것 같은 이야기예요.



책을 다 읽고 아이에게 도토리 한 번 그려보자고 하니 쓰윽 그림을 보고는
이거 그리기 쉽다!!
이러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요.
사실, 글밥이 작은 책들은 조금씩 정리하고 있기도 하지만,
아이의 읽기 독립이나 이렇게 사물을 단순화한 그림들을 보며 그림을 그려서
이런 책들은 아직 책장에 꽂아두고 있어요.


도토리가 나무에 열린 모습 뒤로 도토리 꽃이라고 도토리도 한 송이 그려주고 그 위로는
나무 한 그루 옆, 땅 속에서는 다람쥐고 도토리를 먹고 있고 땅 위로는 눈이 내리는 풍경이랍니다.
겨울이라도 눈(雪) 내리는 걸 자주 볼 수 없는 곳이어서인지 아이는 벌써부터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이야기 속에서도, 그림에서도 눈(雪) 이야기는 없었는데 자기의 염원을 담은 그림도 그려놓은 거 있죠.



- 2015년 11월 신간리뷰단 ’아이아몽’





[나 쌀벌레야]



올 초에 모 출판사에서 동시집에 나왔는데, 그 안에 저희 딸아이의 동시도 실렸답니다. 물론, 잘 써서 실렸다기보다는 미리 신청을 해서 뽑혔기에 실린 겁니다(그렇다고 순 엉터리는 아니고요. 제법 잘 썼답니다. 물론, 아빠 눈에 그런 거겠지만요^^). 기다리던 책이 나와 집으로 배달되니, 딸아이가 기분이 좋은가 봅니다. 며칠을 이 책을 끼고 있더라고요. 무엇보다 할아버지 댁에 가며 자랑을 했죠. 할아버지는 기분이 좋으셔서, 좋은 노트들을 잔뜩 선물해 주셨고요(제가 탐낼 좋은 노트들이더라고요.^^). 그곳에 시를 더 많이 적으라며 말이죠. 그 때부터 딸아이의 동시 사랑이 시작되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동시를 적어 채점을 해달라는 겁니다. 엄마, 아빠 확인 칸을 만들어서 말이죠.


문제는 이런 딸아이 덕에 아빠인 저도 덩달아 동시집들을 찾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때 아닌 동시집들이 저의 책꽂이에 한권 두 권 꽂히기 시작한 겁니다. 동시집이 많이 출간되는 출판사들이 몇 있는데, 그 중에 단연 문학동네 동시집들도 제법 책꽂이를 차지하게 됐죠. 금번에 <문학동네 동시집> 39번째 동시집으로 출간된 『나 쌀벌 레야』 는 제3회 문학동네동시문학상 대상 수상작입니다. 그래서 이 책에 군침을 꽤 흘렸는데, 드디어 제 품에 안기게 되었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시집을 펼쳐 드는 순간 황홀함과 함께 이율배반적으로 자괴감도 느껴지네요. 아, 시인의 눈은 역시 나랑 다르구나 싶은 마음에 말입니다. 아니, 어쩌면 시인의 마음이 다른 거겠죠. 이렇게 예쁜 시들을 쓰려면 무엇보다 먼저 마음이 순수하고 예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울러 꾸밈없이 어린 마음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할 것 같고요. 시인을 알진 못하지만, 왠지 그런 분이겠다 싶어요.


마늘들이 왜 서로 붙게 된 줄 아세요? 그건 “어느 날 옆집 아기 감자가 / 귀신이다 하고 놀래 줬”기 때문이랍니다. “깜짝 놀란 일곱 형제가 / 엄마야 하고 / 꼬옥 끌어안았는데 / 무섭지도 않고 / 춥지도 않고 참 좋”았던 거죠.(<마늘 일곱 형제> 중) 시집의 첫 번째 시부터 빵 터졌답니다. 어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참 예쁘죠?


<안내 방송>이란 시도 참 좋았어요. 공원에 약을 치며 안내 방송을 하는 거예요. 그럼 어떤 방송을 생각하세요? 당연히 이런 방송일 거예요. “오늘 오후에 〇〇공원에 약을 칠 예정이니, 주민 여러분의 집 창문을 꼭 닫아두시기 바랍니다. 가급적 공원으로 외출도 삼가 주시길 바랍니다.” 뭐, 이런 내용 아닐까요? 그런데, 이 안내방송은 자벌레, 거위벌레, 비단벌레 등에게 오늘은 창문 꼭 닫으라고, 외출을 삼가라고 방송한답니다. 이런 반전이 한편으로는 통쾌하며, 또 한편으로는 참 따듯하네요. 약을 치는 이유가 얘네들 때문일 텐데, 얘네들에게 안내 방송을 하니 얼마나 예쁜 마음인가요. 아니, 어쩌면 무자비하게 약을 치는 분들을 향한 시인의 귀여운 호통일지도 모르겠네요.


<도토리와 왕탱이>도 멋집니다. 요즘 산의 도토리를 너무 주워와 동물들의 먹이가 부족하다고 하죠.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여전히 욕심껏 주워 오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규칙이 있다면 해결될 것 같아요. “도토리를 주울 때는 / 한 줌만 / 한쪽 주머니 찰 만큼만 / 모자 바닥에 깔릴 만큼만 / 주워야 돼 / 몽땅 슬어 담으면 / 왕탱이가 나타나 / ... / 도망가도 윙윙 / 귓속으로 먼저 쳐들어와 / 볼따구니에 한 방 / 기분이다 옜다 / 엉덩이에 한 방 / 맵게 쏴 버려” 도토리 많이 주우시는 분들! 왕탱이 무서운 줄 압시다!^^ 그리고 욕심 부리지 않는 규칙, 스스로 세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처럼 시인의 시들이 참 예쁩니다. <풀 깎는 날>이란 시는 읽으며 실제 풀 향이 코끝에 훅하니 밀려오더라고요. <모과나무>란 시는 읽으며 나도 모르게 함께 힘을 주게 되고요. 궁금하다고요? 그럼, 책을 ...^^


너무 좋은 시가 많아 할 말이 많지만, 하나만 더 소개할게요. 이 시는 아이들의 마음이 어떤지 절실히 공감이 되며, 괜히 아이들에게 어른으로서 미안하기도 하고 짠하다가도, 작은 것에 행복해 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미소가 지어지던 시에요.


책가방 하나 / 벗어 놓았을 뿐인데 // 하늘로 / 저절로 / 솟구친다
<놀이터에서> 전문


왠지 짠하지 않나요? 우리 아이들의 마음이 언제나 공부 스트레스에 짓눌리지 않고 하늘로 솟구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 쌀벌레야』란 이 시집이 아이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하늘로 솟구치게 해줄 것 같네요. 무엇보다 아이들의 마음, 그 맑고 순수한 동심을 잃어버리지 않게 도와줄 테고 말입니다.


- 2015년 11월 신간리뷰단 ’중동이’





[소문과 진실, 편견의 오류를 찾아 건강하게]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상품과, 정보에 파묻혀 때로 숨쉬기가 힘들어질 때가 있다. 평범한 일상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순간순간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고, 그 선택의 조건은 방금 전 인터넷에서 받은 정보, 어제 TV 고발 프로그램에서 본 정보, 몇일 전 신문의 건강 코너에서 본 정보, 그리고 책에서 본 정보들이 서로 다른 주장들을 하며 팽팽히 맞서는 형국에 부딪치기도 한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정보인가. 햄릿 증후군은 마음이 나약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근거없는 학설, 정치적 사회적 목적으로 악의적으로 퍼트린 정보들은 언제느 우리 주변을 맴돌며 매연처럼 뿌옇게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다.


우선 건강에 대해, 학교때 배운 지식과 그 이후에 연구된 새로운 학설과는 많은 차이가 있을 뿐더러, TV를 비롯한 각종 매체에서 주장하는 것들과 정반대의 상식들을 접할 때도 많다. 비타민 보충제는 도대체 먹으라는 소리인가 말라는 소리인가, 의사들끼리도 TV에서 서로 논쟁하는 걸 보면서, 단순히 살고자 하는 우리를 괴롭히는 이런 사소한 논쟁에서 멀어지려면 근거있는 증거를 찾기 위해 국회도서관에 들어앉아 평생 논문을 찾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까지 들 때가 있다.


그렇게 오랫동안 엄마의 ’손맛’을 뇌의 미각 시스템에 각인시켜온 MSG는 우리 세대에 자연의 맛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고, 상한 음식의 맛을 복구하는 싸구려 식당의 맛으로 변해왔지만, 요즘 다시 고개를 빳빳이 들고 정당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20년동안 안쓰고 살았는데, 각종 요리 프로그램과 블로그들에서는 조금만 넣어보면 맛의 새로운 차원이 온다고 말한다. 그렇게 후쿠오카 신이치의 <나누고 쪼개도 알 수 없는  세상>에서 읽은 내용을 상기해보면 글루탐산은 뇌안에서 신경전달물질을 주고 받을 때 쓰이는 신호물질로 뇌 안에서 합성된다. 한 때, 이러한 이유로 글루탐산나트륨이 뇌를 활성화시켜 머리가 좋아지는 것으로 인식되어 잘 팔린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다량의 글루탐산이 뇌의 수용체들과 반응하는 것도 문제가 생기려니와, 이를 방지하기 위해 뇌의 방어 시스템이 작동해 뇌 속으로 직접 흘러들어가는 일은 없다고 읽었다. 이제껏 안넣고 먹어도 잘 살았는데 괜찮다 괜찮다 하며 자꾸 부추기는 것은 영 달갑지 않다.


영국의 과학작가 브라이언 블레그는 <건강한 과학(원제목 : Science for Life)>에 건강과 음식에 대한 우리의 궁금증들을 백과사전처럼 엮었다.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여러가지 건강 정보들을 하나씩 표제어로 골라, 무엇이 어떻게 검증된 것이고 무엇이 근거 없는 낭설인지를 밝힌다. 잘못된 고정관념과 진실과 반대되는 주장들, 그리고 조작되거나 악의적 목적으로 퍼뜨려진 사실들이 상품 판매의 미끼로서 조작되어 이용되는 것들을 하나씩 다룬다.  저자는 박사나 뭐 이런 학문적 권위를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책을 많이 썼다. 그리고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영미권 과학저서가 대부분 갖는 수십페이지의 참고서적을 갖지 않는다. 많은 부분은 매우 상식적이고도 일반적인 내용으로 알고 있으나, 일부 사람들에게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마시는 자외선 차단제, 이어캔들, 동종요법, 과잉행동과 설탕과의 관계성, 척추교정술, 백신접종으로 인한 자폐증 주장, 체중감량제, 비타민C의 만병통치약설 등이 그것이다. 마시는 자외선차단제는 바르는 대신 마시면, 무슨 분자가 자외선 광자의 파동을 막아준다고 주장했다는 내용이고, 이어캔들은 캔들을 이용해 귓속에 있는 귀지와 각종 분비물을 배출한다는 건데 위험하게 들린다. 동종요법은 분자 하나도 거의 안남을 때까지 희석시킨 원인균 희석액을 약물로 이용해 치료한다는 거라는데, 영국 NHS는 팔랑귀인 모양인지, 이런 것들에게까지 지원했던 것 같다.


레드와인이 몸에 좋다고 하는 소문에 힘입어 어느 은퇴교수가 주장한, 매일 와인 한 병까지 마셔도 괜찮다는 설이 널리 퍼졌었던 모양인데, 그럴리가 없다. 항산화제와 비타민 는 많이 먹을 수록 좋다고 알고 있지만, 보충제를 많이 먹으면 체내에서 생산되는 항산화제의 양이 감소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저자는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우리가 멀리하는 화학제품들을 옹호하는 듯한 입장을 취하는데, 앞서 이야기한 MSG, 인공감미료, 각종 의약품 등이 그것이다.  MSG는 천연에서 존재하는 성분이므로 해롭지 않고, 해롭다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고, 인공감미료의 경우는 아스파탐은 유럽에서 전적으로 안전하다고 명확한 과학적 합의에 도달했으며 아주 빨리 분해되고, 1980년대에 암공포를 야기시켰던 사카린 역시 오명이다. 설탕을 대치가능한 저칼로리 천연감미료 스테비아 나무 추출물인 트루비아, 레비아나는 더 많은 연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섭취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조언한다.


전체가 식생활, 운동, 뇌, 심리학, 건강, 환경, 즐거움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거의 대부분 건강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430여쪽에 거의 2쪽에 하나 꼴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깊이있는 정보는 기대하기 어렵지만, 무엇이 근거 있는 것이고 무엇이 근거없는 것인지는 명확히 한다는 점에서 사전식으로 찾아볼 수 있는 좋은 참고서적이다. 그러나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해서, MSG를 지지하고, 또한 우리가 약용으로 알고 있는 어떤 허브류의 식물에서 유효성분만 추출한 알약을 먹는 것이 해당 허브류를 직접 먹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다는 저자의 주장 역시 완전하게 동의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과학적 근거는 맹검테스트를 포함한 정확한 실험으로 증명된 것만 말하는데, 그러한 과학이 증명하지 못했다고 해서 상품화된 모든 것이 모두에게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알아서 유의해서 읽는다면, 한권 쯤 갖추어놓을 만한 책이다.


- 2015년 11월 신간리뷰단 ’guiness1’




인터파크도서 북DB

인터파크도서에서 운영하는 북디비(BOOKDB)는 국내외 작가, 출판사 DB를 총망라한 도서 정보 사이트로, 작가 랭킹 서비스로 새로운 도서 선택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작가 인터뷰, 연재, 리뷰, 만남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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